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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241화 (241/473)

< 제87장 - 바다의 악마 >

제87장 - 바다의 악마

전생의 기억을 각성한 이후 1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온갖 경험을 다 한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봉인된 상태라고는 하나 데몬프린스를 코앞에서 보았고, 여러 마인들을 경험했으며, 바이콘을 필두로 수많은 마물들과 하급 악마들을 대적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지옥의 문에서 쏟아져 나오던 마물들의 모습이 생생한 두 사람이었다.

때문에 괜찮았다.

지금까지는 새로이 어떤 괴물이나 악마를 보아도 두려움에 몸이 굳는 일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순간적으로 넋을 잃고 말았다.

수면을 부수며 솟구쳐 오른, 직경만 해도 수 미터는 됨직한 거대한 문어 다리들이 해적선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광경은 본능적인 공포를 야기하기에 충분했다.

“키아아!”

거대한 문어 다리에 몸이 휘감긴 서펜트가 비명을 지르며 수면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동시에 문어 다리들이 해적선을 강타했다!

“피해!”

콰가가강-!

카이사의 외침은 연이은 굉음에 짓뭉개졌다. 돛이 부러지고 갑판이 부서졌다. 일격에 동강이 나지는 않았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어느새 서펜트가 그러했던 것처럼 크라켄의 다리에 휘감긴 해적선이었다.

콰지직-!

갑판과 벽이 동시에 우그러졌다. 키를 붙잡고 선 카이사는 고개를 들었고, 유더와 코델리아를 볼 수 있었다.

“카이사!”

팬텀 스티드 위에 탄 유더의 옆구리에 코델리아가 끼어있었다.

정확히는 코델리아의 허리를 유더가 한 팔로 안은 상태였다.

“타!”

“뭘?!”

크게 물은 순간 허공이 비틀렸다. 녹색의 연기가 터지는가 싶더니 또 한 마리의 팬텀 스티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히히힝-!

“사, 살려줘!”

팬텀 스티드의 울음소리와 동시에 벤담의 목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돌아본 카이사는 순간 숨을 삼켰다. 사지가 축 늘어진 세바스찬을 등에 업은 벤담이 보였기 때문이다.

“카이사!”

시간이 없었다. 카이사는 단숨에 높이 뛰어올라 팬텀 스티드의 목을 끌어안았고,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유령마의 등 위에 올라탔다.

“나, 나도!”

“잡아!”

벤담의 절규에 카이사는 바로 응답했다.

허리에 차고 있던 밧줄을 단번에 풀어 벤담과 세바스찬을 향해 던졌다.

츠콰학!

그렇지 않아도 크고 무거운 쇠사슬이었다.

그런 물건에 카이사의 괴력이 실리니 잡는 것은 고사하고 잘못 맞으면 그대로 몸이 박살날 것 같은 공격이 되었다.

하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흔들리는 동체 위에서 거의 엎드려있다시피 했던 벤담은 눈으로나마 쇠사슬을 좇았고,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차라락-!

몸을 박살낼 기세로 쏟아지던 쇠사슬이 어느 순간 요동치더니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움직여 벤담과 세바스찬의 허리를 한 번에 휘감았다. 코델리아의 염동력이었다.

“당겨!”

코델리아의 일갈에 카이사는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있는 힘껏 쇠사슬을 잡아당기니 벤담의 바윗덩이 같은 몸이 단번에 떠올랐다.

“끄아악!”

쇠사슬에 허리가 졸린 벤담이 비명을 질렀지만 어쨌든 사는 것이 중요했다.

허리가 부러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눈을 뜨기 위해 노력했고, 덕분에 해적선이 셋으로 동강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콰드득-!

크라켄의 다리에 졸린 해적선이 완전히 박살났다.

유더는 일단 코델리아를 자신의 앞쪽에 앉힘과 동시에 팬텀 스티드를 상공으로 몰았고, 카이사 역시 벤담을 등에 태우는 대신 일단 높은 곳을 향해 기수를 돌렸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쾅! 쾅! 쾅!

다시 수면이 박살나며 몇 개나 되는 크라켄의 다리들이 솟구쳐 올랐다.

하늘과 바다 모두가 새카만 가운데 홀로 새하얀 크라켄의 다리들은 마치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을 보는 것 같았다.

콰가강!

크라켄의 다리들이 수면을 내려치자 뇌성이 터졌다.

혼비백산한 벤담은 쇠사슬을 움켜쥐며 비명을 질렀고, 카이사는 욕지거리를 토했다. 머리 위로 크라켄의 다리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썅!”

