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8장 - 영원의 숲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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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느낌표나 물음표 표시는 보이지 않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금방 목소리의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하늘을 가린 가지들 덕분에 전체적으로 어두운 숲 속에서 너무나 눈에 띄는 차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프?”
“먼저 갈게!”
소리친 유더는 초풍신뢰를 펼쳤다.
코델리아는 눈앞에서 사라진 유더를 좇는 대신 마저 달리며 정면을 주시했다.
백금발과 하얀 갑옷.
전체적으로 새하얀 덕분에 눈에 확 띄는 엘프 여인과 반대로 검정 일색이라 형태를 제대로 분간하기도 어려운 인간형 괴물 여럿이 눈에 들어왔다.
이 순간 코델리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코델리아는 이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마법을 펼쳤다.
“라이트!”
단순한 빛 마법.
하지만 마력의 양이 보통이 아니다보니 빛의 세기 역시 강렬했다. 숲의 어둠을 몰아내는데 그치지 않고 마치 섬광탄이 터진 것처럼 주변을 빛으로 집어삼켜버렸다.
“아악!”
꼼짝없이 빛을 뒤집어쓴 여인이 눈을 꽉 감으며 비명을 질렀고, 그건 괴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유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빛을 등지고 있었던 유더는 새하얀 세계 속에서 적의 위치와 종류를 명확히 파악했다.
‘엘프 여자.’
하얀 갑옷.
브라이드 번 스타일로 묶어 올린 백금발.
무척이나 하얀 피부.
어딘지 모르게 벨렌시아를 연상시키는, 코델리아 다음다음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외양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유더는 하얀 갑옷 위에 그려진 황금색 문장을 보았다.
프라임 왕가의 문장이었다.
‘하이 엘프 왕족!’
엘프들의 몰락 이후 해골왕이 된 켈투르 역시 저 문장이 들어간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괴물들.
전신이 검은 연기에 뒤덮여 있었고, 눈이 있어야 할 곳에 초록색 귀화가 타올랐다.
아마도 셰이드 계통의 몬스터.
그렇다면 더 이상 잴 것이 없었다.
유더는 눈을 감은 채 허우적 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엘프 왕녀의 팔을 붙잡아 쑥 당긴 뒤 자신에게 안기듯 넘어지는 그녀를 그대로 던져버렸다.
“꺅?”
하지만 땅에 떨어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아마도 코델리아가 염동력으로 받아줬을 터였다.
때문에 유더는 뒤를 돌아보는 대신 발을 놀렸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셰이드를 향해 수도를 휘둘렀다.
츠확!
칠흑의 검기가 셰이드의 목을 갈랐다. 검은 연기가 대번에 흩어졌고, 유더는 재차 수도를 휘둘러 놈의 상체를 갈라버렸다.
팡!
검은 연기가 폭발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유더는 다른 곳으로 몸을 날린 뒤였다. 가까스로 눈을 떠 초록색 귀화를 불태우는 셰이드의 허리를 날카로운 돌려차기로 가른 뒤 저만치에 뭉쳐 있는 세 놈을 향해 수도를 휘둘러 검기를 발산했다.
츠카악-!
날카롭고 거대한 검기가 셰이드들과 나무들을 동시에 베었다. 우르르 소리를 내며 거대한 나무가 옆으로 쓰러졌고, 그 과정에서 가지들과 다른 나무들이 부러지며 더 큰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유더는 깨달았다.
전투 방식이 바뀌었다.
체술을 마치 검술처럼 쓰고 있었다.
‘벨렌시아!’
얼티메이트 원의 검령인 그녀.
그녀의 영향이었다.
소드 오리진과 하나 된 자신에게 벨렌시아의 경험과 검술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었다.
‘자, 잠깐. 벨렌시아는 소드 오리진이랑 하나잖아.’
그리고 자신은 그런 소드 오리진과 하나고.
순간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유더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직 셰이드들이 남아 있었다.
“유더!”
바로 그때 코델리아의 목소리와 함께 빛의 화살- 아니, 빛의 창 세 자루가 남은 셰이드들의 가슴을 꿰뚫었다.
광익을 크게 펼친 코델리아의 머리 위에 천사의 고리가 반짝였다.
“야! 너 이상한 생각하지!”
코델리아가 돌연 외치자 움찔한 유더는 무어라 답하는 대신 검은 질풍과 황금의 선풍을 일으켜 주변의 검은 연기들을 완전히 흩어버렸다. 연기가 남아 있으면 셰이드들이 부활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누, 눈을 보고 알았나?’
아니면 언제나처럼 맹수의 직감?
어찌되었든 유더는 머리를 붕붕 흔들어 잡념을 떨쳐낸 뒤 셰이드들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었다.
[하이 엘프 왕족이야.]
