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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205화 (205/473)

< 제74장 - 생명의 관 >

제74장 - 생명의 관

창문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깨어난 코델리아는 눈을 감은 채 상체를 일으켜 세우더니 잠이 덜 깬 얼굴로 우흐흥 미소를 흘렸다.

간밤에 좋은 꿈이라도 꾼 모양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는, 그대로 다시 잠드는 대신 쭉하고 기지개를 켰다.

평소 아침잠이 많은 터라 누가 깨우기 전까지는- 아니, 누가 깨워도 쉽게 일어나지 않는 그녀였건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혼자서 깨어난데다 기분까지 좋았다.

“흐흥.”

다시 미소를 흘린 코델리아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그대로 코를 킁킁 거리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과연 자타공인 짐승답게 햇볕의 따스함과 좋은 냄새만으로도 시각을 대신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응··· 아름다운 아침이에요.”

여전히 눈은 반쯤 감은 채로 옹알이하듯 말한 코델리아는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짹짹 거림에 맞춰 어깨를 들썩였다.

공훈식으로부터 하루 뒤.

그러니까 바로 다음날 아침.

어깨춤을 추며 세면대야가 올라가 있는 탁자까지 발걸음을 옮긴 코델리아는 따로 사람을 부르는 대신 손수 대야에 물을 채운 뒤 찬물에 손을 담갔다.

“응응, 조아요.”

어제의 좋은 기분이 지금도 쭉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작위를 받고, 칭찬을 받고··· 물론 좋은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사람들을 지켜냈다는 사실에서 오는 고양감이 더 컸다.

앞으로 더 잘해야지.

더 노력해야지.

힘을 내야지.

“응응응.”

콧노래를 부르며 손을 휘저은 코델리아는 가볍게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며 어제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좋은 일들.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공훈식에 참가한 것은 코델리아 자신과 유더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우리 아버님은 검성이지요.’

바람의 검성 바이엘 백작.

반역자 룬 프라우드의 모든 작위와 칭호를 박탈한 헨리 2세는 바이엘 백작을 왕국의 새로운 검성으로 추대했다.

사실 검성이란 칭호는 아무리 대륙양강 가운데 하나인 세일룬 왕국의 국왕이라 할지라도 마음대로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십검호가 그러한 것처럼 뭇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는 칭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헨리 2세의 추대에 반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제일검을 막아내는 것으로 이미 본신의 실력을 입증한 바이엘 백작이었기 때문이다.

‘바람의 검성.’

이 얼마나 멋진 울림이람.

비누칠까지 깨끗이 한 코델리아는 얼굴의 물기를 닦아낸 뒤 양치를 시작했다.

“아즈브니도.”

게일 바이엘.

격전 끝에 깨어난 게일은 비록 왼팔을 잃었지만 심신 모두가 훨씬 강해져 있었다.

벨키안이 취한 모종의 조치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정신적으로 큰 성장을 이룬 덕분이었다.

‘아주버님 완전 늑대.’

게일이 깨어났을 당시의 광경을 떠올린 코델리아는 뺨을 살짝 붉힌 채 입 안을 행궜다.

‘아무튼 아주버님도 언니랑 같이 상 많이 받으셨고.’

거기에 실력까지 크게 늘었으니 의수만 완성되면 새로운 십검호 자리는 따놓은 당산이었다.

‘한 집안에 십검호가 둘이라구?’

아니, 어쩌면 셋이 될지도.

유더도 앞으로 쑥쑥 커서 더 강해질 테니까.

‘아, 그래도 키가 더 크는 건 좀··· 곤란하지만.’

지금도 이미 너무 커서 얼굴 마주할 때마다 목이 아플 지경이었으니까.

‘차이가 이쯤 나려나?’

20cm 남짓.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되려나.

손바닥 사이를 벌려가며 고개를 갸웃갸웃하던 코델리아는 이내 피식 웃었다.

새삼 어젯밤의 유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은근히 귀엽다니까?’

공훈식에서의 ‘복수’를 좀 해줬더니 빨개져서 허우적거리는 꼴 하고는.

물론 몰래 숨어서 지켜본 달리아와 마이아가 작금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차게 식은 눈으로 코델리아의 현실 왜곡 기억에 대한 우려를 늘어놓았을 터였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흠흠. 유더라. 우리 집 유더라.’

코델리아는 입술을 한 번 움츠리더니 괜히 주변을 한 번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다시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을 이었다.

‘이쯤 되면 이제 확신해도 되겠지?’

