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225화 (225/473)

< 제80장 - 검무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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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더의 지적에 코델리아는 그저 눈만 깜박였지만 라이카 왕녀는 달랐다.

진심으로 놀랐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무리 벨렌시아의 검기를 이었다지만 눈앞의 검무- 정령의 연회에 인원수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어찌 간파한 것일까.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정령의 연회에 참가하는 검수는 일자전승을 통해 검무를 전승받고 있었다.

애당초 일곱 명이 추던 춤을 여섯 명이서 춰야 하는 이유도 일곱 번째 검수의 검무가 제대로 이어지지 못 한 탓이었고 말이다.

‘아, 설마 벨렌시아 님이 정령의 연회에 대한 기록이라도 남기셨나?’

오늘은 정령의 연회를 보았다.

일곱 검수들의 움직임이 참 조화로웠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일곱 명이라는 것 정도는 이어질 수도 있었으니까.

‘아니지. 근데 내가 저거 정령의 연회라고 말 안해줬잖아.’

그냥 눈썰미로 맞췄나?

‘그치만 확신했단 말이지?’

딱히 권위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라이카 왕녀는 자신이 왕녀, 그것도 왕세녀라는 사실 자체는 자각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 앞에서 아님 말고하는 식으로 아무 말이나 던지는 것은 꽤 무리한 일이었다.

‘인간들은 문화가 다른가?’

그렇게까지 다른 거 같지는 않은데.

특히 이런 기본적인 예절에 관해서는.

결국 고민하던 라이카는 그냥 자신다운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네 말이 맞다. 어떻게 간파한 것이지?”

그냥 대놓고 물어보자 근처에 있던 터라 이야기를 듣게 된 미다스와 바네사 역시도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눈으로 유더를 보았다.

코델리아 역시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때문에 유더는 라이카 왕녀와 코델리아를 번갈아 보며 답했다.

“정령의 연회에 일곱 명이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는 벨렌시아 님께서 남기신 기록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리고··· 눈앞의 연무는 분명 아름답지만, 위화감이 느껴졌거든요. 한 명이 부족하다는 위화감이요. 더욱이 정령들과의 소통을 기념하는 춤이라 하셨던 게 기억나서 정령의 연회가 아닐까-라는 관점에서 지켜보니 한 명이 부족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럴싸한 유더의 설명에 라이카 왕녀는 감탄했고, 코델리아는 반사적으로 눈빛을 보냈다.

‘진짜?’

‘나중에 좀 더 이야기해줄게.’

아무래도 코델리아에게는 가능한 진실만 말하고 싶었으니까.

방금 라이카 왕녀에게 한 말이 아주 거짓은 아니었지만, 거의 사실에 근접하기는 했지만 벨렌시아에 대한 이야기는 살짝 사실과 달랐으니 말이다.

‘알았어. 꼭이야?’

‘어, 꼭.’

유더의 눈빛에 만족한 코델리아는 배시시 웃었고, 유더 역시 묘하게 안도한 얼굴로 라이카 왕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그렇다면 유더, 혹시 일곱 번째 검수의 검무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라이카 왕녀의 뒤에 앉아있던 미다스가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미다스?”

라이카 왕녀가 놀란 얼굴로 자신의 조언자를 돌아보았다.

자신 앞에서야 소나기처럼 잔소리를 퍼붓는 그였지만 남들 앞에서는 언제나 진중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목소리와 어조, 표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간절함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말해주게, 유더. 아는 것이 있나?”

미다스가 라이카 왕녀에게 답할 생각도 않고 다시 묻자 바네사는 얼른 방음 마법을 펼쳤다.

미다스가 목소리를 높인 탓에 검무를 감상하던 이들 가운데 여럿이 이쪽을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켈투르의 친모인 카나리아 솔페이지가 이쪽을 쳐다보는 것이 신경 쓰였다.

‘유더야, 쟤 왜 저래. 뭐 막 중요한 거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코델리아가 다시 눈빛으로 물었지만 유더도 크게 짐작가는 부분은 없었다.

그저 정황상 미다스가 일곱 번째 검무에 대해 무척이나 알고 싶어한다는 정도만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실전이라도 된 건가.’

실전된 일곱 번째 검무.

그런데 그 검무에 대해 알지도 모를 인간이 나타났다.

그렇기에 흥분하여 묻고 말았다.

‘간절함.’

뭔가 있었다.

어쩌면 정령의 연무에 무언가 비밀이 있을지도 몰랐다.

“유더, 아는 것이 없나?”

