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3장 - 공훈식 #2 (코델리아 일러스트 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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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좀 괜찮아?”
다프네 왕녀의 방.
디온 왕자의 긴장 섞인 물음에 다프네 왕녀는 가볍게 왼손을 움직여 보았다.
천천히 손목을 돌려본 뒤에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주먹을 쥐었고, 그대로 몇 번이나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 뒤 펜을 쥐어보았다.
차갑고 매끄러운 펜의 감촉.
“이질감이 좀 들지만··· 괜찮은 거 같아.”
다프네 왕녀의 말에 디온 왕자가 안도의 숨을 토했다. 아니, 그 정도로 그치지 않고 아예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린 탓이었다.
“하아··· 다행이다.”
“걱정 많이 했나봐?”
“그럼 걱정 안 하겠어?”
디온 왕자의 되물음에 다프네 왕녀는 쿡쿡 웃더니 펜을 다시 내려놓았다. 본래는 펜 돌리기를 해볼까 싶었지만, 실패했다가는 디온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뻔했기에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앞으로도 과연 가능할까······.’
왼손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지만 과연 검을 예전처럼 쥘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누나?”
“어, 응. 그래.”
저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던 것인지 디온 왕자의 얼굴이 다시 심각해져 있었다.
때문에 다프네 왕녀는 어설프게 웃은 뒤 화제 자체를 돌려버렸다.
“다리안은 어때?”
“다리안?”
“어, 많이 놀라지 않았어?”
“많이 놀랐지. 그래도 어디 다친 곳은 없으니 별 문제는 없을 거야.”
“정신적으로도?”
“뭐··· 실제로 시체를 본 건 아니니까.”
디온 왕자의 말에 다프네 왕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태를 수습하는 와중에 목격한 다른 왕족들의 시신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바마마의 형제자매들과 후궁들, 그리고 서얼이라 하나 분명 피가 이어진 이복남매들.
눈을 감으면 지금도 그 처참한 광경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때문에 다프네 왕녀는 눈을 감는 대신 천천히 심호흡을 하였다.
위엄 넘치는 외모와 카리스마 덕분에 밖에서는 사자의 여왕이라느니, 강철의 왕녀라느니 대범하고 강인한 여성의 표상처럼 여겨지는 다프네 왕녀였지만, 정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강철의 여인인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 활발하고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동시에 정이 많고 눈물도 많은, 무척이나 풍부한 감정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오히려 강철은··· 철혈은 디온이지.’
친누나인 자신의 눈으로 봐도 디온은 좀 문제가 있었다.
다프네 자신외의 타인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매정했으니 말이다.
그나마 챙기는 편인 다리온 왕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조차 저 정도였으니,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바마마는··· 폐하께서는 좀 어떠셔?”
“안 좋아. 어마마마의 말씀으로는··· 시간이 좀 많이 필요하시다는 것 같아.”
디온 왕자의 말에 다프네 왕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세상 누구보다 믿고 의지하던 호국공의 배신과 죽음으로 이미 반쯤 넋이 나가계셨던 아버지는- 헨리 2세는 왕족들의 처참하기 짝이 없는 시신들 앞에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아바마마는······.”
“그래, 순수한 분이시지. 어마마마께서 아바마마를 사랑하시는 이유이고.”
유능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능한 것 역시 아니었다.
왕으로서의 자각이 있었고, 왕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나름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헨리 2세는 왕족들의 시신을 마주한 순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호국공이 무슨 이유로 배신을 했든간에, 설사 그에게 정말로 피치 못 할 사연이 있었다 하더라도-그는 배신자이다.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세일룬 왕가의 적이다.
헨리 2세는 가슴에서 호국공을 지워버렸다. 그로 인해 가슴이 텅 비어버렸지만, 그는 그렇게 하였다.
“일어나실 수 있겠지?”
“아마도. 하지만 알잖아, 아바마마 성격을. 어느 정도 안정되고 나시면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엄청 고민하실걸?”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디온이 말한 것처럼 헨리 2세에 대해 잘 아는 다프네 왕녀였으니 말이다.
‘퇴위할 것이냐 말 것이냐.’
누군가는 이번 일에 책임을 져야 했다.
당사자인 호국공이 죽었다 하여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니 모든 책임을 지고 왕위에서 물러난다.
마침 왕세녀가 성인도 되었으니 더 좋은 왕이 되기를 바라며 왕위를 물려준다.
디온 왕자가 바라는 선택지였고, 헨리 2세 개인에게 있어서도 나름 최선의 선택지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헨리 2세는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었다.
호국공은 죽었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체이스 백작과 근위 기사단의 활약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 하여 죽거나 다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왕족들의 죽음.
