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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210화 (210/473)

< 제75장 - 바람의 늑대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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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사람은 너무 어이없는 광경을 마주하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더니 그 말이 진짜였던 모양이다.

‘세상에.’

강한 건 알고 있었다.

솔직히 스칼렛 자신도 유더를 이길 자신은 없었으니까.

때문에 이번 무투회에서도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일 거라 생각했다. 아직 덜 자란 미성년 기사들 따위 수십 명이 몰려와도 유더 하나를 당하지 못 할 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하, 진짜.’

예상대로 이기긴 이겼는데, 그 방식이 상상을 초월했다.

뭐지? 사람 맞나? 사람이 사람을 던지는데 왜 날아다니지?

차라리 막 키가 2미터가 넘어가는 엄청난 거한이 그랬으면 그냥 이해라도 할 터인데, 유더는 그렇지 않았다.

키가 크긴 했지만 그냥 보기 좋게 큰 정도였고, 몸이 좋긴 했지만 그렇다고 막 우락부락한 스타일도 아니었다.

때문에 충격이 더 컸다.

훨씬 더 놀라웠고 말이다.

‘핑크폭탄, 너 저런 애랑 어떻게 사귀니?’

포옹이라도 한 번 잘못했다가는 온 몸이 으스러질 텐데.

관중들 사이에 섞여 있던 스칼렛은 귀빈석에 자리한 코델리아에게 시선을 돌렸고, 미적지근한 눈이 되어 쓴웃음을 흘렸다.

‘아주 좋아 죽네.’

너무 좋아서 두 손으로 얼굴까지 가리고 있네.

피식피식 웃음을 흘린 스칼렛은 다시 콜로세움을 돌아보았다. 어마어마한 함성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역사··· 아니, 전설의 한 장면인가.’

단신으로 50명이 넘는 기사들을 거꾸러트린, 신화나 전설에나 나올 법한 영웅의 탄생.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도 당연했다. 유더의 본색을 아는 스칼렛 자신조차도 가슴이 다 두근거릴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뭐··· 루카스도 나름 열심히 했지만.’

유더 다음으로 많은 기사들을 쓰러트리기도 했고.

아까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미소를 흘린 스칼렛은 다시 경기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더에게 다가서는 루카스에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였다.

두 손을 높이 들어 관중들의 환호에 호응하던 유더가 계속해서 같은 손짓을 했다.

잠시 조용히 해달라는 신호였는데, 어찌어찌 전달이 되었는지 열광하던 관중들이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침묵.

숨을 크게 삼킨 유더는 코델리아 쪽을 보고서더니 담담하게, 하지만 콜로세움의 모두에게 전달될 정도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의 승리를 사랑하는 약혼자 코델리아에게 바치겠습니다.”

“와아아!”

바로 연이어 함성이 터져 나왔고, 사람들의 시선이 유더에서 코델리아로 옮겨갔다. 얼굴을 가린 채 세상을 부정하고 있던 코델리아는 그 격한 시선들에 더욱 안절부절 못 하는 상태가 되었고 말이다.

“아가씨, 괜찮아요.”

“손이라도 흔들어 주세요.”

옆에서 마이아와 달리아가 말했고, 코델리아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왜 맨날 부끄러움은 내 몫인데!’

정말로, 정말로 부끄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승리를 바치겠다는 유더의 말에 감동해 눈물을 보이는 것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런 무수한 오해 속에서 다시 유더와 눈이 마주친 코델리아는 정말로 눈물을 보일 뻔했다.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거리가 너무 멀었다.

아주 그냥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건 알겠는데, 속으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지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뭔데? 뭔데? 대체 뭘 시키려는 건데? 왜 그렇게 웃는데? 응?’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유더 역시 거리가 너무 멀었던 터라 코델리아의 눈빛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코델리아와 달리 유더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소원은 나중에 빌어야지.’

안절부절 못 하는 코델리아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웠으니까.

속으로 온갖 망상을 할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코델리아 본인은 알고 있을까?

속이 까만 미소를 흘린 유더는 다시 한 번 관중들의 환호에 호응한 뒤 북부의 기사들과 함께 대기실로 귀환했다.

그리고 이십여 분 뒤.

애당초 경장이었기에 다른 기사들보다 훨씬 더 빨리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유더는 코델리아 옆에 자리를 잡았고,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를 열심히 쳐다보았다.

