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8장 - 건국 기념 무도회 #4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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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마주한 채 달콤한 입맞춤을 나누던 아델리아와 게일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 밖을 보았다.
왕궁이 있는 방향.
잘못 듣지 않았다.
분명 엄청난 굉음이 터졌다.
하지만 이유를 파악할 새도 없었다. 두 사람은 다시 반대쪽 창문을 향해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초소 너머.
왕도를 에워싼 성벽보다 더 높은 곳에서.
불꽃의 비와 함께 수백에 달하는 무리들이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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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칠살검 세류는 고개를 들었다.
왕궁 쪽에서 들려온 굉음에 놀라서였다. 하지만 그녀는 왕궁으로 달려가는 대신 검을 뽑아들어야만 했다.
왕도의 정문.
평소라면 해가 짐과 동시에 닫혀야 할 그 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다가오는 자들이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아니, 누가 다가오는 것일까.
다시 왕궁 쪽을 돌아본 세류는 결정을 내렸다. 왕궁 대신 왕도의 정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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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첨탑 위에 앉아 대로변에서 펼쳐지고 있는 노상 연극을 구경하던 스칼렛은 왕궁 쪽을 돌아보았다.
축제의 소음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을 수 없었지만 스칼렛은 아니었다.
왕궁 쪽에서 들려온 폭음.
그리고 동시에 성벽 쪽에서도 들리기 시작한 함성 소리.
무엇일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핑크폭탄.”
저도 모르게 읊조린 스칼렛은 지면을 박차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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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스는 왕도의 정문에 서서 두 팔을 늘어트렸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칠살검 세류를 보며 음산한 미소를 흘렸다.
동문과 서문이 열렸다.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의 행각이었다.
왕도 경비대 소속의 장교인 미온과 바라스는 성문을 여는데 그치지 않고 화약고와 식량 저장고 등에 불을 질렀다.
호국공의 제자로서, 본래라면 검은 달이 했어야 할 일을 대신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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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동문과 서문을 통해 들이닥친 악마 추종자들은 이내 미리 잠입해 있던 이들과 합류했다.
건국 기념회를 구경 온 것으로 꾸며 왕도에 방문했던 이들 모두가 본색을 드러내니, 그 수가 자그마치 일천에 달했다.
일을 키운다.
왕도 몇 군데서 테러를 일으키는 계획을 폐지하고, 아예 왕도 그 자체를 공격해버린다.
검은 달의 지부를 타격하던 푸른 달의 길드 마스터 주페는 상황의 변화를 직감했다. 수하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재니퍼를 돌아보았다.
“튀자.”
맞서 싸우는 건 기사님들에게 맡기고.
재니퍼는 거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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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궁이 붕괴했다.
악마의 손이 일을 키웠듯이 호국공 역시 일을 키워버렸다.
대연회장을 무너트린다.
왕족들이 반드시 몸을 피해야만 하는 상황을 강제한다.
그리고 동시에 차단한다.
신경 쓰이는 자들을.
호국공 자신도 쉬이 어찌하지 못 할 강자들을.
“꺄악!”
“살려줘요! 도와주세요!”
“깔렸어!”
먼지와 연기 속에서 비명 소리들이 들려왔다. 때문에 호국공은 잠시 눈을 감고 기다렸다. 그가 준비한 것은 단순한 건물 붕괴 따위가 아니었다.
“크아악!”
지금까지와는 종류가 다른 비명이 터졌다.
연이어 괴성이 이어졌고, 마침내 구체화된 공포가 터져나왔다.
“조, 좀비다!”
“물리면 안 돼! 도망쳐!”
왕궁의 사용인들을 감염시켰다.
붕괴와 맞춰 풀어주었고, 놈들은 예상대로 미쳐 날뛰는 짐승이 되어 대연회장에 공포와 혼란을 야기했다.
제대로 된 언데드 몬스터가 아닌, 질병을 통해 산 사람을 짐승으로 만든 것이었기에 수호진이 펼쳐져 있는 왕궁 안에서도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었다.
“호국공! 호국공! 이쪽이요! 호국공!”
애타는 부름에 호국공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국왕 헨리2세가 자신을 찾고 있었다.
계획한 그대로 말이다.
“국왕 폐하!”
크게 외친 호국공은 왕족들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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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파이커스는 죽음을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 위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바위덩이가 떨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머리가 깨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코델···리아?”
멍한 목소리에 코델리아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염동력으로 바위를 떨쳐낸 뒤에야 엠마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중앙으로!”
대연회장의 중심.
반사적으로 코델리아의 말을 따른 엠마는 이해할 수 있었다.
체이스 백작이 그곳에 서 있었다.