귀족들의 죽음.
그리고 여기에 더해진 왕도의 대참사.
더 큰 문제는 호국공이 왕당파의 거두였다는 사실이었다.
자연 이번 ‘반란’에 연루된 호국공 휘하의 인물들 역시 전부 왕당파였고, 이들을 제거하는 것은 곧 왕당파 전체의 약화를 의미했다.
물론 세일룬 왕국은 애당초 왕가의 힘이 강한 편이었고, 귀족파라 하여 왕을 적대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매파에 속하는 발로아 공작조차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매의 탈을 쓴 비둘기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왕당파가 급격히 그 힘을 잃는다면 정세가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힘의 균형은 무너졌고, 왕실은 너무나 큰 타격을 입었다.
어려운 정국이었다.
세일룬 왕국이 크게 흔들린 틈을 타 제국이 다시 한 번 마각을 드러낼 수도 있었고, 다른 여러 국가들 역시 기존과는 다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었다.
이런 시기에 이제 막 성인이 된 딸에게 국왕이라는 어렵고 힘겨운 자리를 떠넘긴다?
헨리 2세의 성격상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어느 쪽이든 어마마마께서 크게 활약하시겠지만.’
아버지께서 퇴위하신다면 다프네 왕녀 자신을 돕는 쪽으로, 퇴위하시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좀 더 정치에 관여하시는 쪽으로.
“머리 아파.”
다프네 왕녀의 솔직한 감상에 디온 왕자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어느 쪽이든 내가 열과 성을 다해 도와줄게.”
“그래, 기운이 좀 나네.”
디온은 호국공과 달랐으니까.
정말 언제 어느 때고 믿을 수 있는,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아군이었으니까.
“아무튼··· 그럼 좀 즐거운 이야기도 하자고. 어쨌든 최악의 상황은 피했잖아? 호국공은 쓰러졌고, 수호진을 파괴하려던 놈의 음모는 저지되었고, 왕도를 공격한 악마 추종자 놈들도 결국 왕도를 어찌하지는 못 했고.”
“그러게.”
정말로 최악은 피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다프네 왕녀는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최악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 누구의 덕분인지 말이다.
“정말이었어.”
운명의 두 사람.
다프네 왕녀와 디온 왕자 두 사람뿐만 아니라 세일룬 왕국 전체의 운명을 구한 구국의 영웅들.
“만약 둘이 없었다면······.”
“호국공에게 우리 모두 죽었겠지. 수호진은 파괴되었을 거고··· 악마 추종자 놈들은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거야.”
왕도를 공격해온 병력은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
아마 놈들은 수호진이 파괴된 후를 노리고 그 정도 병력을 투입했을 터였다.
“지옥의 문이라도 열려던 걸까?”
“그랬을 수도 있지.”
파라곤 왕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세일룬 왕국 왕도에 지옥문이 열린다니.
“정말 큰 은혜를 입었어. 무척이나 감사할 일이지. 그러니까 더더욱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해.”
디온 왕자의 말에 다프네 왕녀는 쓰게 웃었다.
은인을 두고 이런 말을 하는 현실이 씁쓸했기 때문이다.
“일단··· 둘 모두 백작위를 주기로 했지?”
“어, 아무리 공이 크다고 해도 아직 성인도 아닌데다가 이제 막 남작이 된 두 사람이니까. 그 이상의 작위를 내리는 건 좀 어려워.”
호국공조차도 공작위에 오른 것은 두 번째로 나라를 구한 뒤의 일이었다.
애당초 북부12가문이라는 명문가 출신의 둘이었지만, 후작이나 공작위를 덜컥 내려버리면 기존의 귀족들이 크게 반발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대신 다른 걸 좀 많이 챙겨줘.”
“그럴 셈이야. 씀씀이를 아껴서야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없을 테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하, 됐다. 그냥 많이 챙겨줘. 그러면 돼.”
다프네 왕녀의 말에 디온 왕자는 작게 웃더니 품에 넣어두고 있던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뭐야, 그게?”
“운명의 두 사람에게 내가 준비한 뇌물들. 누나도 검토 좀 해보라고.”
디온 왕자는 종이를 다프네 왕녀에게 건넸고, 다프네 왕녀는 첫줄부터 웃고 말았다.
“진짜 뇌물이네.”
“쓸 땐 팍팍 써야하는 법이니까. 안 그래?”
디온 왕자의 말에 다프네 왕녀는 다시 빙긋 웃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갖다 붙이고 있지만, 운명의 두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는 디온의 마음이 느껴져서였다.
‘자기 목숨보다는··· 내 목숨을 구해줬다는 것에 더 감사하는 것 같지만.’
