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0장 - 카게하마 백작가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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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7가문은 드래곤 슬레이어 카를로스를 보필한 일곱 기사들로부터 시작된 가문들이었다.
카를로스는 사람을 씀에 있어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종족이나 출신지 역시 신경 쓰지 않았고, 덕분인지 그의 일곱 기사들은 마치 일부러 노린 것처럼 다양한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신수 펜릴과 성수의 피를 모두 각성하여 강력한 성투사로 거듭난 투아왕 재니퍼 오펀드.
영원의 숲에서 나고 자란 엘븐나이트 크리스 가오란.
머나먼 이국 동방에서 온 신비의 무사 시류 카게하마 등등.
각양각색의 기사들은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와의 혈투로 말미암아 목숨을 잃고 만 주군 카를로스를 대신하여 건국왕 라이온 D 세일룬에게 남부의 지배권을 부여받았으니, 이것이 바로 남부7가문의 시작이었다.
“뭐, 뭐냐! 대체 무슨 일이냐?!”
카게하마 백작의 차남인 바르도 카게하마는 한창 그리던 그림에 얼른 하얀 천을 덮어 씌운 뒤 목소리를 높였다.
갑자기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습격입니다!”
“습격입니다, 도련님! 피하십시오!”
하인들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바르도는 반사적으로 창문을 돌아보았지만 한밤중인데다 3층에 위치한 그의 방이었다. 바짝 달라붙지 않는 한 달빛 외에는 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으아아!”
“막아! 막아야 한다!”
“백작 각하!”
“불이야!”
여기저기서 비명소리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과거 시류 카게하마는 검 한 자루로 오크 일백을 베었을 정도로 뛰어난 무사였지만 바르도는 그렇지 않았다.
벌써 300년도 넘게 지난 일인 터라 아예 얼굴에서조차 동방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그였다.
색이 진한 금발과 뚜렷한 이목구비, 하얀 얼굴을 가진 그는 무기를 챙기는 대신 허겁지겁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버지?”
“들어가! 어서!”
카게하마 백작이었다.
쉰을 눈앞에 둔 나이였지만 시류 카게하마의 검술을 이어받은 그는 이십대 청년인 바르도보다도 훨씬 더 건장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방을 나서려던 바르도를 다시 방 안에 밀어 넣은 카게하마 백작은 얼른 문을 닫은 뒤 말했다.
“습격이다. 도망쳐야 한다. 수비 병력을 보강해두었지만 턱 없이 부족하다.”
사이가 나쁜 만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남부7가문이었다.
스칼렛이 말한 것처럼 습격당했다는 사실을 쉬쉬하고 있는 남부7가문이었지만 이미 저들끼리는 어느 정도 사정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병력을 저택에 주둔시키고 있던 카게하마 백작이었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도를 넘어섰다.
소수의 병력이 몰래 침투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명이서 아예 대놓고 담을 넘어왔으니 말이다.
더욱이 하나하나의 솜씨가 범상치 않은 것 같았다.
“어서!”
“하, 하지만 어디로?”
“이쪽이다, 이쪽에 비밀 통로가 있다.”
“제 방에요?!”
“가주와 후계자만 아는 통로다. 빨리 따라와라.”
지금까지 공격받은 남부7가문의 가주들은 모두 무사했다. 놈들의 목표는 7가문의 가주들이 아닌 카를로스의 증표를 비롯한 7가문의 보물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지금까지와 다른 형태의 공격이 가해진 마당이니 놈들의 목적 역시 바뀌거나 추가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아버지, 그건?”
“가문의 증표다. 아무튼 떠들 때가 아니다.”
카를로스와 시류 카게하마의 문장이 들어가 있는 주먹만한 크기의 상징물을 주머니에 쑤셔 넣은 카게하마 백작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벽을 두드렸다.
“와, 세상에.”
설마 자신의 방에 이런 것이 있었을 줄이야.
벽 사이에 나타난 비밀 문에 바르도가 눈을 빛낼 때였다.
쾅!
