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5장 - 카이사 오펀드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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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자마자 코델리아는 인상을 찡그렸다. 안쪽에서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가 단번에 밀려나왔기 때문이다.
특실이니 뭐니 했지만 결국엔 감옥.
그것도 지하에 위치해 창문 하나 없이 사실상 밀폐된 장소였다.
문을 열었지만 새카만 어둠 때문에 안쪽의 광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카이사?”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인 코델리아였지만 안에서는 딱히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유더는 문을 좀 더 활짝 연 뒤 코델리아에게 눈짓했고, 코델리아는 감옥 안에 마법의 빛을 던져 어둠을 몰아냈다.
“우욱.”
빛이 퍼진 그때 코델리아는 새삼 헛구역질을 했다. 뭔가를 식별하기도 전에 예민한 코가 새로운 것들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토사물 특유의 역한 냄새와 코끝을 찌르는 진한 피 냄새.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감옥 안에서 뒤섞인 그것들 때문에 숨 쉬는 게 괴로울 지경이었다.
“윈드!”
일단 급한대로 바람 마법을 펼쳐 환기를 시킨 코델리아는 다시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감옥 안의 광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 탓이었다.
“카, 카이사?”
돌로 된 감옥 안에 반쯤 헐벗은 검은 머리칼의 여인이 주저앉아 있었다.
양 팔은 천장과 연결된 굵직한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양쪽 다리 역시 발목에 커다란 족쇄를 차고 있어 움직임이 제한되었다.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 검고 긴 머리칼이 축 늘어진 머리뿐만 아니라 상반신을 반쯤 가리고 있어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카이사가 분명했다.
“주, 죽었어?”
단순히 축 늘어진 채 꼼짝도 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커다란 은색 검이 마치 꼬챙이처럼 카이사의 배와 등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살아 있어. 카이사니까.”
보통 사람이라면 진즉에 죽었어야 할 부상이었지만 유더 스스로가 말했듯 카이사였다.
신수 펜릴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은 그녀가 겨우 이 정도 부상에 죽을 리가 없었다.
“애당초 재생을 막기 위한 물건 같아.”
카이사의 배를 꿰뚫고 있는 검.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보니 평범한 철검이 아니었다. 은으로 만들었거나 적어도 은으로 칼날을 도금한 물건 같았다.
“진짜네.”
자세히 보니 검이 꿰뚫고 있는 복부 부분에서 마치 뭔가를 태우듯이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카이사의 재생력을 은제 검이 억누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카이사니까.’
코델리아는 새삼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작에서는 상처 회복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잘려나간 사지조차 재생시킨 카이사였다.
유더 말마따나 겨우 저 정도 부상에 죽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래두 엄청 아플 것 같아.’
재생력이 있다하여 고통을 모르는 건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서두르자.”
“응!”
비단 카이사의 상처 때문이 아니더라도 느긋하게 구경할 때가 아니었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둘러 카이사에게 접근했고,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다시 한 번 헛구역질을 했다.
“우욱.”
냄새가 너무 심했다.
이제 보니 감옥 안의 온갖 냄새의 근원은 카이사인 것 같았다.
구금된 지 겨우 하루였지만 환기도 되지 않는 골방 안에서 피와 오줌, 토사물 등등이 뒤섞인 결과였다.
코델리아는 오줌과 토사물 범벅이 된 카이사의 가죽바지부터 당장 어떻게 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지만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법이었다.
“어떡하지? 일단 눕힐까?”
“칼부터 뽑자.”
카이사를 꼬치 꿰듯이 관통하고 있는 칼 때문에 쇠사슬을 끊어도 눕히는 게 불가능한 카이사였다.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인 뒤 한 걸음 물러섰고, 유더는 카이사의 복부를 꿰뚫은 은제 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카이사, 뽑을게.”
애당초 동의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양해를 구한 유더는 단번에 검을 뽑아냈다.
쯔아악-!
카이사의 재생력 때문에 칼날에 들러붙어 있던 피와 살점이 함께 쓸려 나왔다.
동시에 카이사의 몸이 요동쳤다. 허리가 활처럼 휘었고, 축 늘어져 있던 머리가 뒤로 젖혀지며 고통에 찬 신음을 토했다.
그리고 직후였다.
콰드득-!
카이사가 양팔을 당겼다.
괴력을 발휘해 천장과 연결되어 있던 쇠사슬을 단번에 뜯어내더니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 한 상태로 그것들을 휘둘렀다.
“꺅?!”
갑자기 덮쳐온 쇠사슬에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른 코델리아였지만 그런 것치고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아니, 그녀의 본능이 반사적인 대응을 한 것에 가까웠다.