나중에 올케 될 사람에게 원망 꽤나 듣지 않을까.
키득 웃은 다프네 왕녀는 디온 왕자가 준비한 뇌물 목록에 다시 시선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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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나랑 유더한테 영지?”
“어, 영지.”
에드워드의 말에 코델리아는 그야말로 멍한 얼굴이 되었다.
전생의 기억을 각성하긴 했지만, 코델리아 체이스로서 살아온 17년 세월 역시 있었다.
때문에 세일룬 왕국의 귀족으로서 코델리아는 귀족에게 영지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알았다.
“우와앙······.”
영지라니.
백작위도 꿈같은데 거기에 영지까지 얹어준다니.
어떤 곳일까.
그래도 막 엄청 크진 않겠지?
작은 마을 몇 개.
어쩌면 작은 도시 하나?
그냥 산 같은 걸지도?
어느 쪽이든 좋았다.
어떤 것이든 마음에 들었다.
‘마을이면 막 집도 짓고, 이것저것 구조물도 추가하고······.’
도시면 막 상업 같은 거 발전시키고 산이면 광산 같은 거 파서 수입원 만들고.
‘흐흐흐, 막 게임 같아.’
고전 명작인 심시티라든지, 타이쿤 시리즈라던지.
‘동물의 숲 열심히 했었는데.’
어째 가면 갈수록 실제 영지 경영과는 멀어지는 망상이었지만, 코델리아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현실적인 고민은 유더가 할 테니까.
‘적재적소, 적재적소.’
다시 헤헤헹 웃은 코델리아는 귀엽고 알록달록한 마을을 머릿속에 그렸고, 그런 코델리아를 구경하던 에드워드와 마이아와 달리아는 다들 똑같은 표정이 되었다.
‘귀여워라.’
막 볼 꼬집고 머리 쓰다듬고 뽀뽀해주고 싶다.
달리아는 움찔움찔했고, 에드워드는 킥킥킥 웃은 뒤 조금 큰 헛기침으로 코델리아의 망상을 끊었다.
“아무튼 백작위에 영지까지 더해질 거라는 건 거의 기정사실이야. 어떤 영지를 받게 될 것 까지는 아직 좀 의문이지만.”
“응? 아직 정해진 거 아니야?”
“어, 아무래도 상황이 좀 복잡하니 말이다.”
귀족에게 영지가 큰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에는 희소성 역시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국토는 한정된 자원이었으니 말이다.
세일룬 왕국은 300년이나 된 국가였고, 이미 대부분의 땅은 주인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왕실직할령이 아직 꽤 남아 있었지만, 왕가의 힘의 근원인 직할령을 함부로 떼어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뭐, 이번 사태로 호국공은 물론이고 그 측근들의 땅까지 모두 몰수하긴 할 테지만··· 너도 알다시피 반란을 일으킨 땅은 일단 왕실에서 직접 관리하는 게 기본이잖니?”
더욱이 호국공과 그 수하들의 영지를 모조리 몰수하면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났다.
아무리 큰 공을 세웠다 해도 새내기 백작 두 사람에게 모조리 몰아주는 것은 무리였다.
“어··· 그러면 오빠 말은······.”
“기존의 왕실 직할령과 이번에 몰수한 땅 중에서 적당히 떼어 주긴 할 텐데, 어딜 줄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거지. 뭐, 어쨌든 높은 확률로 중앙의 영지겠지만.”
호국공의 영지든 왕실 직할령이든 죄다 중앙에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왕도에 저택까지 내리신다는 걸 봐서는 좀 먼 곳에 있는 영지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너희 둘은 왕도에 살게 하겠다는 왕실의 의지가 보이니까 말이야.”
설명을 좋아하는 에드워드답게 이어서 줄줄이 무어라 말을 이어나갔지만 코델리아의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 중요한 내용이 이미 나와 버렸기 때문이다.
“저택?”
“그래, 저택. 왕도에 너희가 살 집을 내리신다는 모양이야. 이건 어느 정도 후보가 좁혀졌는데 어느 쪽이든 엄청 크고 으리으리하단 말이지. 아델리아의 집은 창고로 보일 정도로 말이야.”
에드워드는 다시 설명을 시작했고, 코델리아는 늘 그랬던 것처럼 흘려들으며 망상을 시작했다.
저택.
집.
유더와 코델리아 자신의 집.
두 사람의 집.
어쩐지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영지를 받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가슴이 두근거렸다.
‘길드 하우스 생각난다.’
영웅전기2에서도 집 열심히 꾸몄었는데.
이번에도 예쁘게 꾸며야겠지?
