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0장 - 카게하마 백작가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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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가가가가가가-!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빛의 칼날은 그 자체만으로도 두려움을 야기하기에 충분했다.
천상의 심판.
천계의 사대천사 가운데 하나인 아우리엘이 그녀의 전사들을 위해 직접 벼린 일백 자루의 검.
아직 코델리아의 천사 등급이 낮다보니 과거 야생의 땅에서 레나가 사용했을 때만큼의 위력은 발휘하지 못 했지만 약화된 버전조차도 경천동지할 힘을 품고 있었다.
“마, 맙소사.”
카이사가 두려움과 경탄을 섞어 말한 그때 첫 번째 빛의 칼날이 지상에 당도했다. 수백 자루가 넘는 그것들은 카게하마 백작가의 외곽- 정확히는 담벼락 위로 쏟아져 내려 가로놓인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
콰가가가가가가가-!
장대비가 지면을 두드리는 것과 같았다.
무지막지한 빛의 포화에 휩쓸린 마두르스의 수하들은 문자 그대로 쓸려나가며 본신을 드러냈다.
복면을 쓰고 로브를 둘러 겉모습을 감추고 있던 마물들과 인간과 마물의 결합체인 합성 마인들이었다.
콰가가가가가-!
카게하마 백작가의 담벼락이 무너졌다.
성스러운 힘에 압도된 마물들과 마인들은 제대로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 했고, 쏟아지는 검의 포화 속에서 산화했다.
“아아, 아아아.”
새삼 다시 경탄하며 카이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 사이에서 순백의 빛을 발하는 성검을 높이 든 코델리아의 모습은 천사를 넘어 숫제 여신으로까지 보였다.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든 카이사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다. 가만히 놔두었다면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 코델리아를 경배했을 터였다.
가만히 놔두었다면 말이다.
쾅!
빛의 칼날들이 사라진 자리를 새로운 굉음이 채웠다.
유더와 마두르스의 격돌이었다.
‘이런 미친!’
유더의 맹공을 방패로 막아내는 와중이었지만 마두르스는 주변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의 포화에서 시선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천사라고? 거기다 이 위력은 대체 뭐란 말이냐!’
카게하마 백작가를 포위하고 있던 병력이 겨우 몇 초 만에 문자 그대로 전멸했다.
하나도 남지 않고 모조리 쓸려나가고 말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 한 일이었다.
마두르스 자신뿐만 아니라 저 시실리아 조차도 지금 같은 사태는 예상하지 못 했다.
‘갑자기 어디서 이런 놈들이 튀어나온 거지?!’
말레키스보다 한 발 앞서 깨어난 이후 이 시대의 정보를 수집하는데 열성이었던 시실리아였다.
덕분에 마두르스 역시 당대의 강자들에 대해서는 제법 소상히 알고 있었다.
십검호 가운데 둘을 직접 상대해 보기도 했고 말이다.
‘십검호와 카를로스의 일곱 기사들은 대등.’
적어도 자신이 상대한 둘은 그러했다. 일곱 기사들 가운데 최강을 다투었던 카를로스의 번견 재니퍼 오펀드나 귀쟁이 기사 크리스 가오란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들 바로 밑에 둘만한 실력자들이었다.
‘흔치 않아.’
흔할래야 흔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의 강자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특히 인간들 사이에서는 말이다.
엘프나 드워프들이 수백 년의 삶과 오랜 젊음을 보장 받은 것과 달리 인간들의 수명은 길어야 백년 남짓에 불과했고, 전성기라 할 수 있을 시기는 고작해야 20에서 30년에 불과했다.
즉, 애당초 수련 시간 자체가 극도로 짧았기에 엘프나 드워프 이상의 강자가 탄생하기 힘든 종족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검호 같은 강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들의 숫자가 엘프나 드워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기 때문이다.
진정한 천재들.
백의 하나나 천의 하나 따위가 아닌, 적어도 수십만 분의 일이라는 확률을 뚫고 태어난 괴물 같은 재능의 소유자들.
때문에 숫자가 많지 않았다.
일단 태어나면 싫든 좋든 두각을 드러내어 그 이름을 떨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놈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디서 갑자기 이런 놈이 튀어나왔단 말인가!
“크오오오오!”
마두르스는 크게 포효하며 방패를 거칠게 휘둘렀다.