굉음과 함께 방문이 터지듯 박살나더니 검은 복면을 뒤집어 쓴 괴한 다섯이 줄지어 방안에 들어섰다.
“히익.”
괴한들이 들고 있는 검에 핏자국이 선명했다. 여기까지 오는 와중에 몇이나 되는 사람들을 죽인 게 분명했다.
바르도가 벌벌 떨며 뒷걸음질 치자 카게하마 백작은 욕지거리를 토하며 검을 뽑아들었다.
“이런 젠장! 원하는 게 무엇이냐!”
하지만 괴한들은 무어라 답하는 대신 백작의 허리춤에 달려있는 주머니에 시선을 집중하였다.
아무래도 카를로스의 증표를 노리는 모양이었다.
“쳐라! 증표를 빼앗아!”
제일 뒤에 서 있던 괴한이 소리치자 앞에 있던 괴한 넷이 동시에 지면을 박찼다. 카게하마 백작은 재차 욕지거리를 토하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씨발 쾅!”
거대한 굉음이 맑고 고운 목소리를 집어삼켰다.
카게하마 백작과 바르도의 반대편에 있던 벽이 통째로 폭발하며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폭발로 인한 파편과 충격파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괴한들이 비명과 함께 나자빠졌다.
“뭐, 뭐냐.”
카게하마 백작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새로운 침입자들을 바라보았다.
여자 둘이었는데, 하나는 마술사 같은 복장에 검은 나비 가면과 커다란 토끼 귀 머리띠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얼굴 전체를 가리는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다.
‘누구지?’
복면을 쓴 괴한들도 괴이했지만 눈앞의 여자들도 수상쩍기는 마찬가지였다.
애당초 벽을 부수고 나타난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벌벌 떨고 있던 바르도가 돌연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카이사! 카이사 맞지?! 구하러 와줬구나!”
바르도가 반가워 외치자 카게하마 백작은 눈을 크게 떴다.
아들놈의 말을 들고 보니 정말 카이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백작님을 지켜라!”
“폭발음이다!”
“3층이야!”
다시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바르도는 환희에 차 두 팔을 벌렸고, 카게하마 백작은 다시 한 번 다른 의미로 놀랐다.
설마 아들놈하고 오펀드 후작가의 카이사가 연인 관계기라도 했단 말인가?
“야! 바르도! 내가 이런 거 또 그리면 아주 죽여 버린다고 했지?!”
하지만 아니었다. 노여움 가득한 외침에 다시 놀란 카게하마 백작은 하얀 가면의 여자- 카이사가 가리킨 방향을 돌아보았고, 침음을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방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것은 카이사의 얼굴이 들어간 춘화였으니 말이다. 방금까지 그리던 물건인지 미완성인 상태였다.
“아니, 이건 그러니까······.”
“변태새끼! 너 오늘 나한테 죽었어. 어?”
카이사가 씩씩 거리며 다가오자 바르도는 다시 힉힉 거리며 뒷걸음질 치더니 비밀 문으로 도망쳐 버렸고, 카게하마 백작은 참담한 가운데 다시 목소리를 내었다.
“카이사!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위급한 상황이다. 빨리 탈출하자.”
사이가 나쁜 만큼 서로를 잘 알았다.
오펀드 후작가는 짐승의 피를 이은 가문답게 단순하고 무식했다.
정면으로 쳐들어온다면 선전포고를 한 뒤 깃발을 들고 덤벼오지 이런 식으로 괴한들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니 적어도 오펀드 후작가는 아닐 터였다.
갑자기 벽을 뚫고 나타난 것은 기이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렇다면 일단은 함께 도망치는 것이 맞았다.
‘여차하면 시간벌이로 쓰고!’
카게하마 백작은 다시 비밀 문을 연 뒤 카이사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런데 카이사 대신 옆에 있던 나비 가면의 여인이 목소리를 내었다.
“백작 각하! 그쪽이 아니에요! 이쪽으로 오셔야 해요! 저희는 백작 각하를 구하기 위해 왔습니다!”
