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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208화 (208/473)

< 제75장 - 바람의 늑대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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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에서 무투회 개최 소식을 알리자 왕도 전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나쁜 의미가 아닌, 좋은 의미로 말이다.

귀환하기 위해 짐을 꾸렸던 귀족들은 며칠 더 수도에 머무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고, 왕도의 참극으로 인해 침울해져 있던 백성들 사이에도 제법 활기가 돌았다.

“오락거리가 부족한 곳이니까.”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고개만 대충 몇 번 끄덕이더니 눈앞의 침대를 다시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지금 왕도의 고급 가구점에서 가구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왕실에게 받기로 한 저택이 드디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으으음······.”

코델리아가 진지하게 킹사이즈 대형 침대를 살피자 유더는 작게 메시지 마법으로 말했다.

[그냥 적당히 골라. 어차피 한동안은 쓰지도 못 할 텐데.]

이쪽 세계라 하여 기성품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귀족들의 가구는 대체로 그때그때 주문을 받아 수제작하는 물건들이 많았다.

이 침대 역시 견본품일뿐, 실제로 주문하면 그때서야 완전히 새로운 제품의 제작을 시작하는 터라 주문 후에 물건을 받아보는 데까지는 짧아도 보름, 길면 한 달 이상이 걸리기도 하였다.

‘더욱이······.’

이건 한 침실에서 같이 써야 하는 침대였으니까.

사용할 날은 아직 참으로 요원하지 않을까.

하지만 코델리아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가면서 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할 따름이었다.

‘침대 너무 비싸!’

가구들 하나하나가 바보같을 정도로 비쌌는데, 침대는 특히 더 비싼 느낌이었다.

이거 하나 살 돈이면 그럴싸한 사두마차도 하나 살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백작가의 저택에, 그것도 침실에 들어갈 침대였으니 어찌 보면 비싼 것이 당연했다.

“머리에서 열나겠다.”

“우으.”

코델리아는 한 번 더 앓는 소리를 내더니 근처에 자리한 소파에 털썩하니 앉았고, 유더 역시 바로 옆에 자리했다.

“잠시 쉬려고 하는데, 차를 부탁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백작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가구점 점원이 웃는 얼굴로 예를 표한 뒤 다른 직원에게 차와 다과를 내오라 명했다.

집을 완전히 새로 꾸며야 하다 보니 가구점 입장에서는 유더와 코델리아가 말 그대로 큰손인 것도 있었지만, 백작임에도 불구하고 존댓말을 사용하며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유더와 코델리아가 무척 마음에 들다보니 절로 싹싹해진 점원의 태도였다.

“흐아아.”

어찌되었든 소파에 자리잡은 코델리아가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것처럼 늘어지자 유더는 쿡쿡 웃더니 종이 한 장을 꺼내들었다.

[이거나 한 번 봐봐.]

[뭔데?]

유더는 굳이 답하는 대신 종이를 좀 더 코델리아 쪽으로 밀었고,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이며 종이를 받아들더니 이내 눈을 부릅떴다.

[잠깐, 이게 뭐야.]

[배율표?]

[누가 그걸 몰라서 그래? 내가 분명 말했지? 도박쟁이는······.]

[아니, 내가 가져온 거 아니거든? 스칼렛이 가져다 준 거거든?]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 한 귀퉁이에 남아 있는 스칼렛 특유의 사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좀 봐봐.]

유더가 종이를 톡톡 두드리자 코델리아는 일단 다시 배율표를 살펴보았다.

이번 무투회에서 어디에 걸면 얼마를 받을 수 있다는 무척 단순한 배율표였는데, 가만히 쳐다보던 코델리아의 얼굴에 당혹과 노여움이 번졌다.

[잠깐. 이거 왜 이렇게 높아.]

북부에 걸었을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은 판돈의 2.1배.

그렇게까지 엄청난 배율은 아니었지만, 코델리아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수치였다.

남부나 중앙에 걸었을 때보다 더 배율이 컸기 때문이다.

[뭐야, 설마 북부보다 남부나 중앙이 우승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는 거야?]

[그렇겠지?]

[아니 어떻게?]

코델리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 되어 유더를 보았다.

[우리 집 유더가··· 아니, 아니. 아무튼 북부에는 네가 있잖아.]

다른 누구도 아닌, 검의 연회에서 우승하고 호국공까지 저지한 유더가 있는데 남부나 중앙의 우승 확률을 더 높게 본다고?

게임 존나 못 한다는 말 한 마디에 분기탱천하는 코델리아였으니, 작금의 배율표에는 열이 뻗칠 만도 하였다.

