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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217화 (217/473)

< 제78장 - 영원의 숲 >

제78장 - 영원의 숲

[괜찮습니다. 어차피 전 잊히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 걸요.]

“아니이, 그게 아니라!”

문 라이트를 움켜쥔 코델리아가 사정하듯 말했지만 멜리사의 반응은 요지부동이었다.

[생각해보면 눈의 여왕을 위한 시설에서도 옛 주인님들께 버림당한 걸요. 버림당하는 건 익숙하답니다.]

“왜 그렇게 슬픈 말을 하는데에··· 그리고 버린 거 아니라니까? 잠깐 깜박한 거야. 응? 이렇게 다시 찾아왔잖아.”

[하루 만에 말이죠.]

“미안해······.”

말끝을 흐린 코델리아는 침울한 얼굴이 되어 입술을 움츠렸다.

멜리사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 커진 탓이었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너무 무심하기는 했다.

함께 가자며 문 라이트에 이식해놓고는 완전히 까먹고 있었으니까.

물론 코델리아에게도 변명 거리는 있었다.

이식한 이후 한동안은 멜리사가 불러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으니까. 문 라이트의 성능 자체는 올라간 게 맞는데, 대답이 없어 나름 노심초사했던 코델리아였다.

‘그래두 결국 잊어먹긴 했으니까······.’

한 달이 넘도록 대답이 없다보니 대답이 없는 멜리사에 익숙해져버렸고, 종국에는 아예 말을 걸지 않게 되어버렸다.

왕도에서 핑크폭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여러 사정으로 인해 아예 문 라이트를 쓰지 않다보니 아예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고 말이다.

‘그래놓고 필요하다며 다시 불렀으니까.’

코델리아 자신이 봐도 너무한 처사였다.

이건 완전 도구를 다루는 거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유더가 코델리아 자신을 이런 식으로 대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코델리아였다.

[어, 그··· 호, 혹시 우세요?]

“아니이··· 너무 미안해서······.”

코델리아가 눈시울을 붉히자 갑자기 당황한 멜리사는 안절부절 못하더니- 정확히는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은 앓는 소리를 흘리더니 빠르게 말했다.

[그, 어, 음! 좋아요, 이제는 안 잊으실 거죠?]

아까까지의 냉랭함은 어디 갔는지 무척이나 부드러워진 멜리사의 목소리였다. 코델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절대 안 잊을게.”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일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도록 하죠.]

“고, 고마워 멜리사. 내가 잘 해줄게.”

[네, 한 번 더 믿겠습니다.]

“응!”

활짝 웃은 코델리아는 문 라이트의 보석 부분에 쪽하고 입술을 마쳤고, 딱히 느껴지는 것도 없을 터인데 멜리사는 헛기침을 터트려댔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저만치 앉아 지켜보던 한 사람.

‘훈훈하구나.’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던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고, 새삼 유더의 시선을 느낀 코델리아는 새침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뭔데, 왜 그런 눈으로 보는데?”

“아니, 그냥 훈훈하구나 싶어서.”

후후훗.

다시 따뜻한 미소를 짓는데 유더에게 콩깍지가 씌인 코델리아조차도 닭살이 돋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웃지 마. 변태 같잖아.”

“후후훗.”

하지만 유더는 다시 웃었고, 코델리아는 유더를 때리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였다.

“아무튼 그럼 슬슬 챙겨서 떠나자.”

“응? 뭘 또 챙겨?”

“다모스 산의 뒷정리를 해야 하니까.”

아리송한 대답을 내놓은 유더는 어그로 생성 장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

하룻밤이 지났지만 싸움의 흔적은 그대로였다.

평소에도 다모스 산에 접근하는 것을 꺼리는 마을 사람들은 요란한 소리까지 울리자 더더욱 몸을 사렸고, 근방에 있는 몬스터들은 이번 일로 전멸했기 때문이다.

“산짐승들은?”

“몬스터들 냄새가 이리 나니 무서워서 못 왔겠지.”