유더의 공격을 끊음과 동시에 오른손에 쥐고 있던 거대한 검으로 벼락같은 내려치기를 선보였다.
수직.
평범한 이들은 눈으로 좇는 것조차 무리일 공격이었지만 유더에게는 아니었다.
공격을 펼친 마두르스 역시 알 수 있었다.
빗나간다.
놈이 이 공격을 피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유더는 자신의 정수리 한가운데를 향해 쏟아진 마두르스의 검격을 횡으로 이동해 회피했다.
마두스르가 예상한 그대로 말이다.
“타핫!”
어마어마한 속도로 쏟아져 내리던 마두르스의 검이 순간 중력을 거슬렀다. 내려치던 힘까지 모두 끊어내고는 단번에 방향을 바꿔 대각선 방향으로 솟구쳐 올랐다.
브이자 베기.
검의 진로를 갑자기 바꾸는 만큼 마두르스에게도 무리한 기술이었지만, 그렇기에 예상하기 어려운 공격이었다.
지금까지 이 공격을 초견에 피해낸 것은 재니퍼 오펀드가 유일했다.
그러니 맞는다.
반드시 명중한다.
놈의 몸을 찢어발긴다!
하지만 검의 진로를 바꾼 그 순간 유더의 눈에는 당혹이 번지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방향을 바꿔 솟구치는 검을 정확히 보고 있었다.
알고 있었으니까.
마두르스가 이런 종류의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콰가강!
검격에서 기인했다고는 믿지 못 할 굉음이 대기를 터트렸다.
하지만 마두르스는 알 수 있었다.
손맛이 없었다. 검은 유더를 베지 못 했다.
분명히 닿긴 닿았는데, 공격이 되지 못 했다.
마두스르는 급히 고개를 쳐들었다. 하늘 높은 곳에 유더가 있었다. 놈은 단순히 검격을 피하는데 그치지 않고 마두르스 자신의 검 위에 올라탔다.
올려 베는 힘을 타 그대로 솟구쳐 올랐다.
마두르스 입장에서는 당혹을 넘어 황당할 지경이었다.
재니퍼 오펀드말고도 이런 재주를 부릴 수 있는 놈이 또 있을 줄이야.
하지만 그래도 마두르스였다.
당황하긴 했지만 그의 몸은 이미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휘둘렀던 검을 회수하며 하늘에 위치한 유더를 공격하고자 붉은 검기를 모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촤라락!
검을 든 팔을 감싸는 것이 있었다. 급히 시선을 돌리니 오른팔을 휘감은 가느다란 끈과 그 끝을 붙잡고 선 천사가 보였다.
마두르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코웃음이 쳐질 광경이었다.
지금 설마 저 가느다란 팔로 자신을 저지하려는 것인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마두르스는 바로 오른팔을 당겼다. 겁 없이 자신과 힘겨누르기를 하려 한 천사에게 힘의 격차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팔을 당긴 순간이었다.
“어?”
천사가 미련 없이 끈을 놓아버렸다. 애당초 힘겨루기 따위 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는 듯 말이다.
어째서.
설마 그냥 잠시 시선을 돌리는 것이 목적이었나?
아니었다.
천사의 환한 미소가 그러한 가정을 부정했다.
다른 무언가.
단순히 잠깐 지체하게하는 것 이상의-
“씨발 쾅.”
콰가강!
오른팔이 폭발했다.
와이어 형태의 도폭선이 폭발했고, 깜짝 놀란 마두르스는 순간 검을 놓칠 뻔하였다. 도폭선의 일부가 갑옷으로 보호받지 못 하는 관절 부위에 타격을 준 탓에 팔이 끊어질 듯 아팠다.
“으아아!”
마두르스는 붉은 기운으로 팔을 감쌌다. 신체능력을 상승시킴과 동시에 출혈을 막았고, 천사를 향해 검기를 내쏘려 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 다시 방해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하늘에 자리한 유더였다.
“흑룡출수! 연사!”
저 높이 솟구쳐 올랐던 유더가 지면을 향해 쏟아지며 흑룡의 기운을 난사했다.
단번에 수십 개나 되는 흑룡의 기운들이 몰아치자 마두르스는 공격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급히 방패를 들어 흑룡의 기운들을 막아냈다.
콰가가가가강!
흑룡의 기운이 방패 위를 사정없이 두드려댔다. 한 발 한 발의 위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숫자였다.
