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222화 (222/473)

< 제79장 - 자바워크 #3 >

&

스프링 페어리 퀸 페넬로페의 일생은 평화로웠다.

전대 여왕의 외동딸로 태어난 그녀는 순조롭게 왕위에 올랐고, 평소 흠모하던 언니인 페어리 나이트 베넬로테의 도움을 받아 페어리 왕국의 대소사를 잘 처리하였다.

“여왕님! 빨간 튤립에서 나온 꿀이 제일 맛있어요.”

“아니에요 여왕님. 노란 튤립에서 나온 꿀이 제일 맛있어요.”

“웃기는 소리 하네. 꿀맛도 모르는 바보가 어디서 나대?”

“뭐, 뭐야?! 바보라고?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가 있어? 그리고 꿀알못이 누군데! 노란 튤립 꿀이 제일 맛있거든?!”

“아니거든? 빨간 튤립 꿀이 최고거든?!”

“아닌데, 아닌데. 노란 튤립 꿀이 최고인데, 꿀알못은 너인데.”

페어리 퀸은 잠시 즉위 초기에 있었던 ‘꿀 논쟁’을 떠올려 보았다.

영원의 호수에 스프링 페어리들의 왕국이 세워진 이후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격렬하며 난해한 동시에 페어리들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대사건.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일어난 사건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다.

꿀 논쟁이 차라리 그리워질 정도로 말이다.

“여왕 나와! 여왕 나오라고!”

“여, 여기 나왔다! 내가 스프링 페어리 퀸 페넬로페다!”

페어리 나이트의 보고를 받자마자 허겁지겁 날아온 페어리 퀸은 다급하게 외쳤다.

과연 페어리 나이트의 보고대로였다.

‘엄청 예뻐!’

머리칼 완전 부드럽고 윤기나. 피부도 매끄러운데 몸매도 예뻐. 거기다 얼굴, 얼굴이 최고야. 눈동자는 보석 같고 입술은 촉촉하고, 뺨은 말캉말캉할 거 같아!

‘아, 아니. 이게 아니지.’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페어리 퀸 자신이 태어나서 처음 본 인간인 동시에 어마어마하게 예쁜 소녀가 손에 움켜쥐고 있는 왕국의 백성이 문제였다.

“도와주세요, 여왕님!”

“살려주세요!”

붉은 머리 소녀의 손에 붙잡힌 페어리가 앙앙 울며 소리쳤고, 근처에 자리한 페어리들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쟤들 웃고 있는 것도 같은데?’

뭔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느낌?

거기다 너네는 딱히 붙잡힌 것도 아니잖아. 포박된 것도 아니고.

소녀가 손으로 붙잡고 있는 페어리들 외에는 그냥 곁에 서서 꺅꺅 소리를 지르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정말로 그랬다.

정말로 페어리들은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난생 처음 겪는 흥미진진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아, 아무튼!”

어찌되었든 페넬로페 자신은 스프링 페어리들의 여왕이었다. 작금의 사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대체 누구냐!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그리고 머리칼은 어떻게 관리하는 거야? 타고난 거야?”

구경하던 페어리들의 관심 역시 소녀의- 코델리아의 머리칼에 쏠렸고, 옆에서 지켜보던 라이카 왕녀는 작금의 상황을 따라가지 못 해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뭐지 이 흐름은?’

우리 지금 인질극 하고 있는 거 아니었나?

하지만 라이카 왕녀와 달리 페어리들에 대해 이미 통달한 코델리아였다.

의식의 흐름대로 이어지는 대화에 휘둘리지 않고 목적을 분명히 하였다.

“페어리 퀸! 그리고 주변의 페어리들! 여길 잘 봐!”

크게 소리친 코델리아는 주변의 한번 쭉 돌아보더니 미리 준비해온 상자를 허리의 공간확장 주머니에서 꺼내들었다.

“잘 봐!”

“그게 뭔데?”

“그게 뭐야?”

“먹을 거 들었어? 나는 꿀이 좋은데.”

어느새 구경꾼 모드가 된 페어리들이 한 마디씩을 보탰고, 라이카 왕녀가 현기증을 느끼는 그때 코델리아는 상자를 열었다.

“이건 초콜릿이라는 거다!”

“촤컬릿?”