물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체 썩는 냄새를 맡고 몰려들 터였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좋아, 그럼 이걸 여기 놔두고··· 코델리아, 부탁할게.”

“응.”

유더가 스패어 부품들을 모아 만든 가짜 어그로 장치의 잔해를 적당한 곳에 배치하는 동안 코델리아는 가모르 칸의 시체- 정확히는 가모르 칸이 지금까지 숙주로 사용하고 있던 보르그의 시체가 있던 장소를 살펴 보았다.

가모르 칸이 빠져나간 탓인지 다른 시체들과 달리 완전히 가루가 되어 있었다.

“음··· 묻어 버리면 티가 안 나겠지?”

[그럴 것 같네요.]

멜리사가 동의하자 바로 디그 마법으로 땅을 판 코델리아는 가루 대부분을 땅에 묻어버렸다.

“다 했어?”

“어, 대강.”

어스 월을 응용해 구멍을 메운 코델리아는 유더에게 다가갔다.

“이거면 정말 될까?”

“저번에도 말 했지만 꼭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필요는 없어. 그럴싸한, 믿고 싶은 이야기면 충분하지. 오히려 어느 정도 허점이 있는 게 더 현실감도 있고 말이야.”

숙련된 사기꾼의 말에 사기꾼 유망주는 고개를 끄덕였고, 사기꾼 부부의 행각에 멜리사는 보석 속에서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유더의 사기- 아니, 계획은 언제나처럼 단순했다.

다모스 산에서 가모르 칸이 이끄는 블랙 핸드 용병단이 몬스터들과 격전 끝에 전멸했다.

여기까지는 사실이었다.

가모르 칸이 다모스 산에서 몬스터들과 싸운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사실에 거짓을 섞는다.’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기본 수칙.

유더가 여기에 덧붙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가모르 칸이 몬스터 유인 장치로 다모스 산의 몬스터들을 조종하려다 실패해서 전투가 벌어졌다.”

그 증거는 전장 한복판에 놓여 있는 반쯤 부서진 어그로 생성 장치.

“지나가던 유더와 코델리아가 가모르 칸의 만행을 발견하였고, 이미 몬스터들과의 전투로 병력을 잃은 가모르 칸은 도주를 감행했다.”

“잠깐, 지나가던?”

길도 아니고 다모스 산을?

“영민들을 위해 몬스터 퇴치를 하러 산에 들렀다고 하면 돼.”

“과연.”

그리고 이건 사실이기도 했다.

얼티메이트 원을 얻은 뒤에는 어느 정도 몬스터들을 정리하려 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도망친 가모르 칸을 추적하기 위해 유더와 코델리아는 자초지종이 담긴 편지만을 남긴 채 다시 길을 떠났다.”

다모스 산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 한편, 유더와 코델리아가 영지에 남아서 뒷정리를 하는 대신 서둘러 길을 떠난 것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이야기였다.

‘가모르 칸은 목걸이랑 그랜드 오더만 빼면 그냥 평범한 크기의 보르그니까.’

더욱이 시체까지 불태웠으니 지인이 와도 신원확인은 불가능할 터였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우리가 얼티메이트 파이브를 쓰는 것도 자연스럽게 설명이 되겠지.”

“블랙 핸드 용병단하고 적대하게 되는 건?”

“어차피 말레키스와 싸우려면 적대하게 되는 조직이고, 한참 남부에 있으니까.”

“과연.”

짝짝짝 박수까지 친 코델리아는 문 라이트를 보며 엣헴엣헴 헛기침을 하더니 젠체하며 말했다.

“봤지? 우리 집 유더야.”

[음··· 네.]

훌륭한 사기꾼이군요.

멜리사가 뒷말을 꿀꺽 삼키는 동안 코델리아는 유더가 마을 사람들에게 쓴 편지를 읽어보았다.

“맘에 들어. 영민들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는 거 같아.”

“실제로 좋아들 할 거야. 몬스터들의 부산물은 전부 마을 사람들이 가지라고 했으니까.”