천사처럼 맑고 고운 목소리였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호소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인 카게하마 백작은 여인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럼 그쪽 구멍으로?”
“예! 이쪽으로! 어서!”
“3층이다! 3층으로 가라!”
“으아악! 백작 각하!”
마치 여인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듯 방 밖에서 요란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수비 병력이 거의 다 당한 모양이었다.
“미, 믿겠다!”
카게하마 백작은 성큼 여인에게 다가섰고, 나비 가면의 여인은- 코델리아는 그런 백작의 허리춤에 손을 뻗었다.
“역시, 여기 있구나.”
카를로스의 증표.
스칼렛은 두 가지 가설을 내세웠다.
하나는 사전조사대로 카를로스의 증표가 보물고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카게하마 백작이 카를로스의 증표를 가지고 있을 거란 가설이었다.
‘당한 사람이 많은데다 공격까지 받은 마당이니까.’
이미 남부7가문 가운데 넷이 당한 마당이니 평소보다 더 신경을 쓰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그 와중에 공격까지 당했다?
손이 닿는 범위 안에 있다면 들고 도망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까 우리도 나뉘자.’
스칼렛은 보물고로. 코델리아와 카이사는 카게하마 백작이 이용할 가능성이 높은 비밀 통로 쪽으로.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앗 하는 사이에 주머니를 빼앗긴 카게하마 백작은 황망한 얼굴로 코델리아를 보았고, 카이사는 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컥!”
완전히 방심한 상황에서 복부에 꽂힌- 그것도 괴력의 주먹이었다. 아무리 검술을 익힌 카게하마 백작이라 해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꺼흑, 꺽.”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배를 잡고 쓰러진 카게하마 백작을 내려다본 코델리아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카이사에게 말했다.
“좀 너무한 거 아냐?”
“천사 같은 목소리로 사기 치는 네가 더 너무하거든?”
“이쪽이다!”
괴한들의 고함소리와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코델리아는 더 따지는 대신 바로 구멍을 향해 몸을 던졌고, 카이사 역시 카게하마 백작을 보따리처럼 짊어진 뒤 그리했다.
[유더야! 확보했어!]
허공으로 몸을 던진 코델리아는 지붕에서 대기 중인 유더에게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카이사는 그런 코델리아의 허리를 한 손으로 낚아챘고 말이다.
“흐앗샤-!”
한 명은 옆에 끼고 다른 한 명은 어깨에 짊어지고.
무려 두 사람 분의 무게가 더해졌지만 무척이나 안정적으로 착지한 카이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밝아서 그런지 평소보다 힘이 나는 그녀였다.
[코델리아, 스칼렛에게도 전파했어. 일단-]
“피해!”
지붕 위에서 스칼렛과 코델리아 사이를 중계하던 유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친 순간이었다.
츠화아아아악-!
새빨갛고 거대한 검기가 코델리아와 카이사를 향해 몰아쳤다.
너무 빨라 제대로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흐악?!”
카이사는 본능대로 움직였다. 한 팔로 안고 있던 코델리아를 더욱 바짝 당겨 품안에 넣은 뒤 카게하마 백작을 짊어진 채 크게 뛰어올랐다.
하지만 검기 쪽이 더 빨랐다. 새빨간 검기가 노도처럼 몰려와 카이사의 허리를 집어삼켰다.
츄확-!
순간 눈을 질끈 감은 카이사였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대로 다시 지상에 안착했다.
“어?”
어떻게?
코델리아는 답을 알고 있었다. 검기에 닿기 직전 요정의 발걸음을 사용한 덕이었다.
“씨발! 설마 또 십검호야?!”
새빨갛고 거대한 검기라니!
코델리아가 욕지거리를 토한 그때였다.
이번에는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거대한 검기가 밀려왔다. 얼핏 봐도 양끝이 5미터 이상은 될 것 같은 거대함이었다.
“우오오!”
하지만 이번에는 반응할 수 있었다.
카이사는 재빨리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검기를 피했다. 그리고 정면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칼날을 마주하였다.
“어딜!”
