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9장 - 자바워크 #2 >
-----------------------------아아아!
소리가 조금 더 구체화되었다.
라이카 왕녀는 바로 정면을 주시하며 소리쳤다.
“출진하라!”
유니콘이 튕기듯 돌진하자 다른 엘프스티드들 역시 지면을 박차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다리였지만 놀라울 정도로 힘이 넘쳐 순식간에 바람을 앞섰다.
----------------------아아아아아아아아!
거친 바람 소리와 자바워크의 포효가 뒤섞였다.
정신없이 달리는 와중에 코델리아는 유더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고, 유더는 라이카 왕녀 곁으로 엘븐스티드를 몰아갔다.
“왕세녀 전하!”
유더의 부름에 라이카 왕녀가 고개를 돌렸고, 유더는 육성 대신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자바워크의 약점을 압니다!]
“약점?!”
[그렇습니다! 자바워크는 무정형의 괴물이 아닙니다! 놈의 실체를 고정시킬 방법이 있습니다!]
만변의 자바워크.
영원의 숲의 엘프들에게 있어 자바워크는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부정형의 괴물이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놈이 계속 다른 모습을 취하는 것은 단순히 부정형의 괴물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놈은 공포를 먹고 자라는 괴물! 때문에 모두가 같은 모습을 떠올린다면, 같은 존재를 두려워한다고 상상한다면 놈을 그 모습으로 고정시킬 수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라이카 왕녀는 눈을 부릅떴다.
왕실의 자바워크 토벌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수호단의 기록인가?!”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영웅전기담에 올라온 공략이었지만!
제국 쪽 플레이어블 캐릭터 가운데 하나인 아델라이데 헤이스팅스.
제작진 공인 세계관 최고 미녀인- 물론 유더는 이제 인정하지 않았지만 - 그녀는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특이한 정신세계를 갖춘 인물이었다.
‘원작에서는 오직 아델라이데로만 쓸 수 있었던 공략법.’
다른 인물들로는 시시각각 종족은 물론이고 성별과 속성까지 변모하는 자바워크와 정면대결을 펼쳐야 했지만 아델라이데는 아니었다.
‘상상해버렸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 자바워크를 무척이나 무해하고 귀여운 동물로 바꿔버렸으니까.
‘연이어 원턴킬.’
놈이 다시 모습을 바꾸기 전에 최강의 필살기를 날려 처리한다.
원작에서야 스토리 진행의 강제성 때문에 오직 아델라이데만이 쓸 수 있었던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현실이었다.
방법을 아는데 쓰지 못 할 이유가 없었다.
“좋다! 믿어 보겠다!”
밑져야 본전이었다.
크게 소리친 라이카 왕녀는 다른 기사들에게 유더의 이야기를 전달하였고, 위급한 상황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라이카 왕녀의 리더쉽이 뛰어난 덕분인지 기사들 모두가 이의 없이 명을 받들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다시 웨이크닝이 들려왔다.
벌써 아홉 번째 웨이크닝이었다.
“셰이드들이 옵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생기를 빼앗겨 죽은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검게 물든 땅 위로 셰이드들이 머리를 내밀었고, 저 멀리서 다시금 자바워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점점 짧아지고 있어!]
코델리아가 메시지 마법을 보내며 유더의 허리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고, 기사들은 셰이드들을 짓밟고 달릴 기세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악아아아악!
죽어죽어죽어괴물무서워죽고싶지않아살려줘괴물이야너를죽일거야아아아아!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노인의 목소리가 동시에 뒤섞여 마구잡이로 들려왔다.
셰이드들이 호응하듯 음산하면서도 오싹한 울부짖을 토했고, 그 순간 마지막 웨이크닝이 들려왔다.
나는너를증오해미워해무섭지죽일거야뒤돌아보지마쫓아갈거야너는여기서죽을거야아아아!!!
모골이 송연해졌다.
하늘이 순식간에 어둠으로 물들었고, 칠흑 속에서 셰이드들이 녹색의 귀화를 불태웠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났다.
땅을 크게 울리며 검정에 가까운 보랏빛의 무언가가 몸을 부풀리며 포효했다.
목졸라죽일거야찢어서죽일거야내장을파헤쳐죽기전에널죽일거야아아아!
만변의 괴수 자바워크.
놈의 존재에 순간 모두가 압도되었다.
그리고 라이카 왕녀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일전에 자바워크 토벌에 참가한 적이 있던 미다스는 바로 차이를 알 수 있었다.
강해졌다.
놈은 기록상에 남아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대한 존재로 거듭났다.
어째서.
무엇 때문에.
“상상해요!”
그 순간 코델리아가 광익을 펼치며 엘프들의 언어로 외쳤다.
천사의 힘을 담아 소리치니 패닉에 빠져있던 엘프들조차 단번에 정신을 차렸다.
상상하라.
