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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246화 (246/473)

< 제88장 - 성령의 호각 #5 >

“막아!”

카이사가 다시 크게 외친 순간 세이렌들이 파문을 향해 돌아섰다. 각자 정령을 소환하거나 마법을 부려 파문을 막아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마치 방파제에 부딪힌 파도처럼 파문이 부서졌다. 하지만 그 여파로 세이렌들을 뒤흔들었다. 더욱이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파문이 밀려왔다.

“크라켄!”

유더는 상황을 파악했다. 봉인지에 갇힌 크라켄이 먼 곳에서부터 파문을 일으켜 세이렌들의진형을 흔들고 있는 것이었다. 폭풍우를 부를 수 있는 놈의 능력을 응용한 것이리라.

쿠구구구구구구구-!

두 번째 파문이 부서졌다.

만약을 대비해 봉인지에 해류를 두르고 있던 정령술사들이 해류를 돌려 파문을 막아냈고, 주문을 마친 사란디스가 눈을 번쩍 뜨며 트라이던트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순간 크라켄의 두 번째 반격이 시작되었다.

츠확-!

봉인지의 구멍을 토해 시커먼 먹물이 쏟아져 나왔다.

봉인지를 뒤덮고 있던 해류가 걷힌 덕분에 똑바로 쏟아져 나간 그것은 주변 일대를 새카맣게 물들이는데 그치지 않고 전열에 있던 세이렌들을 집어삼켰다.

“아아악!”

새카만 물속에서 세이렌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먹물에 어려 있던 강력한 독 때문이었다.

“사란디스!”

유더가 외쳤다. 그리고 그 외침이 닿기도 전에 사란디스는 이미 자신이 해야할 바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당황해서 머뭇거리는 대신 전력을 다해 해신의 트라이던트를 집어던졌다.

“하아아!”

콰가가가가가강-!

물 속임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뇌성이 일었다.

황금빛 번개의 뒤덮인 해신의 트라이던트가 단숨에 공간을 꿰뚫었고, 물속을 가르며 일어난 충격파에 크라켄의 먹물이 단번에 흩어졌다.

그리고 그렇기에 유더는 볼 수 있었다.

정면에 위치하고 있던 사란디스 역시 알 수 있었다.

콰앙!

봉인지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크라켄이 천장을 부수고 솟구쳐 올랐기 때문이다.

쿵!

해신의 트라이던트가 지면을 찍었고, 여전히 빛의 봉인검에 꿰뚫린 상태인 크라켄이 수십 개에 달하는 다리를 동시에 휘둘러 몸부림을 쳤다. 봉인검의 힘에 밀려 다시 지면으로 끌려가는 와중에도 강대한 마력을 발산했다.

촥! 촥! 촥!

크라켄의 다리는 세이렌들에게 닿지 못 했다. 수십 미터에 달할 길이였지만, 세이렌들과 크라켄 사이에는 그 이상의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라켄의 몸부림은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었다.

다리를 휘둘러 발생시킨 충격파가 세이렌들을 덮쳤다. 놈이 발산한 마력이 마법을 사용 중이던 세이렌들의 의식을 파고들었다.

“아아악!”

마법을 사용하던 세이렌들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충격파를 정면에서 뒤집어 쓴 세이렌들의 육신이 박살났다. 자연 크라켄을 향한 포화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그 순간 유더는 놈의 목적을 알게 되었다.

놈의 노란 두 눈이 머리 위에 펼쳐진 마법진을 향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달라붙어!”

바로 그때 사란디스가 명령했다.

좌우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병대가 크라켄을 향해 돌진했고, 카이사 역시 그들 사이에서 트라이던트를 움켜쥐었다.

여전히 빛의 봉인검에 의식을 집중하고 있는 일리아나를 대신하여 곁에 서 있던 말티아스가 정령사들에게 새로운 명을 전달했다.

“해류로 짓눌러라!”

크라켄이 마법진에 손을 대지 못 하도록 놈을 밀어붙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이 와중에도 크라켄이 폭풍우를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파문이 계속해서 밀려오는 와중이니, 해류를 돌리면 빛의 봉인검을 유지하고 있는 세이렌들이 충격파에 휩쓸릴 터였다.

--------------------!

바로 그때 기병대와 크라켄의 충돌이 시작되었다.

크라켄은 수십 개의 다리를 동시에 휘두르며 몸부림 쳤고, 기병대는 그 사이를 파고들어 놈의 몸에 각자의 무기를 박아넣었다.

하지만 워낙에 거대한 크라켄이었다. 세이렌들에게는 거대한 창이라 해도 놈에게는 작은 가시에 불과했으니, 표면을 찌르는 정도로는 놈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코델리아 님!”

클로에가 코델리아를 돌아보았다. 사란디스 또한 그러했다.

이 와중에 크라켄에게 결정타를 가할 수 있는 것은 코델리아 뿐이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크라켄에게 칼라마이트의 창을 내던졌다.

츠콰하아아아악-!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드는 칼라마이트의 창을 본 크라켄이 더욱 거세게 몸부림쳤지만 빛의 봉인검 때문에 제대로 된 회피 동작을 할 수 없었다.