바닥에서부터 솟구친 거대한 돌기둥들이 무너지려는 천장을 받쳐 안전지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물론 평소라면 궁전 밖으로 나가는 쪽이 훨씬 더 안전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정원이 불타고 있었고, 사이사이로 좀비들의 괴성이 들려왔다. 무너지는 궁전 안보다 밖이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
“씨발.”
엿 같은 일이었다.
본래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왕궁에 폭발시킬 마법진과 폭약을 설치하는 것도, 좀비들을 대연회장 곳곳에 숨겨두는 것도, 하다못해 정원에 발화 물질들을 뿌려두는 것조차 통상적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왕실 근위대가 순찰을 돌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호국공은 할 수 있었다.
국왕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그는 왕실 근위대의 눈을 속여 지금 같은 짓거리를 벌이는 것이 가능했다.
다프네 왕녀에게 슬쩍 언질을 주는 등 나름 대비를 했지만 역시 완벽히 차단하는 것은 무리였다.
왕궁을 수색하는 일 따위 유더와 코델리아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서!”
코델리아가 다시 외쳤지만 엠마는 일어나 달리지 못 했다.
다리에 힘이 풀린 탓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다. 벌벌 떨면서도 엠마를 어떻게든 등에 업은 그가 체이스 백작이 지키는 중심부를 향해 달려나갔다.
“검이 없어!”
누군가가 외쳤고, 루카스는 격하게 공감했다.
검이 없었다.
국왕이 참여하는 무도회에 검을 지참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왕실의 호위를 맡은 근위기사단과 세일룬 왕국의 자랑인 십검호뿐이었다.
“내게 검을!”
검을 휘둘러 좀비와 싸우던 근위 기사단에게 소리치자 그가 여벌 검을 뽑아 루카스에게 던져주었다.
근위 기사단 내의 배신자는 고작 몇 명에 불과했지만, 좀비들이 어느새 수십으로 불어난 상황이었다.
루카스는 일단 생각을 멈추었다. 검을 휘둘러 눈앞의 좀비들을 베어나갔다.
“유더!”
코델리아가 소리쳤다.
그리고 유더는 코델리아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다.
체이스 백작이 있는 중앙으로 달리는 대신 날카로운 시선을 던져 보았다.
국왕 헨리 2세가 호국공에게 무어라 소리쳤고, 호국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밝은 빛이 상석을 뒤덮었다.
‘왕족 전용 텔레포트!’
본궁 지하에 숨겨진 대피처로 단번에 질러 갈 수 있는, 국왕만이 소유한 긴급 탈출책.
하지만 함께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일부뿐이었다.
국왕과 세 왕비, 그리고 직계인 다프네 왕세녀와 디온 왕자와 다리안 왕녀까지만 이동이 허락되었다.
후궁들과 그 아이들, 헨리 2세의 사촌들은 호국공과 그 제자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쪽으로!”
호국공이 왕족들을 이끌었다. 아마도 국왕과는 대피처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조를 했을 터였다.
‘원작과 같이.’
그곳에서 왕족들을 몰살하기 위하여.
“호국공!”
유더가 일갈하듯 소리쳤다.
내력을 실은 그 외침은 무척이나 크고 웅장했지만 때맞춰 쏟아진 낙석들이 유더의 외침을 뭉개버렸다.
호국공과 왕족들이 비밀 문을 통해 대연회장을 나섰다.
코델리아는 체이스 백작을 향해 달리는 대신 호국공의 뒤를 쫓아 달렸고, 유더 역시 그러했다.
아니, 정확히는 경로 상에 놓인 한 남자를 향해 돌진했다.
“제일검!”
경어조차 생략한 부름이었지만 제일검은 노성을 토하는 대신 진지한 얼굴로 유더를 마주하였다.
“뭔가 아는 거냐?”
“이쪽으로!”
설명할 시간 따위 없었다.
유더는 그저 호소했고, 제일검은 시간을 길게 끌지 않았다. 바로 고개를 끄덕인 뒤 코델리아의 뒤를 좇아 달리기 시작했다.
비명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다시 한 번 굉음이 일더니 궁전의 일부가 다시 무너져 내렸고, 정원을 불태운 화마가 본궁에까지 번졌다.
근위 기사들의 분투 덕분에 좀비들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혼란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호국공!”
코델리아가 다시 외치며 비밀문을 박찼다.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혈향에 비명을 삼켰다.
비밀통로에 왕족들이 쓰러져 있었다.
후궁들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더욱이 처참하기 짝이 없는 죽음들이었다.
목이 끊어진 자도 있었고, 허리부터 두 동강이 난 자도 있었다.