“먹는 거야?”

페어리 퀸도 질문만 하지 않았지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것이 무척 궁금한 것 같았다.

때문에 코델리아는 뜸을 들이지 않고 바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자, 한 입 먹어봐.”

“응!”

코델리아가 손에 붙잡고 있던 페어리에게 초콜릿 조각을 작게 잘라 주자 근처에 있던 페어리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부러워했다.

“좋은 건 혼자 다 해먹네!”

“나빴어!”

그리고 코델리아에게 붙잡힌 페어리는, 17년 페어리 인생에서 처음 주인공이 된 그녀는 앙하고 초콜릿 조각을 깨물었다.

그리고 1초.

다시 2초.

페어리들 모두가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에 마른 침을 삼킨 그때.

“맛있어!”

페어리가 눈을 크게 뜨며 외치자 주변의 페어리들이 더더욱 안절부절 못 하기 시작했다.

“나도! 나도!”

“나도 먹어보고 싶어!”

구경꾼들만이 아니었다. 한 입 먹었던 페어리 역시 안달을 하며 말했다.

“조, 좀만 더 줘! 좀만! 응? 제발!”

간절하기 짝이 없는 그 눈빛. 하지만 코델리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싫어. 나 혼자 다 먹을 거야.”

“뭐?”

페어리들을 상대할 때는 이쪽도 정신연령을 낮출 필요가 있었다. 코델리아는 상자를 활짝 열었고, 페어리들은 상자 안에 가득 찬 초콜릿에 행복한 현기증을 느꼈다.

코델리아가 유도한 그대로 말이다.

“페어리 퀸! 내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이 초콜릿들은 내가 다 먹을 거다! 혼자서! 너희한텐 단 한 개도 주지 않고!”

“뭐, 뭐라고?!”

페어리 퀸이 깜짝 놀라 외친 그대 코델리아는 정말로 초콜릿을 한 웅큼 집더니 그대로 입 안에 털어넣었다.

아그작 아그작.

페어리 일곱 명이 나눠 먹어도 충분할 것 같은 양을 한 입에!

“안 돼애애애애애애!”

“못 됐어! 잔인해! 악마!”

“어쩜 저럴 수가 있어?!”

“여왕님! 어떻게든 해 주세요!”

페어리들이 저마다 비명을 질러대며 안절부절못했고, 사실 그건 페어리 퀸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 잠깐! 요구 조건이 뭔데! 바라는 게 뭔지 말해줘!”

“아이 맛있어! 내가 혼자 다 먹어야지!”

“제바아알! 제발 요구 조건을 말해줘! 응? 제발!”

페어리 퀸을 필두로 한 페어리들 모두가 애걸복걸하기 시작하자 코델리아는 훗하고 승리의 미소를 지었고, 지켜보던 라이카 왕녀는 새삼 현기증을 느꼈다.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거야?”

“하, 할게!”

“그럼 봄의 가호를 내놔!”

“드, 드리겠습니다!”

페어리 퀸이 벌떡 일어나 코델리아에게 봄의 가호를 내렸지만 아직이었다.

코델리아는 손가락 두 개를 세우며 소리쳤다.

“2인분! 하나는 여기에 담아!”

코델리아가 내민 것은 요정의 결속이었다.

그 안에 이미 다른 페어리들의 가호가 잔뜩 들어가 있는 것을 깨달은 페어리 퀸은 놀라서 소리쳤다.

“서, 설마 다른 페어리들에게도?”

“그래, 모두들 맛있게 찹찹 초콜릿을 먹었지. 너희보다 훨씬 일찍!”

“으흐흑. 드,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저희에게도 초콜릿을!”

어느새 존댓말을 하게 된 페어리 퀸은 급히 요정의 결속에 봄의 가호를 불어넣었다.

“이제 된 거죠?”

“어, 그래. 여기.”

코델리아가 순순히 초콜릿 상자를 넘겨주자 페어리 퀸과 페어리들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기뻐했다.

“여왕님 먼저 드세요.”

“네, 그래도 여왕님이시니까.”

“흑흑, 고맙구나 얘들아.”

