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4장 - 생크루트 수도원 (코델리아 이모티콘 첨부) >
제84장 - 생크루트 수도원
솔라리의 문장이 새겨진 커다란 석관 앞에 도착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바로 뚜껑을 여는 대신 옆을 돌아보았다.
코델리아의 명을 받고 바닥에 납작 엎드린 9급 천사- 무덤의 수호자들이 참으로 복잡미묘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쟤들 입장에서는 지금 부당한 권력에 굴복당한 상태일 테니까. 아니, 그보다는 명령의 충돌 사이에서 갈등하는 건가.’
사실 무덤의 수호자들은 그렇게까지 지능이 높지 않았다.
지금처럼 무덤이나 봉인지 등등 한 곳에 붙박이처럼 붙어서 지키는 게 일인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지능이 높았으면 환장했겠지.’
평생 갇혀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어찌되었든 그런 무덤의 수호자들이다보니 여타 천사들보다 명령에 대한 순응도가 높았는데, 코델리아의 ‘꿇어.’ 명령 때문에 지금 내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석관에 접근하는 이들을 저지해야한다는 명령과 상급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명령이 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 거리는 무덤의 수호자들을 돌아본 코델리아가 빙긋 웃으며 눈빛을 보냈다.
‘내가 해결해볼게.’
‘아니, 말도 듣는 애들을 폭발시키는 건 좀······.’
‘야, 폭발시키는 거 아니거든? 물론 대부분의 문제는 폭발시키면 해결이 되지만.’
‘저기요?’
흠칫한 유더의 눈빛을 흥하고 무시한 코델리아는 흠흠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더니 무덤의 수호자들에게 말했다.
“무덤의 수호자들아, 나는 석관을 탐하러 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희를 오랜 임무에서 해방시켜주러 온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유더는 일단 잠자코 듣기 위해 팔짱을 꼈고, 무덤의 수호자들은 미심쩍은 눈으로 코델리아를 보았다.
코델리아가 계속 말했다.
“너희는 이미 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임무를 잘 수행하였다. 이 정도면 이제 충분한 셈이지. 하지만 이 석관이 남아 있는 한 너희는 임무에서 해방될 수가 없다. 너희의 임무는 이 석관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덤의 수호자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더는 설마하는 눈으로 코델리아를 보았고, 코델리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 무덤의 수호자들이여, 상급자인 내가 석관을 열고 그 내용물을 회수해 너희를 임무에서 해방시켜 주겠다. 지킬 석관이 없어지면 너희의 임무 역시 소멸하니 말이다. 나는 그래서 이곳에 온 것이다. 너희를 해방시켜주기 위해.”
[오오오.]
무덤의 수호자들은 낮게 감탄하더니 훨씬 편안해진 얼굴로 유더와 코델리아를 바라보았다.
얼른 가져가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들이었다.
‘흥흥흥, 어때? 응?’
코델리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묻자 유더는 작게 웃었다.
‘참 초지일관이구나. 사람이 정말 곧아.’
‘응?’
석관이 없어지면 지킬 게 없어지니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
다리와 엔디미온과 눈의 여왕 등등.
야생의 땅에서 코델리아가 주장했던 여러 개소리들을 떠올린 유더는 따뜻한 눈으로 코델리아를 바라보았고, 어쩐지 기분이 나빠진 코델리아는 입술을 삐쭉였다.
‘어떠냐니까 그러네.’
‘좋아, 정말 좋아. 정말 잘했어. 일취월장이네.’
‘그치? 그치그치?’
속이 까매졌다는 말에 만족한 코델리아는 에헤헤 웃더니 다시 석관을 보았다.
“아무튼 그럼 이제 열자.”
“그래.”
유더는 단번에 힘을 줘 석관 뚜껑을 밀어냈다.
그러자 순간 석관 안에서 하얀 빛이 솟구치더니 그대로 코델리아의 가슴에 빨려 들어갔다.
“코델리아?”
“어? 어. 신성력. 솔라리의 신성력.”
생명의 신전에 남아 있던 천계의 기운을 흡수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성기사 갈레온의 무덤을 열 당시에는 아직 인간이었던 터라 신성력을 흡수하지 못 했지만, 지금은 천사이기에 신성력을 흡수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아······.”