쇠사슬의 궤적을 직감했다. 그 순간 몸이 반응했고, 안전지대를 향해 발을 놀렸다.
머리 위에서 날카로운 기세로 쏟아져 내린 쇠사슬을 한 걸음 차이로 완벽히 회피했다.
그리고 유더는 피하지 않았다.
회피 자체는 가능했지만 그랬다가는 코델리아에게 자신 쪽- 그러니까 카이사의 왼팔에 묶인 쇠사슬이 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섬과 동시에 손을 놀려 쇠사슬을 낚아챈 뒤 옆으로 뿌렸다.
바닥과 쇠사슬이 충돌하며 날카로운 소리가 난 그때 카이사를 돌아보았다.
치이익-!
칼을 뽑아낸 상처 부위에서 빠르게 연기가 치솟았다. 방금까지 칼이 박혀 있었다는 사실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매끈한 갈색 피부 위에는 작은 흉터조차 없었다.
그리고 카이사가 숨을 토했다.
마치 맹수처럼 푸른 안광을 빛내며 앉은 자리에서 솟구쳐 올랐다.
‘발차기?!’
코델리아는 직감했다. 카이사의 발목이 굵직한 쇠사슬에 묶여 지면에 고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코델리아의 직감은 정확했다.
카이사가 오른발을 찼다.
굵은 쇠사슬이 단번에 팽팽해지며 그녀의 다리를 구속하려 했지만 무리였다. 쇠사슬을 고정시켜둔 걸쇠가 통으로 뽑혀 나왔고, 카이사의 발등이 유더의 옆구리를 향해 꽂혔다.
쾅!
사람이 사람을 발로 찼다고는 생각도 못 할 굉음이 터졌다.
하지만 유더는 벽으로 튕겨나가지 않았다. 옆구리를 강타당해 뼈가 부러지지도 않았다.
유더의 왼팔이 카이사의 발차기를 막아냈다. 순간적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시킴과 동시에 힘을 발해 밀려나는 것을 저지했다.
카이사는 급히 오른발을 회수하려 했지만 유더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치 뱀처럼 손을 놀려 카이사의 발목을 붙잡더니 그대로 지면을 향해 뿌려버렸다.
“악?!”
다리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에 카이사가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오른발과 달리 왼발은 여전히 쇠사슬에 묶인 상태라 넘어지는 각도가 기괴했다.
앞으로 철퍼덕.
보통 사람이라면 고통 때문에라도 한동안은 움직이지 못 해야 정상이었지만 상대는 카이사였다.
유더는 멈추지 않고 엎어진 카이사의 등에 일장을 꽂아 넣었다.
쿵!
충격파가 지면을 뒤흔들었고,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반동만으로 카이사의 몸이 거칠게 튕겨 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손맛이 없었다.
아니, 찰진 느낌이 있는 걸로 보아 공격이 제대로 들어간 것 같기는 했지만 손속에 사정을 뒀기 때문인지 카이사에게 그리 큰 대미지를 주지 못 한 느낌이었다.
애당초 카이사를 구하는 것이 목적이지 쓰러트리는 게 목적이 아니었지만 일단은 카이사를 제압해둘 필요가 있었다.
유더는 한 번 튕겼다 다시 바닥에 철푸덕 들러붙듯 늘어진 카이사가 몸을 일으킬 틈을 주지 않고 손을 놀렸다. 카이사의 몸을 뒤집어 바로 누운 상태를 만든 뒤 다시 한 번 복부에 일장을 날렸다.
“커헉!”
이번에는 튕기지 않았다. 유더가 일장을 뻗은 상태로 카이사의 복부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카이사의 입에서 새빨간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코델리아는 손으로 입을 막아 비명을 억눌렀고, 유더는 카이사의 복부와 맞닿은 손바닥에 다시 한 번 흑룡의 기운을 쏟아 부어 추가타를 날렸다.
“끄어억.”
자기가 토한 피를 그대로 뒤집어 쓴 카이사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축 늘어지더니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유, 유더가 카이사를 죽였어!”
코델리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얼굴과 머리칼은 물론이고 상반신 전체가 피로 범벅이 된 카이사의 모습이 무척이나 참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카이사의 복부에 손을 올린 순간 알 수 있었다.
부드러운 피부 바로 밑에 자리한 강철같은 복근을.
아니, 비단 복근이 문제가 아니었다. 실로 무지막지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허억··· 헉······.”
거친 숨을 토한 유더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누군지 모를 철가면의 검사가 왜 카이사의 배에 은제 검을 박아뒀는지를 이해했다.
‘이건 진짜 괴물인가.’
단순히 맷집과 재생력만 보면 유더 자신조차 상회하는 것 같았다.
요 1년 남짓한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원작보다 더 강해진 카이사였다.