“히히힝-!”

머리 위를 뒤덮는 그림자에 놀라기라도 한 것처럼 팬텀 스티드가 급히 몸을 날리려 했지만 크라켄의 다리는 상상이상으로 빠른데다가 거대했다. 마치 다리 끝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정확하게 카이사를 추적해 왔다.

“유더야!”

코델리아가 소리친 그때 이미 유더는 손을 놀리고 있었다. 곧게 세운 수도를 휘둘러 칠흑의 검기를 내쏘았다.

카카칵-!

검기가 다리를 갈랐다. 완전히 동강내지는 못 했지만 반 이상 베었고, 다리의 궤적을 뒤트는데 성공했다.

콰강!

반쯤 끊어진 다리가 수면을 때렸다. 궤적이 뒤틀린 덕에 간신히 공격을 피한 카이사는 쇠사슬을 감아올림과 동시에 팬텀 스티드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느낄 수 있었다.

대기의 흐름이 변하고 있었다. 바다 밑에서 무지막지한 노여움이 전해져왔다.

쿠쿠쿵-!

거친 바람과 함께 진짜 뇌성이 터졌다. 검은 구름이 별의 바다를 가림과 동시에 하늘과 바다가 동시에 요동치기 시작했다.

폭풍이었다.

바다의 악마가 폭풍우를 부르고 있었다.

콰가강-!

벼락과 함께 하늘이 하얗게 번쩍였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바다의 악마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쿠오오오-!

거대하고 거대한 괴물.

수면위로 반쯤 드러난 크라켄의 머리는 해적선 따위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마치 섬이 떠오르는 것 같은 광경에 유더와 코델리아의 숨이 절로 거칠어졌다.

쿠쿠쿵!

재차 쏟아진 벼락 속에서 하늘과 바다가 백열했다.

수십 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 거대한 문어- 크라켄의 머리 사이에서 안광 셋이 빛났다.

노랗고 커다란 눈동자와 길게 찢어진 검은 동공은 그 자체로 공포였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연약한 인간의 정신 따위는 단숨에 뭉개져 버릴 것 같았다.

비바람이 점점 더 거세졌다.

평범한 문어와 달리 전면에 달린 크라켄의 입 위로 수십 개나 되는 촉수들이 꿈틀거렸고, 잘게 찢긴 서펜트의 시체와 부서진 배의 파편들이 그 사이에서 요동쳤다.

카이사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벤담은 똥오줌을 지리며 기절했고, 공포를 이기지 못 한 팬텀 스티드 두 마리는 미친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콰가가-!

크라켄의 다리 수십 개가 수면을 부수고 솟구쳤다. 순식간에 사방이 하얗고 거대한 벽으로 틀어 막히는 기분이었다.

“히히힝!”

팬텀 스티드들이 공포를 토하며 하늘로 향했다. 어떻게든 도망치기 위함이었다.

“온다.”

유더가 반사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크라켄의 다리들이 일시에 쏟아져 머리를 뒤덮으니 마치 세상이 붕괴하는 것만 같았다.

압도적인 절망 속에서 카이사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오히려 눈을 부릅떴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소리쳤다.

““쉴드!””

코델리아는 카이사를 보았다. 반투명한 막을 크게 펼친 뒤 축소시켜 원형의 쉴드 안에 카이사와 팬텀 스티드는 물론이고 벤담과 세바스찬까지 집어넣었다.

유더는 반지의 마법을 발동시켰다.

체이스 백작의 쉴드 마법으로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를 뒤덮어 보호했고, 마지막으로 코델리아를 와락 끌어안았다.

콰가강!

세상이 요동쳤다.

하늘과 땅이 뒤집혔다.

사방을 분간하기는커녕 눈앞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코델리아는 이를 악물고 눈을 감았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바다 속이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눈을 뜰 엄두도 나지 않았다.

너무나 차가운 바다에 감각이 마비되어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정신차려!”

코델리아는 번쩍 눈을 떴다.

검은 하늘. 요동치는 바다. 쏟아지는 비.

변하지 않았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것도 똑같았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 유더가 있었으니까. 자신의 허리를 단단히 안고 있는 유더의 팔이 느껴졌으니까.

“커헉.”

코델리아는 물을 토했다. 거칠게 숨을 토하며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수면 밖으로 머리만 간신히 내놓은 상태.

쉴드 마법 덕분에 어찌어찌 목숨을 건진 것 같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크라켄은 여전히 건재했고, 놈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아, 하.”