[워워, 진정하시고.]

[너는 화도 안 나?]

[아니, 뭐 굳이 화를 낼 것까지야. 아예 말이 안 되는 배율표도 아니고.]

[그게 무슨 말이야?]

[싸우는 걸 본 사람이 없잖아.]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고, 이내 이해했다. 정말 그랬기 때문이다.

[호국공과의 싸움은 본 사람이 없으니까. 솔직히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무리 약해졌다고는 해도 십대 둘이서 호국공을 이기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냥 어찌어찌 방해하다가 수호진과 기타 등등의 힘으로 운 좋게 막아냈다 생각하겠지.]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확실히 이쪽이 더 말이 되는 이야기였다.

더욱이 유더는 불과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집안에서 골골 앓던 병약 미소년이었으니 말이다.

[아마 나보다는 네 힘이 더 컸다고 볼걸? 뭐,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렇기는 하지만.]

코델리아가 없었다면 육문을 억지로 열지 못 했을 테니까.

마지막 일격을 가한 것 역시 코델리아였고 말이다.

[그, 그렇게 띄워준다고 뭐 안 나오거든?]

얼른 흥흥거린 코델리아였지만 얼굴을 보니 기쁜 기색이 완연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유더가 무시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그치만 검의 연회가 있었잖아.]

거기서 제일검이랑 싸우는 걸 모두 봤을 텐데?

[봤다고 해도 소수고··· 제일검은 이번에 배신자로 전락했으니까. 평가가 많이 깎일 수밖에 없지.]

물론 배신했다 하여 제일검의 솜씨가 갑자기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해가 안 가.]

[여기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더 있거든.]

[뭐가?]

[이건 집단전이니까.]

세일룬 왕실이 정기적으로 개최한 무투회는 일대일 토너먼트가 아니었다.

32강, 16강, 8강 하는 식으로 차근차근 올라가는 대회가 아니라, 선수 전원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한 판 싸움을 벌이게 해 승패를 결정짓는 전쟁에 가까운 방식이었다.

[북부와 남부와 중앙이 각각 30명씩이니까 무려 90명이 한데 얽혀 싸우는 거야. 이 정도면 개인의 기량도 기량이지만 집단의 힘 자체가 더 중요해지니까.]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북부에 대한 평은 남부나 중앙보다 못한 편이었다.

루카스와 유더 외에는 딱히 주목받는 인재가 없다시피 했고, 전체적인 연령대 역시 다른 지역보다 어린 편이었다.

[여기에 양념을 살짝 더 치자면 내가 부상을 입었다는 거? 며칠이나 앓아누웠으니 아직 온전치 못 하다고 판단들 했겠지.]

자그마치 사흘 동안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유더였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그 정도 부상을 입은 사람이 온전히 평소 기량을 회복하려면 적어도 한 달 이상이 걸리기 마련이었다.

[그러고 보니 진짜 괜찮아?]

코델리아가 새삼 걱정 섞인 얼굴로 묻자 유더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재생력이 있으니까.]

[하아아··· 아무튼 알았어. 아주 본때를 보여주면 된다 이거지?]

[어, 그래서 북부에 전재산 올인했어.]

[잘 했··· 잠깐, 뭐라고요?]

[북부에 전재산 올인했다고.]

유더가 활짝 웃으며 말하자 코델리아는 스킨십 금지 명령도 잊고 유더를 마구 만지기- 그러니까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도박쟁이 아웃! 파혼이야! 파혼!]

[어허, 도박이라니. 이건 투자라니까?]

[우씨, 너 내가 때려도 하나도 안 아프지?]

[허허, 우리 공주님 진정하시죠. 제가 있는데 설마 지겠습니까?]

[와, 말하는 것 좀 봐. 진짜 재수 없어.]

하지만 사실이기도 하였다.

세간의 평보다 훨씬 더 강한 유더였으니 말이다.

[걱정 마, 크게 한 탕 할 테니까. 애당초 배율도 이거 내가 높인 거라니까?]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다. 뭔가 이상한 이야기를 들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잠깐, 뭐라고? 누가 배율을 높여?]

[내가.]

[어떻게?]

[소문을 내서?]

유더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고, 멍한 얼굴이 된 코델리아는 이내 깨달았다. 유더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이다.

[야, 설마.]

[어, 내가 낸 소문이야.]

유더가 생각보다 약하다더라.

호국공을 이긴 건 실력이 아니라더라.

유더보다는 마법사인 코델리아의 공이 더 컸다더라.

부상으로 아직도 골골거린다더라.

북부에는 쓸 만한 인재가 없더라 등등.