‘죽을 고비라도 몇 번 더 넘긴 건가?’
마치 드래곤볼의 사이어인처럼 죽을 고비를 넘길 때마다 강해지는 카이사였다.
정확히는 그녀의 몸에 흐르는 신수 펜릴의 피가 깨어나는 과정이었는데, 어찌되었든 실로 놀라운 신체능력이었다.
“살아있어?”
“어, 살아있어.”
대미지가 누적된 탓에 의식을 잃은 것뿐이었다.
더욱이 이 와중에도 카이사의 재생력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겨우 말 몇 마디 나눌 사이에 거칠어졌던 호흡은 완전히 안정되었고, 경련하던 손발도 이제는 멀쩡했다.
“얘 방금까지 칼에 찔려 있던 애 맞지?”
“어, 그것도 은제 칼.”
라이칸 슬로프의 상극이라 할 수 있을 은으로 만든 검에 적어도 한나절 이상 꽂힌 채로 방치되어 있었는데도 이 정도였다.
“그래도 무리하긴 한 모양이야. 체력이 완전히 바닥났어. 재생력도 느려진 것 같고.”
“치료···해야 할까?”
평소라면 물을 것도 없이 회복 마법을 펼쳤을 코델리아였지만 이번에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유더는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어. 반사적인 자기방어라고 해야 하나··· 정상적으로 의식을 회복하면 대화가 가능할 거야.”
방금이야 칼을 뽑힌 직후였으니까.
하지만 코델리아는 마뜩찮은 얼굴이 되어 말했다.
“진짜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말도 잘 통할 거고. 이쪽도 짐승이 있잖아?”
유더의 말에 순간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한 코델리아였지만 이내 이해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나중에 진짜 확 깨물어줄 거야.”
“기대할게.”
“진짜 못됐어.”
유더는 능글맞게 웃었고, 코델리아는 괜히 한 번 으르렁 거린 뒤 회복 마법을 펼쳤다.
그런데 직후였다.
“우와.”
“왜?”
“아니, 뭐랄까. 막 회복마법을 스펀지가 물 빨아들이듯 흡수하고 있어.”
이런 감각은 처음이었다.
마력을 빼앗기고 있다는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이거 진짜 사람이 맞는 건가.”
유더가 저도 모르게 말하자 코델리아는 크리에이트 워터로 물을 만들어낸 뒤 손수건을 적셔 카이사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크다.”
“어?”
“아니, 크다구.”
160이 살짝 넘는데다가 기본적으로 가냘픈 체격인 코델리아와 달리 카이사는 골격 자체가 컸다.
원작의 프로필대로라면 170후반 정도 쯤 될 키였지만 워낙 비율이 좋아서 그런지 180도 가볍게 넘길 것 같았다.
어깨도 떡 벌어졌고, 가슴도 컸으며, 손발 역시 커다랬다.
‘운동선수 같아.’
아니, 그보다는 피트니스 모델 같기도?
야성미 넘치는 미녀라고 해야 하나.
코델리아가 고양이라면 카이사는 정말 흑표범 같은 여인이었다.
어찌되었든 잠입한 마당에 언제까지 시간만 끌고 있을 수 없었다.
“혹시 모르니까 마법 쓰자마자 내 뒤로 물러서고.”
“응.”
바로 답한 코델리아는 각성 마법을 걸자마자 유더의 등 뒤로 쪼르르 달려갔다.
‘햄스터 같네.’
유더가 저도 모르게 생각한 그때였다.
“으으윽.”
각성 마법이 통했는지 카이사가 신음을 토하며 어렵사리 눈을 떴다. 유더의 예상대로 이번에는 짐승처럼 날뛰는 대신 사람처럼 일어나고 있는 그녀였다.
“정신이 좀 들어?”
유더의 물음에 카이사는 바로 답하는 대신 다시 인상을 찡그리며 신음을 흘리더니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끄윽··· 머리 아파.”
‘배가 아니라?’
저도 모르게 되묻고 싶었진 유더였지만 애써 참은 뒤 카이사의 반응을 살폈다.
“으으··· 냄새.”
코를 한 번 킁킁 거린 카이사는 헛구역질을 하며 오만상을 찌푸렸지만 소용없었다. 냄새의 근원이 카이사 본인이었으니 말이다.
“카이사?”
“하으··· 누구야, 너흰?”
“유더 어거스트 바이엘. 이쪽은 내 약혼녀인 코델리아 어거스트 체이스고. 널 구하러 왔어.”
“그··· 안녕?”
코델리아가 유더의 등 뒤에서 머리만 빼꼼 내밀어 인사하자 카이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와, 예쁘네?”
“어?”
“예쁘다고. 콱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그리고 흐흐흐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저씨였다.
