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9장 - 격화 >
제69장 - 격화
바이엘 백작.
유더 바이엘의 아버지.
십검호 가운데 일인.
검장의 칭호를 가진 강력한 검사.
하지만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 하나인 유더의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원작에서 바이엘 백작의 존재감은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다.
‘일단 등장 자체가 적으니까.’
더욱이 그가 사용하는 바람의 검- 바이엘 백작가의 검술과 무공들 역시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 했다.
‘사용자가 없어.’
정확히는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에 바이엘 백작가의 검술을 깊이 익힐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원작에서의 유더는 건강이 회복되면 어느 정도 수련만 쌓은 뒤 곧장 실종된 코델리아를 찾아 북부로 떠나는 터라 바이엘 백작가의 검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 했다.
더욱이 그렇게 길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북부 야만족 침공이라는 대사건이 일어나고, 전쟁 중에 대악마 크레이믈러에게 바이엘 백작은 물론이고 그 후계자인 게일 역시 사망하는 터라 바이엘 백작가의 검술은 사실상 대가 끊긴 셈이 되었다.
‘바이엘 백작가의 기사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배운 것은 질풍보나 뇌성박처럼 기본적인 기술들뿐이었다.
바이엘 백작가의 정수가 어린 ‘바람의 검’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것은 백작가의 직계 자손들뿐이었으니 말이다.
‘바이엘 백작의 강함.’
십검호 가운데 하나이니 강한 것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얼마나 강한 것일까.
대악마 크레이믈러와의 싸움 외에는 이렇다 할 원작 상의 전적조차 없는 그의 검은 과연 빛의 검성에 닿을 수 있을 것인가.
바람과 빛이 교차했다.
두 자루 검으로부터 다시 한 번 검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
“유더!”
바닥.
코델리아의 부름.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란한 교전.
거친 바람과 강렬한 빛.
콰가가가강!
검과 검의 격돌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맹한 파공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각자가 펼치는 기술의 여파만으로도 주변이 초토화될 지경이었다.
이것이 십검호 간의 싸움.
아니, 검성과 검성의 싸움!
‘바람의 검성.’
유더조차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언제의 이야기일까.
정말 검성이었다면 바이엘 백작의- 아버지는 어째서 검성이란 칭호를 반납하신 것일까.
‘아니, 그 전에.’
저게 정말 바이엘 백작가의 검이란 말인가?
고작 몇 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유더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바이엘 백작가의 검과는 아예 다른 종류의 검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유더는 깨달았다.
원작보다 바이엘 백작가의 검술이- 바람의 검이 강화된 것이 아니었다.
원작에서는 그저 드러날 기회가 없었을 뿐, 진정한 바람의 검은 실로 막강하기 짝이 없었다.
제일검이 광소를 터트렸다.
지금의 싸움이 즐거워 죽겠다는 듯 웃고 또 웃었다.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본래 십검호 끼리의 대결은 금지되어 있었으니까.
십검호끼리 전력을 펼치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거나 치명상을 입게 되어 있었다.
뼈와 살로 이루어진 육신에 비해 너무나 강력한 검기- 오라 블레이드의 위력은 빗맞은 상처조차도 치명적인 부상을 야기했다.
때문에 십검호 끼리의 대결은 금지되어 있었다.
제국 역시 십검호에 준하는 자국 검사들 간의 대련을 엄격히 금지했다.
그런데 지금 십검호 간의 대결이, 그것도 전력을 다한 대결이 이뤄지고 있었다.
“하하하!”
제일검은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이다.
십검호의 자리에 오른 것도 벌써 6년. 검성이라 불리기 시작한 것은 3년.
그 6년 동안 제대로 된 대련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전력을 다한 싸움 따위 누구와도 할 수 없었다.
호국공의 전성기 때와 달리 세일룬 왕국과 아르곤 제국은 현재 서로 으르렁 거리기만 할뿐 전쟁을 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세일룬 왕국 내에서 다른 십검호와 겨루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으니까.
“이거야!”
이런 식으로 자신의 검을 받아낼 수 있는 자와 검사로서 대결해보는 것이 얼마만인 것일까.
