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3장 - 공훈식 #5 >
“공훈식이요?”
“그래, 이번 사건을 수습하는데 공을 세운 이들에게 국왕폐하께서 직접 상을 내리실 거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당연히 포상을 위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왕실의 건재함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번에 상을 받게 될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공이 큰 너희 두 사람에게는 백작위와 영지가··· 그리고 왕실에서 직접 하사하는 새로운 성이 주어질 예정이다.
“성이요? 새로운?”
코델리아의 물음에 바이엘 백작은 빙긋 웃으며 답했다.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이 둘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물론 굳이 따로 성을 내릴 필요 없이 대大 바이엘 백작과 소小 바이엘 백작 하는 식으로 구분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성을 새로 하사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왕실에서 우릴 원하는 모양이네.’
이것 역시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구국의 영웅에서 반역자로 전락한 호국공을 대신할 새로운 영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작금의 상황을 포장하기 위해서는 영웅이 필요하니까.’
호국공의 배신은 단순히 충격적인 사건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두고두고 왕실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최악의 스캔들이었다.
‘호국공은 구국의 영웅이었으니까.’
나라를 두 번이나 구한 그가 어째서 왕실을 배반한 것일까.
혹여 왕실이 그를 배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닐까?
수많은 억측들이 만들어질 터였고, 이러한 억측을 이용한 유언비어들은 왕실을 끊임없이 괴롭힐 터였다.
이런 문제는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일단은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새로운 화제를 만들어낸다.
새로운 영웅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다른 하나는··· 역시 우리가 유능···하기 때문이겠지?’
입 밖에 내기 민망한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가 유능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도 또래로 한정한다면 대륙 전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말이다.
‘왕실에서 탐을 내는 것이 당연해.’
그러니 상을 아끼지 않는다.
성까지 내려 특별함을 과시한다.
‘뭐, 속셈이 어쨌든 일단은 감사할 노릇이지.’
더욱이 이 정도로 이쪽을 탐한다면 거래의 여지 역시 있을 터였다.
원하는 것을 좀 더 뜯어낼 여지 말이다.
[표정이 사악해.]
코델리아의 지적에 유더는 흠흠 헛기침을 토했고, 그런 유더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바이엘 백작은 사람 좋은 얼굴로 말했다.
“그럼 일단 돌아가서 쉬려무나.”
“예, 아버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코델리아와 함께 일어선 유더는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에게 예를 표한 뒤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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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뒤면 그래도 여유가 제법 있네?]
[그렇지만도 않아. 이것저것 정리할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단순히 왕족들을 공격하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왕도 전체를 뒤집은 대사건이었다.
자연 관계자들 역시 잔뜩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벨키안이었다.
[일단 당장 고려해야 할 것은 다섯 가지야.]
[엉? 다섯 개나 된다구?]
[어, 다섯 개.]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유더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나씩 말해봐.]
[그··· 생각하는 걸 아예 포기한 건 아니지? 놔 버렸다든가.]
[쓸데없는 소리 말구 설명이나 해봐.]
[음, 좋아.]
설명하기에 앞서 한 차례 숨을 고른 유더는 발걸음 속도를 조금 늦추며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일단 벨키안이야.]
[응, 지금 왕도에 있다고 했지? 공훈식 전에 만나는 게 좋으려나?]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을 거야. 애당초 핑크폭탄을 만나러 온 걸 테고··· 왕도에서 이 난리가 났는데 바로 발을 빼진 않겠지.]
[음음, 그럼 여유가 좀 있다는 거네?]
[아마도.]
물론 그렇다고 아예 방심할 수는 없었으니 동향을 예의주시하긴 해야 할 터였다.
[그럼 두 번째는?]
[스칼렛.]
[응? 스칼렛?]
[어, 스칼렛. 스칼렛이랑 약속한 거 잊었어?]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고, 이내 자기 허벅지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 맞다. 약속.”
로그 마스터 자리를 두고 승부하기로 했었지 참.
코델리아가 이제 생각났다는 듯 헤헤헤 웃자 유더는 미간을 좁히며 메시지 마법을 이었다.