새삼 백성들에 대한 사랑을 깨우친 페어리 퀸은 초콜릿을 한 입 물었고, 생전 처음 맛보는 맛에 지고의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페어리 퀸을 비롯한 페어리들이 초콜릿을 한 입씩 입에 물기를 기다리고 있던 코델리아가 두 번째 상자를 꺼내들었으니 말이다.

“저기 봐! 또 상자를 꺼냈어!”

“이번에도 초콜릿이 들어있겠지?”

페어리들은 기대에 찬 눈으로 코델리아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코델리아는 일부러 천천히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이번에도 초콜릿.

하지만 앞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물건이었다.

“다들 잘 봐.”

코델리아는 초콜릿 하나를 꺼내들더니 한 입에 톡 털어넣는 대신 정확히 절반을 깨물어 단면이 드러나게 했다.

“이 안에 든 게 뭐일 거 같아?”

초콜릿의 단면.

부드러운 갈색 사이에 들어가 있는 하얀 액체.

코델리아는 일부러 천천히, 모두들 보라는 듯 턱선을 따라 흘러내린 그것을 혀로 핥았다.

치명적인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이건 크림이라는 거야. 부드럽고 달콤하고 끈적끈적하면서도 매끄럽지.”

정확히는 그냥 크림이 아니라 시럽에 가까운 물건이었지만 그런 것까지는 잘 모르는 코델리아였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정확한 명칭도 아니었고 말이다.

“지금부터 이걸 땅에 떨어트릴 거야.”

“뭐, 뭐라고?!”

“내가 먹지도 않고, 전부 땅에 떨어트린 다음에 짓밟아 버릴 거야. 아무도 먹지 못 하게!”

“안 돼애애애애!”

“잔인해! 악마!”

“여왕님, 여왕님 어떻게든 해주세요! 네?”

페어리들이 울부짖기 시작했고, 이미 같이 울부짖고 있던 페어리 퀸이 소리쳤다.

“어째서 이러시는 건데요! 봄의 가호라면 이미 드렸잖아요!”

자식을 빼앗긴 부모라도 되듯 절규하는 페어리 퀸이었지만 코델리아는 오히려 냉랭한 미소를 지었다.

“봄의 가호로는 부족해.”

“그, 그럼? 뭘 드리면 되는데요? 네? 뭐든지 다 드릴게요!”

“정말? 뭐든지 다? 약속했다?”

코델리아가 한 걸음 성큼 내디디며 말하자 순간 움찔한 페어리 퀸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코델리아가 상자를 쏟기라도 할 것처럼 기울였기 때문이다.

“뭐든지!”

“콜!”

계약 성립.

단순히 초콜릿 상자를 주기만 했다면 결코 이끌어낼 수 없었을 대답.

유더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얼마나 뿌듯해 할까.

잠시 유더의 얼굴을 떠올린 코델리아는 이내 다시 손발을 꼼지락 거리며 안절부절 못 하는 페어리 퀸을 보았다.

까만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섰다.

&

왕녀죽이고싶어밖에나가고싶어피가모자라피가부족해네피를먹을거야!

자바워크의 괴성은 단순한 울부짖음이 아니었다.

정신을 오염시키는 일종의 마법이었다.

셰이드들과 싸우던 엘프들은 자바워크가 울부짖을 때마다 고통을 호소했다. 손발이 떨렸고, 덕분에 제대로 된 기량을 발휘하지 못 했다.

“무리하지 마라! 진형을 갖춰! 동료와 함께 싸워라!”

토벌대의 엘프들 가운데 절반은 아직 어린, 이제 실전을 배워나가는 단계였지만 나머지 절반은 아니었다.

이백 년 이상 검을 수련한 절정의 달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누구도 평소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 했다. 적진에 난입해 쾌검을 구사하기는커녕 목숨을 지키기 급급했다.

“스승님!”

“자리를 지켜! 왕녀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버티는 거다!”

바네사에게 일갈한 미다스는 다시 정면을 보았다.

단신으로 자바워크와 싸우고 있는 인간의 등을 보며 생각했다.

‘도리가 없다.’

지난 토벌과는 상황이 너무 달랐다.

셰이드들의 숫자는 몇 배로 늘었고, 자바워크의 정신공격 역시 이전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니, 과연 이 상황을 극복할 수는 있는 걸까?

미다스 자신조차도 자바워크의 괴성 때문에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지금?

“흑룡십자격!”