미다스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번지자 덩달아 라이카 왕녀까지도 묘한 표정이 되어 유더를 돌아보았고, 유더는 약간의 고민 끝에 답하였다.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대답할지 말지에 대한 생각 말인가?”

“아뇨, 일곱 번째 검무에 대해 떠올릴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소 아리송한 답을 내놓은 유더는 그대로 눈을 감았고, 자연스럽게 라이카 왕녀와 미다스, 바네사의 시선은 코델리아에게 돌아갔다.

지금 유더가 뭐하는 것이냐는 눈빛들이었다.

“그, 그러니까··· 기억의 궁전이라고··· 아세요?”

코델리아가 떠듬떠듬 기억의 궁전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가자 라이카 왕녀는 무척이나 희한한 생물을 본다는 듯 유더를 보았다.

‘이해해요. 맨날 보는 나도 신기한 걸요.’

속으로 말한 코델리아는 미다스와 베네사도 살펴보았는데, 베네사는 흥미진진하다는 얼굴이었고 미다스는 아까보다 좀 더 간절한, 그러면서도 희망을 품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때.

여전히 정령의 연무는 이어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시선들이 방음 마법장 안에 자리한 라이카 왕녀의 일행에게 모인 순간.

유더는 기억의 궁전을 펼치는 대신 구천구문의 구결을 외웠다.

육문을 열었을 때처럼 의식의 수면 아래로 스스로를 밀어 넣었다.

‘벨렌시아!’

들린다면 대답해줘요.

그때처럼 모습을 보여줘요!

유더는 소드 오리진을 떠올리며 재차 벨렌시아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대답이 돌아왔다.

그저 검기만 하던 주변의 광경이 순식간에 바뀌는가 싶더니 백금발을 길게 기는 아름다운 여인이 눈앞에 나타났다.

“후대여.”

요정검 벨렌시아.

이제보니 정말 라이카 왕녀와 닮은- 아니, 라이카 왕녀가 그녀를 닮은 것이겠지만. 아무튼 라이카 왕녀와 비슷한 구석이 많은 벨렌시아였다.

‘벨렌시아가 좀 더 예쁜 것 같지만.’

물론 코델리아는 더 예쁘고.

“후대여?”

“벨렌시아 님. 혹시 밖의 사정을 전부 알고 계신가요?”

“정확히는 몰라요. 대부분의 시간은 잠을 자고 있으니까요. 기억을 공유해줄 수 있나요?”

벨렌시아의 물음에 유더는 얼른 정령의 연무에 관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자 벨렌시아는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이 되어 말했다.

“정령의 검무! 지금도 정통이 이어지고 있군요. 불완전한 형태라는 것이 아쉽지만요.”

“네, 벨렌시아 님. 엘프들도 그걸 아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혹시 일곱 번째 검수의 검무에 대해서도 알고 계신가요?”

“네, 출줄 알아요.”

“와, 진짜요?”

“네.”

“혹시 벨렌시아 님이 일곱 번째 검수셨나요?”

소드 오리진 때문에 더 이상 검을 들 수 없게 된 벨렌시아가 검무를 추지 않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일곱 번째 검수의 전승이 끊어진 것은 아닐까?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였지만 아니었다.

벨렌시아가 듣자마자 고개를 가로저었기 때문이다.

“아뇨, 전 정령의 연무의 검수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정령의 연무는 일자전승이라고 하지 않았나?

유더가 재차 묻자 벨렌시아는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얼굴로 답했다.

“그치만 검술이잖아요.”

“네?”

“검술이요.”

이게 무슨 소리일까.

순간 고개를 갸웃한 유더였지만 이내 이해할 수 있었다.

검술이니까.

검술이라 유심히 봤고, 아예 추는 법까지 외워버렸다.

검무에 필요한 내력의 운용 같은 것은 간파해버렸고.

‘진짜 검덕후구나.’

괜히 쌍검술을 두고 양다리 운운한 것이 아니었다.

“저기, 그럼 혹시 일곱 검수의 검무 전부를 출 줄 아시나요?”

“네, 검술이니까요.”

“그, 그렇군요.”

이래서 덕후는 무섭다니까.

물론 코델리아가 보았다면 기억의 궁전이 더 무섭다고 할 터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엘프들에게 일곱 번째 검무를 부활시키는 건 무척 중요한 일인 것 같았습니다. 이유를 아시나요?”

“네, 대충 짐작이 가요.”

“어떤 이유가······.”

“그건 춰보시면 알 거예요.”

배시시 웃은 벨렌시아는 뺨을 살짝 붉히며 말을 이었다.