‘저놈은 무슨 마법사인가?!’
세상에 어느 전사가 권기를 매직 미사일 쏘듯 난사한단 말인가.
‘아니, 애당초 권사이긴 해?’
분명 맨손인데 마치 검사를 상대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오오오오!”
마두르스는 다시 고함을 지르며 방패 위에 붉은 기운을 실었다. 흑룡의 기운을 단순히 막아내는데 그치지 않고 방패를 크게 휘둘러 걷어낸 뒤 하늘을 향해 붉은 검기를 쏘았다.
유더가 바란 그대로 말이다.
촤라라라라락-!
방패와 검을 휘두른다.
자연스럽게 두 팔을 옆으로 벌린다.
코델리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염동력으로 허공에 띄워둔 도폭선 네 개를 동시에 조종해 마두스르의 사지를 휘감았다. 마두르스가 아찔함을 느낄 새도 없이 시동어를 읊조렸다.
“씨발 쾅.”
콰가강!
도폭선이 동시에 폭발했다. 마두르스가 급히 붉은 기운으로 몸을 보호했지만 타이밍이 조금 늦었다. 마두르스의 사지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크아악!”
마두르스 입장에서는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이런 종류의 공격은 본 적은 물론이고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사지를 휘감는 순간 폭발하니 뜯어낼 겨를조차 없었다.
‘말레키스 님만 부활해 계셨다면!’
지금의 마두르스는 전력이 아니었다. 말레키스와 영혼의 계약을 맺음으로써 손에 넣었던 강철같은 육신을 지금은 사용할 수 없었다.
만약 말레키스가 부활해 있었다면, 그리하여 강철의 육신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이 따위 폭발은 모두 무시할 수 있었을 터인데!
“흑룡출수!”
바로 그 순간 허공에서 몸을 트는 것으로 마두르스의 검기를 피한 유더가 허공을 박찼다.
란디우스가 그러한 것처럼 발바닥으로 기공을 발산해 추진력을 얻었다.
그 상태로 흑룡출수.
실로 악마와 같은 양동공격이었다.
유더의 공격을 막으면 코델리아가 친다.
코델리아를 치려하면 유더가 공격해온다.
결국 양쪽 사이에서 번갈아 얻어맞기만 하는 마두르스였다.
“크오!”
마두르스는 엉망진창이 된 팔을 움직여 유더의 공격을 막아냈다. 방패 위에서 흑룡의 기운이 폭발했고, 그 순간 마두르스의 오른팔을 다시 도폭선이 휘감았다. 욕지거리를 토하기도 전에 다시 한 번 폭발했다.
“크아악!”
이번에도 끊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부상에 부상이 더해지니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오른팔이 절로 축 쳐졌고, 유더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쾅!
초풍신뢰.
유더가 순간 마두르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마두르스는 유더가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를 예측했다. 오른쪽. 순간적으로 봉쇄된 오른팔이 있는 방향.
실제로 그러했다.
그렇기에 마두르스는 급히 몸을 트는 것으로 유더의 수도를 피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축이 되는 왼발에 힘을 주며 오른팔을 억지로 휘둘렀다. 거대한 주먹으로 유더를 짓뭉개려 했다.
그림 같은 회피에 이은 반격.
과연 말레키스의 삼기사 가운데 하나다운 솜씨였지만 애석하게도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유더만이 아니었다.
왼발에 힘을 준 순간 악마와 같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리스!”
“억!”
미끄러졌다.
급격히 미끄러워진 바닥위에서 균형이 흔들렸다. 덕분에 마두르스의 주먹은 폭투가 되어버렸고, 유더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태양의 기운이 담긴 일장을 마두르스의 옆구리에 선사했다.
“커헉!”
태양심격.
갑옷 너머로 전해지는 충격에 마두르스는 피를 토하며 밀려났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비틀거리다 겨우 자세를 정돈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이었다. 코델리아의 마지막 도폭선이 이번에는 마두르스의 허리를 휘감았기 때문이다.
“이런 샹!”
절로 터진 욕지거리에 이어 이번에도 폭발이 일었다.
하지만 아까와 달리 피가 튀지 않았다. 마두르스가 거인화 마법을 풀고 드워프 본연의 크기로 돌아간 탓이었다.
콰강!
