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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231화 (231/473)

< 제83장 - 성십자 수호단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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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생크루트 수도원은 약 300명의 성십자 수호단원들이 체류하고 있었다.

“계속 이곳에만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생크루트 수도원을 거점으로 하여 대륙 곳곳으로 파견을 나가니까요.”

마누엘은 신이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덕분에 수도원에 도착할 때까지 심심할 새가 없던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지부장님께서는 지금 출타중이시지만 내일 돌아오실 겁니다. 그러니 오늘은 편안히 환영회를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환영회요?”

“네, 환영회. 수호단의 영웅들께서 오셨는데 당연히 환영회를 열어야지요. 그렇지 않나?”

마누엘이 동의를 구하듯 주변을 돌아보자 단원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목소리들을 높여댔다.

“당연하지.”

“당연하고 말고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약간의 광기까지 엿보이는 그들의 시선에 흠칫한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유더의 소매를 잡아당겼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몸으로 살짝 가리며 마누엘에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기대가 되네요.”

“흐흐,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마누엘이 흥에 겨워 웃자 나머지 단원들도 따라 웃기 시작했고, 코델리아는 유더의 소매를 조금 더 꽉 붙잡았다.

그리고 약 삼십 여분 뒤.

번잡한 교역도시를 나와 교외에 위치한 생크루트 수도원에 도착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로 된 생크루트 수도원 입구에 얼핏 세어도 삼백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그러니까 수도원에 상주하는 수호단원 전원으로 보이는 인원들이 도열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이사이에는 커다란 성십자 수호단의 깃발을 든 기수들까지 있어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설마?”

“예, 그 설마입니다.”

코델리아의 물음에 마누엘은 다시 웃었고, 의혹은 현실이 되었다.

“성십자 수호단의 이름으로 두 영웅을 맞이합니다.”

선두에 서 있던 여인이 예를 표하자 희고 검은 정복을 걸친 수호단 전원이 똑같이 예를 표하였는데, 그 모습이 실로 장관이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유더의 소매를 당겨댔다.

기쁜 것과 별개로 작금의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였다.

[유더야, 유더야. 쟤네 왜 저래.]

[우리가 그 정도의 일을 해냈으니까?]

[어?]

[생각해 봐.]

그동안 우리가 뭘 했는지.

어떤 일들을 해냈는지.

세간에는 호국공의 음모를 저지한 정도만 알려져 있었지만, 성십자 수호단의 시선으로 보면 유더와 코델리아의 활약은 겨우 그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우리가 잡은 마인이 몇인 거 같아? 부숴버린 지옥의 문이랑.]

[아? 아아아?]

악마의 손이든 눈이든 성십자 수호단이 보기에는 죄다 때려잡아야 할 악마 추종자들이었다.

그런데 유더와 코델리아가 지금까지 쓰러트린 마인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았다.

솔루지아가 지휘하는 북부 지부는 유더와 코델리아 때문에 중하급 마인들의 씨가 마른 상황이었고, 악마의 눈 역시 유더와 코델리아가 개입된 야생의 땅의 사건으로 수십에 달하는 중하급 마인들을 잃고 말았다.

거기다 지옥의 문.

유더와 코델리아는 지옥의 문을 무려 두 개나 파괴한데다가 최상급 마인으로 각성할 것이 거의 분명했던 호국공을 저지했다.

더욱이 그 과정에 성십자 수호단의 이름을 열심히 팔아댄 덕분에 수호단의 이름이 높아진 상황이었다.

“수호단의 귀감.”

“수호단의 영웅들.”

“영광을 수호단에 돌린 겸손한 이들.”

마지막 평가는 오직 수호단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사실 수호단이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딱히 해준 게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오직 수호단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몇 가지 요소가 더해졌다.

“란디우스 님의 제자.”

“미래에 성십자 수호단을 이끌 재목.”

“카마엘 님이 눈여겨 보시는 인재들.”