팬텀 스티드는 보이지 않았다. 카이사와 벤담, 세바스찬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무리였다.

폭풍우가 멎지 않았다. 수면 위로 쏟아지는 파도가 머리 위를 덮쳐 숨을 쉬지 못 하게 하였다.

“하윽.”

체온이 떨어졌다. 몸이 차가워졌다. 새하얗게 질려 그렇지 않아도 하얀 코델리아의 피부가 이제는 아예 백지장 같았다.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꽉 끌어안으며 정면을 주시했다.

크라켄의 노란 눈동자를 피하지 않았다.

‘어째서.’

크라켄은 깊은 바다의 주인이었다.

그런 놈이 어째서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우연일까? 아니면 어떠한 필연?

서펜트를 쫓은 것이 아니라 애당초 자신들을 노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어째서.

크라켄이 왜 자신들을 노린 것일까.

설마 악마 추종자들의 사주인가?

그런 것이 가능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바다에 나온 것을 대체 어떻게 알고 그런 것일까.

수많은 생각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평소였다면 단번에 끊어낼 유더였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상황이 너무나 절망적이었기에 무엇이라도 끌어내기 위해 사고를 계속했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크라켄은 자신들을 보았다. 포기할 마음도 없어 보였다.

다리를 베여서 화가 난 것일까?

아니면 역시나 누군가의 사주?

악마인 놈이 가진 파괴 본능?

너무 거대했다.

이러나저러나 대인전을 기반으로 한 유더 자신의 기술들로는 저렇게 거대한 상대에게 이렇다 할 피해를 줄 수 없었다.

더욱이 바다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차라리 지상이었다면 어떻게든 싸워볼 터였지만 발 디딜 곳조차 없는 바다 속에서는 기동력이 극히 제한되는 유더였다.

유더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어찌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코델리아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적어도 코델리아만이라도 살리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유더.”

코델리아가 말했다.

유더의 생각을 끊었다. 그대로 고개를 돌려 유더를 보았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그녀다운 답을 내놓았다.

계산을 늘어놓는 대신 문제와 직면한 순간 본능적으로 답을 찾아내었다.

구태여 설명하지 않고 눈빛을 보냈고, 멋진 미소와 함께 말했다.

“합체하자.”

지금 같은 상황 속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잔뜩 굳어 있던 유더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유더는 코델리아의 이마에 입술을 맞춘 뒤 바로 몸을 놀렸다. 자신의 목을 끌어안으며 등에 매달리는 코델리아의 허벅지를 단단히 붙잡았다.

‘기회는 한 번.’

두 번은 없었다. 그렇기에 유더는 집중했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흑룡의 기운을 발산해 하늘로 치솟았다.

콰르릉!

벼락이 쳤다. 동시에 크라켄이 움직였다. 다리들이 다시 솟구쳐 올랐고, 놈의 입에 달린 촉수 수십이 유더를 향해 뻗어왔다.

“우오오오!”

유더가 허공을 박찼다. 발끝으로 흑룡의 기운을 발산해 대기를 가르는 그 모습이 마치 란디우스와 같았다.

콰가강-!

일점돌파.

코델리아가 광익을 펼쳤다. 크라켄을 향해 유더와 함께 똑바로 날았고, 촉수들과 정면에서 충돌하려는 그 순간 유더가 검은 태양의 힘을 일시에 발산했다.

흑룡파천!

밀어내기였다. 촉수들을 밀어내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유더와 크라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촉수들이 일순간 밀려나 텅 빈 공간을 만들었다.

유더는 코델리아의 허벅지에서 손을 놓았다. 머리부터 떨어지게끔 몸을 회전시켰고, 그런 유더를 박차고 코델리아가 날아올랐다. 흑룡파천이 만들어낸 찰나의 틈을 꿰뚫고 크라켄을 향해 돌진했다.

무모한 짓이었다.

머리만 수십 미터에 달하는 크라켄을 향한 돌진은 마치 고층 건물을 향해 몸을 날리는 것과 같았다.

더욱이 악마인 놈의 항마력은 실로 막강했다. 특히 마안의 힘이 실린 눈동자들의 경우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법을 파괴할 정도였다.

크라켄의 눈동자 셋이 모두 코델리아를 보았다.

그대로 마력을 발해 코델리아의 몸을 갈기갈기 찢으려 했다.

코델리아는 마녀의 힘을 발했다. 백사의 마안으로 저항했다. 천사의 광익을 펼치며 주먹을 당겼다.

