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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184화 (184/473)

< 제68장 - 건국 기념 무도회 >

제68장 - 건국 기념 무도회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었다.

이는 국가에도 통용되는 말이었으니, 세일룬 왕국은 드넓은 영토와 막강한 국력을 갖춘 대국답게 그 저력이 실로 대단했다. 여간한 일 정도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일을 키웠지.’

뿌리 깊은 나무조차 흔들릴 정도로.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 해도 큰 병을 연달아 앓으면 버틸 수 없는 것과 같이.’

악마 추종자들은 세일룬 왕국을 무너트리기 위해 세 가지 사건을 준비했다.

‘하나는 야만족들의 북부 대침공.’

전쟁의 겁화로 야생의 땅과 북부를 뒤덮어 대환란을 초래한다.

북부를 직접적으로 망가트린다.

‘다른 하나는 왕족 몰살 사건.’

중앙의 왕족들을 몰살시켜 세일룬 왕국을 머리 없는 짐승으로 만들어 버린다.

동시에 왕도의 결계를 파괴하고 지옥문을 열어 중앙의 혼란을 극대화 시킨다.

‘마지막 하나.’

남부를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트리기 위한 최후의 계획.

원작에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성공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세일룬 왕국은 처참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진 일곱 개의 재앙.’

세일룬 왕국에 이어 아르곤 제국을 무너트린 지옥의 술수.

영웅전기2 중후반부에 걸친 장구한 모험 끝에 주인공들은 결국 일곱 개의 재앙을 모두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야말로 상처뿐인 승리에 불과했다.

아르곤 제국은 이미 멸망한 후였고, 전쟁의 불길에 대륙 전토가 잿더미가 된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여기서 끝났다면 다행이었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대소환제가 시작되었으니까.

지옥과 지상, 천상이라는 세 개의 세상을 잇는 문이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지옥의 악마들과 천상의 천사들이 지상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옥의 대군주들은 지상을 정벌해 천상을 칠 전진기지로 삼고자 했다.

천상의 대천사들은 지옥의 군세를 천상이 아닌 지상에서 막아내고자 하였다.

지상의 주인인 인간들의 생명 따위는 양쪽 모두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마겟돈.’

지옥과 천상의 대전쟁.

신적인 존재들의 격돌은 지상의 파멸을 야기했고, 무수히 많은 인간들이 죽음을 맞이하였다.

‘아포칼립스.’

더 이상 인간의 나라는 없었다.

인류는 세일룬 왕국의 멸망 전과 비교해 10분의 1도 살아남지 못 했고, 그나마 목숨을 건진 이들도 기아와 공포, 두려움 속에서 실낱같은 삶을 이어갈 따름이었다.

‘영웅전기3는 아마겟돈으로부터 몇 년 후 시점.’

잿더미가 된 세상 속에서 다시 한 번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

‘그래, 완전한 절망이 아닌 것 까지는 좋다 이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용납할 수 있는 ‘미래’도 아니었다.

플레이아데스는 더 이상 모니터 너머의 세상이 아닌, 유더 자신이 나고 자란 진짜 세상이었으니 말이다.

‘셋 중 하나는 이미 막았어.’

야생의 땅은 비록 큰 피해를 입었을지언정 원작과 달리 세력을 유지하였고, 세일룬 왕국 북부는 그야말로 완벽하게 전화를 피할 수 있었다.

‘반대로 악마의 눈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고.’

중급 마인을 무려 열댓 명 가까이 잃었을 뿐만 아니라 상급 마인인 하라겐까지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여기에 지옥의 문까지.’

지옥의 문을 열 수 있는 유물은 악마의 눈- 아니, 악마 추종자 집단 전체로 봐도 손에 꼽을 정도의 개수밖에 없었고, 그 숫자를 늘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중 하나를 허무하게 날려버린 셈이니, 마인들을 잃은 것 이상의 타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크레이믈러도 지상에 강림하지 못 했고.’

원작에서 바이엘 백작과 게일을 죽인 지옥의 대악마.