악마의 손과 손을 잡은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바이엘 백작은 제일검처럼 광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전신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평소보다 더 빠르고 강한 검을 펼칠 수 있었다.
‘유더.’
둘째는 건국 기념회를 전후로 사달이 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와 더불어 만약의 상황이 닥치면 구해달라며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아티팩트를 주었다.
궁전이 무너지고 좀비들이 날뛰는 가운데 위급 신호가 전해졌다. 체이스 백작에게 상황을 맡긴 뒤 반쯤 열린 비밀 문을 지나 이곳에 당도했다.
그 와중에 보게 된 것들.
산산이 조각난 왕족들의 시신.
그리고 비밀 문을 나서자마자 목격한 유더와 코델리아를 향한 제일검의 공격.
반사적으로 막아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정확한 정황은 알 수 없었지만 제일검은 적이다.
그렇다면 전력으로 저지한다.
눈앞의 적을 꺾는데 총력을 다한다!
쾅! 쾅! 쾅!
평소 바이엘 백작의 검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미친 광풍이 되어 제일검을 몰아붙였다.
제일검이 검이 날카롭고 깔끔한 쾌검이라면 바이엘 백작의 검은 거칠고 강맹한 질풍이었다.
유더는 바람의 검에 저도 모르게 빠져드는 자신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기계적으로 의식을 전환한 뒤 코델리아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언제나와 같았다.
본능적으로 당장 해야만 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유더 자신의 치료.
생명의 구 덕분에 자체 회복력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라이칸슬로프 수준의 재생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코델리아는 머리 장식 대신 쓰고 온 생명의 관의 힘에 천사의 힘까지 더하여 강력한 회복 마법을 시전, 유더 자신의 팔을 순식간에 치료하였다.
그래서 유더도 자신의 일을 하였다.
작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했다.
‘상황.’
전체적으로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만을 떠올렸다.
눈앞의 제일검과 왕족을 몰살하기 위해 대피처로 달려가고 있는 호국공.
제일검은 아버지께서 막고 계셨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호국공.
그를 저지해야만 했다.
그를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미 출발한 그인데.
그를 어떻게 따라잡을 것인가.
따라잡는다 한들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대연회장으로 가서 체이스 백작과- 아버님과 합류한 뒤 이동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무리였다.
지금 당장 일어나 달려도 호국공을 따라잡지 못 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버지를 도와 제일검을 제압한다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었다.
검성들 간의 싸움에 끼어들 수 있는지 여부는 둘째치고, 호국공이 왕족들을 몰살하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끝장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었다.
어떤 선택지도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조차 그저 낭비에 불과할지 몰랐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승리조건.’
항상 승리조건을 생각해라.
죽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알렉세이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그의 말대로였다.
승리조건.
호국공을 죽이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왕족들을 살리는 것이 목표였다.
굳이 호국공을 쓰러트릴 필요가 없다는 소리였다.
‘먼저 도착한다면.’
호국공을 따라잡는 것조차 힘든 마당에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호국공보다 먼저 대피처에 도달할 수 있다면.
멍하니 서서 호국공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왕족들과 접촉할 수 있다면.
방법이 생긴다.
승리조건을 완수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따라와!”
코델리아가 소리쳤다.
유더의 손을 잡아끌고 달렸다.
어떻게.
눈빛을 보고 생각을 읽은 것일까?
아니면 유더 자신이 저도 모르게 육성을 토한 것일까?
아니, 지금 당장 어딜 가는 것일까.
유더는 왕실 지도를 떠올렸다.
그리고 코델리아가 어디로 향하는지 깨달았다.
대연회장.
비밀통로.
그 너머에 자리한 복도.
그리고 복도와 연결된 여러 방들 가운데 하나.
콰가강!
바이엘 백작과 제일검의 싸움으로 벽과 천장이 무너졌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달렸고, 방문을 염동력으로 거의 부수듯 열어버렸다.
“찾았다!”
코델리아가 외쳤고, 유더는 보았다.
방 한쪽에 자리한 커다란 욕조.
목욕을 좋아한 선대왕이 왕궁 곳곳에 마련해둔 욕실 가운데 하나.
“빨리!”