칼라마이트의 창이 크라켄의 몸통에 꽂혔고, 놈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더욱 크게 몸부림쳤다.

-----------------!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두 번째 칼라마이트의 창을 만들지 않았다. 정령왕을 소환하는 대신 유더를 돌아보았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코델리아는 직감했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크라켄을 꺾을 수 없었다.

실제로 빛의 봉인검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판국이었다.

“유더.”

코델리아도 유더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준비해두었던 플랜B를 가동하였다.

코델리아가 칼라마이트의 창을 날린 그때 관찰하고 떠올린 바를 메시지 마법으로 전달했다.

콰가강!

크라켄이 일으킨 파문이 더더욱 강해졌다.

놈이 다시 먹물을 뿜었고, 근접해 있던 기병대는 서둘러 다시 몸을 빼냈다. 하지만 카이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욕지거리를 토하며 이미 박은 트라이던트를 크라켄의 머릿속으로 보다 깊이 박아 넣었다.

-----------------!

작은 가시라 해도 몸속 깊이 박히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크라켄이 몸부림을 치며 비명을 질렀고, 높이 뿜어낸 먹물이 그런 크라켄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 틈을 유더와 코델리아는 놓치지 않았다.

“코델리아 님?!”

클로에의 부름에 답하는 대신 코델리아는 광익을 펼쳤다. 그대로 지면을 향해 몸을 날렸고, 유더는 반대로 기파를 내쏘아 란디우스 특유의 비행술을 펼쳤다. 크라켄을 향해 돌진했다.

“죽어! 죽으라고!”

카이사가 근처에 박혀 있던 또 다른 트라이던트를 크라켄의 머릿속에 박아넣었다. 먹물에 어린 독 따위 근성으로 씹어 삼키는 그녀였다.

----------------!

크라켄이 포효했다. 카이사를 어떻게든 하기 위해 다리로 스스로의 몸을 때려댔고, 카이사는 급히 몸을 날려 그런 놈의 다리들을 피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유더의 단단한 팔이 카이사의 허리를 휘감았다.

“헉?”

깜짝 놀란 카이사가 유더를 돌아보았지만 유더는 그런 카이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다시 기파를 발해 고속으로 기동, 크라켄의 다리를 피하며 마법진이 펼쳐져 있는 상공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빛의 마법검이 점점 더 약해졌다.

크라켄이 노란 두 눈으로 유더와 카이사를 노려보았고, 다시 한 번 강대한 마력을 흩뿌렸다. 세이렌들이 감히 자신을 향해 달려들지 못 하게끔 하였다.

그리고 유더는 그런 크라켄을 마주 노려보았다. 카이사를 대충 집어던진 뒤 구천구문의 구문을 외웠다. 제육문을 개방함과 동시에 검은 태양의 힘을 발동시켰다.

콰강!

무지막지한 힘의 개방에 전장에 있던 모두가 일순 유더를 돌아보았다. 대충 집어던져지며 욕지거리를 토하던 카이사조차도 새삼 유더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는 막강한 힘이었다.

때문에 크라켄은 다시 한 번 유더에게 시선을 집중하였다.

유더가 바란 그대로 말이다.

----------------!

크라켄은 더 이상 파문을 일으키지 않았다. 빛의 봉인검에 저항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대신 바다의 악마다운 저주를 주변에 흩뿌렸다.

“아아악!”

세이렌들이 머리를 싸쥐며 비명을 질렀다. 카이사 역시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하며 몸부림쳤다.

바라보는 이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일으키는 크라켄 특유의 정신공격을 더욱 강화한 결과였다.

하지만 유더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구천구문 제육문을 개방함에 따라 얻게 된 이능으로 정신을 보호했다.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대신 분노와 적의로 크라켄을 대하였다.

크라켄이 그런 유더를 향해 다리를 뻗었다. 입에 달린 수십 개의 촉수가 순식간에 길어져 유더를 붙잡으려 했다.

유더는 침착하게 벨렌시아의 검술을 펼쳤다. 사지로 검기를 발산해 촉수를 자르고 갈라 스스로를 지켰다. 현재 위치를 고수했다.

크라켄이 직접 돌진해오며 공격해왔다면 아무리 유더라 해도 지금 같은 곡예를 펼칠 수 없었겠지만 크라켄은 지금 빛의 봉인검에 묶여 있는 상태였다. 멀리서 다리만 뻗는 정도로는 유더를 어찌할 수 없었다.

유더의 놀라운 활약에 겨우 정신을 차린 세이렌들이 감탄했지만 사란디스는 이를 악 물었다.

분명 유더의 힘은 굉장했지만 이런 식으로는 크라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시 전력을 집중해야 했다. 빛의 봉인검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터이니 그 사이에 놈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해야 했다.

‘해신의 트라이던트.’

회수해야 했다. 놈에게 명중하지 못 하였으니, 트라이던트에는 아직 집결시킨 힘이 남아 있을 터였다.

사란디스는 급히 바닥 쪽을 보았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해신의 트라이던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유더어어!]

코델리아가 소리쳤다.

플랜B.

크라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다시 봉인하는 것!