“어?”
메시지 마법으로 말하자 코델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바닥에 엎드려 있는- 정확히는 유더가 던진 것을 코델리아 자신이 염동력으로 받아서 대충 바닥에 내려놓은 엘프 왕녀를 돌아보았다.
[모르는 얼굴인데?]
[어차피 영원의 숲 엘프들은 다 언데드 되어서 나오잖아. 아는 얼굴이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유더의 말대로였다.
때문에 코델리아는 더 고민하는 대신 광익을 거둔 뒤 엘프 왕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고, 유더는 안도의 숨을 살짝 토한 뒤 그런 두 사람에게 다가섰다.
“괜찮으세요?”
“공용어?”
코델리아의 물음에 물음으로 답한 엘프 왕녀는 멍한 얼굴로 유더와 코델리아를 돌아보더니 한 박자 늦은 놀라움을 터트렸다.
“인간!”
크게 소리친 그녀는 돌연 두 손으로 코델리아의 얼굴을- 정확히는 귓가를 더듬더니 다시 한 번 놀라움을 토했다.
“짧아! 귀가 짧아! 어··· 하지만 예뻐? 인간은 못 생겼다고 책에 나왔는데. 왜 예쁘지? 인간이 아닌가?”
“어, 그··· 인간 맞아요.”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엘프 왕녀의 반응에 어설프게 웃으며 답한 코델리아는 유더에게 눈짓을 보냈다.
얼른 어떻게든 해보라는 뜻이었다.
“왕녀 저하, 저희는 세일룬 왕국의 인간들입니다.”
유더가 목소리를 내자 다시 고개를 돌린 엘프 왕녀는 이번에도 흠칫했다.
“잘생겼다. 인간인데 왜 잘생겼지?”
“···잘생긴 인간도 있습니다.”
뭔가 스스로 말하자니 기분이 이상해지는 말이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으니까.
“덤으로 말씀드리자면 눈앞에 계신 소녀는 인간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소녀입······ 디스펠.”
[야! 이걸 또 튕겨내냐?!]
빨개진 얼굴로 다급히 사일런스 마법을 펼친 코델리아였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스크롤을 찢어 단번에 방어해낸 유더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인간이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너도 그런 건가?”
“네, 맞아요! 인간들 중에서 제일 멋있고, 늠름하고, 잘생긴 인간이에요!”
기회는 이때라는 듯 코델리아가 크게 소리쳤다. 어디 너도 한 번 당해보라는 마음이었고, 그렇기에 의기양양한 미소까지 지었지만 실책이었다.
유더와 코델리아의 뻔뻔함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했으니 말이다.
[코델리아, 평소에 날 그렇게 생각했구나.]
[어?]
[코델리아에게 있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늠름하고 잘생긴 인간인가. 훗.]
[아, 아니! 그, 그런 거 아니거든?]
[후훗, 부끄러워하기는]
으악, 저 인간 왜 이래.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한 코델리아였지만 가까스로 억누른 뒤 일단 되는 대로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그, 그러는 너는! 너한테는 내가 세,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사랑스럽고······.]
지뢰였다.
육성으로 내는 게 아니라 메시지 마법으로 보내는 것인데도 스스로 대미지를 입을 지경이었다.
더욱이 상대가 유더였다.
[당연하지.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소녀니까.]
능글맞은 미소와 반짝이는 눈빛.
그런데 왜 또 저게 멋있어 보이는 것일까.
[으아아··· 내 눈······.]
완전히 망가져 버렸어.
부끄러움에 뇌가 녹아내린 코델리아는 비틀거리다 풀썩 주저앉았고, 엘프 왕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코델리아를 보았다.
“괜찮나? 어디 다친 것인가?”
“아뇨,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끔하게 답한 유더는 엘프 왕녀와 거리를 좁히더니 절도 있게 예를 표했다.
“세일룬 왕국의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입니다. 이쪽은 제 약혼녀인 어거스트 체이스 백작이고요.”
“백작. 귀족. 인간의 귀족인가?”
“그렇습니다.”
유더가 답하는 사이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세운 코델리아는 유더의 옆에 선 뒤 뒤늦게나마 예를 표했다.
“왕녀님께 인사드립니다.”
그리고는 등 뒤로 유더를 꼬집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법사의 물리 공격 따위 웃으며 튕겨낼 수 있게 된 유더였으니 말이다.
[짜증나!]
당장이라도 발을 동동 구르며 짜증을 내고 싶은 코델리아였지만 지금은 엘프 왕녀의 앞이었다.
애써 꾹 참은 뒤 다시 엘프 왕녀에게 의식을 집중했다.
“흠, 가장 예쁜 인간과 잘생긴 인간이라.”
아오 진짜.
유더 너 미쳤지?