나 좋아한다고.

천하의 아웃복서가, 그 유더가 자기한테 아주 홀딱 빠져있다고.

‘응응 맞아, 맞아. 분명히 그럴 거야. 안 그럼 그렇게 쪼··· 쪼쪼쪽··· 안 할 테니까.’

힘겹게 공훈식 장에서 있었던 일들과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은 떠올린 코델리아는 찬물 덕분에 차가워진 손으로 뺨을 덮었다.

차가운 손바닥과 뜨거운 뺨이 서로 맞닿아 알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유더가 나 좋아하는데.

나 좋아하는 게 분명한데.

‘음··· 뭐··· 유더가 막 사정한다면야.’

제발 사귀어달라고 애원한다면 까짓 거··· 좀 만나줄 수도 있고?

일단 약혼자이기는 하니까?

‘조만간 먼저 말하겠지.’

좋아한다고.

진지하게 사귀고 싶다고.

그때 살짝 튕기면 진짜 매달리려나?

“흥흥흥.”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저도 모르게 다시 어깨춤을 출 정도로 말이다.

‘이겼어, 이겼어.’

유더를 이겼어.

코델리아가 유더를 이겼다구?

이제 코델리아가 1등이라구?

“응응응.”

유더가 제발 사귀어 달라고 매달리고, 선심 쓰듯 허락해주고, 그럼 그 다음에는······.

뺨이나 이마에 쪽쪽 하는 것 이상의, 그 다음의, 그러니까 좀 더 어른스러운··· 아주버님과 언니와 같은······.

코델리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고, 덕분에 더 뜨겁게 느껴지는 얼굴의 열기 속에서 새침한 미소를 흘렸다.

“아흐.”

달리아는 언제 오려나.

아침마다 깨워주는 메이드 언니들이 오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려나.

코델리아는 침대에 다시 눕는 대신 의자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었다.

따스한 햇볕을 째고 있자니 이것저것 다른 생각들이 떠올랐다.

‘영지는 어딜 받게 되려나.’

공훈식 때는 작위 수여만 있었을 뿐 영지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세일룬 왕가에서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가 아니라 영지 선정에 시간이 걸려서였는데, 그 원인 중에 하나는 유더였다.

‘어느 정도 바람을 전달했으니까.’

받고 싶은 영지.

유더가 이미 예상한대로 왕실에서는 가능한 중앙의 영지를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왕실 직할령의 일부를 떼어서 말이다.

여기에 유더는 외교적인 수사를 동원하여 자신의 바람을 다프네 왕세녀에게 전달하였는데,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남부와 가까운 곳일 것.

평야도 좋지만 산을 끼고 있을 것.

북부와 교통이 원활한 곳일 것.

그리고 그외 자질구레한 것들 몇 가지.

‘이것저것 늘어놓은 것 같지만 전부 하나로 합치면 해당되는 영지가 사실상 제한된다고 했지?’

그리고 그 영지는 앞으로의 여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곳이고.

‘얼티메이트 세븐.’

그 중에서도 유더에게 꼭 필요한 얼티메이트 원이 숨겨져 있는 장소.

‘그리고 그 말은 곧······.’

그 영지에 고대 드워프들의 유적이 숨겨져 있다는 소리가 되었다.

일반적인 귀족들이라면 인구가 많고 땅이 비옥해 세수가 많은 곳을 원할 터였지만 유더는 달랐다.

유더에게 중요한 것은 10년, 20년 후의 세수가 아닌 당장 눈앞의 문제들을 해결해 완벽한 해피 엔딩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따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신나서 떠드는 걸 대충 걸러들어 보니 이것저것 공장 같은 것도 지어서 상업 도시를 만들 생각인 것 같았는데, 어찌되었든 당장은 요원한 일이었다.

‘왕도에서의 일이 얼추 끝나면 바로 남부로 달려가야 하니까.’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의 공격.

세일룬 왕국을 무너트린 원작의 세 사건들은 저마다 그 성격이 달랐다.

야생의 땅과 북부에서 일어난 야만족의 대침공은 대규모 병력이 동원된 전쟁이었다.

왕도를 무대로 한 호국공의 왕족 몰살 사건은 소수와 소수 간의, 하지만 강력한 존재들 간의 격돌이었다.

그리고 남부에서의 사건인 말레키스와의 전투는 다음의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보스 레이드.’

그것도 엄청나게 거대한 괴수를 상대로 한.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의 몸길이는 무려 백오십미터에 달했다.

