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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235화 (235/473)

< 제85장 - 카이사 오펀드 >

제85장 - 카이사 오펀드

영웅전기2를 대표하는 짐승녀 캐릭터는 코델리아가 아니었다.

원작의 코델리아는 짐승이나 야생 같은 단어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청초하고 가녀린 소녀였으니 말이다.

카이사 오펀드.

영웅전기2의 진정한 짐승녀.

남부의 야생마.

바다의 늑대.

참수마녀.

오펀드의 괴물.

명문가의 금지옥엽, 그것도 십대 소녀에게 붙기에는 흉악한 단어들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카이사 본인까지도 이러한 별명들을 부정하지 못 했다. 아니, 오히려 납득하고 즐기는 쪽에 가까웠다.

“전부 사실이니까.”

남부7가문 가운데 하나인 오펀드 가문에는 왕가나 북부12가문이 그러하듯이 고대의 존재들로부터 유래한 신성한 피가 흘렀다.

그런데 문제는 그 피의 시작점이 되는 존재가 평범한 천사나 신이 아닌 짐승이라는 사실이었다.

탐랑 펜릴.

본래 지옥에서 태어난 마수였지만 태양신 솔라리의 고결함에 감화되어 신수로 다시 태어난 고대의 존재.

신수 펜릴은 솔라리 교단에 속해 있던 성녀 소피아 오펀드와 종족을 초월한 사랑을 나누어 많은 자식들을 보았는데, 작금의 오펀드 가문은 그 펜릴의 후예들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고대의 존재, 그것도 신수인만큼 펜릴은 단순한 늑대가 아니었다.

라이칸슬로프 로드.

늑대인간의 왕.

어찌되었든 신수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은 오펀드 가문에는 때때로 발생하는 격세유전 덕분에 평범한 인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힘이나 이능을 타고난 존재들이 태어나고는 했다.

“이번 대에는 그게 카이사였다는 이야기지.”

카이사의 능력은 무척이나 간단하고 심플했다.

강인한 육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신체능력.

열한 명이나 되는 영웅전기2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들 가운데서 힘이 가장 강한 것은 카이사였고, 몸이 가장 날랜 것 역시 카이사였다.

“몸도 무진장 튼튼해서 병에 안 걸리는 건 물론이고 독 같은 것도 안 통할 지경이니까.”

그야말로 강철의 육체.

물론 그렇다고 피부가 철로 되어 있다거나 유더처럼 손발로 창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지막지한 해독능력과 좀비 같은 내구성을 지닌 것만은 사실이었다.

“카이사의 유일한 단점은 체력.”

영웅전기담에서 카이사가 3분 요리 혹은 조루라 불리는 이유는 단순했다.

폭발적인 신체능력을 감당하지 못한 육체가 금방 뻗어버렸기 때문이다.

“엔진 출력은 엄청난데 가성비도 엄청 안 좋은 스포츠카라는 느낌?”

한 번 날뛰기 시작하면 짐승 그 자체였지만 에너지 소모도 엄청났기에 카이사가 전력을 다해 싸울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3분 남짓에 불과했다.

그 이상이 지나버리면 문자 그대로 격렬한 배고픔 때문에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는 카이사였다.

“물론 전력을 다하지 않고 좀 아껴가며 싸우면 더 버틸 수 있지만.”

이러나저러나 단련된 무인인데다 막강한 신체능력이 있는 만큼 기본적인 체력 자체는 좋은 카이사였다.

“그저 연비가 엄청나게 안 좋을 뿐이지.”

아무튼 그런 카이사.

영웅전기2편의 야생을 책임지는 짐승녀.

흑발을 휘날리며 해적들을 사냥하는 오펀드 가문의 사냥개.

이제 그녀와 마주해야 할 시간이었다.

&

생크루트 수도원을 떠나고 이틀.

코델리아는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짜증나.’

말을 오래 타서 지친 것이 아니었다.

레벨이 높은 만큼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여간한 여기사들 이상의 체력을 가진 코델리아였으니 말이다.

‘짜증나.’

노숙이 힘든 것도 아니었다.

전생의 기억을 각성한 이후 길바닥에서 잔 날이 침대 위에서 잔 날과 엇비슷했으니까.

눈보라 몰아치는 설원이나 좁아터진 바위 틈바구니에서 잠을 청해야 했던 야생의 땅과 비교한다면 작금의 노숙은 5성급 호텔이나 다름이 없었다.

‘짜증나.’

그래도 짜증이 났다.

옆에서 마누엘이 끝도 없이 수다를 떠는 것쯤은 참을 수 있었다. 가만히 듣다보면 은근히 재미있기도 했고 말이다.

카르멘의 딸과 남편자랑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쪽 역시 유더 자랑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서 오히려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식사?