서슬 퍼런 칼날에 머리가 썰리기 직전에 검은 용의 기운이 몰아쳤다. 연이어 뇌성이 쳤고, 카이사는 급한 대로 카게하마 백작을 멀리 던진 뒤 바닥을 굴러 자리를 이탈했다.
“악!”
덕분에 카이사의 품에 안겨 있던 코델리아는 비명을 질렀지만 지금 아프고 자시고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급히 눈을 떠 방금까지 서 있던 장소를 보았다.
무척이나 거대한 남자와 격돌 중인 유더가 보였다.
“유더!”
“하앗!”
초풍신뢰로 단숨에 거리를 좁힌 유더는 수도로 검격을 펼치는 대신 재차 흑룡의 기운을 터트렸다. 일단 코델리아와 합류해 대열을 갖출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태양권!’
순백의 빛이 작렬했다.
공격을 예상하고 있던 거대한 적- 거인은 신음을 토하며 뒷걸음질 쳤고, 멍하니 눈을 뜨고 있던 카이사는 악하는 비명과 함께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그런 카이사의 품에서 벗어나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구보다 유더를 잘 알기에 태양권에 한발 앞서 눈을 감았던 그녀였다.
“마두르스.”
십검호가 아니었다.
말레키스의 수하 가운데 하나인 타락한 드워프 마두르스가 분명했다.
‘저런 놈은 또 없으니까!’
눈앞에 자리한 거인은 특이했다.
거인은 분명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거인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으니 말이다.
5등신.
전형적인 드워프 남성의 체형.
대부분의 무술이 그러한 것처럼 검술 역시 키가 작은 쪽보다는 큰 쪽이 유리했다.
때문에 드워프 전사들은 괴력을 이용해 미늘창 같은 장병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리치의 불리함을 극복하려 하였다.
하지만 마두르스는 다른 생각을 하였다.
이쪽이 작다면, 그냥 더 커지면 되는 것이 아닌가.
마두르스는 거인화 마법에 주목하였고, 결국 스스로의 몸을 몇 배나 키우는데 성공했다.
머리도 크고 몸도 크고 손도 큰 거대 드워프의 탄생이었다.
“잡것들이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회색 피부와 하얀 수염을 가진 마두르스는 붉은 안광을 빛내며 으르렁거렸다.
새카만 갑옷을 전신에 두른 채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검을 쥐고 있는 그는 거대한 드워프 골렘처럼도 보였다.
“강철의 성.”
“전형적인 탱킹 전사.”
“무지막지한 괴력과 거대한 병장기에서 쏟아지는 박력 있는 물리 공격.”
“물방과 마방 모두 우수.”
“기본적으로 암흑 속성. 성 속성에 약하긴 하지만 결정적인 약점이라 할 정도는 아님.”
“그냥 딜로 찍어 눌러야해.”
오랜만에 정보를 주고받았다.
그런 두 사람의 이야기에 카이사는 흠칫 놀라며 일어섰다.
“마두르스? 설마 강철의 성 마두르스?!”
전설- 아니, 역사 속의 인물이었다.
당장 오펀드 후작가의 서고에도 재니퍼 오펀드와 마두르스와의 전투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미친, 진짜야?”
이미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말레키스의 부활에 대해 들은 카이사였다.
하지만 제대로 실감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전설 속의 악룡이 부활한다니.
이미 크라켄을 경험해본 카이사였던 터라 일단 믿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미심쩍어 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사명감과 더불어 카게하마 백작가에 엿을 먹일 수 있다는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진짜였다.
말레키스의 삼기사 가운데 하나인 마두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크큭, 나를 알아보고도 도망치지 않는 건가? 그 용기가 참으로 가상하구나.”
마두르스가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검을 늘어트렸다. 그리고 동시에 마두르스의 허리춤에 있던 주머니와 코델리아가 카게하마 백작에게서 빼앗은 주머니에서 빛이 일기 시작했다.
카를로스의 증표끼리 공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일곱 가문 가운데 네 가문.’
그리고 카게하마 가문까지 다섯 가문 째.