즉, 사람 몇 명이 와! 하고 달려가서 푹찍푹찍 하고 싸울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군대가 필요해.’

그것도 일이백 명 수준이 아닌, 수천 명에 달하는 대규모 군세가.

야생의 땅에서는 동맹 결성에 관한 대부분의 사안을 붉은질풍에게 맡긴채 일선에서 활약한 유더와 코델리아였지만 이번에도 그럴 수는 없었다.

유더와 코델리아 두 사람이 직접 동맹의 구심점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는 각각의 세력이 힘을 모으지 못 했어.’

바이엘 백작가와 체이스 백작가처럼 절친한 가문들도 있기는 했지만, 북부12가문들 사이의 관계는 대체로 썩 좋지 못 했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말 그대로 경쟁자 구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북부12가문 간의 알력은 남부7가문 간의 '항쟁'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나 다름이 없었다.

기껏해야 만나서 좀 으르렁 거리다 마는 북부12가문과 달리 남부7가문은 실제로 칼을 뽑았기 때문이다.

‘카이사로 시작하면 초반에는 악마 추종자들이 아니라 남부7가문하고 싸울 정도니까.’

카이사 오펀드.

남부7가문 가운데 하나인 오펀드 후작가의 플레이어블 캐릭터.

아예 프롤로그부터가 경쟁 가문인 미스트 가문과의 패싸움이었으니, 이쯤되면 말 다한 셈이었다.

‘화합이 안 돼.’

같은 인간끼리도 저리 싸울 정도니 드워프나 노움 같은 이종족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더욱이 말레키스는 블랙 드래곤답게 유더 이상으로 속이 까만 존재였다.

적극적으로 남부의 분열과 항쟁을 유도하니, 남부는 말레키스라는 대적 앞에서도 끝내 하나가 되지 못 했다.

‘결국 이번에 해야 할 일은 구심점이 되어 남부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했다.

한 사람의 영주로서, 그리고 왕실의 신임을 받는 왕국의 영웅으로서 행동해야만 했다.

‘뭐, 복잡한 건 유더가 알아서 하겠지.’

뭐든지 적재적소였으니까.

코델리아 자신이 집중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말레키스와의 결전······.’

십검호가 전술병기라 불리기는 했지만, 그렇다 해도 결국엔 무인이었다.

다수를 상대로 한 싸움이나 거대한 괴물과의 싸움에는 그렇게까지 큰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때문에 유더 역시 이번 싸움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코델리아 자신은 마법사였다.

그것도 대군전투를 특기로 하는 마법사 말이다.

“정신 바짝 차리자.”

말레키스와 싸우기 전까지 최대한 실력을 기르자.

레벨 업도 하고, 아이템도 보강하고, 새로운 마법도 배우고.

결의를 다진 코델리아는 두 주먹을 불끈 쥔 뒤 다부진 얼굴로 방문 쪽을 돌아보았다.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슬슬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언제 오려나.’

물론 종을 울려서 부르는 방법도 있었지만,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부르면 메이드 언니들에게 민폐였으니까.

‘으으음··· 명상이라도 하자.’

메이드 언니들 오면 마저 씻고, 아침 먹고, 유더 만나러 가야지.

오늘은 아침부터 같이 다녀야 할 곳들이 많았으니까.

‘초대장이 잔뜩 왔으니까.’

왕국의 새로운 영웅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고 또 많았으니, 전부는 무리더라도 일부는 만나줘야만 했다.

‘오늘은 아니지만 집이랑 가구도 보러 가야 하구.’

왕실에서 내주기로 한 저택과 저택에 쓸 가구들까지.

비록 바로 남부로 가야하니 왕도에 머무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터였지만, 그래도 침실 정도는 제대로 꾸미고 싶었다.

‘으으음··· 명상, 명상을 해야 해. 명상을 해야 한다구.’

도리질을 한 코델리아는 자세를 정돈했지만 바로 명상에 빠져들지는 않았다.

오늘 밤에 있을 가장 중요한 일정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사령술사 벨키안.’

영웅전기 1편의 다섯 영웅들 가운데 하나인 그와의 만남.

이미 그가 머무는 숙소에 로그 마스터의 예고장을 보낸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오늘 밤에 생명의 관과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로그 마스터- 핑크폭탄.

이러나저러나 코델리아 체이스가 아닌 핑크폭탄을 찾아 왕도에 온 벨키안이었으니 말이다.

‘으으음··· 일단 벨키안이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했으니까.’