마치 짐승의 이빨에 당한 것처럼 불규칙하면서도 거친 상흔.
비밀 통로에 들어서자마자 호국공은 왕족들을 죽였다.
거친 검격으로 어리고 약한 이들을 몰살한 뒤 이곳을 떠났다.
더 많은 왕족들을 죽이기 위해.
대피처에 숨어 있을 왕가의 직계들을 참살하고자.
막아야 했다.
호국공을 따라잡아 그를 저지해야 했다.
코델리아가 마력을 일으켰다. 마녀로 화함과 동시에 강대한 마력을 발산해 비밀통로를 박살냈다.
저쪽 벽 너머.
호국공이 지나간 자리.
유더가 선두로 치고 나갔다.
코델리아와 제일검이 그 뒤를 따랐다.
비밀통로 밖.
붕괴와 폭발로 엉망진창이 된 본궁의 복도.
호국공의 등이 보였다.
유더가 그를 불렀고, 코델리아가 검은 마력의 칼날을 내쏘았다.
카앙!
호국공이 돌아서며 검을 휘둘렀다. 검은 칼날을 튕겨냄과 동시에 유더와 코델리아를, 그 옆에 선 제일검을 보았다.
유더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여기서 막는다.
이 자리에서 호국공을 저지한다.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
거기에 제일검까지.
전력을 충분했다.
얼마든지 호국공을 저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압까지 할 수 있었다.
오히려 걱정해야 하는 것은 호국공의 도주.
그리고 보이지 않는 호국공의 제자들.
어디로 간 것일까. 먼저 앞서간 것일까?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음모를 획책하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때문에 호국공에게 집중하였다.
그를 막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호국공, 이 반역자.”
유더가 말했다. 격한 말을 토하는 것으로 호국공의 주의를 끌었다. 코델리아 역시 한 발을 내디디며 소리쳤다.
“당신의 계획은 모두 알고 있어! 왕족들의 피를 끊어 왕도의 결계를 무력화할 생각이잖아!”
효과가 있었다.
호국공이 놀란 눈으로 이쪽을 보았다. 바로 돌아서서 도망치는 대신 오히려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관심을 보였다.
“과연, 악마 사냥꾼들인가.”
북부에서의 활약으로 말미암아 생긴 유더와 코델리아의 별칭들 가운데 하나.
“그렇게는 못 해! 여기서 당신을 막겠어!”
코델리아는 다시 소리치며 천사의 광익을 펼쳤다. 타천사로 화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호국공의 주의를 끌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효과가 있었다.
순백의 광익이 펼쳐지는 광경에 호국공은 작게나마 감탄까지 토했다.
‘30미터 남짓.’
유더는 흑룡의 기운을 일으키며 호국공과 자신간의 거리를 재었다.
‘필요한 것은 일격.’
놈을 쓰러트리는 것이 아닌, 발을 붙잡는 일격.
‘그거면 돼.’
제일검이 있으니까.
그의 빛과 같은 쾌검이 호국공을 상대할 테니까.
“성십자수호단인가?”
호국공이 물었고, 코델리아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 없이 마법의 구성을 짜내었다.
그리고 호국공이 웃었다.
코델리아의 말이 우스워서가 아니었다.
유더와 코델리아에 대해 모르는 그로서는 성십자수호단이 자신의 이반 행위를 모두 간파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어서였다.
“끝이군.”
호국공이란 이름으로 사는 것도.
이제 남은 것은 그저 왕가를 배신한 배반자일 뿐이니.
아니, 어차피 이리 될 일이었을까?
지금의 상황을 만들기 위해 그야말로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였으니 말이다.
호국공은 어깨를 늘어트렸다. 검을 들어 올려 전투태세를 취하는 대신 오히려 검을 갈무리하였다.
어째서.
포기한 것일까?
승산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일까?
아니었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호국공은 싸울 필요 자체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검을 거둔 것이었다.
어째서.
무엇 때문에.
“유더!”
코델리아가 벼락처럼 외쳤고, 유더는 다급히 초풍신뢰를 펼쳤다.
검격.
베였다.
아니, 베이지 않았다. 그저 무시무시한 살기로 말미암아 베였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유더의 숨이 거칠어졌다.
코델리아 역시 마음의 동요를 감출 수 없었다.
불길한 기분.
검의 연회 이후 생긴 정체불명의 불안감.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어째서 검의 연회 이후에 그러한 감정이 생긴 것인지를.
“그래서 말했잖아.”
제일검.
빛의 검성 룬 프라우드.
“너희 때문에, 남기로 했다고.”
그가 웃으며 검을 뽑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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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8장 - 건국 기념 무도회 #4 (수정)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