결국 코델리아가 다시 속으로 욕을 할 때였다.
지금까지의 당황은 어느새 다 떨쳐낸 것 같은 엘프 왕녀가 무척이나 단정한- 그러면서도 왕족 특유의 위엄이 어린 얼굴로 말했다.
“그대들의 짐작대로 나는 엘프의 왕녀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나를 어찌 알아본 것이지?”
영원의 숲의 엘프들과 인간들의 교류가 단절된 지 벌써 300년이 넘었다.
500년도 넘게 사는 엘프들에게는, 특히 천년을 사는 하이 엘프들에게는 같은 세대 내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인간들에게는 조상의 조상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먼 옛날이었다.
그런데 어떻에 인간이 단번에 엘프의 왕녀를 알아본 것일까.
타당한 물음에 유더는 타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프라임 왕가의 문장을 보고 알았습니다.”
새하얀 흉갑 위에 그려져 있는 프라임 왕가의 문장.
“인간이 엘프 왕가의 문장을 아는가?”
“프라임 왕가는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세일룬 내에 존재하는 하이 엘프 왕가는 프라임 왕가가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듯이, 이왕 말할 거 듣기 좋게 말하는 편이 좋다는 것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는 유더였다.
“마도왕국 마젤란의 적통을 잇는 고귀한 하이 엘프 왕가는 오직 프라임 왕가뿐이니까요. 숲 밖에는 요정검의 검기를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이 있답니다.”
[진짜?]
코델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유더는 돌아보지도 않고 답했다.
[안 진짜.]
벨렌시아의 전성기는 자그마치 천 년 전이었다. 1세대를 30년으로 친다면 자그마치 33세대 전의 일이었으니, 그렇지 않아도 기록 유실로 고대사를 많이 잃어버린 인간들이 그녀를 기억한다는 것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엘프들은 달랐다.
천 년을 사는 하이 엘프들에게 있어 벨렌시아는 할머니나 증조할머니 정도의 감각으로 존재할 터였다.
그리고 유더의 예상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엘프 왕녀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자긍심이 떠올랐으니 말이다.
“과연 그러하구나. 너희가 내 의문을 해결해주었으니 나도 스스로를 밝히는 것이 예의겠지.”
사실 의문 해결보다 목숨 구해준 게 더 큰 것 같았지만 왕족에게 토 달아서 좋을 것이 없는 건 인간이든 엘프든 똑같았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얌전히 기다렸고, 엘프 왕녀는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말했다.
“프라임 왕가의 적손이며, 그레이브 프라임 왕의 첫째이자,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라이카 프라임이다.”
엘프 왕녀- 라이카의 자기소개에 코델리아는 흠칫 놀라 유더에게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왕위 계승 서열 1위? 그럼 켈투르는?]
켈투르가 다음 왕 되는 거 아니었어?
[켈투르가 왕이 되는 건 얼마 후니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아.]
더욱이 하이 엘프 왕족 정도면 비중 있는 언데드 몬스터로 등장했어야 하는데 영원의 숲을 수백 번을 넘게 공략한 유더와 코델리아 모두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원작에 아예 등장도 하지 않았던 인물이 새로 등장할 리는 없고.’
지금과 영원의 숲의 엘프들이 몰락한 시기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1년 남짓한 시간.
그 1년 사이에 눈앞의 엘프 왕녀는 어떤 식으로든 죽음을 맞이했으리라.
‘설마 방금 죽었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셰이드들에게 쫓기고 있던 라이카 왕녀.
분명 위기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이 엘프 왕족인데 설마 죽기까지 했을까?
‘아니지, 애당초 도망치고 있었다는 거 자체가 힘에 부쳤다는 이야기인데.’
더욱이 그녀는 지금 맨손이었다. 딱히 무기라 할 만한 것을 들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생각지도 않게 역사를 바꿔 버린 건가.’
[누군가 오고 있어.]
바로 그때였다.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는 얼른 그녀가 보는 방향을 돌아보았고, 방금 생각을 철회하였다.
‘여기가 아냐.’
라이카 왕녀가 죽는 장소는.
그도 그럴 것이 그녀에게는 유더와 코델리아 외에도 그녀를 구해줄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히히힝!”
“로이드!”
수풀을 헤치고 새하얀 유니콘이 모습을 드러냈다.
티 하나 없이 하얀 털과 약간의 푸른빛을 띤 갈기, 여기에 맑고 푸른 눈동자가 더해지니 절로 성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 찾아왔구나!”
“히힝.”
라이카 왕녀의 뺨에 얼굴을 비비며 대답한 유니콘- 로이드는 이내 유더와 코델리아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눈을 반짝반짝 빛내기 시작했다.
“히히힝.”