‘유더야, 쟤 이상해.’
‘카이사는 원래 이상하잖아. 몰라?’
‘생각해보니 그러네.’
맞아, 카이사는 본래 이상한 애지.
납득한 코델리아는 다시 유더의 등에 숨어 카이사를 보았고, 유더는 마저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카이사, 다시 말하지만 난 유더고 이쪽은 코델리아다.”
“어, 들어본 거 같아. 그 환장··· 아니, 환상의 커플이던가? 너희 매일같이 가출한다며? 남들이 보든 말든 맨날 막 끌어안고 뽀뽀하고 그러고.”
카이사의 말에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든 유더였지만 애써 침착하게 답했다.
“···와전된 소문이다.”
“마, 맞아. 완전 과장된 소문이야.”
코델리아까지 허둥거리며 말을 보태자 카이사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얼굴이 되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무튼 우릴 안다면 이야기가 빠르겠네. 방금 말했듯이 널 구하러 왔어. 탈출하자.”
“잠깐, 너희가 진짜 유더와 코델리아라는 증거는?”
카이사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백작가의 문장을 꺼내려 했지만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렇게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붉은 머리 소녀가 왕국에 또 있을까?”
“그러네.”
카이사는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품을 뒤지던 코델리아는 얼굴을 붉혔다.
‘뭐라는 거야 이것들이!’
그리고 거기서 납득하는 건 또 뭔데!
물론 납득 안 하면 그건 그거대로 짜증이 나겠지만.
코델리아가 인상을 구기자 귀엽다는 듯 껄껄 웃은 카이사가 말했다.
“뭐, 너희가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겠지. 날 풀어준 건 사실이고, 이렇게 공들여 가며 날 속일 이유도 딱히 없을 테니 일단 믿을게.”
거기까지 말한 카이사는 손목과 발목의 족쇄를 가볍게 손으로 잡아 뜯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카이사의 괴력이었다.
‘카이사를 제압한 건 대체 누구인 거지?’
카이사의 상식을 초월한 괴력과 맷집을 보고나니 새삼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철가면을 쓴 남자.
그가 대체 누구였기에 카이사를 압도한 것일까.
하지만 그런 것을 하나하나 캐물을 때가 아니었다.
사일런트 필드 덕분에 소리 없이 쓰러트린 해적들이었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밤에 소변 누러 나온 해적 놈이 쓰러진 동료들을 발견하면 바로 경보를 울려댈 터이니 말이다.
“일단 나가자.”
유더의 재촉에 카이사는 몸을 일으켜 세웠지만 이내 문 쪽을 돌아보며 으르렁 거렸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코델리아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두 야생녀의 동물적인 직감.
유더는 재빨리 기감을 펼쳤고, 둘이 무엇을 감지한 것인지 이해했다.
‘철가면의 남자.’
그가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카이사의 배를 꿰뚫고 있던 검에 무언가 마법이라도 걸려 있었던 모양이다.
유더는 순간적으로 계산했다. 코델리아와 카이사의 허리를 안고 초풍신뢰로 도주하는 것을 생각했지만 이내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코델리아 하나라면 몰라도 카이사까지 그렇게 안고 달렸다가는 철가면의 남자에게 등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빠른 철가면의 남자였다.
“온다.”
카이사는 재빨리 땅에 떨어져 있던 쇠사슬을 집어들었고, 유더는 투시안으로 벽 너머를 꿰뚫어 보았다. 이쪽을 향해 날듯이 달려오는 철가면의 남자의 위치를 파악함과 동시에 물었다.
“철가면의 남자. 누군지 아나?”
동시에 분석을 개시했다.
남자의 키, 체격, 무지막지한 이동 속도를 종합해 데이터를 추렸다.
카이사가 작은 단서라도 제시하면 정보를 추가해 남자의 정체를 간파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쇠사슬을 움켜쥔 카이사가 입을 연 그 때.
철가면의 남자가 활짝 열린 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190남짓의 큰 키와 떡 벌어진 어깨.
양쪽 허리에 나눠 차고 있는 장검과 단검.
옷깃 사이로 얼핏 드러난 검은 피부.
준족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엄청난 이동속도.
여기에 카이사를 압도할 정도의 실력까지.
이정도면 충분했다. 철가면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영웅전기의 썩은물인 유더와 코델리아는 단번에 남자의 정체를 간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코델리아는 욕지거리를 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씨발, 십검호는 배신이 패시브야?”
호국공과 제일검에 이어 눈앞의 남자까지.
왕국의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해적들 편에 서서 카이사를 구금한 남자.
그의 이름은 세바스찬 르귄.
남부 최속의 검을 자랑하는 신속의 검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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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5장 - 카이사 오펀드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