눈을 감고 신성력을 온전히 흡수한 코델리아는 석관에 살짝 몸을 기대며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역시 난 솔라리 계열의 천사가 맞나봐. 클라우 솔라스 때도 그렇고··· 솔라리의 신성력 쪽이 흡수가 편하네.]
선조회귀로 천사가 된 코델리아의 계열을 결정하는 것은 역시 조상의 피였다.
체이스 가문의 선조는 솔라리의 천사였던 모양이다.
[아무튼 잘 됐네. 천사의 힘이 좀 더 강해진 거지?]
[어, 등급이 오를 정도는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다 강해졌어.]
코델리아는 새삼 광익을 파닥거리더니 이내 주먹을 꽉 쥐었다.
[좋아, 그럼 마저 꺼내자.]
[응.]
석관 안에 든 것들은 갈레온의 무덤에서 나왔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삼각형 모양의 석판 하나와 솔라리의 성창 한 자루, 여성이었던 베스파가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용 갑옷이 한 벌.
유더가 석판을 챙기는 동안 솔라리의 성창을 집어든 코델리아는 무척이나 아련한 눈이 되어 말했다.
[솔라리의 성창 생각나지?]
[어? 어, 생각나지.]
그걸로 거친눈사태의 바위산을 무너트렸으니까.
지금도 눈을 감으면 주저앉은 채 통곡하던 거친눈사태의 작은 등이 떠오르는 유더였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른지 성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역시 지나고 나면 뭐든 다 추억이구나.]
아닌데.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거친눈사태 이야기도 들어봐야 할 거 같은데.
아무리 코델리아에게 콩깍지가 씌인 유더였지만 방금 발언까지 동의해줄 수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산통을 깨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잘 지내려나.’
아장아장 걷던 거친눈사태.
야생의 땅에서 이별한 것도 벌써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뭐, 잘 지내겠지.’
황금의 용왕도 깨어났으니까.
아마 지금쯤 야생의 땅을 복구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지 않을까.
여러 부족들이 함께 모여 사는 대도시 건설도 그렇고.
‘이번 일이 끝나면 제국에 가기 전에 잠시 들러보는 것도 좋겠네.’
마음을 정한 유더는 여전히 성창을 끌어안은 채 혼자만의 추억에 빠져든 코델리아를 뒤로하고 마지막 내용물인 갑옷을 꺼내들었다.
‘체인메일인가?’
굉장히 얇은 사슬들로 만들어진 체인 메일이었는데 그 재질이 심상치가 않았다.
일단 가벼운 것도 가벼운 것이었지만 금속 자체가 마력을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스릴?’
오직 드워프들만이 채굴할 수 있다는 환상의 은.
애당초 얇다보니 타격기에는 약했지만, 대부분의 베기 공격은 막아낼 수 있는 물건이었다.
기본적인 항마력도 강했고 말이다.
[이건 너 입으면 되겠다.]
[유더 너는?]
[방검 목적이라면 이미 소드 오리진이 있으니까 괜찮아.]
맞는 말이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코델리아는 성창과 체인메일을 공간 확장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석판.’
다음 석판의 위치를 확인한 유더는 기억의 궁전에도 확실히 기억해둔 뒤 코델리아에게 석판을 넘겼다.
[좋아, 그럼 대강의 용무는 끝난 셈인가?]
[응, 이제 얘들만 처리하면 돼.]
고개를 끄덕인 코델리아는 기대 어린 눈으로 이쪽을 보는 무덤의 수호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임무를 다 하였다. 하지만 천계로 귀환할 길이 막힌 지금 너희를 방치하는 것은 안 될 말이겠지. 그러니 너희에게 새로운 임무를 내리겠다.”
코델리아의 말에 무덤의 수호자들은 짜증을 내기는커녕 기대하는 얼굴들이 되었다.
이러나저러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태어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위로 가자꾸나. 솔라리님의 뜻을 이어받고 있는 인간들을 소개시켜줄 터이니 그들과 이 땅을 지키거라.”
[그리하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무덤의 수호자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답하자 코델리아는 다시 유더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때?’