2인분을 만들든 11인분을 만들든 유더는 유더였다.

요리의 질 역시 만족스러웠다.

‘짜증나.’

잠자리, 식사, 길동무.

여행의 세 가지 요소 가운데 단 하나도 불만스러운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델리아는 입술을 삐쭉 내민 채 툴툴거릴 따름이었다.

시간이 나지 않았으니까.

유더와 둘만의 시간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우씨.’

일단 일행은 급히 남부로 가는 중이었다.

즉, 중간에 느긋하게 쉬어가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물론 말을 쉬어줘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몇 번씩 멈춰서기는 했지만, 행군 중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 쪽에 가까웠기에 일행은 항상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으으으.’

둘, 마누엘과 카르멘은 눈치가 없었다.

달리아와 마이아처럼 알아서 센스 있게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배려 역시 없었다.

마누엘은 천사님천사님 하며 코델리아 자신을 늘 쫓아다녔고, 카르멘은 아줌마답지 않게 코델리아 자신과 유더의 연애사에는 그리 흥미가 없었다.

아니, 그냥 자기 딸자랑 하는 걸 오지게 좋아했다.

‘히잉.’

불침번 시간도 노리기 어려웠다.

성십자 수호단이 이번 임무에 파견한 단원 수는 언제나처럼 아홉.

아홉이나 되었기에 불침번 순서가 잘 돌아오지 않았다.

애당초 유더나 코델리아에게는 불침번을 주려고도 하지 않았고 말이다.

‘끄으으.’

사실 둘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단 둘이서만 해야할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하지만 뭐랄까.

그래도 뭐랄까.

‘흐으윽.’

입 밖에 내기는커녕 상상하기도 부끄럽지만.

아무튼 뭐랄까.

그게 하고 싶다고 해야 할까.

그거 있잖은가, 그거.

하면 막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기분이 좋으면서도 막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거!

“흐아아.”

말이라도 같이 타면 좋을 텐데.

성십자 수호단은 왜 일인일말을 준비한 걸까. 말이 그렇게 넘쳐나나? 굳이 꼭 그래야만 했던 거니?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코델리아.]

[어? 어! 응!]

유더의 메시지 마법에 화색이 된 코델리아였지만 흠흠 헛기침을 토하더니 이내 평정을 가장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유더 쪽을 돌아보았다.

[왜? 무슨 일인데?]

[묘하게 반긴다?]

[아닌데? 그냥 평소랑 똑같은데? 막 반기는 거 아닌데?]

코델리아의 항변에 유더는 눈을 가늘게 떴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연기력 수업은 나중에 좀 더 하면 되겠지.]

[저기요?]

[아무튼 이제 슬슬 갈라져야 할 거 같아.]

[가, 갈라져?]

[어, 어차피 목적이 다르니까. 카르멘이랑 마누엘은 카마엘 찾으러 갈 거고, 우리 목적은 따로 있잖아?]

갈라지자는 말에 순간 흠칫했던 코델리아는 일단 후-하고 안도의 숨부터 토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우리 목적은 남부7가문의 문장이니까.]

남부7가문.

북부12가문과 마찬가지로 남부의 패권을 움켜쥔 일곱 개의 가문들.

다만 남부7가문과 북부12가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북부12가문이 서로 경쟁은 하더라도 유혈항쟁까지는 가지 않는 반면 남부7가문은 서로 만나서 피를 흘리지 않으면 그걸 더 이상하게 여길 정도였다.

패싸움은 한 달에 한 번, 결투는 일 년에 한 번.

물론 진짜로 저렇게 자주 다투지는 않았지만, 저런 말이 나돌 정도로 여차하면 서로간의 피를 보는 것이 남부7가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남부7가문이 한 때는 하나의 깃발 아래 똘똘 뭉친 적이 있었다.

드래곤 슬레이어 카를로스.

세일룬 왕국의 건국왕이자 불세출의 영웅이었던 라이온 D 세일룬과 어깨를 나란히 한 남부의 대영웅.

과거 남부를 일통한 그에게는 일곱 명의 가신들이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오늘날의 남부7가문이었다.

세일룬 왕국에 복속된 지금도 남부의 사람들은 드래곤 슬레이어 카를로스를 자신들의 진정한 왕이라 생각했고, 이는 남부7가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의 신물을 잇는 자가 너희의 주인이 될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던 드래곤 슬레이어 카를로스는 그 말을 남긴 뒤 홀연히 사라졌고, 그때부터 남부7가문은 카를로스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유혈항쟁을 시작했다.

[너도 알다시피 카를로스는 남부7가문에게 단서를 하나씩 남겼잖아?]

[응! 그래서 일곱 개의 단서를 모두 모으면 카를로스가 남긴 신물이 숨겨진 장소가 나온다는 거지?]