그 근엄하게 생긴 할아버지가 자그마치 ‘핑크폭탄’이란 이름의 인물이 나오는 소설을 탐독하는 모습은 영 떠오르지 않았지만 유더가 그렇다니까 그런 거겠지. 유더위키는 굉장하니까.

‘그런데 그럼 벨키안이 보기에는 내가 코스프레 한 걸로 보이려나?’

그건 그거대로 좀 부끄러운 거 같은데······.

‘으으으,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중요한 건 벨키안을 만나는 것이었으니까.

마음을 정리한 코델리아는 이번에야말로 명상을 시작했다.

&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밤의 장막 위로 달이 떠오르고.

하루가 거의 지나 깊은 밤이 되자 코델리아는 침대에서 슬쩍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안타깝게도 변신 주문 같은 건 개발해두지 않았으니 말이다.

긴 장화를 신고, 머리를 높이 묶은 뒤 나비 가면을 쓴다.

그리고 여기에 토끼 꼬리와 토끼 귀로 구성된 토끼 세트를 장착한다.

‘음, 언제 봐도 좀 과하단 말이지.’

나비 가면에 토끼 귀와 꼬리라니.

‘하여간 취향도 별나요.’

유더 흉을 살짝 본 코델리아는 다시 살금살금 발걸음을 내디뎌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도달한 곳은 별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정자.

[왔어?]

도착하자마자 들려온 메시지 마법에 고개를 돌리자 오늘은 겉도 속도 까만 유더가 보였다.

블랙망토의 복장은 검은 정장에 검은 모자, 검은 가면, 검은 망토까지 그야말로 검정 일색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유더를 가만히 바라보던 코델리아는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이전부터 생각한 건데 말이야.]

[응?]

[나도 그냥 검정 일색으로 맞추는 게 낫지 않을까?]

분홍색으로 물들인 머리칼이야 뭐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하얀 토끼 귀랑 꼬리는 너무 눈에 띄었으니까.

[하긴, 일리가 있지.]

[응? 진짜루?]

[어, 아무래도 밤중에 하얀 색은 너무 눈에 띄니까.]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눈을 껌벅이며 놀라워했다.

[그럼 뺀다? 토끼 세트 안 한다?]

코델리아가 그리 말하며 토끼 귀를 흔들자 유더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러자.]

와,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

토끼 세트에 그렇게 집착하던 유더가 맞는 걸까?

코델리아는 신기해하면서도 얼른 토끼 세트를 해제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자, 여기. 고양이 세트.]

유더는 웃으며 까만 고양이 귀와 꼬리를 내밀었고, 코델리아의 눈은 차게 식었다.

[저기요, 블랙망토 씨?]

[아이덴티티는 소중하니까.]

유더는 뻔뻔하게 말하며 다시 한 번 고양이 세트를 밀어붙였고, 얼결에 받아든 코델리아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잠깐, 이거 야생의 땅에서 마지막 전투 때 입었던 거잖아. 설마 계속 가지고 있던 거야?]

[어,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 뭐가 그렇게 당연한 건데.

당연한 거 아니지 않아?

순간 말문이 막힌 코델리아였지만 이내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저렇게까지 좋아하는데 까짓 거 좀 해주지 뭐. 어디 닳는 것도 아닌데.

[자, 이제 만족해요?]

[어, 대만족. 너무 좋아.]

코델리아가 고양이 세트를 장착한 뒤 한 바퀴 빙글 돌자 유더는 해맑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고, 코델리아는 짧은 시간이나마 유더와의 교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아무튼, 이제 슬슬 갈까?]

유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코델리아는 그대로 폴짝 뛰어올라 유더의 등에 업혔다.

언제나처럼 합체 구호를 외치는 것도 잊지 않았고 말이다.

“야간합체! 유델리··· 뭐야, 표정이 왜 그런데, 응?”

“그··· 아냐. 취향이니까 존중해줄게. 응, 존중해야지.”

“야, 네가 그런 말 할······.”

거기까지였다.

코델리아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던 유더는 뒷말을 더 듣는 대신 지면을 박차는 것을 선택했고, 코델리아는 갑작스러운 가속을 견디기 위해 유더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벨키안에게로.”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 가운데 하나이자, 영웅전기 1편의 주인공들 가운데 하나인 그를 만나기 위해.

유더와 코델리아는 바람이 되었다.

왕궁의 성벽을 넘어 어둔 밤에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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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4장 - 생명의 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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