막 가구 같은 것도 들여놓고.
그럼 유더랑 같이 가구 보러 가야하나?
어쨌든 같이 살 집이니까.
같이 살······.
‘같이 산다구?!’
유더랑?
유더랑 한 집에?
아니, 이미 뭐 같이 사는 거나 다름없긴 했지만 그래도.
그래도 같은 집에 살면 뭔가 좀.
응응, 아직 약혼한 사이일 뿐인데.
약혼식도 제대로 한 적 없구······.
코델리아의 얼굴은 점점 더 달아올랐고, 그에 발맞추듯 상상 역시 점점 더 심화되어 갔다.
그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에드워드가 코델리아의 뺨을 쭉 잡아당겼다.
“으이구, 우리 막내. 무슨 상상하는지 뻔히 보이네.”
“아, 아닌데? 유더랑 같이 가구 보러 가는 상상한 거 아닌데?”
“아, 그랬구나. 가구 보러 가는 상상했구나. 이거 완전 신혼집이네?”
“시, 신혼집······.”
코델리아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얼굴은 이미 빨갛다 못 해 뜨거웠고, 에드워드가 뺨을 쭉쭉 잡아당기는데도 무어라 하지 않았다.
“음··· 귀엽지만 이쯤 되니 유더 그 녀석이 막 싫어지는데.”
이렇게 귀여운 동생을 줘야 한다니.
달리아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마이아는 살짝 화가 난 얼굴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다시 몇 초.
낄낄 웃으며 코델리아를 구경하던 에드워드가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도련님?”
달리아의 물음에 에드워드는 손짓으로 답한 뒤 품을 뒤져 동그란 회중시계처럼 생긴 마법기를 꺼내들었고,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동생아, 지금 움직일 수 있겠니? 움직인다고 해봐야 건너 방이지만.”
에드워드가 손을 잡아당기며 묻자 덕분에 정신이 든 코델리아가 엉거주춤 일어서며 물었다.
“움직인다니? 어디 가려구?”
“게일의 방. 아무래도 게일이 깨어난 모양이다.”
에드워드의 말에 마이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코델리아 역시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갈래.”
“그럼 가자꾸나.”
에드워드는 서둘러 방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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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리아! 게일이 깨어······.”
“언니! 게일 아주버······.”
거기까지였다.
문을 벌컥 열며 몇 없는 친구의 회복을 기뻐하려던 에드워드는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고, 언니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하려던 코델리아는 겨우 진정되었던 얼굴을 다시 빨갛게 물들였다.
눈앞의 광경.
게일이 깨어났다.
그건 맞는데, 어째 상상했던 광경과는 많이 다른, 정말 많이 다른 장면이 눈앞에서 연출되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나마 미소 짓는 게일과 그런 게일의 손을 꼭 붙잡은 채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아델리아-가 아닌, 완전히 다른 무언가.
달리아는 순간 손을 놀려 코델리아의 눈을 가렸고, 코델리아가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에드워드가 행동을 개시했다. 코델리아의 허리를 낚아채듯이 안고는 그대로 방을 빠져나왔다.
“음, 음음.”
에드워드는 당황한 얼굴로 헛기침만 토했고, 코델리아는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 다시 에드워드가 말했다.
“일단··· 건강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구나.”
“으응.”
그건 코델리아도 동의하는 바였다. 골골대기는커녕 아주 힘이 넘치는 것 같았으니까.
“그··· 일단 돌아가자꾸나. 달리아, 당분간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하고. 알았지?”
“예, 도련님.”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달리아는 얼른 사람을 불러 방문 앞을 지키게 하였다.
“코델리아야, 이 오라버니는 이제 그만 아버지 뵈러 가마. 너도 일단은 좀 쉬려무나. 자세한 이야기는 밤이 늦었으니 내일 나누고.”
“으응.”
목각인형처럼 딱딱하게 고개를 끄덕인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쫑긋거리려는 귀를 진정시키며 얼른 유더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냥 방으로 돌아가서 쉰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저도 모르게 발이 유더의 방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코델리아 아가씨?”
코델리아의 빠른 귀환에 놀랐는지 방안에 있던 마이아가 눈을 깜박이며 물었고, 달리아는 어버버 거리는 코델리아를 대신해서 말했다.
“게일 도련님이 깨어나셨습니다. 무척··· 무척 건강하신 것 같구요. 네.”
“저기, 그게 무슨······?”
마이아가 고개를 갸웃하자 달리아는 발을 동동 구르더니 이내 마이아에게 다가가 귓가에 대고 무어라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마이아의 반응.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뺨.