코델리아는 유더의 손을 잡은 채 달렸고, 유더는 얼결에 코델리아와 함께 욕조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 코델리아가 하려는 것.
그녀가 던진 도박수.
“워터 폴!”
머리 위에서 물이 쏟아졌다. 유더와 코델리아를 홀딱 젖게 만들었고, 코델리아는 입을 벌렸다. 유더 역시 똑같이 입을 벌려 코델리아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함께 하였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노래가 아니라 거의 악을 쓰는 것에 가까웠지만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유더 자신이 준비해둔 플랜 B.
이것과는 달랐다.
미리 약조해둔 장소는 따로 있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그것을 무시했다. 번뜩이는 야성의 감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과연 될 것인가.
왕궁 내라고는 해도 옥외 온천과 거리가 제법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과연 여기서도 될 것인가.
여기서도 페어리들이 나타날 줄 것인가.
유더가 코델리아를 보았다. 코델리아가 유더를 보았다.
다음 가사를 내뱉기 위해 동시에 입을 벌렸고, 그 순간 제3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렀어?”
섬머 페어리 퀸.
페어리용 초콜릿 한 박스를 받고 거래에 응한 그녀.
유더는 코델리아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넌 천재야!”
너무 세게 끌어안은 것인지 코델리아가 순간 꺅하고 비명을 질렀지만 잠깐뿐이었다. 유더를 마주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이제부터 해야 하는 일.
사랑의 말을 속삭이며 코델리아의 이마와 뺨에 키스를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만 하는 것.
유더가 페어리 퀸을 보았다.
커다란 상자 위에 앉은 그녀는 마치 구경이라도 하듯 두 손으로 턱을 받친 채 우흥흥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계속해. 이제 둘이서 키스하는 거지? 대마법사와 페어리 퀸의 사랑 이야기처럼?”
기대에 찬 물음에 유더는 예라 답하는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계획이 바뀌었습니다.”
여차했을 때 왕족들을 밖으로 빼내기 위해 맺은 페어리 퀸과의 계약.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변경된 목적지.
왕궁 밖으로의 이동이 아닌, 대피처로의 이동.
인간 상인이었다면 여기서 새로운 보수를 더 청구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해맑고 순순한 페어리였다. 활짝 웃으며 유더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
왕도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악마 추종자들이 사방에 좀비를 풀어 전염을 유도했고, 동문과 서문에서 악마의 손의 전투원들과 왕도 경비대 간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중에서도 서문.
근위 마법병단의 본부들 가운데 하나.
“파이어 볼!”
아델리아가 크게 외치며 불꽃의 구를 던졌지만 닿지 못 했다. 게일과 대적하고 있는 자.
솔루지아는 등 뒤로 돋아난 두 쌍의 날개를 마치 검처럼 휘둘러 게일을 압박함과 동시에 아델리아가 던진 불꽃의 구를 갈라버렸다.
“게일!”
아델리아는 다시 한 번 외치며 마법으로 게일을 지원하고자 했지만 솔루지아의 호위인 중급 마인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백은 족히 될 것 같은 전투원들과 별개로 근위 마법병단 내부로 파고들어 날뛰는 놈들만 셋이나 되니, 아델리아 자신과 부하들을 지켜내기도 급급한 상황이었다.
‘너무 강해!’
머리에 사슴뿔이 돋아난 여자 마인.
무시무시한 마력이었다.
더욱이 마력만 강한 것이 아니었다. 게일을 몰아붙이는 백병전 솜씨가 실로 굉장했다. 고작 몇 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게일의 몸에는 베인 상처가 가득했다.
게일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아델리아 자신이 얼마나 더 전선을 유지할 수 있을까.
‘버텨야 해.’
다른 단장들이 올 때까지.
왕도 전체에 난리가 난 와중에 과연 몇이나 되는 단장들이 이곳으로 모일지는 의문이었지만, 적어도 셋- 아니 둘만이라도 와준다면!
“파이어 월!”
아델리아가 불의 장벽을 펼쳤다.
높이가 3미터에 달하는 불꽃으로 밤을 불살라 부하들에게 잠시라도 몸을 의지할 성벽을 만들어준 뒤 게일을 돌아보았다. 눈앞의 광경에 비명을 질렀다.