네 가문을 공격할 때만 해도 지금과는 방식이 달랐다.
나름대로 몰래몰래 일을 진행하던 놈들이었다.
그런데 다섯 번째에 와서는 지금처럼 아예 대놓고 일을 진행하였다.
어째서일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순간 유더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머릿속에서 하나의 가설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설마?!”
다섯 번째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유.
놈이 구태여 이미 모은 증표들을 모두 가지고 나온 이유.
“호, 눈치 챈 건가?”
마두르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카이사는 영문을 몰라 유더를 돌아보았고, 코델리아는 똑같이 행동하는 대신 마두르스와 그 뒤를 보았다.
카게하마 백작가가 무너지고 있었다.
정원에는 불이 붙었고, 저택에서 튀어나온 괴한들이 포위진을 형성하듯 담벽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코델리아는 숨을 깊이 삼켰다.
생각하는 대신 느꼈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했다.
“마두르스를 조지자.”
이번 기회에 쓰러트리고 카를로스의 증표를 빼앗자.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되었든 이 자리에서 마두르스를 쓰러트리고 증표를 빼앗으면 이쪽이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자, 잠깐. 마두르스야. 마두르스라고.”
평범한 상대가 아니었다.
세바스찬처럼 약화된 상태도 아니었고 말이다.
카이사가 당황해서 말했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그대로 마두르스를 노려보았고, 마두르스는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용기가 아니라 만용과 광오함이었구나. 나를 상대하려면 적어도 십검호라는 자들 정도는 데려와야 할 터이거늘.”
“어, 그래 십검호.”
맞는 말이었다.
아직 말레키스가 부활하기 전이라 만전 상태가 아닌 마두르스였지만 원작 상의 스펙을 고려한다면 최소한 십검호 정도 스펙은 되어야 놈을 상대할 수 있었다.
십검호.
그놈의 십검호 말이다.
“야, 카이사.”
“어?”
“잘 봐.”
코델리아의 등 뒤로 광익이 펼쳐졌다. 동시에 머리 위로 순백의 고리가 형성되며 강력한 천사의 힘이 개방되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다가 아니었다.
마두르스가 흠칫한 순간 뇌성이 터졌다. 검은 질풍과 함께 한줄기 번개로 화한 유더가 마두르스를 향해 돌진했다. 가속하며 단숨에 제육문을 개문하였고, 소드 오리진의 힘을 일깨웠다.
지금 다시 한 달 여 전으로 돌아가 호국공과 재대결을 펼치면 어떻게 될까.
예전처럼 피를 토하며 고전을 할까?
십검호 가운데 최약체인 호국공을 상대로?
콰가강!
다시 한 번 뇌성이 터졌다.
그리고 카이사는 볼 수 있었다.
유더의 대답을.
십검호의 경지에 오른 자가 펼치는 검기를!
“이런 미친?!”
마두르스는 당황했다. 상상이상으로 빠르고 강력한 유더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힘을 끌어올렸다. 다급히 물러서며 방어를 굳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현실이었다. 말 그대로 폭발하듯 증폭된 유더의 내력이 실린 일격이 마두르스의 방패 위를 두드렸다.
그리고 그렇기에 마두르스는 유더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못 했다.
담벽을 포위하고 있던 마두르스의 수하들 역시 갑작스러운 힘의 개방에 놀라 모두 유더를 쳐다보았다.
카이사도 그랬다.
때문에 코델리아는 카이사에게 메시지 마법을 보내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자신을 보게 하였다.
“아?”
카이사는 멍한 얼굴로 코델리아를 보았다.
까만 미소를 짓고 있는 코델리아가 무척이나 하얀 빛을 발하는 검을 높이 들고 서 있었다.
“원래 딜은 시작하자마자 박는 거야.”
상대가 제대로 대응하기도 전에.
제대로 방어할 수 없는 사각에서.
“심판의 날.”
오직 천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천상의 심판의 진정한 힘.
순백의 칼날들이 하늘 높은 곳에서부터 쏟아져 내렸다.
&
< 제90장 - 카게하마 백작가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