더욱이 이제부터는 다모스 산을 이용할 수도 있을 터이니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로또가 터진 셈이었다.

“아, 맞다. 내 예고장은?”

혹시라도 발견되면 문제가 될 수 있었으니까.

코델리아가 새삼 주변을 둘러보자 유더는 후후훗 웃더니 품에 숨겨둔 물건을 꺼냈다.

“이미 회수해뒀습니다. 증거인멸은 기본이니까요.”

“오오오.”

예고장에 특별한 가루를 붙여둔 터라 이 난리 통에서도 탐색 마법 한 방에 위치 추적이 가능했다.

“봤지, 멜리사? 우리 집 유더야.”

[음··· 네.]

증거인멸은 범죄지만요.

멜리사가 다시 뒷말을 삼키는 동안 속이 까만 유더와 까맣게 물들기 시작한 코델리아는 서로를 보며 웃더니 사이좋게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다모스 산 인근의 마을 촌장이 깜짝 놀란 얼굴로 유더와 코델리아의 편지를 읽고 있을 때, 두 사람은 언제나처럼 합체한 상태로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음, 뭔가 이상한 단어가 익숙해진 기분이야.’

언제부턴가 업는다 = 합체가 되었으니까.

어찌되었든 코델리아를 고쳐 업은 유더는 잠시 발걸음을 멈춘 뒤 말했다.

“이쯤에서 다시 진로를 정하자.”

“인근에 있는 성십자 수호단의 지부면 여기서 남서쪽으로 가야하는 거 아냐?”

성십자 수호단의 지부는 대체로 산골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지금 두 사람이 찾아가고 있는 지부는 그렇지 않았다.

중앙과 남부의 경계선을 지나, 남부 초입에 위치한 교역도시 생크루트에는 삼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성십자 수호단의 지부가 존재했다.

“본래 지부가 있던 곳에 마을이 생기고, 그 마을이 다시 교역도시가 된 경우야.”

“나도 알아.”

“어, 그래도 왠지 설명해야 할 것 같아서.”

쓰게 웃은 유더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무튼 여기서 생크루트로 가려면 세네즈 강의 수로를 이용하거나, 다모스 산과 이어져 있는 카노스 산맥을 넘어야 해.”

“응, 그게 통상적인 루트잖아?”

“통상적인 루트지.”

유더가 씩 웃자 코델리아는 유더의 목을 끌어안으며 물었다.

“뭐야, 뭐야. 또 너만 아는 비밀 루트라도 있는 거야?”

“뭐··· 비슷해.”

정확히는 어젯밤 벨렌시아가 가르쳐준 길이었지만.

코델리아를 고쳐 업은 유더는 정남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요 아래로 직진하면 영원의 숲이 나오는 거 알지?”

“어, 근데 거기 엘프들 숲이잖아.”

그래도 나름 인간들과 상행위를 하고 사는 드워프들과 달리 세일룬 왕국 내의 엘프들은 철저할 정도로 인간들과의 접촉을 삼갔다.

당장 영원의 숲만 하더라도 마도왕국 마젤란 시대에 개발된 강력한 결계 마법으로 봉인되고 있는 터라 한 번 발을 들이면 돌아올 수 없는,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마의 영역이나 다름이 없었다.

“원작에서는 세일룬 왕국 망한 뒤에나 들어갈 수 있었지?”

“엘프들도 악마들의 공격을 받았으니까.”

세일룬 왕국의 북부와 중앙에 이어 남부가 무너지는 와중에도 쇄국 정책으로 일관하던 엘프들은 결국 고립무원인 상태로 악마들에 맞서야 했고, 약속된 패망을 맞이하고 말았다.

“엘프들의 마지막 왕은 미친 상태로 언데드가 되었고.”

“기억나. 이름이 켈투르였어. 설정 상 왕위를 물려받자마자 사달이 났다는 거니까··· 지금은 왕자겠지?”