이만하면 깔끔하지?
석판도 얻고 무덤의 수호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도 주고.
유더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더욱 신이 난 코델리아는 흥흥 거리며 무덤의 수호자들을 이끌었다.
&
유더와 코델리아를 마주한 마누엘은 깜짝 놀라 눈을 껌벅였다.
코델리아가 천사라는 사실 자체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저 아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아아, 천사님······.”
마누엘이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기도하자 코델리아는 거룩한 얼굴로 말하였다.
“마누엘이여, 네 죄를 사하노라.”
“아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마누엘은 다시 한 번 엎드려 절하였고, 유더는 코델리아에게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죄라니?]
[아니, 그냥. 분위기 좀 타서.]
에헤헤 웃은 코델리아는 다시 마누엘을 일으켜 세운 뒤 정황을 이야기했다.
“봉인되어 있던 천사님들을 발견하신 겁니까?”
“예, 9급 천사인 무덤의 수호자들입니다. 앞으로 생크루트 수도원을 수호할 겁니다.”
“오오오······.”
베스파의 무덤에 관한 이야기는 일부러 빼놓았다.
내용물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치?’
‘그···렇긴 하지.’
아마 유더 자신도 그렇게 이야기했을 테니까.
하지만 코델리아가 언제 이렇게 속이 까매진 것일까.
혹시 유더 자신이 뭔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러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지부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함께 가시지요.”
“예, 알겠습니다.”
마누엘의 말에 유더가 답한 그 때, 코델리아가 돌연 유더의 소매를 잡아당기더니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유더야, 유더야.]
[왜?]
[지금부터 지부장 만나서 이야기할 거잖아?]
[그런데?]
[나한테 생각이 하나 있거든?]
[생각이라니?]
[지부장을 효과적으로 설득할 방법에 대한 생각.]
지금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하지만 최근 급격한 성장을 보인 코델리아였다. 어쩌면 뭔가 묘수를 짜낸 것일지도 몰랐다.
[뭔데?]
[그러니까······.]
코델리아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유더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더 자신이 하려던 짓과 똑같은 일을 코델리아가 생각해냈기 때문이다.
[근묵자흑··· 포텐이 터진 건가?]
[응?]
코델리아는 천사답게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고, 유더는 어쩐지 모를 죄악감 속에 고개를 끄덕였다. 코델리아의 계획을 긍정해주었다.
&
성십자 수호단에는 일곱 명의 단장이 존재했다.
수호단 전체를 이끄는 수호단장과 그 휘하에서 활동하는 여섯 명의 단장들.
검귀 카마엘을 비롯한 여섯 단장들은 기본적으로 전투요원들이었기 때문에 한 곳에 정착하는 일이 드물었다.
대륙 곳곳을 누비며 악마 추종자들과 싸우는 것이 여섯 단장들의 임무였기 때문이다.
물론 여섯 단장들 가운데 최고령자인 하이 엘프 엘사리온 프라임처럼 수호단 본부에 남아 수호단장과 본부를 지키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수호단의 지부를 이끌고 지키는 것은 각지의 지부장들이었다.
성투사 하이네.
생크루트 수도원을 이끄는 신격권의 달인.
올해 서른넷인 그녀는 지부장들 중에서도 젊은 편에 속했고, 수호단의 젊은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유더와 코델리아- 일명 환상의 커플에게 무척이나 호의적이었다.
“이 안에··· 악령이 깃들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답한 유더는 지부장의 책상 위에 올려둔 황금 목걸이를 노려보았다.
악명높은 용병대장이었던 가모르 칸의 영혼이 봉인된 목걸이.
하이네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자 코델리아는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사악한 악령이에요. 이미 저희에게 이실직고 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말을 늘어놓을지도 몰라요.”
가모르 칸이 사실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의 수하이고, 말레키스가 깨어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강의 이야기를 전달한 코델리아는 더 길게 끌 것 없이 목걸이에 걸어두었던 봉인을 풀어 가모르 칸을 불러내었다.
[아아아아아-!]
목걸이에 달린 보라색 보석에서 괴성이 울리는가 싶더니 이내 새카만 연기가 치솟아 사람의 형상을 갖추었다.