“배우고 싶으신 거죠?”

“네, 가능할까요?”

“기억을 공유해드릴게요. 아, 물론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추는 것은 다르겠지만요. 연습이 필요하겠죠?”

벨렌시아의 물음에 유더는 무어라 답할까 고민하다가 그저 씩 웃어보였다.

몸으로 하는 것은 뭐든지 잘하는 천무지체였으니까.

기억만 있으면 그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럼 눈을 감고 집중하세요. 알려드릴게요.”

“네, 벨렌시아 님.”

유더는 눈을 감았다.

세상이 다시 까맣게 변했고, 그 사이에서 오직 벨렌시아만이 빛을 발하였다.

“이렇게 하는 거랍니다.”

검무를 춘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한 것일까.

벨렌시아는 상기된 얼굴로 배시시 웃더니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현란한, 일곱 번째 검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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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더는 눈을 떴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 아름다워.’

벨렌시아의 검무.

솔직히 황홀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려 숨을 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역시 최고는 코델리아지만.’

페어리들을 불러내기 위해 달빛 아래에 서 있던 젖은 머리칼의 코델리아는 그야말로 여신 그 자체였으니까.

‘유더야?’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코델리아를 마주한 유더는 새삼 씩하고 웃더니 이내 라이카 왕녀와 미다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출 수 있습니다.”

“오오, 진짜인가? 일곱 번째 검무를 출 수 있다고?”

“예.”

유더가 자신 있게 답하자 미다스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라이카 왕녀를 돌아보았다.

“왕세녀님.”

“설마··· 유더까지 끼워서 다시 추게 하라는 건가?”

“바로 그렇습니다.”

이글이글 불탄다고 해도 좋을 미다스의 눈이었다.

때문에 라이카 왕녀는 이것저것 재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미다스가 이렇게까지 뭘 부탁하는 건 오랜만의 일이니까.”

이러나저러나 라이카 왕녀 자신에게는 아버지 같은 스승이자 오랜 세월 의지해온 조언자였다.

그의 바람이라면 뭐든 일단 들어주고 싶은 그녀였다.

“유더, 부탁해도 되겠나?”

“예, 할 수 있습니다.”

유더의 대답에 다시 한 번 만족한 라이카 왕녀는 바네사에게 눈짓을 보내 방음 결계를 해제하게 했다.

“조금 있으면 연무가 끝난다. 그때 내가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그리고 1분 남짓.

정말로 연무가 끝이 나자 엘프들 사이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라이카 왕녀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더니 그대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정말 멋진 춤이었다. 언제 봐도 감탄을 금할 수 없구나.”

라이카 왕녀의 칭찬에 검수들이 기쁜 얼굴로 미소 지었고, 엘프들은 다시 한 번 크게 박수를 쳤다. 특히 켈투르의 반응이 좋았는데, 검수들 보다는 라이카 왕녀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진짜 좋아하나보네.’

라이카 왕녀도 그런 켈투르에게 애정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더니 이내 용무를 밝혔다.

“이미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나를 도와 자바워크를 토벌한 인간 영웅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집중되었고, 라이카 왕녀는 두 사람의 활약상에 대해 짧게나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페어리 퀸을 설득한 코델리아의 담대함과 자바워크를 격퇴한 유더의 용맹에 대해서 말이다.

‘부, 부끄러워.’

다행히 진실을 있는 대로 전하는 대신 적절하게 포장한 라이카 왕녀 덕분에 페어리들과의 교섭 과정은 사실상 날조에 가까운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건지 코델리아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리고 이런 코델리아의 모습이 엘프들에게 제법 좋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유더의 주장처럼 부끄러워하는 코델리아는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지만.’

아마 겸손한 태도 정도로 비쳤으리라.

어찌되었든 자바워크 토벌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래저래 스스로에게도 공치사를 한 라이카 왕녀는 본론을 꺼내들었다.

“유더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은 요정검 벨렌시아 님의 검기를 잇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령의 연무의- 우리가 잃어버린 일곱 번째 검무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한다.”

라이카 왕녀의 말에 엘프들 모두가 놀란 얼굴이 되어 유더를 돌아보았다.

특히 검무를 춘 검수들의 놀라움이 큰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해보려 한다. 일곱 번째 검무가 더해진 완전한 정령의 연무를 지금 이 자리에서 펼쳐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라이카 왕녀는 검수들을 돌아보았고, 서로를 돌아보던 검수들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대표 격인 첫 번째 검수가 라이카 왕녀에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

“오히려 저희가 부탁드리고 싶은 일입니다. 왕세녀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정령의 연무에 다른 종족이 끼는 일임에도 흔쾌히 허락해주어 감사하다.”