“아마도. 왕위계승서열 1위 뭐 그런 상태겠지.”

어찌되었든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북부와 중앙까지 건재한 지금, 아예 남부까지 막아내면 영원의 숲이 몰락할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도움을 얻을 수는 없을까?”

“나라가 다 망한 와중에도 쇄국하던 양반인데 도와줄 리가. 밑에 귀족들도 그렇고.”

“하긴. 아무튼 영원의 숲은 왜? 설마 거기 결계 뚫고 달릴 수 있는 길이라도 있는 거야?”

“어.”

정확히는 영원의 숲의 겉부분을 빙 둘러 가는 길이었지만, 그 정도만 되어도 다른 어떤 루트보다 빠르게 생크루트에 도달할 수 있었다.

“와··· 어떻게 혼자만 알고 있을 수가 있어? 영웅전기담에도 안올리고?”

“그러니까 1등하지 않았을까?”

무척이나 얄미운 말인데, 이상하게 싫지가 않았다.

코델리아는 유더의 목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무튼 그럼 빨리 가자.”

“예, 마님.”

코델리아를 단단히 고쳐 업은 유더는 남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영원의 숲은 척 보기에도 신비한 장소였다.

십 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 커다란 나무들이 성벽처럼 줄지어 서 있었고, 하루 온종일 깔려 있는 짙은 안개가 주위를 분간치 못 하게 하였다.

“너님아, 진짜 길 아는 거지? 들어가도 나올 수 있는 거지?”

코델리아가 불안한 얼굴로 묻자 유더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아마도? 잠깐, 너 여기 지나가 본 거 아니야?”

“아니, 그··· 잠깐만.”

어색하게 웃은 유더는 근처에 피어있던 꽃 두 송이를 꺾은 뒤 벨렌시아가 가르쳐준 주문을 외웠다.

“좋아, 여기.”

빨간 꽃을 허리춤에 꽂은 유더는 나머지 하얀 꽃 한 송이를 코델리아의 머리에 꽂아주었다.

“이게 뭔데?”

“표식이야. 이게 있으면 숲이 우리를 엘프로··· 정확히는 숲의 거주민으로 인지할 거야.”

“그럼 안에서 안 헤매는 거야?”

“어.”

아마도.

뒷말은 삼킨 유더는 다시 코델리아를 엎은 뒤 발걸음을 내디뎠다. 벨렌시아를 못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숲의 분위기가 흉흉하니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코델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평소보다 유더의 목을 꼭 끌어안은 채 주변을 경계했다.

그렇게 십분 여.

엘프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숲의 테두리를 따라 쭉 걷던 유더와 코델리아는 어느 순간 동시에 한 곳을 바라보았다.

유더는 날카로운 기감으로, 코델리아는 동물적인 직감으로 감지한 것이 있어서였다.

“저쪽.”

“오고 있어.”

유더의 등에서 폴짝 뛰어내린 코델리아는 눈을 감고 지면에 귀를 기울였다.

정말 야생동물이라도 되는지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아. 무척 가벼운 발걸음이야. 하지만 쫓기고 있어. 뒤쫓는 자들은 난폭하게 달리고 있고. 숫자는 적어도 일곱?”

언제 저런 재주를 기른 것일까.

유더는 묻는 대신 코델리아가 말한 방향을 돌아보았다.

코델리아가 연이어 말했다.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곧 붙잡힐 거야.”

쫓기는 게 누군지, 쫓고 있는 것은 또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쫓기는 사람이 좋은 편이면 돕고, 나쁜 편이면 붙잡는다.

무척이나 심플한 논리.

물론 모른 척 하고 그냥 지나간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무리였다.

사건이 일어나면 일단 놓치지 않는 것이 썩은 물의 예의였으니까!

“누구 없느냐! 도와다오!”

맑고 청아한 동시에 긴박한 여인의 목소리.

유더와 코델리아의 속도가 조금 더 빨라졌다.

&

< 제78장 - 영원의 숲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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