“안 돼애!”
솔루지아의 날개가 게일의 머리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같은 시각.
남문으로 이어진 도개교 위.
코로스와 칠살검 세류가 격돌했다.
악마의 손의 상급 마인들 중에서도 최강의 육체를 가진 코로스의 공격은 실로 무지막지했다.
일권에 대기가 마치 폭발하듯 터져나갔고, 발구름 한 번에 돌로 된 교각이 부서져 나갈 지경이었다.
하지만 칠살검 세류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녀는 적의 공격을 받아 흘린 뒤 역으로 역습을 가하는 반격기의 달인이었다.
마인으로 변신한 코로스의 키는 3미터를 넘어 근 4미터 남짓.
반면 세류의 키는 160이 겨우 될 정도로 작은 터라 덩치 차이는 과장 조금 보태 근 열 배에 달했다.
단 일격이라도 허용했다가는 세류의 가냘픈 몸 따위 박살이 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십검호의 일원이었다.
코로스의 공격은 좀처럼 세류에게 닿지 못 했다.
특유의 부드럽고 유연한 체술과 결합된 그녀의 교묘한 검술이 코로스의 공격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세류 역시 좀처럼 반격을 가할 수 없었다. 받아칠 새도 없이 코로스의 공격이 연이어졌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코로스의 공격을 빗나가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코로스는 또 언제까지 반격할 틈조차 주지 않는 맹공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코로스가 웃었다.
세류가 이를 악물었다.
다시 한 번 주먹과 검이 교차했다.
‘핑크폭탄!’
지붕 위를 달리며 스칼렛은 조바심을 느꼈다.
왕도가 불타고 있었다.
왕궁 역시 불타고 있었다.
스칼렛의 이성은 말했다.
이곳은 세일룬 왕국의 왕도라고.
당장은 위험한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곧 상황을 수습할 것이라고. 그 정도의 저력을 가진 곳이라고.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아니,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그 사이에 발생할 피해는?
‘이거야? 이거였어?’
건국 기념회 날 왕궁에 사건이 터질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던 핑크폭탄의 말.
그래서 왕궁에 숨어들지 않았다. 그냥 노상에서 축제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그것도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일이.
핑크폭탄이 걱정되었다. 루카스의 해맑게 웃는 얼굴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스칼렛은 결국 왕궁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살려주세요!”
“엄마아!”
지붕 아래.
넘어진 여인과 울부짖는 아이, 그런 두 사람을 챙길 겨를도 없이 도망치기 바쁜 사람들.
그리고 불꽃과 연기 너머에서 밀려드는 좀비들.
스칼렛은 욕지거리를 토하며 검을 뽑아들었다. 마지막으로 왕궁 쪽을 한 번 돌아본 뒤 좀비 떼를 향해 몸을 던졌다. 지키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왕도의 남서쪽 방면.
달리던 말을 멈추고 불타는 왕도를 바라보는 자가 있었다.
기묘한 차림이었다.
검은 로브로 전신을 가리는데 그치지 않고, 머리에는 새의 부리를 연상시키는 가면을 뒤집어 써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었다.
불타는 왕도.
불타는 도시.
과거와 현재가 교차했다.
눈앞의 광경이 과거의 기억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파라곤 왕국.
악마들에 의해 멸망하고 만 도시.
그리고 더해진 하나.
가면을 쓴 자는, 남자는 느낄 수 있었다.
왕도에 죽음이 번지고 있었다. 죽음이 양산되고 있었다.
“이랴!”
남자는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왕도에 가까워질수록 수호진이 강해졌지만, 사령술이라 하여 전부 악마의 힘을 빌리는 것만이 아니었다.
생명의 마법.
남자가 타고 있던 말이 본색을 드러냈다. 유령마 팬텀 스티드의 두 눈에서 녹색의 안광이 일었고, 발굽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날카로운 귀곡성이 밤하늘을 뒤흔들었다.
사령술사 벨키안.
파라곤의 다섯 영웅 가운데 하나.
그가 왕도로 향했다.
팬텀 스티드와 함께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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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9장 - 격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