유더가 무슨 말을 할지 무서웠지만, 얼른 눈을 맞대서 그 까만 속을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든지 패턴을 알면 공략이 가능한 법이었다.

코델리아의 생각을 단번에 간파한 유더는 눈을 피하기는커녕 당당히 코델리아와 얼굴을 마주했다.

‘그냥 생각을 안 하면 되니까.’

눈빛 대화가 진짜 텔레파시인 것은 아니니까.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읽힐 것도 없다.

그리고 여기서 응용을 한다면, 오히려 공격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말이다.

“으읏······.”

유더와 눈을 맞댄 코델리아는 움찔움찔 떨더니 옆에서 보든 말든 유더를 때리기 시작했다.

물론 유더에게는 타격이 조금도 없었지만 말이다.

유더가 떠올린 생각은 단순했다.

코델리아 귀여워.

오직 저 생각만으로 머리를 가득 채우니, 눈을 맞댄 코델리아가 부끄러워 죽는 것도 당연했다.

‘달다, 달아.’

유더와 코델리아의 투닥질을 제3자의 눈으로 쳐다본 이들은 진짜 정황을 모르기에 그저 흐뭇한 얼굴로 웃을 뿐이었다.

[아무튼 코델리아야.]

[왜! 왜! 왜!]

[형이랑 아델리아 누님은?]

유더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애써 심호흡을 한 뒤 경기장 쪽을 가리켰다.

[대기실. 이제 곧 시작할 거니까.]

[흠, 기대되네.]

게일이 얼마나 강해졌을지.

과연 정말로 십검호에 오를만한 강자가 되었을지.

“시작한다.”

커다란 나팔 소리와 함께 북부와 중앙, 남부의 기사들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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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진영 당 서른 명.

직전의 경기와 똑같은 인원수였지만 경기장에 섰을 때의 위압감 자체가 달랐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미성년인 터라 아직 몸이 덜 자란 이들이 대부분이었던 비성인부의 기사들과 달리 지금 경기장에 선 이들은 이미 육체적으로 완성된 진짜 기사들이었다.

경험의 양에서도 차이가 났다.

진짜 실전을 겪어본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는 법이었다.

중앙과 남부.

각 진영의 선두에는 예상대로 십검호 후보로 거론되는 사자검 리처드 갈레온과 시 서펜트 슬레이어 칼릭스 오펀드이 각기 자리했다.

황금색 갑주를 걸친 사자검은 그 덩치가 실로 어마어마해 얼핏 보아도 2미터가 훌쩍 넘을 것 같았고, 야수의 피가 흐른다는 오펀드 가문의 적자인 칼릭스는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위의 모두를 침묵케 할 정도로 살벌한 기운을 풀풀 풍겼다.

리처드와 칼릭스가 서로를 보았다.

갈까마귀들 가운데 가장 빠른 검을 가졌다고 알려진 아이오스 레인이 불참한 지금, 사실상 이번 집단전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 누구인지 양쪽 모두가 직감했기 때문이다.

물론 십검호 후보가 하나 더 있기는 했다.

게일 바이엘.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인 유더 바이엘의 형.

하지만 그는 왕도의 결전에서 큰 부상을 입었다. 더욱이 상급 마인의 발을 붙잡는데 그쳤을 뿐, 딱히 눈에 띄는 공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리처드와 칼릭스 모두 게일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리처드의 경우에는 한 번이지만 검의 연회에서 검을 맞대었던 적도 있고 말이다.

그렇기에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너무 수수해.’

평범하다고 해야 할까.

게일의 검은 모범생의 검이었다.

모난 곳 없이 기본기에 충실한.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닌, 조금 이상한 표현이지만 그냥 평범하게 강하다고 평해야 할 기사.

그렇기에 리처드와 칼릭스는 게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노려볼 따름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수많은 실전으로 다듬어진 리처드의 경험이 그로 하여금 시선을 돌리게 하였다.

칼릭스의 본능이 격렬한 위험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어째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당혹 섞인 얼굴로 북부의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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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리아는 왕도의 결전에서 부활한 게일을 한 마디로 정의했다.

‘짐승.’

야수, 괴물, 늑대.

사람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게일은 여전히 선하고 올곧은 마음을 가진 성실한 남자였다.

하지만 달라진 부분이 분명 있었다.

정확히는 새로이 추가된, 깨어난 면모가 존재했다.