유더는 잠시 눈을 감고 긴 숨을 토했다. 아버지와 형을 구했다는 안도와 기쁨이 새삼 차오른 탓이었다.

“그리고 왕족 몰살 사건.”

원작에서의 흐름은 다음과 같았다.

건국 기념회의 대미라 할 수 있을 무도회가 끝난 직후.

호국공의 사냥개인 검은 달이 왕도 곳곳에서 테러를 일으키고, 이를 핑계 삼아 호국공은 왕족들을 왕궁 지하에 숨겨진 긴급 피난처로 집결시킨다.

‘그리고 몰살.’

국왕 헨리2세는 물론이고 그 형제와 자식들까지 모두.

성왕의 피를 끊어 왕도의 결계를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그 다음이 더 가관이지.’

결계의 핵이었던 성검 클라우 솔라스를 회수한 호국공은 그대로 왕도를 빠져나가지 않는다.

왕족들의 갑작스러운 ‘실종’과 결계의 소멸로 당황하는 귀족들 앞에 나타나 왕족들의 수색을 진두지휘하는 한편 결계가 사라진 왕도에 악마 추종자들을 끌어들여 더 큰 환란을 도모한다.

‘결국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 쓰러지긴 하지만······.’

그때는 이미 왕도가 수도로서의 기능을 모두 상실한 이후였다.

‘그 전에 막아야 해.’

필요한 조치들이라면 이미 할 수 있는 대로 해둔 상태였다.

테러의 주범인 검은 달을 무력화시켰고, 호국공을 도와 왕족 몰살 사건을 진행할 측근들을 일선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호국공을 사전에 붙잡는 건 불가능해.’

왕족들과 친해지긴 했지만, 이쪽은 끽해야 보름짜리 우정에 불과했다.

세일룬 왕국에 평생을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닐 호국공과는 아예 경쟁 자체가 불가능했다.

‘결국 현장에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어.’

호국공이 마각을 드러낸 순간 그를 막고 왕족들을 구한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작전이었다.

‘하지만 해내야만 해.’

크게 숨을 고른 유더는 정면에 놓인 계획서와 지도를 바라보았다.

작금의 상황에서 호국공이 할 수 있는 일들.

그에 따른 각각의 대비책들.

‘체스와 같아. 왕을 잡으면 이길 수 있어.’

하지만 이는 곧 반드시 왕을 잡아야지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과 같았다.

때문에 유더는 왕을- 호국공을 잡기 위한 방책들 역시 마련해두었다.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왕궁에 함정을 미리 설치해두는 것은 불가능했다.

때문에 성립 가능한 것은 오직 정면승부 뿐.

‘십검호인 호국공을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똑같이 십검호가 필요해.’

바이엘 백작과 제일검.

그리고 두 사람에 준하는 무력을 갖춘 체이스 백작.

문제는 셋 중 누구에게도 이번 일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능한 건 어느 정도의 언질뿐.’

그 이상은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는 수밖에 없었다.

‘누구든 동행해서 호국공 앞에 가면 되는 거니까.’

예전에 함께 일한 동료들이 지금의 계획을 보면 무슨 소리들을 할지 뻔했지만 당장은 이것이 최선이었다.

‘왕도에는 강자들이 너무 많아.’

이쪽뿐만 아니라 저쪽에도.

근위기사단과 근위마법병단에도 호국공의 손이 닿은 이들이 있었다.

특히 근위기사단에는 아예 호국공의 제자들이 몇이나 속해 있었고 말이다.

‘건국 기념회 날 왕도에 머무는 십겁호는 열 명 가운데 넷.’

나머지 여섯은 흐레스벨그 백작이 그러한 것처럼 요지를 지키는 등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 한 상태였다.

‘이쪽 편에 아버지와 제일검, 상대편에 호국공. 칠살검은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십검호 가운데 일원인 칠살검 세류.

저 먼 동방대륙 출신인 그녀는 그야말로 바람 같은 인물이었다.

방랑벽이 있는 터라 어디 한 곳에 정착하지 못 하고 세일룬 왕국 곳곳을 떠돌았는데, 그나마 검문이란 조직에 속해있는 제일검과 달리 세류는 속해 있는 집단조차 없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짐작조차 안 가는 랜덤 인카운터의 대명사.’