코델리아가 찾아낸 해법.

전신마력을 모조리 소모해도 소환할 수 없는 정령왕을 활용할 비책.

‘마법이 아냐.’

정령술은 마법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염동력 같은 초능력 역시 아니었다.

굳이 따진다면 소환술에 가까울 터였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마침 폭풍우가 일고 있기에 기세를 탈 수 있었다.

당긴 주먹에 힘을 주며 영혼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아이닉스!”

폭풍과 번개의 정령왕.

그가 응답해주었다.

자신의 계약자를 위해 힘을 빌려주었다.

그렇기에 코델리아는 미소지었다.

마음속으로나마 고맙다고 외치며 당긴 주먹을 내질렀다.

“정령왕 펀치!”

전신마력을 일시에 소모했다. 그리고 그 순간 벼락이 쳤다. 거대하고 거대한 정령왕의 주먹이 공간을 부수고 나타났다. 몰아치는 폭풍을 뚫고 크라켄의 눈을 향해 맹진했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분쇄했다!

콰가강!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크라켄이 비명을 질렀다.

중앙에 위치한 노란 눈동자가 박살나 부서졌다. 그 자체로 맹독인 녹색의 피가 미친 듯이 솟구쳐 올랐다. 무지막지한 정령왕의 일격에 뒤로 크게 밀려난 크라켄이 수십 개나 되는 다리로 동시에 수면을 내리치며 몸부림쳤다.

놈에게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존재로서 군림하기만 한 놈이기에 이 정도의 부상을 입는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상상을 초월한 고통은 곧 공포를 낳았고, 놈은 더 이상 머물지 않았다. 상처 입은 맹수들이 그러한 것처럼 맞서 싸우는 대신 도주를 선택했다.

콰가가-!

마지막 벼락이었다.

폭풍우가 단숨에 약해졌고, 비구름이 흩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코델리아가 수면을 향해 추락했다. 전신마력을 일시에 소모한 터라 정령왕의 일격을 날린 직후 의식을 잃은 그녀였다.

“코델리아!”

유더가 그런 코델리아를 향해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정령왕 전부를 소환할 수 없다면 오른팔 하나만 소환한다는- 참으로 코델리아다운 발상으로 크라켄을 격퇴한 그녀를 허공에서 낚아채 품에 안았다. 등부터 떨어지는 것으로 그녀를 보호했다.

“커허.”

의식을 잃은 코델리아는 꼼작도 하지 않았다.

유더는 그녀의 작은 몸을 꼭 끌어안으며 계속해서 발을 놀렸다. 잔잔해진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민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크라켄을 격퇴했지만 여전히 막막한 상황이었다.

사계의 가호로 막아낼 수 있는 것은 겨울의 한기였다. 때문에 사계의 가호를 가진 코델리아라 한들 지금처럼 계속 차가운 바다 속에 머물면 결국 체온을 빼앗겨 죽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코델리아만이라도 몸을 피할 곳이 필요했다.

널빤지 하나라도 있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해적선의 파편조차 보이지 않았다. 카이사와 벤담, 세바스찬의 상황 역시 알 수 없었다.

유더는 숨을 골랐다.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크라켄이라는 최악의 위기는 지나갔다.

코델리아가 해답을 찾아주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자신 차례였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크라켄.

본래 이 바다에는 살지 않는 괴물.

놈의 등장은 자신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애당초 이 바다에 살고 있던 이들에게 더 큰 문제로 다가왔을 터였다.

크라켄.

본래 이 바다에 살던 이들.

서펜트.

크라켄의 도주.

갑작스러운 폭풍우.

유더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하나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코델리아.”

마치 주문처럼 읊조린 유더는 차갑게 변한 코델리아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그녀를 다시 한 번 꼭 끌어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나마 노래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페어리들을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이 바다에 머물지 않았다.

“동쪽 하늘에서도, 서쪽 하늘에서도.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점점 더 목소리를 키워나갔다. 주변 일대의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해 노래했다.

바다의 종족.

페어리만큼이나 노래에 반응하는 그들.

크라켄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을 터였다.

갑작스러운 폭풍우에 그들 역시 놀랐을 터였다.

그러니 근처에 있을 것이다.

반드시 그러할 것이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대답이 돌아왔다.

유더는 거친 숨을 토하며 노래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았다.

세이렌.

바다의 엘프들.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민 그녀들이 유더와 코델리아를 향해 노래하며 다가왔다.

&

< 제87장 - 바다의 악마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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