악령인 가모르 칸의 본체였다.
“가모르 칸! 이전에 이야기했던 것을 지부장님 앞에서 다시 한 번 이야기해라!”
유더의 명령에 가모르 칸은 인상을 찡그리며 답했다.
[이야기라니? 지금 처음 풀어줘 놓고 무슨 이야기를 말이냐!]
“역시 시작부터 장난질이구나!”
[아니, 애당초 지금 처음······.]
“어허! 네가 말레키스의 부하라는 사실을 지난번에 이미 밝히지 않았더냐!”
[헉? 그, 그걸 어떻게?]
유더의 지적에 가모르 칸은 진심으로 놀랐다.
아니, 여기서 말레키스의 이름이 어찌 나온단 말인가.
가모르 칸이 눈에 띄게 당황하자 코델리아가 끌끌끌 혀를 차며 말했다.
“네가 말해줬으니까 알지. 저번에 다 알려줬잖아. 네가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의 수하이고, 네 동료로는 다크엘프 사령술사 시실리아와 타락한 드워프 마두르스가 있다는 사실도 말이야.”
코델리아의 말에 가모르 칸은 깜짝 놀라 무어라 반박도 하지 못 했다.
전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런 것도 이야기해줬어. 건국왕이신 리차드 D 세일룬께 패해 남해의 바다에 처박힌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가 부활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부활하면 남부를 초토화시킬 계획이라고 말이야. 네 역할은 말레키스의 군대를 이끄는 선봉장이고. 엄청 자랑스럽게 얘기했잖아.”
[아니, 아니이.]
가모르 칸으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자신을 붙잡은 이상 뭔가 심문 같은 것을 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 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말레키스는 물론이고 시실리아와 마두르스까지.
그걸 너희가 왜 아는데?
아니, 어떻게 아는데?
“시치미 떼지 말고 그냥 말해. 지부장님한테 다 솔직하게 말하라구. 이미 우리한테 한 번 다 말한 거잖아”
코델리아의 재촉에 가모르 칸은 자기 가슴을 마구 두드리며 항변했다.
[나는 아무 것도 말한 적이 없단 말이다!]
“그럼 우리가 이걸 다 어떻게 아는데? 엉? 네가 알려줬으니까 알지! 건방진 시실리아를 확 덮치고 싶은데 말레키스 애인이라 참고 있다는 말까지 했잖아!”
[내, 내가 언제!]
가모르 칸은 극도로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오래 전부터 홀로 품어왔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서, 설마 진짜인가?’
가모르 칸 자신이 이 둘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은 걸까? 무언가 마법 같은 것에 걸려서?
그런 게 아니고서야 절대로 알 수 없는 정보들이었으니 말이다.
가모르 칸의 얼굴에 혼란의 빛이 어리자 유더는 씩 웃으며 이야기의 흐름에 박차를 가했다.
“가모르 칸, 넌 지금 처음 풀려났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번이 두 번째야. 아무래도 지난번에 우리가 사용한 신성마법의 여파로 기억을 잃은 모양이구나.”
[그, 그런가?]
가모르 칸이 저도 모르게 답하자 코델리아는 속이 까만 미소를 지으며 얼른 따라붙었다.
“그렇고말고. 사실 지금도 그때 사용한 마법을 똑같이 사용할 수 있어. 그야말로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을 네게 선사할··· 차라리 죽여달라고 네가 울부짖게 될 그런 마법이지. 그래서 네가 그때 우리한테 그랬거든. 전부 말해줄 테니까 다음에는 제발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혹시라도 자기가 기억을 잃어버려서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이걸 이야기해서 납득시키라고 말이야.”
[이, 이거?]
“어, 이거. 네가 다른 얼티메이트 시리즈들을 찾고 있는 건 사실 말레키스 때문이라는 거. 얼티메이트 쓰리- 전설의 용살검 아스카론이 네 목표지? 여차했을 때 말레키스의 뒤통수를 칠 수 있어야 하니까.”
코델리아의 막타에 가모르 칸은 악령 주제에 하얗게 질린 얼굴이 되었다.