란디우스는 성십자 수호단 소속이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수호단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수호단의 여섯 단장들 가운데 수장격인 카마엘의 전우.

지금 이 순간에도 악마 추종자들을 때려잡고 계신 수호단의 영웅.

그런 란디우스가 유더의 스승이었으니 자연 성십자 수호단 내에서 유더의 입지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지는, 정말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천사님이셔.”

“진짜 천사님.”

“코델리아 님 완전 천사!”

그랬다.

성십자 수호단은 애당초 천계에서 강림한 천사들- 선신들을 모시는 교단들의 잔존 세력이 모여 만들어진 집단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천사는 단순한 신의 사자가 아닌, 신앙의 대상이었다.

때문에 성십자 수호단 내에는 성천사 레나를 숭배하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이제 그들에게 숭배해야 할 대상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성천사 코델리아.

얼굴도 마음도 모두 아름다운 우리들의 천사님.

한쪽은 수호단 최강의 영웅의 제자였고, 다른 한 쪽은 숭배의 대상인 천사였다.

그런데 그 둘이 연달아 엄청난 공적들을 세웠다.

이쯤 되면 이런 종류의 환영식을 하지 않는 쪽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연회를 준비해뒀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마누엘에 이어 삼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인이 유더와 코델리아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생크루트 수도원에서는 두 번째로 높은 직위를 가진 상급 단원 카르멘이었는데, 오랜 세월 권각술을 익혀온 신격권의 달인이었다.

또한 그녀는 수호단의 여섯 단장들 가운데 하나인 파사권 타이번의 제자였는데, 동문에서 수학한 남편과의 사이에 딸을 하나 두고 있었다.

취미는 뜨개질이었고 권각술 이외의 특기는 성가 부르기였으며, 최근 고민은 출장이 잦다보니 딸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적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시시콜콜한 사실들을 유더와 코델리아가 알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그래서 말이죠오······.”

술에 진탕 취한 카르멘이 다시 말을 이었고, 마찬가지로 진탕 취한 코델리아가 뺨을 붉히며 웃었다.

“에헤헤, 그래써요?”

성십자 수호단.

흔한 오해 중에 하나가 성십자 수호단을 ‘수도사’들의 집단으로 여기는 것이었는데, 현실은 전혀 달랐다.

현실의 수호단은 신께 모든 것을 바친 금욕적인 수도사들이 아닌 악마 추종자들과 평생 싸워나갈 것을 각오한 ‘전사들’의 집단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수호단의 근본 자체가 과거에 존재한 여러 교단들인 만큼 전반적으로는 신을 모시는 집단다운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어디까지나 전반적으로 말이다.

“부어라!”

“마셔라!”

수도원에서 직접 담근 독한 과일주들을 진탕 마신 수호단원들이 차가운 돌바닥 위를 뒹굴었고, 아까부터 코델리아와 주거니받거니하던 카르멘은 어느새 바닥과 열렬한 입맞춤을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이 와중에 홀로 맨정신을 유지한- 생명의 구의 재생력과 환골탈태한 육신의 막강한 해독력 덕분에 전혀 취하지 않은 유더는 눈앞의 광경을 한 마디로 표현했다.

“개판이군.”

말 그대로 개판.

술이 떡이 된, 적어도 백 명 이상의 수호단원들과 그런 수호단원들을 수습 중인 수도사들.

이쯤 되니 환영회는 그저 핑계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냥 지들이 마시고 싶었던 거 아니야?’

다만 이렇게까지 대규모로 진탕 마실 명분이 필요했을 뿐.

유더의 두 눈에 의심의 빛이 실린 그때였다.

“흐에, 흐. 흐에에에. 술 떠러졌다. 히히.”

바로 곁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유더는 고개를 돌렸다.

“코델리아, 괜찮아?”

“응? 어, 응. 갠차나. 완존 갠차나.”