그대로 잠시 침묵하던 세 여인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어색한 얼굴들이 되었고, 코델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맞아. 마이아도 좀 쉬지 그래? 유더는 내가 보고 있을게.”
마이아 성격상 지난 이틀 내내 유더 곁에 콕 붙어 있었을 게 뻔하니까.
‘잠도 거의 안 잔 거 같고.’
그렇지 않아도 하얀 얼굴이 이제는 아예 창백하게 보일 지경이었는데 그 와중에 눈 밑만 검은 것이 보기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유더가 깨어났을 때 마이아가 그런 얼굴이면 엄청 걱정할 걸?”
“맞아요, 마이아. 유더 공자님 성격 아시잖아요.”
달리아까지 말을 보태자 마이아는 엉거주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쉬러 가. 잠도 좀 자고. 유더 옆에는 내가 있을게. 이틀 내내 자서 난 하나도 안 졸려.”
약간이지만 장난기 섞인 코델리아의 말에 마이아는 결국 미소를 짓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도련님을 잘 부탁드려요, 아가씨.”
“응응.”
마이아가 망설이는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방을 나서자 배웅하듯 그녀와 함께 나갔던 달리아는 다시 방에 들어가는 대신 문 앞에 시립하고 있던 바이엘 가의 기사 옆에 자리를 잡고 섰다.
새삼스럽지만 둘 만의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그, 달리아 경. 무슨 일이죠?”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바이엘 가의 기사- 그간 여러 번 얼굴을 마주한 터라 담소를 나눌 정도의 사이는 되는 준의 물음에 마이아는 그저 어색한 미소만 지어보였다.
그리고 방 안.
홀로 남게 된 코델리아는 일단 유더의 침대 맡에 앉아 유더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미남이란 말이지.’
사실 입을 열어도 잘생기긴 했지만, 높은 확률로 얄미운 소리를 해댔으니까.
‘그래두······.’
코델리아는 유더와 조금 더 얼굴을 가까이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지친 얼굴로 잠들어 있었지만 게일을 보고난 뒤라 그런지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상태가 더 안 좋았다는 게일도 깨어났으니까.
유더도 똑같이 깨어나겠지.
똑같이 깨어나서-
‘아, 아냐. 유더는 게일 아주버님이랑은 다르니까. 응응, 다르고말고.’
문을 열었을 때 본 것은 격렬한 키스를 주고받는 게일과 아델리아의 모습이었다.
지난번 약혼식에서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저도 모르게 짐승이란 말이 떠오를 정도로 격렬한 키스.
‘그, 그래도 형제는 닮는다는데.’
유더도 어쩌면 깨어나자마자······.
저도 모르게 유더의 입술로 시선을 돌린 코델리아는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황이 달랐으니까.
관계도 달랐고, 아무튼 많은 것들이 달랐으니까.
“으휴, 진짜.”
누구에게인지 모를 말을 흘린 코델리아는 새삼 주위를 살피더니 살며시 유더의 손을 잡았다. 왼쪽 손등 위에 왼손을 올린 뒤 천천히 깍지를 껴보았다.
커다란 손과 길쭉길쭉한 손가락.
환골탈태 덕분인지 아기처럼 부드러운 하얀 피부.
“하아.”
머릿속을 맴돌던 이런저런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날아갔다.
가만히 유더를 바라보고 있자니 머릿속에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빨리 깨어나면 좋겠다.’
얼른 일어났으면.
그래서 다시 능구렁이 같은 얼굴로 잘난 척을 했으면.
‘유더 냄새.’
이러나저러나 아직 피곤했던 모양이다.
마이아에게 했던 말과는 달리 어느새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코델리아는 침대 맡에 머리를 묻은 채 눈을 감았다. 깍지 낀 손을 꼼지락 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1분, 2분··· 시간이 자꾸만 흘러 밤이 보다 깊어졌을 때.
귓가를 스치듯 들려온 목소리에 코델리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직 잠이 덜 깬 눈을 깜박이며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부드러운 음색.
듣기 좋은 부름.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목소리.
“코델리아.”
잘못 듣지 않았다.
꿈이 아니었다.
“유더.”
부름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마주할 수 있었다.
기대한 그대로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우리 공주님.”
속이 까맣고, 맨날 잘난 척만 하고, 수치심과 생이별한 사람처럼 창피한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대는- 하지만 그래도 자꾸만 정이 가는 얄미운 인간.
코델리아는 활짝 웃으며 남자를 끌어안았고, 남자는 그런 코델리아를 마주 안았다. 어느새 울기 시작한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왕도의 결전으로부터 사흘.
유더가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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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3장 - 공훈식 #2 (코델리아 일러스트 추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