부드럽게 답한 라이카 왕녀는 잠시 켈투르와 그 친모인 카나리아 솔페이지- 솔페이지 자작을 바라본 뒤 다시 유더 쪽으로 돌아섰다.

“유더, 앞으로 나와 함께 검무를 추어라.”

“예, 왕세녀 전하.”

담백히 답한 유더는 미다스가 내민 검을 받아든 뒤 앞으로 나섰다.

‘음, 괜찮겠지?’

검을 든다고 벨렌시아가 불륜이네 뭐네 이상한 소리하지 않겠지?

애당초 그랬다면 일곱 번째 검무 자체를 가르쳐주지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애당초 유더 자신은 코델리아 꺼였으니까.

코델리아가 들었다면 무슨 소리냐며 일단 화를 내면서도 입꼬리를 주체 못 할 생각을 한 유더는 자연스럽게 검수들 사이에 섞여들었다.

여섯 명이 추던 춤을 일곱 명이 춘다.

그만큼 원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맞물리는 동작 역시 미묘하게나마 달라진다.

하지만 유더는 걱정하지 않았다.

애당초 정령의 연무는 일곱 명이 추는 춤이었으니, 각자 맡은바 역할만 제대로 하면 오히려 여섯 명이 출 때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연무를 완성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검수가 말하자 라이카 왕녀는 다시 자리에 가 앉았고, 악단은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처음엔 부드럽게.’

유더를 포함한 일곱 검수들이 천천히 검을 들어올렸다. 음악에 맞추어 춤추기 시작했다.

“오오.”

“진짜다. 진짜 정령의 연무다.”

엘프들 사이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여섯 명일 때도 이미 완벽하다고 생각한 조화였는데, 일곱 명이 되자 그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연무야말로 진짜 완벽한 조화였다.

하지만 감탄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정령의 연무의 진가는 그저 완벽한 군무 정도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

감이 좋은 코델리아가 제일 먼저 알아차렸다.

아직 시각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마력의 흐름에 민감한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정령의 연무는 그저 평범한 춤이 아니었다.

거대한 마법을 발동시키기 위한 의식의 일종이었다.

그리고 변화가 계속되었다.

그렇기에 라이카 왕녀를 비롯한 엘프들 역시 알 수 있었다.

“오오!”

“정령이다!”

“정령들이다!”

감탄을 흘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크게 놀란 엘프들이 목소리를 높였고, 개중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자도 있었다.

마도왕국 마젤란의 후예들과 맹약을 나눈 일곱 정령들.

어둠이 번졌다.

유리로 된 천장을 뒤덮어 밤을 만들었다.

빛이 일었다.

밤의 장막 사이로 달과 별이 빛났고, 춤추는 검수들 하나하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처럼 은은한 빛에 휩싸였다.

빛의 정령과 어둠의 정령.

다른 정령들도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의 일부를 이루고 있던 나무들 사이로 푸른 잎사귀들이 피어났고, 촉촉하니 기분 좋은 습기가 연회장에 번졌다.

땅의 정령과 물의 정령.

그리고 이어졌다.

어둠의 장막 아래에서 아름다운 불의 정령들이 춤을 추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산들바람이 모두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불의 정령과 바람의 정령.

여섯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들 여섯은 예나지금이나 영원의 숲의 엘프들과 교류하던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엘프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일곱 번째 정령의 등장을 기다렸고.

그리고 그 순간.

검무를 추던 유더의 검이 하늘을 향한 바로 그때.

콰가강!

굉음과 함께 어둠의 장막이 갈라졌다. 유리로 된 천장이 부서졌고, 거친 바람이 일어 주변을 휩쓸었다.

그리하여 드러난 하늘.

연회장을 채운 어둠 사이로 환한 빛이 쏟아졌다.

그리고 모두는 느낄 수 있었다.

앞의 나타난 여섯 정령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대한 힘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빛과 어둠, 바람과 불꽃, 땅과 물.

여섯 정령들이 춤을 추며 경배했다.

유더를 제외한 여섯 검수들은 저도 모르게 물러나 예를 갖추었고, 무대 중앙에 선 유더는 일곱 번째 검수의 마지막 동작을 펼쳤다.

그것은 경배.

그것은 경의.

왕을 맞이하는 이가 마땅히 보여야 할 자세.

음악이 멈추었다.