마두르스의 검과 방패가 땅에 떨어졌다. 갑옷의 다리 부분 역시 무너졌다.
하지만 몸통 부분은 해체되지 않았다. 오히려 팔과 다리를 감싸고 있던 파츠들이 몸통 부위와 결합해 단단한 방벽이 되었다.
마두르스가 2페이즈로 넘어가기 전에 사용하는, 절대방어의 자세였다.
‘거북이처럼 갑옷 속에 몸을 숨기고 힘을 회복한다.’
거인화를 푼 마두르스는 드워프들 사이에서도 작은 편에 속했다. 때문에 얼마든지 몸통 부위에 몸을 숨기는 것이 가능했다.
‘원작에서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현실이었다. 절대적인 방어력을 자랑하는 마두르스의 갑옷이었지만 파훼법은 분명 존재했다.
유더는 코델리아를 보았고, 코델리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비슷한 답을 본능적으로 떠올렸기 때문이다.
“폭발은 예술이야.”
생긋 웃은 코델리아는 허리춤에서 유더가 만들어준 다이나마이트 묶음을 꺼내 든 뒤 불을 붙였다. 그대로 마두르스의 갑옷 속에 손을 쑥하고 집어넣었다.
요정의 발걸음.
모든 공격을 투과시킬 수 있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을 투과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였으니까.
코델리아는 다이나마이트를 손에서 놓은 뒤 바로 손을 빼냈다.
이로써 오늘 치 요정의 발걸음은 모두 다 사용한 셈이었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마두르스는 이 정도 수고를 들일 가치가 있는 적이었으니 말이다.
콰가강!
갑옷 안에서 폭발음이 터졌다.
연이어 일종의 쉘터를 구축하고 있던 갑옷의 파츠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내부에서의 폭발로 파츠들 간의 결합이 깨짓 탓이었다.
“커헉··· 컥······.”
피투성이가 된 마두르스가 무너진 갑옷에 깔린 채 검은 피를 토했다. 두 눈에는 억울함과 노여움이 가득했다.
“아, 악마 같은······.”
이런 식의 전투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마두르스였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마두르스의 칭찬 아닌 칭찬에 쑥스러워하는 대신 해야 할 일을 했다.
도폭선이 폭발하는 가운데 마두르스의 허리춤에서 뜯겨져 나갔던 주머니를 코델리아가 집어 들었다.
“어? 증표가 다섯 개야.”
주머니 안에는 카를로스의 증표가 다섯 개나 들어 있었다. 마두르스에게 공격받은 가문은 넷이었는데 말이다.
이게 대체 어찌된 것일까.
스칼렛이 잘못 안 것일까? 실제로 공격받은 가문은 다섯인데 넷으로 착각한 것일까?
아니었다.
스칼렛은 틀리지 않았다.
“하나가 배신했으니까.”
“어?”
“남부7가문 가운데 하나가 말레키스와- 정확히는 시실리아와 손을 잡았다고.”
그렇기에 넷이 아닌 다섯이었다.
마두르스가 이렇게 대놓고 카게하마 백작가를 공격한 것 역시 그래서였다.
“카이사네 저택도 지금 공격하고 있지?”
유더의 말에 마두르스는 흠칫하였다. 유더의 말대로였기 때문이다.
“일곱 가운데 다섯은 이미 모았고 남은 건 카게하마 백작가와 오펀드 후작가의 증표뿐인 상황이니까. 더 눈치 보지 않고 들이박은 거겠지.”
만약 카게하마 백작가만 공격하는 것이었다면 이렇게 요란하게 나섰을 리가 없었다.
카게하마 백작가가 무너지는 것을 본 오펀드 후자가가 도둑이 아닌 군대를 막기 위한 준비를 할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애당초 동시에 공격한다면 그런 뒷일 따위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 안 그래?”
유더의 말에 멀리서 구경만 하던 카이사는 와-하고 감탄을 토했고, 코델리아는 마치 자신이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어깨를 으쓱이며 젠체하였다.
그리고 마두르스는 웃음을 흘렸다. 다 죽어가는 와중임에도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크핫, 크하핫! 그래, 네놈의 말이 맞다. 모두 네놈이 예상한 대로다.”
오펀드 후작가에도 병력을 보냈다.
그것도 카게하마 백작가에 동원한 것보다 근 세 배 가까이 되는 병력을 말이다.