드루이드 프란이 빚어낸 달의 정수는 게일의 육체능력을 폭발적으로 강화시켰다. 내공의 양 역시 기존의 두 배 이상이 되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변화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바람의 검.’

바이엘 백작가의 검.

제일검과의 싸움에서 바이엘 백작이 보여주었듯이 바람의 검의 진수는 질풍이었다.

거칠고 자유로운, 노도와 같은 바람.

게일은 숨을 깊이 삼켰다. 천천히 내쉬며 정면을 보았다.

푸른색이었던 머리칼은 하얗게 새었다.

의수로 대체된 왼팔은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었지만, 그 어떤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미소가 그려졌다.

이제는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던 것이 무엇인지.

바람의 검의 진수인 질풍이란 무엇인지.

게일은 더 이상 스스로를 억누르지 않았다. 부활의 과정에서 깨어난 야성을 온전히 해방했다.

그리고 그 순간 경기장에 있던 모두를 게일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게일은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사나운 미소를 감추지 않으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아델리아.”

낮게 속삭이듯 말한 게일은 검을 뽑아들었다. 중앙과 남부의 기사들은 물론이고 콜로세움에 모인 관중들 모두에게 진정한 바람의 검을, 질풍의 검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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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투회는 성황리에 마무리가 되었다.

비성인부와 성인부 모두 북부의 승리라는, 일방적인 결과가 나왔지만 중앙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왕도 전체는 다시 한 번 성대한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대성공이야.”

무투회를 기획하고 밀어붙인 디온 왕자는 오랜만에 해맑은 미소를 지었고, 그런 동생의 미소에 다프네 왕녀 역시 기분 좋게 술잔을 채웠다.

“새로운 십검호의 탄생.”

공석을 모두 채우지는 못 하였지만 충분했다.

왕도의 주민들은 새로운 검호의 탄생의 열광했고, 제일검의 빈자리를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다.

검랑.

검의 늑대.

남부의 야수 칼릭스 오펀드와 중앙의 사자검 리처드 갈레온을 연달아 꺾은 압도적인 질풍의 검.

“바이엘 백작가를 위하여.”

다프네 왕녀와 술잔을 맞댄 디온 왕자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이엘 백작가 덕분에 왕도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으니 말이다.

빛의 검성을 대체하는 바람의 검성.

새로이 십검호 자리에 오른 검랑- 질풍검 게일.

그리고 여기에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인 ‘무검의 검사’ 유더 바이엘까지.

“진짜 검술 명가네.”

유더도 몇 년 안에 십검호 자리에 올라설 것이 분명했으니까.

한 집안에, 그것도 동시대에 세 명의 검호가 탄생한다?

그야말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위업이었다.

다프네 왕녀의 감탄에 절로 고개를 끄덕인 디온 왕자는 기분 좋게 웃더니 턱을 바치며 말했다.

“그런데 누나.”

“어, 동생아.”

“유더가 진짜 검사이긴 한 걸까?”

한 번도 검을 쓰는 걸 못 봤는데.

무투회 때도 뽑는 시늉만 했고.

“몰라, 본인이 검사라니까 그런가 보지 뭐. 철인도 막상 검 쓰는 모습은 보여준 적이 없잖아?”

“무검의 검사라니.”

검이 없는 검사라니 이게 뭐람.

하지만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이번 무투회를 기점으로 새로운 영웅들이 탄생했다는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운명의 두 사람.”

다리안 왕녀와 디온 왕자에게 각기 특별한 힘이 있는 것처럼 다프네 왕녀에게도 성왕에게 물려받은 힘이 있었다.

천상의 목소리.

이따금씩 들려오는 저 높은 곳에서의 속삭임.

그들이 말했다.

운명의 두 사람이 다프네 왕녀 자신과 디온 왕자는 물론이고 세일룬 왕국 전체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그러고 보니 그 둘은 결혼식 언제 한대?”

“아직 약혼식도 안 했다던데?”

태중혼약이었던데다가, 둘 다 아직 열일곱 살 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흠, 그럼 우리가 해줄까?”

“뭐? 약혼식?”

“어, 왕가의 이름으로.”

이미 왕당파라 해도 좋을 정도로 왕가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보다 확실하게 이쪽 편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 그냥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지만.’

정말로 큰 은혜를 입었으니 말이다.

“흠··· 좋은 생각인 거 같은데? 확 추진해볼까?”

“추진해보자.”