[맞아, 하지만 남부7가문은 서로 싸우느라 바쁘니 정보를 공유하지 못 했고··· 그렇게 삼백 년 가까운 세월동안 카를로스의 후계자는 등장하지 못 했지.]

여기까지만 말해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미 왕도에서 나눈 이야기였고 말이다.

스칼렛을 하필이면 남부로 보낸 이유.

[괴도 핑크폭탄이 나설 때라 이거지?]

[바로 그렇습니다.]

스칼렛과 함께 남부7가문을 털어서 단서를 모은다.

로그 마스터 자리가 걸린 승부라고 하면 스칼렛도 열심히 할테고 말이다.

[정말 좋은 친구야.]

[그러게.]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를 보며 하하호호 웃었고, 유더가 마저 말을 이었다.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와 싸우기 위해서는 남부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권위가 필요하고.]

[삼백 년이나 지났는데 카를로스의 징표가 있다고 남부7가문이 순순히 복종할까?]

[할 거야. 남부에서 카를로스는 신과 같은 존재니까.]

더욱이 말레키스라는 구체적인 위협이 존재한다면 일단은 손을 잡을 터이고 말이다.

[어찌되었든 사전 작업을 위해 들를 곳이 있어. 어딘지 알 것 같아?]

[잠깐, 잠깐만. 생각해 볼게.]

코델리아는 급히 손을 들어 유더를 만류한 뒤 끙끙 앓기 시작했고, 이내 짝 소리가 나게 손뼉을 치며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알았다! 카이사 말하는 거지?]

[정답.]

이러나저러나 남부에 비빌 언덕 하나 정도는 있어야만 했다.

더욱이 카이사는 플레이어블 캐릭터였으니 반드시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애당초 우리가 남부에 대해 아는 건 너무 적어. 남부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카이사 하나뿐이고, 그나마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 말레키스의 공격을 피해 남부를 탈출하는 시나리오였으니까.]

즉, 남부7가문을 제대로 털기 위해서는 현지인, 그것도 다른 남부7가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협력자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다.

[응응, 좋아. 알겠어. 그럼 카이사 만나러 가야 하니까 카르멘이랑 마누엘이랑 성십자 수호단의 단원들이랑은 헤어져야 한다는 거지?]

[어, 바로 그거야. 그런데 묘하게 기뻐 보인다?]

[아닌데? 그냥 평범한데? 오히려 막 아쉬운데?]

코델리아가 흥흥거리며 말하자 유더는 다시 눈을 가늘게 떴지만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아무튼 다음 갈림길에서 뜯어질 생각이야. 지금쯤이면 카이사는 다람을 거점 삼아서 해적 사냥을 하고 있을 테니까.]

남부의 항구도시 가운데 하나인 다람.

카르멘 일행은 지금 남부 최대의 무역항이자 왕가의 직할지인 바르도스로 향하고 있었으니 유더 말마따나 여기서 갈라서야만 했다.

[하아, 어쩔 수 없네. 여기서 갈라서야지. 응, 정말. 어쩔 수가 없네. 어쩔 수가.]

코델리아는 놀랍게도 메시지 마법으로 국어책 읽기를 시전했고, 유더는 애써 웃음을 참은 뒤 말했다.

“다 왔다. 내가 이야기할게.”

“응!”

그리고 약 10분 뒤.

유더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코델리아에게 말했다.

“저기요 백작님.”

“네, 공자님.”

“왜 우리는 말이 없는 거죠?”

“제가 카르멘한테 반납했으니까요?”

“왜죠?”

“그야 여기 튼튼한 말이 한 필 있으니까요?”

코델리아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고, 유더는 결국 웃고 말았다.

“업고서 뛰면 엄청 눈에 띌 텐데?”

“알아서 잘 해봐. 잘 하잖아 그런 거.”

“예, 예 알아모시지요.”

그렇게나 업히고 싶으시다면야.

유더는 짐을 코델리아에게 넘긴 뒤 돌아섰고, 신이 난 코델리아는 얼른 짐을 등에 멘 뒤 유더의 등 위에 올라탔다.

“유더 냄새.”

“응?”

“아, 아니. 응. 빨리 가자구.”

호다닥 얼버무린 코델리아는 유더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더니 소리 없이 미소지었다.

“아무튼 갑시다. 꽉 잡으시죠.”

“네에.”

예쁘게 답한 코델리아는 코를 한 번 킁킁 거리더니 유더의 몸을 좀 더 꽉 끌어안았고, 유더는 코델리아를 고쳐 업은 뒤 지면을 박찼다.

그리고 두 시간 뒤.

항구 도시 다람에 도착한 유더와 코델리아를 기다린 것은 카이사가 아닌 생각지도 못 한 사건이었다.

&

< 제85장 - 카이사 오펀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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