거대한 칠흑의 십자가가 자바워크를 밀어냈다. 거대한 박쥐로 변해 있던 자바워크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고, 그 순간 다시 모습을 바꾸었다. 지금까지의 부상을 모두 초기화시킨 뒤 재차 비명을 질러댔다.

“크으윽.”

미다스는 신음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찌어찌 고통을 견디며 눈앞의 셰이드들을 막아내고 있는 기사들이었지만 이대로 가면 남은 것은 전멸뿐이었다.

“흑룡파천! 연환!”

바로 그때 다시 한 번 칠흑의 기운이 폭발하듯 일어 엘프들을 압박하던 셰이드들을 강타했다. 그리고 연이어 번개가 쳤다. 순식간에 자바워크의 배후를 점한 유더가 날카로운 검기로 놈의 몸을 조각냈다.

미워싫어아파코델리아죽일거야죽여버릴거야찢어서죽일거야아아!

동강난 자바워크의 몸이 순식간에 다시 하나가 되었다.

이번에는 거대한 구울이 되어 유더에게 독이 묻은 손톱을 휘둘러댔다.

유더는 그런 구울을 상대로 침착하게 맞섰다.

놈의 공격을 손가락 한 마디 차이로 회피한 뒤 최소한의 동작으로 거리를 좁혔다. 놈의 복부에 태양심격을 꽂아 넣어 내장을 박살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자바워크가 고통스러워하며 물러섰다. 하지만 다시 버그베어로 모습을 바꾸었고, 고통에 찬 비명 대신 증오를 토해냈다.

미다스는 숨을 토했다.

그리고 다시 유더를 보았고, 당황과 경이를 동시에 느꼈다.

갑자기 강해진 자바워크는 둘째치고 저 인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까부터 자바워크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지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엘프들을 기준으로 봐도 눈부시게 빠른 움직임이었다. 저런 움직임을 보이면서 숨 한 번 차지 않는다는 게 과연 가능은 한 것일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눈앞의 인간은- 유더는 자바워크의 정신공격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아예 영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인간에게는 애당초 효과가 없는 것일까? 그래서 인간만이 자바워크를 쓰러트릴 수 있다고 한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미다스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눈앞의 인간이 유일한 희망이란 사실이었다.

“오오오오!”

유더가 돌연 포효했다.

지금까지 이상의 힘과 속도를 발휘해 자바워크를 밀어붙였다.

갑자기 왜 저러는 것일까.

그리고 미다스는 깨달았다.

바네사가 소리쳤다.

“왕녀님!”

자바워크의 등장 이후 검게 물든 저 하늘 너머에서 순백의 날개를 가진 존재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붉은 머리의 천사.

그리고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라이카 왕녀.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으란말야아아아아아!

마운틴 자이언트로 변한 자바워크가 거대한 주먹을 유더에게 내려쳤다.

땅이 뒤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공격이었지만 맞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초풍신뢰로 본래 서 있던 자리에서 단번에 몸을 빼낸 유더는 코델리아를 느꼈다. 뒤를 돌아보는 대신 정면을 보며 소리쳤다.

“코델리아!”

“저리 꺼져!”

자바워크에게 소리친 코델리아가 라이카 왕녀를 바네사 쪽으로 던졌다. 엘프들과 라이카 왕녀가 비명을 지른 그때 광익을 재차 전개해 먹이를 낚아채는 매처럼 자바워크를 향해 돌진했다.

씨발새끼죽어좆같은놈이유더는내꺼야내꺼라고내가잡아먹을거야아아!

“좆까! 씨발놈아!”

자바워크와 코델리아가 욕설을 주고받은 그때 하늘이 뒤흔들렸다. 검은 번개 줄기 수십 개가 하늘에서 쏟아져 코델리아를 노렸고, 코델리아는 당황하는 대신 미리 준비한 마법을 펼쳤다.

“쉴드!”

콰가가가가가가강!

검은 번개가 코델리아가 펼친 반투명한 막을 계속해서 난타했다. 썬더 자이언트로 화한 자바워크는 아예 주먹에 번개를 실더니 그대로 코델리아를 후려치려 했다.

“저리 꺼져!”