이번에도 전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저, 정말 내가?]
“어, 네가. 지금 막 가슴이 쑤시지? 머리는 기억 못해도 몸이 기억해서 그럴 거야. 저번에 사용한 신성마법은 가슴부터 시작했거든.”
[그,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가슴이 막 쑤시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제는 정말 가슴이 아파왔다.
[끄으윽······.]
아무래도 눈앞의 년놈들이 말하는 게 모두 사실인 모양이었다.
기억의 상실과 그 사이에 있었던 실토 등등.
‘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 거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저런 것들까지 전부 털어놓을 정도라니.
열심히 기억해보려 노력했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유더와 코델리아가 말하는 과거의 고통은 미증유의 공포가 되었고, 공포는 다시 고통이 되어 가모르 칸의 가슴을 압박해왔다.
[크으윽······.]
가모르 칸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자 유더는 무척이나 차가운 얼굴로 매섭게 말했다.
“가모르 칸, 하이네 지부장님께 다시 한 번 네가 알고 있는 것들을 낱낱이 고해라. 하나라도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것과 다른 것이 있다면 다시 한 번 극한의 고통을 안겨주겠다.”
유더의 말에 흠칫한 가모르 칸은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듯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하, 하지만 난 기억이 사라져서 너희에게 무어라 말했는지를 온전히 기억하지 못 하는데······]
“그건 네 사정이고.”
“그리고 아는 대로 다 말하면 되지 않아? 지난번에 다 말했는데 이번에는 부족한 것이 있다면··· 알지?”
유더에 이어 추격타를 가한 코델리아는 씩 웃으며 오른손에 신성력을 모았고, 가모르 칸은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아, 악마 같은 놈들······.]
심문에도 상도의가 있는 법이거늘.
하지만 가모르 칸의 항변 따위 가볍게 무시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얼른 말이나 하라는 듯 턱짓을 했고, 가모르 칸은 하이네 지부장 앞에서 자신이 아는 것들을 모조리 털어놓기 시작했다.
‘오호, 저런 정보도 있었구나.’
‘게임에 전부 다 나오는 건 아니었으니까.’
본래라면 알 수 없었을 시시콜콜한 정보들까지.
물론 너무 시시콜콜하다보니 쓸모 없는 정보들도 제법 되었지만, 적어도 눈앞의 하이네 지부장을 설득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정보들이었다.
“좋아, 지난번하고 얼추 비슷하네.”
[휴우······.]
코델리아의 선언에 안도의 숨을 토한 가모르 칸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황금 목걸이 안에 들어갔다.
어차피 도망도 못 칠거 추궁이나 더 당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후훗, 문제 해결.”
아주 작게 중얼거린 코델리아는 다시 황금 목걸이를 봉인한 뒤 하이네 지부장에게 말했다.
“지부장님, 지금 들으셨겠지만 말레키스는 실존하는 위협이에요. 그러니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만 해요.”
말레키스는 악마나 악마 추종자가 아니었지만, 인류를 위협하는 거대한 악임에는 분명했다.
“일단 카마엘 님과 연락할 수단이 필요합니다. 준비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유더의 물음에 하이네 지부장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남부에서 카마엘 님을 찾으실 수 있도록 저희 쪽 인원을 파견하도록 하겠습니다. 수호단 본부에도 이 사실을 알리도록 하고요.”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런데 하이네는 여기에 한 술 더 보태기까지 하였다.
“혹여 제가 더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다른 이가 악령 하나를 붙잡아 와 지금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면 믿지 않았을 하이네였다.
하지만 악령을 잡아온 것이 다름 아닌 유더와 코델리아였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가모르 칸의 이야기에도 신빙성이 넘쳐났고 말이다.
생크루트 수도원 지부장의 조력.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다는 그녀.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를 돌아보았고, 속이 까만 눈빛을 나누었다.
이심전심 할 것도 없이 둘은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하이네 지부장님.”
“네, 유더 님.”
“생크루트 수도원에도 무기고가 있겠죠?”
보물고라든가.
유더의 물음에 하이네 지부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코델리아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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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4장 - 생크루트 수도원 (코델리아 이모티콘 첨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