해신의 트라이던트를 움켜쥔 코델리아는 봉인지 안쪽에 자리한 봉인구에, 본래 페르지오의 수정구가 자리했던 그곳에 트라이던트를 꽂아 넣었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 다시 발동한 봉인지가 아니었다.

때문에 코델리아는 추가적인 조치를 취했다.

트라이던트에 어려 있는 힘을 자원으로 삼아 봉인구에 마력을 쏟아부음과 동시에 문 라이트를 봉인구에 가져다 대었다.

“멜리사!”

[이럴 때만 찾으시고!]

원망 어린 소리를 토한 멜리사였지만 그래도 역시 착하고 순한 인공정령답게 코델리아의 바람에 응해주었다.

페르지오의 엘프들은 마도왕국 마젤란의 엘프들과 그 뿌리를 같이 하였으니, 세이렌들이 다룰 수 없어 포기한 고대의 술식 체계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멜리사였다.

“오오오오오!”

페르지오의 수정구를 해신의 트라이던트로 대신한다. 모자란 마력은 코델리아 자신이 보충한다!

세이렌들에게 받아낸 각종 마력 회복구와 증폭구를 모두 활용했다.

멜리사의 명을 받은 봉인지의 술식 체계가 재가동되었고, 빛의 봉인검을 압도하는 강력한 봉인의 힘이 크라켄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

크라켄이 몸부림치며 저항했지만 빛의 봉인검과는 격이 다른 봉인의 힘이었다.

놈은 오래지 않아 다시 봉인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

------!

----------------!

그렇기에 크라켄은 강력한 저주를 준비했다.

눈앞의 인간은 무리더라도 세이렌들에게나마 죽음을 선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유더가 그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놈이 저주의 마력을 준비한 그 순간 지금까지와 반대로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최후의 발악으로 저주를 발하려는 놈의 머리에- 정확히는 코델리아가 파괴한 놈의 안구 위에 안착함과 동시에 날카로운 수도를 박아넣었다.

하지만 크라켄 입장에서는 여전히 작은 가시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크라켄은 비명을 지르기는커녕 아랑곳않고 저주를 발산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유더가 조금 더 빨랐다.

코델리아가 전신마력을 일시에 소진해 정령왕의 오른팔을 소환하는 것을 보며 생각한 것을 실행에 옮겼다.

검은태양.

지금까지 유더는 검은태양의 힘을 강력한 기파를 일으키거나 흑룡의 기운을 강화하는 용도로만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코델리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전신의 기력을 일시에 발산했다.

기술에 응용하거나 기파를 일으키는 대신 순수한 태양의 힘에 집중하였다.

극음에 대비되는 극양.

비록 검다하나 분명 태양의 힘을 가진 그것.

그 순간 구극태양신공이 절로 발동했다.

검은태양이 가진 극양의 힘을 극대화했다.

빛.

그리고 열기.

유더의 손끝을 통해 발산되는 진정한 태양의 힘!

----------------------------------!

크라켄이 비명을 질렀다.

울부짖었다.

태어난 처음 겪는 엄청난 고통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놈의 머릿속이 불타올랐다.

무지막지한 태양의 열이 놈의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

크라켄은 더 이상 저항하지 못 했다.

저주의 마력을 발산하지도 못 하였고, 그저 비명만을 질러댔다.

[유더!]

코델리아의 부름에 유더는 응답했다. 찔러넣었던 수도를 회수함과 동시에 크라켄의 머리를 박찼다. 기력을 모두 소진해 움직이지 못 하는 유더를 카이사가 낚아챘다.

“멜리사!”

그 모습을 본 코델리아가 재촉하자 멜리사는 술식의 마지막 단계를 발동시켰다.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은 크라켄을 봉인지에 가둠과 동시에 아공간으로의 문을 열었다.

쿠구-!

크라켄의 거체가 봉인지의 바닥에 닿으며 진동이 일었고,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새카만 아공간이 오랜 옛날 그러했던 것처럼 다시 한 번 크라켄을 집어삼켰다.

봉인의 완성이었다.

“하악, 학······.”

코델리아는 이제 완전히 봉인지의 일부가 된 해신의 트라이던트에 몸을 기대며 숨을 헐떡였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카이사의 품에 안겨 축 늘어져 있는 유더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봉인도 일단 격퇴는 격퇴인지 유더의 전신에 새하얀 빛의 고리가 여러 개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직후.

코델리아가 자신의 몸을 에워싼 빛의 고리들의 숫자를 헤아리기 시작한 그때.

“우오오오오오오!”

“이겼다!”

“크라켄을 격퇴했다!”

세이렌들이 소리 높여 외쳤고, 환호했다. 유더와 코델리아의 이름을 연호하며 기뻐했다.

물 속인 터라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코델리아도 따라서 웃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축 늘어진 채 문라이트를 집어들며 말했다.

“우리가 이겼어.”

[축하드립니다.]

멜리사는 담백하게 말했고, 코델리아는 다시 웃었다.

승리한 와중에도 살짝 삐친 것 같은 멜리사를 달래듯 문라이트의 황금빛 보석에 입술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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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8장 - 성령의 호각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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