유더가 외쳤다. 날카로운 돌려차기로 자바워크의 왼다리를 절단해 놈을 무너트린 뒤 코델리아에게 몸을 날렸다. 낭창낭창한 허리를 단숨에 끌어안으며 다시 한 번 위치를 바꾸었다.

“유더! 이거!”

코델리아가 팔찌 형태인 요정의 결속을 유더의 팔에 채웠다.

그리고 그 순간 팔찌로부터 전해진 힘이 유더의 전신에 퍼져나갔다.

‘사계의 가호!’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의 힘이 유더를 수호했다.

봄의 힘이 유더를 치유했고, 여름의 힘이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으며, 가을의 힘이 유더의 기운을 강화했다. 겨울의 힘이 유더의 정신을 더욱 명료하게 하였다.

하지만 사계의 가호의 힘은 겨우 이 정도가 아니었다.

죽어!죽어!죽어!죽어!죽으란말이야!

자바워크가 다시 검고 거대한 슬라임이 되어 입을 크게 벌렸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자신들을 한입에 삼키려는 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코델리아가 소리쳤다.

“왕녀님!”

여기까지 오는 와중에 일러둔 것.

코델리아는 라이카 왕녀를 믿었다. 유더의 팔에 몸을 기대며 상상했다.

유더와 같은 것을.

라이카 왕녀에게도 미리 일러두었던 그것을!

“상상해!”

바람 마법을 구사해 지면에 겨우 안착한 라이카 왕녀가 명령과 동시에 새로운 마법을 펼쳤다.

하나의 이미지를 기사들 모두에게 공유시켰다.

그리고 변화가 일어났다.

자바워크가 돌연 몸을 비틀더니 거대하고 강대한 존재로 변모했다.

태운다태운다태운다모든것을불태운다!

거대한 불의 마신.

전신이 불꽃으로 뒤덮인 불의 괴물 이프리트!

놈이 발하는 불꽃이 어찌나 강한지 열기만으로도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때문에 미다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냥도 상대하기 힘든 자바워크를 저리 강력한 마물로 바꾸었단 말인가!

“왕녀님!”

“그냥 믿어!”

라이카 왕녀는 재차 소리친 뒤 상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자바워크가 포효하며 주먹을 당겼다. 불의 세례를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쏟아 부었다.

“유더!”

“간다!”

코델리아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유더가 그 손을 잡았다.

끝없이 재생하는 자바워크를 쓰러트리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

약점을 찌른다.

극상성의 공격을 단숨에 퍼부어 놈의 숨통을 끊어버린다!

“알마스!”

코델리아가 외친 순간 그녀의 손에서부터 검이 솟구쳐 올랐다.

영원의 호수에 숨겨져 있던 검.

과거 겨울의 왕이 사용했다 전해지는 극한의 마검!

알마스의 칼끝에서 어마어마한 한기가 방출되었다. 자바워크의 불꽃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얼려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자바워크가 비명을 질렀다. 모습을 바꾸려 했다.

하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동시에 사계의 가호를 발동시켰다.

겨울의 힘으로 알마스의 한기를 몇 배나 더 증폭시켰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자바워크의 비명이 다시 소리를 잃었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전신 모두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보인다!”

구천구문 제오문을 연 순간부터 사용할 수 있게 된 투시안.

유더는 보았다.

자바워크의 핵을 간파했고, 알마스에서 손을 놓았다. 놈을 붙잡아 두는 것을 코델리아에게 맡긴 채 지면을 박차 올랐다.

“조져!”

코델리아가 소리쳤다. 유더는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웃었다. 코델리아의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날카로이 세운 수도로 벨렌시아의 검기를 펼쳤다. 번개를 연상시키는 찌르기로 자바워크의 핵을 관통했다!

-----------------------!

얼음이 깨졌다. 자바워크의 핵이 부서진 그 순간 얼어붙은 불꽃 역시 산산이 조각나 붕괴했다.

콰르르르르르르-!

쏟아지는 얼음 속에서 다시 몸을 회전시킨 유더는 보았다.

새하얀 빛의 고리에 감싸인 코델리아가 알마스를 높이 드는 것을,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환호하는 것을!

“이겼다!”

자바워크 끝!

유더도 따라 웃었다. 빛의 고리에 감싸인 채 지상에 안착했다.

&

< 제79장 - 자바워크 #3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