빨개진 얼굴로 에헤헤 웃은 코델리아는 알딸딸한 눈으로 유더를 보더니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유더야, 유더야, 나 술 세지이?”

“그러게, 제법 세네.”

같이 마신 카르멘이 바닥과의 합일을 추구 중인 반면 코델리아는 그래도 앉아서 말을 하고있었으니까.

“히히히, 나 술 완전 세. 존나 세다구.”

“그래, 그래. 우리 코델리아 술 잘 마신다.”

“응응. 나 술 세. 술 맛 조아. 힝힝”

두 손으로 자기 뺨을 감싼 코델리아는 그대로 눈을 감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뜨며 말했다.

“어, 유더다. 우리 유더다. 히히, 우리 유더야. 우리 유더라구우?”

“음.”

얘도 맛이 갔구나.

그래도 귀여우니 괜찮겠지.

잠시 코델리아를 감상(?)하던 유더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더야?”

“이제 그만 들어가자.”

“들어가?”

“방에 가야지.”

“아, 방. 어, 방. 응, 방. 아나줘.”

“예이, 예이, 알아 모시겠습니다.”

유더는 코델리아를 번쩍 안아든 뒤 짐을 풀어둘 때 들렀던 숙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히히히, 에로 엘프들 히히. 내가 이겼지롱.”

대체 뭘 이겼다는 걸까.

그리고 에로 엘프라니?

“내가 이겨써. 내가. 내가 이겼다구요?”

“그래, 네가 이겼어. 우리 코델리아 최강이에요. 무적이에요.”

“응응, 완존무저쿠!”

횡설수설하는 코델리아가 떨어질까 두려워 조금 더 세게 끌어안은 유더는 발걸음을 좀 더 서둘렀다.

빨리 눕혀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방안.

이러나저러나 수도원인 터라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한 쪽 구석에 자리한 화로와 두껍게 깔린 카펫 덕분에 아늑한 느낌을 주는 숙소에 도착한 유더는 바로 침대 위에 코델리아를 눕혔다.

‘씻기는 건··· 내일 해야겠다.’

지금은 그냥 재우는 수밖에.

“잘 자, 코델리아.”

어느새 눈을 감고 옹알이를 시작한 코델리아에게 이불을 잘 덮어준 유더는 그대로 방을 나서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코델리아가 유더의 소매를 붙잡았다.

유더를 멈춰 세우더니 그대로 힘껏 잡아당겼다.

“코델리아?”

얼결에 침대에 앉게 된 유더는 코델리아를 돌아보았고, 코델리아는 촉촉이 젖은 눈으로 유더를 바라보더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돌연 유더를 노려보며 말했다.

“야.”

“어?”

“너 나빠.”

“응?”

“너 나쁘다구. 완존 나쁜 노미야.”

이건 또 갑자기 무슨 소리일까.

유더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말해보았다.

“맨날 1등만 해서?”

“우씨, 그거 말고! 그것도 나빴지만. 마니마니 나빴지만 그거 말구.”

그럼 대체 무엇일까.

유더가 고민하는 얼굴이되자 코델리아는 답답하다는 듯 자기 가슴을 마구 때리더니 다시 유더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권.”

“어?”

“소원권! 소원건 언제 쓸 거냐구우! 언제!”

왕도를 떠난 지 벌써 열흘이 넘은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애당초 소원권 이야기가 나왔던 무투회까지 따지면 거의 한 달 가까이가 지난 판국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아직이었다.

아직도였다.

“언제 쓸 건데에! 언제에!”

아니이! 대체 왜 안 쓰는 건데!

소원권 가져갔으면 좀 쓰라구! 좀!

막 이것저것 요구 좀 해보라구!

유더의 멱살을 붙잡고 흔들던 코델리아는 그대로 축 늘어지더니 유더의 가슴을 머리로 툭툭 치며 말했다.

“빠리 써어··· 빠리······ 뭐든 조흐니까아.”

너 나 좋아하잖아.