“오펀드 후작가는 오늘 멸망할 것이다. 우리는 증표를 빼앗을 것이고, 네놈들은 일곱 개의 증표를 결코 모으지 못 할 것이다!”
카를로스의 증표는 일곱 개를 모두 모으지 않으면 그저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마두르스는 통쾌하게 웃었다. 마음껏 최후의 악의를 발산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조금도 분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아예 웃기까지 했다.
“뭐, 뭐냐.”
이번에는 대체 왜 웃는 것이냐.
유더와 코델리아는 대답하는 대신 카이사를 돌아보았고, 카이사는 씩 웃더니 놀리듯이 말했다.
“아닌데, 증표 여기 있는데. 벌써 일곱 개 다 모았는데.”
“뭐, 뭣이?”
블러핑 따위가 아니었다. 카이사는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정말로 오펀드 후작가의 증표를 꺼내들었다.
“어, 어째서.”
“그냥. 감이 좀 안 좋았거든.”
원조 짐승녀 카이사다운 이유에 코델리아는 까르르 웃었지만 마두르스는 아니었다.
필생의 숙적이었던 재니퍼 오펀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이 짐승 같은 오펀드 가문 놈들!”
감이라고?
그냥 감이 안 좋아서 증표를 들고 나왔다고?!
“그리고 우리집도 아마 괜찮을 걸?”
마두르스가 없다면.
그저 마물들과 하급 마인들만 보낸 것이라면.
“아저씨가 있으니까.”
신속의 검 세바스찬 르귄.
늦은 오후에 깨어난 그는 요 한 달 사이의 기억을 모두 잃었지만 대신이라도 되듯 시실리아의 세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거기에 아버지랑 오빠들도 있으니까.”
오펀드 후작가와 카게하마 백작가는 달랐다.
단순 무력만 논한다면 남부7가문 가운데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오펀드 후작가였으니 말이다.
더욱이 카이사의 갑작스러운 귀환 때문에 온 가족이 모여 있는 것도 컸다.
평소라면 집을 비우고 있을 큰오빠와 작은오빠 까지도 모두 귀환한 상태인 지금의 오펀드 후작가는 그야말로 만전 상태라 할 수 있었다.
“크으··· 큭······.”
마두르스 입장에서는 실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자신이 당한 것도 황당한데 시실리아가 기껏 확보했던 세바스찬 르귄이 오펀드 후작가를 지키고 있다니.
그가 오펀드 후작가에 들어간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벌써 깨어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한 시실리아와 마두르스였다.
그리고 실제로 세이렌들의 치료가 없었다면 깨어나지 못 했을 세바스찬이었다.
“빌어··· 먹을······.”
욕지거리를 토하며 마두르스는 축 늘어졌다.
애당초 치명상을 입은 와중에 악으로 버티던 그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오, 레벨 업.”
코델리아는 하얀 빛의 고리들에 휘감긴 채 미소 지었고, 유더 역시 그러했다.
약해진 상태라고는 하나 과연 말레키스의 삼기사답게 경험치 양이 예사롭지 않았다.
“우왕, 네 개나 올랐어.”
이로써 레벨이 근 90에 도달한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코델리아는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고, 유더는 다시 카이사를 돌아보았다.
“카이사.”
“어, 알아.”
오펀드 후작가를 지원하는 것에 앞서 해봐야 할 것이 있었으니 말이다.
“여기, 여기.”
코델리아가 생긋생긋 웃으며 마두르스가 모은 다섯 개의 증표와 카게하마 백작가의 증표를 내밀자 카이사는 순간 헛웃음을 터트렸다.
“왜?”
“아니, 그냥.”
생각해보면 크라켄도 때려잡은 둘이었으니까.
마두르스를 때려잡은 걸 놓고 새삼 놀랄 필요는 없으려나.
다시 키득 웃은 카이사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코델리아로부터 증표를 받아든 뒤 한 차례 숨을 골랐다.
유더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합친다?”
“어, 합쳐.”
카를로스가 자신의 일곱 기사들에게 하나씩 나눠준 그의 증표들.
서로 맞물려 하나가 될 수 있는 그것들을 카이사는 하나하나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오펀드 후작가의 증표.
코델리아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와중에 카이사는 손을 놀렸다.
마지막 조각을 합쳐 카를로스의 증표를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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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0장 - 카게하마 백작가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