일단 초대 손님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는 걸로 보아 왕도에 있긴 있는 것 같은데, 과연 무도회에 모습을 보일지는 미지수인 인물이었다.

‘사전에 접촉해보려 했지만 그것도 무리였고.’

소재가 확실한 제일검에게 시간을 투자한 이후에는 로그 마스터 활동이랑 다과회 쫓아다니기 바빴으니까.

‘물론 없는 틈을 만들어서 수색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무리였다. 푸른 달에 의뢰까지 넣었지만 결국 칠살검 세류를 찾지는 못 했다.

‘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은 될 양반이니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이러나저러나 십검호의 일원으로서 세일룬 왕국에 충성을 바치고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제일검과 마찬가지로 눈앞에 닥친 왕도의 위기를 나 몰라라 할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관건은 십검호 간의 대결.’

최상은 아버지와 제일검 모두와 함께 행동하며 호국공을 저지하는 것이었지만, 둘 중 하나만이라도 함께할 수 있다면 호국공을 저지하는 것 자체는 가능할 터였다.

‘둘 모두 일 대일 싸움에서는 호국공보다 강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제일검이 말한 것처럼 아무리 십검호라 한들 노화로 인한 신체능력 저하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일 대일 국면을 만들면 이쪽의 승리.’

새삼 다시 긴 숨을 토한 유더는 다시 한 번 계획서를 보며 세부 계획들을 점검해보았다.

적의 전술을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인데다 역사까지 크게 비튼 터라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을 임기응변에 의존해야 하는 조잡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준비를 하는 것에는 의의가 있는 법이었다.

돌발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상황을 한 번이라도 고민한 적이 있다면 좀 더 침착한 대응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내일 밤.”

왕도의 운명을 결정지을 큰 싸움이 있는 밤.

그리고 동시에 엄청나게 기대 중인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는 밤.

‘건국 기념 무도회.’

유더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더니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래, 나도 알아.’

이 와중에 무도회에서 코델리아와 함께 춤출 걸 기대하는 게 얼마나 나사 풀린 생각인지.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어차피 참가해야 하는 무도회였으니까.

사건이 터지는 것은 무도회가 사실상 끝난 이후였고.

그렇다면······ 조금은 즐겨도 되지 않을까?

‘더욱이······.’

처음이니까.

공식석상에서 코델리아와 함께 춤을 추는 것은.

“코델리아 보고 싶다.”

유더는 저도 모르게 말했고, 이내 쓰게 웃었다.

‘중증이네.’

여러 가지로 정말.

“코델리아.”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말한 유더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내일 마주하게 될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

“아가씨.”

달리아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코델리아는 대답하기는커녕 못 들은 척 딴청을 하였다.

왜 저럴까.

갑자기 사춘기라도 온 것일까?

“아가씨?”

달리아는 다시 한 번 불렀고, 코델리아는 입술을 살짝 삐쭉였다.

반응을 보니 못 들은 건 아닌데, 뭔가 불만인 것일까.

‘사실 뭐가 불만인지 알지만.’

쿡쿡 웃은 달리아는 목소리를 한 번 가다듬더니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체이스 남작님?”

“네, 체이스 남작이에요. 평귀족 코델리아가 아니라, 체이스 남작이에요.”

코델리아가 엣헴하고 답하자 달리아는 결국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좋으세요?”

“응, 너무 좋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달리아 앞이니 솔직해도 되겠지.

코델리아가 흥흥 거리며 말하자 달리아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코델리아를 와락 끌어안았다.

“우리 귀여운 아가씨.”

“아가씨?”

“귀여운 남작님.”

“엣헴, 엣헴.”

귀엽게 답한 코델리아는 달리아를 마주 꼭 끌어안았다.

가끔은 아델리아보다도 더 친언니처럼 느껴지는 달리아인 터라 이렇게 온기를 나누고 있으면 마치 엄마 품에라도 안겨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하, 진짜. 너무 기대돼요.”