오랜만에 걱정 없이 웃은 남매는 다시 한 번 술잔을 부딪히며 세부적인 계획을 논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남매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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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진짜 이러고 가자구?”

“계속 발이 묶이고 있으니까. 무투회까지 했으니 이젠 진짜 가봐야 해.”

무투회 다음날 밤.

유더는 코델리아에게 남부로의 밀월 여행- 정확히는 야간도주를 제안했다.

“이대로 왕도에 있다가는 앞으로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남부로 떠나지 못 할 거야.”

“음··· 그럴 거 같긴 해.”

유더와 코델리아를 만나고 싶어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으니까. 더욱이 다들 높으신 분들이다 보니 어설프게 거절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메이브의 경매장을 결국 못 들른 건 아쉽지만··· 별 수 없지.’

왕도 자체가 공격받는 대참사 와중에 큰 타격을 받은 메이브의 경매장이었다.

덕분에 한동안 경매가 열리지 않을 예정이었으니 미련을 생겨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영지는?”

“아버지랑 형이 알아서 하시겠지.”

이미 받기로 한 영지가 확정된 상황이었다.

아직 정식 서류를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할 리 없었으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어차피 받아봐야 느긋하게 앉아 영지 경영할 상황이 아니니까.’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의 남부 공격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나비효과로 인해 원작보다 다소 빨라지거나 느려질 수는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언제까지 손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얼티메이트 원.”

무검의 검사라 불리는 유더에게 더 없이 어울릴 그것.

말레키스와의 결전 전에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무구였다.

“후, 좋아. 어쩔 수 없지.”

코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더는 바로 준비해온 편지를 침대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대충 남부로 사랑의 여행을 떠나니 찾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유더야.”

“어, 코델리아야.”

“그······.”

“그?”

“소······.”

“소?”

유더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빙글빙글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고, 코델리아는 입술을 깨물더니 유더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소원! 소원 뭐 빌 건데!”

“글쎄?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하려나? 빌고 싶은 소원이 너무 많아서 고민되는데?”

“마, 많아?”

“어, 너무 많아서 뭘 빌어야 하나 진짜 고민 돼. 그러니까 좀 걸릴 거야. 응, 적어도 며칠은.”

빙긋 웃으며 말한 유더는 그대로 척척 짐을 챙기더니 그 사이에 다시 망상을 시작한 코델리아에게 말했다.

“아무튼 마님, 이제 슬슬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 말한 유더가 가방을 내민 뒤 업히라는 듯 등을 보이자 코델리아는 돌연 짝 소리가 나게 박수를 치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응, 유더의 소원이 내가 업히는 거라면야 뭐··· 업혀줄 수도 있구?”

아직 스킨십 금지령이 풀린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세상에. 이걸 이렇게 퉁치시겠다?”

“아니, 뭐··· 퉁친다기 보다느은.”

코델리아가 피식피식 웃으며 말끝을 흐리자 유더는 코웃음을 한 번 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자.”

“어? 진짜?”

“어. 내가 빌 소원이 이렇게 날아가기를 바란다면, 진짜 소원 대신 업히는 걸로 넘어가길 바란다면 뭐, 어쩔 수 없잖아?”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순간 움찔했다.

뭔가 사기 치는 것 같아서 양심이 찔린 것도 있었지만 유더가 말한 ‘진짜 소원’ 역시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뭘까. 어떤 소원을 빌려는 걸까.

코델리아는 상상하기 시작했고, 언제나처럼 얼굴을 붉히더니 결국 마음의 결단을 내렸다.

“좋아. 이번에는 그냥 업히는 걸로 하자.”

“소원은?”

“그건 그거대로 놔두구.”

코델리아가 괜히 시선을 돌리며 말하자 유더는 능글맞게 웃기 시작했다.

“왜, 왜, 왜.”

“아니, 그냥 우리 공주님은 정말 천사구나 해서.”

거기까지였다. 유더는 더 놀리는 대신 그대로 등을 보였고, 코델리아는 입술을 삐쭉이는가 싶더니 가방을 메고 유더의 등에 업혔다.

“오늘은 안 해?”

합체구호.

“어, 안 해.”

약간은 토라진 목소리로 답한 코델리아는 유더의 목을 꼭 끌어안았고, 유더는 작게 웃은 뒤 코델리아를 고쳐 업었다.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남부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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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5장 - 바람의 늑대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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