응?

좋아하지?

뒷말을 삼킨 코델리아는 다시 고개를 들어 유더를 보았다.

촉촉이 젖은 두 눈에 약간이지만 원망이 어리자 유더는 입술을 한 번 움츠리더니 코델리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 코델리아.”

“응.”

“어차피 너 취했으니까 솔직히 말할게.”

“으응.”

저도 모르게 긴장한 코델리아는 흠칫 하더니 마른 침을 꿀꺽 삼켰고, 유더는 슬쩍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 뭐랄까··· 소원권으로 그런 걸 요구하는 건 좀··· 그렇잖아?”

“어?”

“아니, 그런 거.”

유더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민망해했고, 그 모습에 코델리아는 똑같이 얼굴을 붉혔다. 취한 와중이었지만 새삼 민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소원권은 다른 곳에 쓸 게. 그래도 괜찮지?”

“으응··· 갠차나.”

“그래.”

그럼 이제 코 자자.

유더는 코델리아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어 준 뒤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지만 무리였다.

코델리아가 유더의 손을 다시 붙잡았기 때문이다.

“코델리아?”

“아니이··· 그건 그거구······.”

“어?”

“그건 그거구우······.”

말꼬리를 흐리던 코델리아 다시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유더를 보았고, 유더는 결국 작게 웃고 말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발갛게 달아오른 코델리아의 뺨을 어루만져주었다.

그러자 코델리아는 유더의 커다란 손에 얼굴을 기대더니 이내 다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키스는 안 대. 첫 키스는··· 맨정신으로 할고야.”

전생현생 다 합쳐서 처음이었으니까.

술에 취한 지금은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더를 그냥 보내기도 싫었다.

그렇기에 코델리아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오늘만 해지.”

유더도 더는 묻지 않았다.

코델리아의 이마를 시작으로, 그녀의 바람을 이루어주었다.

&

다음 날 아침.

침대 위에서 눈을 뜬 코델리아는 생애 첫 숙취에 고통스러워하는 동시에 이불을 발로 차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기 위해 무진 노력을 하였다.

‘아우우우우우우!’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애석하게도 제법 기억이 났다.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입술 빼고 여기저기 키스해 달라고 조른 것까지 말이다.

“하우, 하우, 하우.”

새삼 다시 빨개진 얼굴을 진정시키기 위해 허우적거리던 코델리아는 눈을 꼭 감은 뒤 생각했다.

‘취한 척 하자.’

아니, 취하긴 진짜로 취했으니까.

그래서 기억이 안 나는 척 하자.

응, 그거야.

응응, 그거. 바로 그거지.

‘그래두.’

다시 어젯밤의 일을 떠올린 코델리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상상만 해도 부끄러울 지경이었지만 이상하게 자꾸 미소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이마, 뺨, 목, 쇄골 등등.

유더의 입술이 닿았던 곳들을 상기한 코델리아는 다시 심호흡을 크게 한 뒤 마구 두근대기 시작한 가슴을 열심히 진정시켰다.

“하우우.”

술이 웬수지.

고맙기도 하지만.

자기도 모를 말을 중얼거린 코델리아는 두 손을 다시 치운 뒤 한 번 길게 심호흡을 했다.

“좋아, 이제 일어나서 세수하고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 척을 하자.”

스스로에게 선언한 코델리아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 안녕.”

저만치 벽 쪽의 의자.

그 위에 어색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앉아 있는 유더.

“흐아아··· 나도 막 일어났네. 응, 막 일어났어. 그래서 아무 것도 못 들었지 뭐야. 아무 것도. 응.”

어느새 평소의 능글맞은 표정으로 돌아온 유더는 열심히 국어책 읽기를 하며 기지개를 켰고, 코델리아는 다시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한참을 그렇게 움직이지 못 했다.

&

“지부장님께서 두 분을 기다리십니다.”

< 제83장 - 성십자 수호단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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