“뭐가?”

“내일 무도회요. 우리 아가씨··· 아니, 남작님이 얼마나 예쁠지. 사람들이 남작님 보고 얼마나 놀랄지. 유더 공자님이랑 같이 춤추시는 모습도 정말 보고 싶어요.”

“흠흠······.”

뭐 그렇게 기대할 것까지야.

“나보다 달리아는 어때? 달리아도 미인이니까 꾸미면 엄청 예쁘잖아.”

“빈 말이라도 감사합니다.”

“진짠데. 막 내일 같이 춤추려고 다른 기사들이 벼르고 있는 거 아냐?”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아니이, 진짜라니까?”

“네네, 물론 진짜겠죠.”

어른스럽게 웃은 달리아는 코델리아의 뺨을 살짝 어루만지며 말했다.

“자, 이제 우리 남작님 주무실 시간이에요. 유더 공자 생각에 막 가슴이 콩닥거려서 날 새면 안 되는 거 아시죠?”

“내가 어린애인가? 그리고 유더 생각에 가슴이 콩닥거려서 날 새는 일 같은 거 없거든?”

“네네, 그러시겠죠. 그러실 거예요. 그렇고말고요.”

“달리아 미워.”

“정말요? 정말 미워요?”

달리아가 눈을 맞추고 말하자 코델리아는 결국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요즘 유더랑 닮아가는 거 같다니까?”

“남작님이 너무 귀여워서 그래요.”

동문서답인 동시에 우문현답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제 주무세요. 내일 뵐게요.”

코델리아를 침대에 떠민 달리아는 그대로 이불까지 덮어준 뒤 코델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확실히 호위 기사를 넘어, 거의 언니나 다름없는 달리아의 행동과 애정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코델리아는 돌아서려는 달리아의 손을 잡았다.

무슨 일이냐는 듯 이쪽을 바라보는 달리아를 마주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아가씨?”

“아냐, 그냥. 달리아도 잘 자라구.”

“네, 아가씨. 안녕히 주무세요.”

활짝 웃은 달리아는 그대로 방을 나섰고, 코델리아는 한참이나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달리아.’

내일 있는 건 건국 기념 무도회만이 아냐.

정말로 큰 소란이 일어날 거야.

호국공이 이대로 물러날 리가 없으니까.

악마의 손 역시 무언가 수를 쓸 테니까.

‘다치지 마.’

무리하다가 부상입지도 말구.

달리아의 죽음 같은 것은 일부러 생각하지 않았다.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웠기 때문이다.

‘왕족 몰살 사건.’

막기 위해 계속 준비해왔다.

야생의 땅에서 일어난 ‘전쟁’조차 막아낸 코델리아 자신과 유더였으니, 이번 일 역시 잘 막아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왜일까.

‘살짝, 살짝 감이 안 좋아.’

약간의 근거 없는 불안감.

마치 목에 가시라도 걸린 것처럼, 검의 연회 이후부터 느껴지기 시작한 정체 모를 불길함.

‘역사가 바뀐 탓일까.’

본격적으로 검은 달의 테러 계획을 저지하기 시작한 것은 검의 연회 이후부터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잘 될 거야.’

미리 많이 준비했으니까.

유더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다 했으니까.

이 불길함은 그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거겠지.

‘지켜내자.’

왕족들을. 왕도를.

유더를 비롯한 모두를.

코델리아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달리아 말마따나 일찍 자야 내일에 대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1분, 2분, 5분에 10분.

코델리아는 결국 다시 눈을 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잠이 안 와!’

내일이 두렵고도 기대되었으니까.

한껏 차려입은 유더와 함께 춤추는 자신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렸으니까.

‘무슨 소풍 앞둔 어린애야?’

스스로를 타박한 코델리아는 다시 눈을 꽉 감았지만, 이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자꾸만 콩닥거려 잠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여간 유더가 문제야, 유더가.’

코델리아 자신과 달리 지금쯤 쿨쿨 잘도 자고 있겠지.