무척이나 선량한 표정을 가장한 채 코델리아에게 접근한 녀석은 얼굴을 들이밀며 친한 척을 하더니 이내 코델리아의 뺨을 핥아대기 시작했다.
“꺄, 간지러.”
코델리아는 웃으며 로이드의 얼굴을 밀어냈지만, 녀석은 장난이라도 치듯 계속 얼굴을 들이밀며 코델리아의 뺨을 핥아댔다.
‘저 새끼가?’
이번에는 3초를 셀 필요도 없었다. 유더는 얼른 손을 뻗어 코델리아를 잡아당기는 한 편 제일검을 마주했을 때 이상의 살기를 로이드에게 쏘아보냈다.
“끽?”
성수고 나발이고 결국에는 짐승.
압도적인 살기에 놈은 몸을 움츠리며 뒷걸음질 쳤고, 코델리아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유더를 돌아보았다.
[뭐야, 너 질투해? 질투하는 거지?]
코델리아의 얼굴에 점점 미소가 번졌고, 반대로 유더의 귓불은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항상 뻔뻔한데도 묘한 곳에서 부끄러움을 타는 유더였다.
[흐흐흥, 질투하는구나아.]
코델리아가 그렇게 기뻐하는 사이 유더는 헛기침을 토한 뒤 다시 라이카 왕녀를 돌아보았다.
“유니콘이군요.”
유더의 살기에 순간 쫄아 뒷걸음질까지 쳤지만 유니콘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특히 눈앞의 로이드는 이전에 마주했던 바이콘과는 아예 격이 다른 존재로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나와 함께 자란 친구다.”
유더가 내쏜 살기는 눈치 채지 못 했는지 라이카 왕녀는 흐뭇한 얼굴로 로이드의 털을 쓰다듬더니 이내 녀석의 등 위에 훌쩍 올라탄 뒤 말했다.
“그런데 인간들이 영원의 숲 안쪽에는 무슨 일이지? 아니, 어떻게 들어온 것이지?”
영원의 숲 외곽에는 외부의 출입을 차단하는 결계가 펼쳐져 있었으니까.
유더는 잠깐의 고민 끝에 자신의 가슴에 꽂아두었던 꽃을 꺼내 보이며 답했다.
“저는 요정검 벨렌시아 프라임님의 검기를 이어받고 있는 인간입니다. 검술과 더불어 약간의 비술 또한 전수받았습니다.”
“요정검 님의?”
“예, 그분께서는 인간 제자들도 여럿 두셨으니까요.”
사실 진짜로 인간 제자가 있는지 없는 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드워프 장인들과도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던 그녀였으니 인간들하고도 곧잘 교류를 했을 터였다.
“음··· 그렇군. 그렇다면 영원의 숲에 들어온 목적은 무엇이지?”
“숲 내부로까지 들어올 생각은 없었습니다. 외곽 부분을 따라 이동하려 했는데··· 왕녀님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오게 되었습니다.”
거짓과 진실이 섞인 유더의 설명에 라이카 왕녀는 잠시 고민하는 얼굴이 되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이 모든 것이 오리온 님의 인도이신가.”
영원의 숲의 엘프들이 숭배하는 숲의 신 오리온의 이름을 언급한 라이카 왕녀는 다시 유더와 코델리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인간들이여. 나에게는 그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와 나의 기사들에게 그대들의 힘을 보태줄 수 있겠는가?”
엄숙한 물음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거의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였다.
최소 전설급 퀘스트.
그도 그럴 것이 1년 안에 죽음을 맞이할 운명인 하이 엘프 왕녀가 직접 청하는 도움이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라이카 왕녀를 구하는 것이 영원의 숲의 엘프들을 약속된 몰락에서 구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물론 영원의 숲의 엘프들이 멸망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세일룬 왕국의 붕괴로 말미암은 외적의 침공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왕녀 전하, 외람된 말씀이지만 무슨 일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코델리아가 예를 표하며 묻자 라이카 왕녀는 미간을 살짝 좁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대들은 나의 신하들이 아니니 막연한 말로 도움을 청할 수는 없겠지. 그러니 말해주겠다. 나는 지금 나의 기사들과 함께 영원의 숲의 오랜 상처인 숲의 괴물 자바워크를 퇴치하기 위한 원정에 나선 참이다. 토벌대에 합류해 자바워크를 꺾는 것을 도와다오.”
내용 자체만 보면 일반적인 퀘스트였다.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반사적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이름이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자바워크? 우리가 아는 그 자바워크?’
코델리아의 눈빛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 자바워크라면 라이카 왕녀의 죽음 역시 설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변의 괴수 자바워크.’
플레이아데스의 파멸을 초래한 7대 재앙 가운데 하나.
유더와 코델리아는 다시 라이카 왕녀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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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8장 - 영원의 숲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