[아무튼 벼르고 있을 테니 이것도 정리를 하긴 해야 해. 물론 스칼렛도 왕도가 이런 마당에 대결을 하자고 하진 않겠지만.]
[그러게. 도둑질 대결을 해야 하니까.]
왕도 전체가 쑥대밭이 된 지금 대체 어딜 털어야 한단 말인가.
물론 뒤지면 털만한 곳이야 있겠지만, 도둑질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법이었다.
특히 로그 마스터 같은 대도라면 말이다.
[그보다 스칼렛 무사하겠지? 안 다쳤겠지?]
[괜찮을 거야. 자기 입으로 맨날 떠들 듯이 로그 마스터잖아. 미래의 사대검사 중 한 사람이기도 하고.]
[하긴 그것도 그러네.]
스칼렛은 지금도 또래 중에서는 초월적인 강자였다.
스스로 위험에 몸을 던지지 않았다면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할 터였다.
[루카스는 무사하다고 했지?]
[어, 마이아가 그러더라.]
[달리아도 그랬어. 우리 자는 사이에 병문안도 왔대]
[애가 참 착하단 말이지. 스칼렛이랑 잘 되면 좋겠는데.]
[그러게. 스칼렛이랑··· 응? 스칼렛이랑?]
[아··· 말하면 길어지니 일단 패스하자.]
[응? 잠깐, 왜. 이거야말로 엄청 중요한 이야기 아냐?]
[응, 아냐. 세 번째 이야기나 할게.]
유더가 얼른 화제를 돌리자 코델리아는 불만 섞인 얼굴로 볼을 부풀렸지만, 유더 입장에서는 오히려 포상이었다.
‘음, 역시 귀여워.’
흐뭇한 얼굴로 웃은 유더는 세 번째 이야기를 꺼냈다.
[세 번째는 악마 추종자들에 관한 거야.]
[악마의 손?]
[어, 이제 진짜 대놓고 우릴 노리겠지.]
북부와 야생의 땅에 이어 왕도까지.
그야말로 번번이 악마 추종자들의 계획을 어그러트린 두 사람이었다.
특히 이번에는 호국공을 꺾는 대활약을 했으니, 자연 주목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으으음··· 상급 마인들이 오려나?]
[어쩌면. 하지만 당장은 못 올 거야.]
[왜?]
[세일룬 왕가에서 악마 추종자들을 쥐 잡듯이 잡을 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악마 추종자들을 혐오하는 세일룬 왕국이었다.
그런데 악마 추종자들이 왕도를 공격했다.
호국공을 타락시켜 왕실을 배신하게 만들었고, 수많은 왕족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어느 정도 왕도의 혼란이 수습되면 바로 움직임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여기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새로운 영웅이 필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릴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분노를 돌릴 대상이겠지만.’
그리고 다른 하나는 헨리 2세의 분노였다.
[호국공이 배신자가 된 것은 악마 추종자들 때문이다. 그가 타락한 것은 모두 악마 추종자들의 잘못이다.]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용은 둘째 치고 갈기갈기 찢어졌을 헨리 2세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서였다.
[진짜 순수한 아저씨 같았는데.]
코델리아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좀 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개의치 않는 코델리아였다.
오히려 얼마나 호국공을 좋아했으면 저랬을까- 싶은 마음에 안타까움만 깊어질 따름이었다.
[역시 천사.]
[뭐라고?]
[아니, 우리 공주님 착하다고.]
능글맞게 웃은 유더는 코델리아가 뭐라 하기 전에 다시 설명을 이었다.
[아무튼 세일룬 왕실이 악마 추종자들을 열심히 두들길 테니 한동안은 우리에게 신경을 쓰지 못 할 거야.]
[그럼 그 사이에 더 강해져야겠네?]
상급 마인들과도 충분히 대적이 가능할 정도로.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 수단도 대충 생각은 해뒀고.]
육문과 천사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코델리아는 유더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고, 이내 깨달았다.
[열쇠 검.]
[정답.]
그로 말미암아 얻을 수 있는 얼티메이트 세븐.
[렙업이 빡셀 때는 역시 템빨이지.]