입술을 괜히 삐쭉인 코델리아는 유더의 방이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고, 약간의 짜증을 내며 눈을 감았다.

‘보고 싶다.’

아무튼. 응. 보고 싶다.

‘내가 뭐라는 거야.’

작게 실소한 코델리아는 숨을 크게 고른 뒤 다시 수면에 집중했다.

내일은 정말 중요한 날이었으니까.

두근거림 때문에 날을 새서 컨디션이 망가지는 일 따위 용납할 수 없었다.

‘자자.’

내일을 위해.

가슴을 스치는 불길함을 억누른 코델리아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잠을 자기 위해 노력했다.

&

아침이 밝았다.

언제나와 같지만, 동시에 언제나와 다른 아침.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샌 유더는 똑같이 퀭한 얼굴을 한 코델리아를 보며 피식 웃었다.

“못 잤어?”

“그냥 잠을 좀 설쳐서··· 너는?”

“나도 뭐 그냥 좀.”

유더와 코델리아는 결국 서로를 보며 웃었고, 마이아와 달리아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생각했다.

‘아침부터 꽁냥꽁냥하시네.’

‘으휴, 내가 못 잘 줄 알았지.’

하지만 이해했다.

달리아 자신조차도 두근거려서 잠을 다소 설칠 정도였는데 코델리아는 오죽했을까.

건국 기념 무도회 당일.

그야말로 벼르고 벼른 이벤트가 있는 날.

유더와 코델리아는 그대로 아침 식사를 마친 뒤 각종 준비에 들어갔다.

마지막 작전 검토와 전투 장비 점검.

거기에 이어 서로를 꾸미는 일까지.

정신없는 가운데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어느새 늦은 오후.

마차 앞에 서서 조금씩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하늘을 올려다보던 유더는 돌연 배시시 웃었다.

“왜, 왜, 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코델리아.

아직 요정의 드레스로 갈아입지 않았고, 천사화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녀.

평소와 달리 제법 공들인 화장을 한 얼굴과 쑥스러워하면서도 묘하게 기대하는 표정. 거기에 예쁘게 꾸민 머리칼까지.

유더는 살짝 넋을 놓은 채 코델리아를 바라보았고, 그 모습에 어쩐지 모를 만족감을 느낀 코델리아는 입술을 움츠리며 유더를 흘깃 살펴보았다.

코델리아 자신만큼이나 잘 꾸민 유더의 모습에 슬쩍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지가 묻어나면서도 신비로운 초록색 눈동자와 병약함 대신 강인함이 어리기 시작한 얼굴.

조각 같은 몸매에 기반한 완벽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슈트핏과 머리칼과 잘 어울리는 검은 연미복.

‘잘 생기긴 했단 말이지?’

아니, 그것만이 아닌 걸까.

어느새 두근거리기 시작한 심장의 고동을 들으며 코델리아는 유더에게 좀 더 다가섰고, 유더는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올렸다.

“함께 가시지요.”

“네, 남작님.”

연극조로 말한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피식 웃더니 그대로 마차 위에 올랐다.

별궁에서 본궁까지의 거리는 고작해야 몇 분 남짓.

하지만 평소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지는 그 시간동안 유더와 코델리아는 무어라 잡담을 나누는 대신 침묵했다.

그저 서로의 손을 꽉 잡은 채 서로에게 집중했다.

심장의 고동 소리가 하나가 되었다.

처음엔 엇나갔던 숨결 역시 마치 한 사람의 것처럼 통일되었다.

묘한 긴장감.

뜨거운 심장과 달리 조금씩 차가워지는 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 두 사람은 승부의 장으로 나아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유더야.”

“어, 코델리아야.”

“잘해.”

“너도.”

왕도의 운명을 건 결전과 벼르고 별러 온 무도회의 날.

마차가 멈추었고,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숨을 크게 삼켰다. 서로를 돌아본 뒤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었다.

“가자.”

동시에 말한 두 사람은 마차에서 내려 크고 아름다운 본궁을 바라보았다.

건국 기념 무도회까지 앞으로 두 시간.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

< 제68장 - 건국 기념 무도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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