무엇을?
“상상해!”
라이카 왕녀의 일갈은 곧 명령이었다.
기사들은 다급히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세상에서 제일 무해하면서도 미약한 존재를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몽실몽실.
둥글둥글.
귀엽고 사랑스럽고 깜찍한!
유더좋아낑낑낑냐옹냐옹멍멍멍꺄륵꺄륵사랑해씨발!
순간 자바워크가 기묘한 소리를 내며 쪼그라들었다. 코델리아는 놈이 순간 분홍빛의 무언가로 변하는 것을 보며 눈을 부릅떴지만, 유더의 등짝을 때린 뒤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같은 거! 같은 걸로!
그리고 메시지 마법을 이용해 머릿속의 이미지를 엘프 기사들에게 전파했다.
“상상해요!”
코델리아가 떠올린 것.
코델리아가 무해하고 귀엽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
순간 자바워크가 작고 동글동글한 녹색의 무언가로 변하였다.
라이카 왕녀와 엘프들은 그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유더는 알 수 있었다.
‘슬라임!’
정확히는 온라인 게임에 흔히 나오는 아기 슬라임!
코델리아가 예전에 똑같이 생긴 인형을 액세서리로 달고 다닌 터라 알고 있는 괴물!
하지만 직후였다.
죽어죽어먹을거야다녹여버릴거야뱃속에서녹여서죽일거야너희집은내뱃속이야!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 슬라임의 배가 갈라지며 거대한 입이 생겨났다.
그리고 유더는 깨달았다.
애당초 무리였다.
자바워크는 공포를 먹고 자라는 괴물.
아델라이데처럼 공포로부터 완전히 초탈할 수 있다면 모를까, 평범한 이들의 상상으로는 자바워크를 무해한 존재로 묶어둘 수 없었다.
괴물.
결국 무엇을 상상하든 그를 기초로 한 괴물로 변모하고 만다!
“흑룡출수!”
크게 외친 유더가 팬텀 스티드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단숨에 일행을 덮치려는 자바워크에게 대뜸 흑룡의 기운을 연속해서 쏟아 부은 뒤 육문을 열었다. 본격적으로 덤벼오기 시작한 셰이드들을 상대로 싸우기 시작한 엘프 기사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외쳤다.
“코델리아! 플랜B!”
아델라이데의 공략법이 통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 준비한 두 번째 공략법.
죽어죽어널죽일거야너를죽이고나는살거야널먹고싶어배고파배고파배고파아아아아!
자바워크가 거대한 늑대로 변했다. 돌진하며 사자가 되었고, 유더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어차피 무해한 존재를 떠올릴 수 없다면 상대하기라도 편하기 위해 인간형의 기사를 떠올리며 초풍신뢰를 펼쳤다.
“코델리아!”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미다스가 유더를 돕기 위해 가세했고, 셰이드들과 엘프 기사들의 전투가 격화되었다. 바네사 역시 회복마법을 펼치며 기사들을 도왔다.
그리고 그 순간.
라이카 왕녀가 왕가의 보물인 명궁 미스틸테인에 화살을 건 그때.
“패럴라이즈, 사일런스, 스트랭스 앤 헤이스트!”
앞의 두 개는 라이카 왕녀에게, 뒤에 두 개는 자신에게.
등 뒤에서 급습하듯 라이카 왕녀를 무력화시킨 코델리아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더니 그대로 솟구쳐 올랐다. 광익을 펼쳐 날아올랐다.
“와, 왕세녀님?!”
바네사가 뒤늦게 외쳤지만 늦었다.
전신이 마비된 라이카 왕녀는 축 늘어진 채 꼼짝도 하지 못 했고, 미다스는 경악을 토했지만 코델리아를 쫓지 못 했다. 눈앞의 자바워크가 거대한 고슴도치로 변하더니 사방으로 수백 개나 되는 가시들을 발사했기 때문이다.
“인간!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검막을 펼쳐 가시를 막아낸 미다스가 유더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무시무시한 살기에 유더는 모골이 송연해졌지만 뒤를 돌아보는 대신 흑룡의 기운을 뿌려 자신과 엘프 기사들을 방어했다.
그리고 소리쳤다.
“돌아올 겁니다!”
플랜B. 두 번째 공략을 위한 준비를 마친다면.
유더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예상대로 아직 재앙이 되지 못 한 자바워크였지만, 재앙일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막대한 생명력과 재생력. 한 번 변신할 때마다 순식간에 상처를 회복시키니 평범한 공격으로는 놈을 쓰러트릴 수 없었다.
“연격을 퍼부어 놈을 지치게 해야 한다!”
미다스가 외쳤고, 지금까지 엘프 왕가에서 자바워크를 처리한 방법이었지만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왕가의 기록보다 훨씬 더 강해진 놈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유더는 그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배후가 누구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영원의 숲의 멸망에 자바워크가 크게 관여했다는 것을 확신했다.