[아주 신뢰성 높은 내부 정보처럼 만들어 뿌리느라 고생 좀 했지.]

유더가 젠체하며 말하자 코델리아는 언제나와 같은 한 마디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와 사기꾼 새끼.]

[그래서 싫어?]

유더가 능글맞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자 코델리아는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이번에는 안 좋거든? 우승이 확정된 것도 아니고.]

[허허, 왜 이러시나. 나 못 믿어?]

[네 말대로 집단전이니까?]

코델리아가 살짝 억지를 부리자 유더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럼 우리 내기하자.]

[무슨 내기? 네가 우승을 이끌 거라는 내기? 그건 싫어. 어차피 우승 못 하면 지금 전재산 날려먹을 상황이거든?]

[아니, 그거 말고. 내가 몇 킬할지.]

진짜 죽이겠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애당초 날이 선 무기의 사용이 금지된 무투회였으니 말이다.

장외로 내보내거나 항복 선언을 하게 하거나, 경기 중 착용하게 되는 띠를 벗기면 상대를 죽인 것으로 간주가 되었다.

유더의 도발 섞인 물음에 코델리아는 눈썹을 살짝 꿈틀이더니 슬쩍 떠보듯이 물었다.

[너부터 말해봐.]

[20킬?]

적의 숫자가 중앙과 남부 합쳐 60명이니 20킬이면 충분히 많은 숫자였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어림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이기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아?]

[그럼 30킬?]

[40킬.]

60명 중에 40킬.

중앙과 남부가 서로 싸울 것 까지 생각하면 사실상 유더에게 올킬을 하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소리였다.

‘이 정도면 못 한다고 하겠지?’

그냥 유더가 앓는 소리 한 번 하면 만족인 코델리아였으니까.

하지만 유더는 생각지도 못 한 대답을 내놓았다.

[좋아.]

[어?]

[좋다고. 내가 40킬 이상을 하면 코델리아 네가 내 소원 하나 들어주는 거야. 못 하면 내가 네 소원을 들어주고.]

[자, 잠깐. 갑자기 웬 소원?]

[어허, 쫄리시나? 40킬인데?]

유더가 능글맞게 웃으며 도발하자 저도 모르게 발끈한 코델리아였지만 그렇다고 바로 달려들지는 않았다. 그간의 경험이 있었으니 말이다.

유더가 믿는 구석 하나 없이 저런 이야기를 할 리가 없었다.

‘그, 그래도 무리지 않을까?’

60명 중에 40킬은.

차라리 남부와 중앙 연합팀 대 유더 혼자서 싸우는 거면 모를까 1:1:1 집단전인데.

[40킬 콜?]

[50킬. 50킬이면 할게.]

못 한다고 하면 이번엔 이쪽에서 쫄리냐고 놀려줘야지.

코델리아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유더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50킬 콜. 대신에 분명히 약속한 거다? 50킬 하면 무슨 소원이든 하나 들어주는 걸로? 무슨 소원이든?]

[자, 잠깐.]

[왜, 쫄려? 50킬인데?]

[우씨, 아니거든? 너야말로 각오해야 하거든? 그냥 안 넘어갈 거거든? 막 무리한 소원 빌 거거든?]

[나도 그럴 거거든? 진짜 막 엄청 무리한 소원 빌 거거든?]

유더가 눈을 크게 뜨며 말하자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뭐, 뭔데 대체?’

막 엄청 무리한 소원이 뭔데? 응?

머리 한 구석에서 망상회로가 돌리기 시작한 코델리아는 어느 순간 얼굴을 확하고 붉혔다.

[벼, 변태 새끼.]

[자, 잠깐. 왜. 내가 뭐라고 했다고. 너야말로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냐?]

[아, 아니거든? 아무튼 좋아. 50킬 콜이야, 콜.]

[좋아, 그럼 지장 찍자.]

[어?]

[지장.]

유더는 언제 만들었는지 계약서까지 내밀며 말했고, 코델리아는 얼결에 지장을 찍고 말았다.

[좋아,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

[흥, 나야말로.]

일단 코웃음부터 친 코델리아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심호흡을 하였다.

뭔가 제대로 걸려든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엄청 유리한 조건이기는 하였으니까.

‘맞아, 무려 50킬이잖아.’

60명 중에 50킬.

집단전인데 그걸 어떻게 해? 그것도 팀데스, 그러니까 1:1:1인데.

아무리 유더라도 무리였다.

뭔가 또 사기를 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사기를.’

유더가 사기를.

갑자기 몹시 불안해지기 시작한 코델리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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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5장 - 바람의 늑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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