[맞아, 맞아. 너 게임 좀 한다?]
[네, 제가 게임 좀 하죠.]
코델리아의 말에 능청스럽게 답한 유더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너도 알지? 남부에서의 사건.]
[어, 세일룬 왕국이 무너진 계기가 된 세 가지 큰 사건 중 하나.]
북부를 무너트린 야만족의 대침공.
중앙을 붕괴시킨 왕족 몰살 사건.
그리고 세 번째, 남부의 기둥이라 할 수 있을 남부7가문에 궤멸적인 타격을 가한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의 공격.’
[말레키스 까지 막아내면 세일룬 왕국은 한동안 안심해도 될 거야.]
원작에서는 저 세 가지 사건을 단 하나도 막지 못 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세일룬 왕국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북부와 중앙이 건재했으니, 남부까지 막아낸다면 세일룬 왕국은 앞으로 닥칠 칠대재앙 앞에서 인류를 수호할 거대한 방벽이 되어줄 터였다.
[으으으··· 그럼 저 다섯 가지를 어떤 순으로 처리할지 정해야겠네?]
[어, 세부 사항을 좀 더 고민해봐야겠지.]
거기까지 말한 유더는 일단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건 코델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 왔으니까.
나란히 붙어 있는 유더의 방과 코델리아의 방 바로 앞이었으니까.
[그··· 코델리아야?]
[어, 유더야.]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를 보았고,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둘 모두 쭈뼛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내 방에서 마저 이야기 하지 않을래?]
[어? 어··· 그, 그럴까?]
의논은 늘 하던 거니까.
오면서 이야기한 것처럼 같이 고민해야 할 것도 많고.
응응. 그러니까 유더 방에 가서 이야기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
코델리아는 스스로에게 말했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늘상 하던,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하려는 건데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그럼 갈까?]
[그, 그럴까?]
평소와 달리 어색하게 답한 유더가 방문을 열었고,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달리아와 마이아가 함께 자리를 비운 탓이었다.
그리하여 빈 방.
아무도 없는 방.
“흠흠.”
“흠흠흠.”
괜히 헛기침을 토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어색하게 서로의 시선을 피하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소파에 앉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애당초 의논을 위해서이니 서로 마주 보고 앉는 것이 정상이었고, 지금까지는 늘 그러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두사람 모두가 같은 소파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왜일까.
어째서일까.
손을 잡고 있어서일까?
“흠흠.”
“흠흠흠.”
유더와 코델리아는 다시 헛기침을 토하다 서로를 보았고, 그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돌렸다.
어젯밤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쪽쪽쪽······.’
코델리아는 괜히 입술을 움츠렸고, 유더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게 1분.
다시 2분.
“그··· 유더야?”
“어, 코델리아야.”
“우, 우리 이야기해야지?”
“어, 해야지. 의논. 의논해야지.”
그러려고 온 거니까.
다른 게 아니라, 의논하려고 온 거니까.
“그, 그럼··· 손··· 놓을까?”
“손?”
“어, 손. 그··· 뭐 꼭 놓을 필요가 있는 건 아니···지만?”
코델리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고, 깍지를 낀 상태였기에 유더 역시 덩달아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꼼지락 거리니 이상하게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심장의 박동이 빨라졌고, 숨이 절로 거칠어졌다.
그리고 다시 몇 초.
입술을 움츠리던 코델리아는 슬쩍 유더를 돌아보았고, 그 시선에 유더 역시 코델리아를 돌아보았다.
파란색 눈동자와 초록색 눈동자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조금씩이지만 서로간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들 뭐하냐?”
뚱한 목소리.
동시에 익숙한 목소리.
어쩐지 모를 데자뷰를 느끼며 유더와 코델리아는 급히 등 뒤를 돌아보았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코델리아가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
“스칼렛!”
무사했구나!
코델리아는 소파를 뛰어넘어 메이드복 차림의 스칼렛을 와락 끌어안았고, 스칼렛은 그런 코델리아를 마주 안으며 유더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쩐지 뚱한 얼굴이 된 그에게 미안함과 고소함이 반씩 섞인 묘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
< 제73장 - 공훈식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