‘코델리아.’
그러니 시간을 번다.
코델리아가 조건을 완수할 때까지. 두 번째 공략법을 완성할 때까지.
유더는 호국공을 떠올렸다. 자바워크의 모습을 잠시나마 인간형으로 만든 뒤 놈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 순간.
유더의 검기가 자바워크의 몸을 가르고 또 가른 그때.
코델리아가 지상에 안착했다.
스프링 페어리들의 거주지라 알려진 호수에 라이카 왕녀를 집어던졌다.
&
라이카 왕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미스틸테인을 당기려는 순간 갑자기 몸이 마비되었으니까.
입을 열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허리가 당겨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허공이었으니까.
‘엄마 말이 맞았어!’
인간들은 다 사기꾼들이라더니!
하지만 어떻게 된 거지? 감별에서는 분명 좋은 애들이라 나왔는데?
자문자답할 여유조차 없었다.
어느 순간 물속에 빠졌기 때문이다.
“어풉! 읍! 읍!”
겨우 허리에나 옴직한 수위였지만 라이카 왕녀는 호수바닥에 머리를 박을 수밖에 없었다.
전신이 마비된 상태였으니 말이다!
‘뭔데! 자객이야? 켈투르 쪽에서 보낸 거야? 내 동생이 날 죽이는 거냐고!’
바로 그때였다. 쑥하고 목 뒤를 당기는 힘이 느껴진다 싶더니 수면 밖으로 머리가 내밀어졌다.
“푸하!”
간신히 숨을 토한 라이카 왕녀는 헐떡였고, 코델리아는 그런 왕녀의 입에 걸려 있던 사일런스를 해제한 뒤 바쁘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샹! 너 뭐하는 거야! 뭐, 뭐하는 건데?!”
라이카 왕녀의 노성에 부끄러움이 섞였다. 그도 그럴 것이 코델리아가 돌연 자신의 갑옷은 물론이고 옷까지 벗기기 시작한 탓이었다.
“벗어요!”
“가, 갑자기 왜!”
“왕녀님이 토벌대에서 제일 예쁘니까!”
“어?”
이게 무슨 말일까. 일단 사실이기는 한데.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라이카 왕녀를 얼추 벗긴 코델리아는 이번엔 자기 상의를 벗어던지더니 속옷차림으로 물속에 몸을 담갔다.
무엇일까.
갑자기 뭘 하는 것일까.
“서, 설마?”
지금 스프링 페어리를 불러내려는 건가?
무리였다.
아름다운 소녀나 소년이 목욕을 하면 같이 놀자며 페어리들이 다가온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야기에 불과했다.
‘이미 내가 해봤단 말이야!’
바네사랑 같이 페어리 불러보겠다며 야밤에 목욕했다가 감기 걸려서 미다스에게 혼난 기억이 지금도 생생했으니까.
하지만 코델리아는 아랑곳 앉고 라이카 왕녀의 손을 잡아당겨 물에 빠트리더니 노래하기 시작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난데없이 옷을 벗기더니 호숫가에 몸을 담그고 노래하는 인간 소녀.
문장으로 나열하면 미친년이 따로 없었지만 라이카 왕녀는 순간 숨을 멈추고 말았다.
눈앞의 소녀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처, 천사?”
그러고 보니 광익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리 위에 천사의 고리도 있고.
코델리아는 계속해서 노래했고, 라이카 왕녀는 멍한 가운데 따라서 목욕하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후.
코델리아가 작은 별의 1절을 다 불러갈 즈음.
“와! 너희 엄청 예쁘-.”
거기까지였다.
재잘재잘 떠들며 모습을 드러낸 스프링 페어리가 채 말을 맺기도 전에 사건은 일어났다.
코델리아는 마치 먹이를 낚아채는 매처럼 스프링 페어리를 오른손으로 움켜쥐었고, 스프링 페어리의 등장에 라이카 왕녀가 충격과 배신감을 함께 느낀 그 순간 입을 벌려 소리쳤다.
“가자! 너희 여왕님께!”
“여, 여왕님?”
“같이 밤놀이 하러!”
“지, 지금은 낮인데?!”
페어리답지 않게 논리적인 항변이었지만 코델리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염동력을 발휘해 다른 스프링 페어리들까지 모두 포획한 뒤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가즈아!”
너희 여왕 만나러.
봄의 가호를 얻으러!
사계의 가호.
그리고 유더가 자바워크를 공략하기 위해 필요한 또 하나의 비보를 가지러.
무지막지한 우격다짐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더는 자바워크와 싸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가, 가자!”
잔뜩 쫀 스프링 페어리는 울상이 되어 따라 외쳤고, 그 순간 코델리아와 라이카 왕녀는 공간을 가로질렀다.
&
< 제79장 - 자바워크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