엘프들의 왕궁 곳곳이 빛을 발하며 축적해두었던 마력을 모조리 발산하였다.

열린 하늘로부터 왕을 부르기 위한 대가를 지불하였다.

그리고 다시 바람이 불었다.

열린 하늘로부터 마침내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 아아아!”

미다스를 비롯한 엘프들 대부분이 경탄하며 절하였다.

라이카 왕녀 역시 너무 놀라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절하며 왕을 맞이하였다.

정령의 연무.

프라임 왕가가 이끄는 영원의 숲의 엘프들과 맹약을 나눈 일곱 정령들을 부르는 의식.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경우가 달라졌다.

검무의 단절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초대받지 못 했던 일곱 번째 정령들의 왕이 직접 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맹약을, 기억하는가.]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찌나 웅장하고 거룩한지 마치 세상 전체가 진감하는 것 같았다.

라이카 왕녀는 애써 숨을 골랐다. 엘프의 왕녀로서 고개를 들어 일곱 번째 정령왕을 마주하였다.

거친 바람에 휩싸인 그는 무척이나 강인하며 거대한 남성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아름다웠다.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그리스로마 신화의 제우스를 떠올렸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정령들의 왕이시여. 폭풍과 함께하는 분이시여.”

세상에는 여러 정령들이 존재했다.

마도왕국 마제란 시절에는 엘프들과 맹약을 나눈 정령들의 종류가 수십을 헤아렸다.

그중 하나.

마젤란의 멸망 이후에도 엘프들과의 맹약을 이어나간 일곱 정령들 가운데서도 가장 강맹한 정령들을 이끄는 자.

폭풍과 번개의 정령왕.

그가 라이카 왕녀를 보았다. 나머지 엘프들 모두를 굽어보더니 다시 입을 벌려 말했다.

[맹약을 이어갈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다시 한 번 너희들 가운데 하나와 계약을 맺을 것이다.]

정령왕의 선언에 엘프들 모두가 긴장했다.

미다스와 바네사는 라이카 왕녀를 바라보았고, 켈투르의 친모인 솔페이지 자작은 다급히 켈투르 쪽을 보았다.

평범한 정령이 아닌 정령왕과의 계약이었다.

계약 여하에 따라 다음 대의 엘프 왕이 바뀔 수도 있었다.

라이카 왕녀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용기를 내어 자리에서 일어섰고, 켈투르는 어미의 성화에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왕위계승서열 1위와 2위.

엘프들은 바짝 긴장해 마른침을 삼켰고, 미다스는 솔페이지 자작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열풍이 일었다.

정령왕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연회장에 섰다.

거인의 형상을 한 그는 유더의 곁을 지나쳤다. 켈투르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라이카 왕녀 쪽으로 나아갔다.

‘오오오!’

미다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솔페이지 자작은 무척이나 분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라이카 왕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새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정령왕에게 다시 한 번 경배의 뜻을 보이고자 예를 갖추었다.

“폭풍과 번개의 왕이시여.”

떨리는 목소리로나마 말했다.

그리고 정령왕은 그런 라이카 왕녀조차 지나쳤다.

애당초 그는 강림한 이후 내내 오직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아이야. 폭풍과도 같은 영혼을 가진 아이야. 오직 너만이 나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엘프들 사이에 서 있던 붉은 머리의 인간 소녀.

코델리아는 멍한 얼굴로 정령왕을 바라보았고, 정령왕은 미소지었다. 커다란 손으로 코델리아의 턱을 받쳐 들며 다시 물었다.

[나와 계약하겠는가? 아름다운 소녀여?]

정령왕의 간택.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이다 유더를 보았고, 기쁨과 약간의 노여움이 뒤섞인 유더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야, 정령왕이잖아. 정령왕. 사람이 아니라구.’

코델리아의 눈빛에 유더는 미간을 좁히더니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코델리아는 애써 웃음을 참았다.

대신 아름답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정령왕을 마주하였다.

“그리하겠습니다. 폭풍과 번개의 왕이시여.”

라이카 왕녀에게 살짝 미안한 감도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정령왕이 자신을 택한 것을.

[지금 이 순간, 맹약은 이루어질 것이다.]

똑같이 미소로 답한 정령왕은 거인에서 아름다운 소년의 형상으로 모습을 바꾸더니 코델리아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맞추었다.

[나의 계약자, 나의 소녀여.]

정령왕의 속삭임.

하지만 모두에게 전해진 말.

코델리아는 슬쩍 유더 쪽을 보았고, 예상한 그대로의 얼굴에 어설픈 미소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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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0장 - 검무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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