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254화 (254/473)

< 제91장 - 아르곤 항구의 밤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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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세븐 시커의 드워프 장인 가운데 하나는 생각했다.

궁극의 검이란 무엇인가.

최강의 검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공격력이 강한 검이 궁극의 검일 것인가?

아니었다.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날카롭다, 가장 단단하다- 이런 것은 제대로 증명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강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최강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인가.

“최강을 꺾는 것이야말로 최강의 검.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의 경지.”

뭔가 살짝 이상해지기 시작한 이야기였지만 한 번 꽂히면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고대 드워프들이었다.

최초의 발상을 떠올린 드워프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한 드워프들을 하나로 모았고, 그렇게 모인 드워프들은 소드 시커의 일곱 길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최강을 꺾는 검. 그렇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두에게 최강이라 인식되는 존재.”

천계의 신들은 지상을 떠났다.

지옥의 악마들은 지상에서 추방당했다.

그렇다면 지상에 남은 최강은 무엇일 것인가.

“드래곤.”

최강의 종족.

날짐승들의 왕이자 들짐승들의 왕으로서 태어난 자들.

환상의 수맥을 올곧이 이어받은 저 일자왕一者王의 후예.

“우리는 최강을 꺾어 궁극을 실현할 것이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드래곤 베인 길드였다.

용살을 추구하는 드워프들의 집단.

사실 실용적인 목적도 다소 있기는 했다.

애당초 드래곤들과 고대 드워프들은 산맥의 주인 자리를 놓고 자주 대립하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드래곤 베인 길드의 드워프들 가운데 다수는 드래곤들과의 싸움으로 친지를 잃은 자들이었다.

“복수.”

고대 드워프들의 특성을 상징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

당한 것은 절대로 잊지 않고 그 원한을 갚고야 마는 드워프들의 집념.

물론 드워프들과 대립하는 드래곤들은 대부분 어덜트 드래곤- 즉, 일반적인 성체 드래곤들이었다.

드래곤들 사이의 초월자라 할 수 있을 에인션트 드래곤에 맞서는 것은 고대 드워프들에게조차도 무리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 무리를 넘어선다.”

“어덜트 드래곤 따위를 꺾는 검으로는 부족하다.”

목표로 하는 것은 진정한 최강.

에인션트 드래곤조차 꺾을 수 있는 궁극의 검.

드래곤 베인 길드의 최초 발상자는 소드 시커에서 나고 자란 드워프 발로란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드래곤 베인 길드를 이끈 것은 용 사냥꾼 칸더믹이었다.

산맥을 침략한 에인션트 드래곤에게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한쪽 눈까지 잃은 그는 에인션트 드래곤조차 죽일 수 있는 검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불태웠다.

하지만 에인션트 드래곤이었다.

최강의 종족 드래곤들 가운데서도 초월적인 힘을 가진, 지상에 강림한 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존재였다.

칸더믹과 드래곤 베인 길드의 드워프들은 수많은 드래곤들에게 공포와 원망과 증오의 대상이 된 ‘드래곤 슬레이어 시리즈’를 만들어냈지만 그 어느 하나도 에인션트 드래곤에게는 닿을 수 없었다.

고작 한 자루 검으로 닿기에는 너무 높은 곳에 군림하는 에인션트 드래곤이었다.

하지만 칸더믹과 드워프들은 쉬이 포기하지 않았다.

고대 드워프들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단어인 집념을 불태우며 실패하고 또 실패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그들은 한 가지 답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니, 하나의 답이 그들의 집념에 응답하듯 다가왔다.

“힘을, 원하는가.”

늙고 지친 칸더믹을 마주한 것은 죽음을 앞둔 에인션트 드래곤이었다.

에인션트 드래곤을 증오하는 에인션트 드래곤.

자신과 같은 에인션트 드래곤에게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물론이고 스스로의 목숨마저도 잃게 된 존재.

“복수를, 원하는가.”

칸더믹의 물음에 에인션트 드래곤은 미소 지었다.

자신의 물음에 물음으로 답한 그에게, 자신과 똑같은 운명을 겪은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허락하였다.

“얼티메이트 쓰리.”

소드 시커가 낳은 일곱 개의 궁극검 가운데 세 번째.

에인션트 드래곤의 영육을 벼려 만든 용살의 검.

아스카론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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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브레스가 갈라졌다.

드래곤의 강함을 상징하는 그 힘은 갈라진 와중에도 지면을 파괴하고 광장을 뒤흔들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큰 놀라움을 야기할 뿐이었다.

“드래곤 베인 아스카론.”

스칼렛을 꼭 끌어안고 있던 카이사가 멍한 얼굴로 말했다.

대영웅 카를로스의 검.

그가 에인션트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를 쓰러트리는데 사용한 전설의 검.

카이사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온 전설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나타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아, 아아아.”

몸이 달아올랐다.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블랙 드래곤을 둘이나 눈앞에 두고 있는 와중임에도 온 신경이 유더에게- 유더가 들고 있는 아스카론에게 집중되었다.

“잠깐, 잠깐.”

바로 그때 스칼렛이 말했다.

그녀 또한 드래곤 브레스를 가른 유더의 위용과 그 손에 들린 아스카론에 감탄했지만 그녀는 카이사와 조금 달랐다.

그녀는 로그 마스터였으니 말이다.

‘용의 인자가 필요해.’

드래곤 베인 아스카론- 저 용의 멸망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용의 인자가 필요했다.

즉, 평범한 인간은 애당초 제대로 쓸 수 없는 검이란 소리였다.

당장 카를로스만 하더라도 용의 피를 이은 쿼터 드래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스칼렛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자신의 지식을 입 밖에 내려던 순간 그녀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삼키고 다시 한 번 감탄을 토했다.

“용의··· 인자?”

아스카론을 처음 보는 스칼렛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아스카론이 울고 있었다.

아스카론이 유더의 손 안에서 포효하고 있었다.

‘뭐야, 용의 자손이었어?’

아니었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코델리아와 달리 유더는 순수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유더에게는 용의 인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유더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야생의 수호자.”

코델리아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녀와 유더의 손등 위에 똑같은 무늬가 떠올라 있었다.

황금색 용의 문장.

야생의 땅의 신인 황금의 용으로부터 부여받은 수호자의 상징.

원작에서 드래곤 베인 아스카론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플레이어블 캐릭터들 가운데 용의 피를 이은 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유더와 코델리아에게는 용의 인자가 존재했다.

“흐흐, 흐흐흐.”

게임뇌가 돌아가기 시작한 코델리아가 웃음을 흘렸고, 유더는 아스카론의 포효에 호응했다. 황금 용의 문장에 담긴 용의 인자를 활성화시켜 아스카론의 힘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순간.

“후대는 파렴치합니다.”

시간이 정지했다.

눈앞의 광경이 변하였다.

하늘과 땅이 모두 새카만 세상.

그리고 등 뒤에서 들려온 불만 가득한 목소리.

“벨렌···시아 님?”

흠칫하며 돌아선 유더는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벨렌시아가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양다리.”

“아니, 그······.”

“불륜남.”

“저, 저기요?”

“변태.”

“저기.”

“평생 나만 바라본다고 했으면서.”

“네?”

그런 적 없거든요?

다른 검도 쓸 거거든요?

‘아니, 이러니까 내가 진짜 쓰레기 같잖아.’

고개를 휘휘 내저어 정신을 차린 유더는 다급하게 말했다.

“벨렌시아 님! 지금은 비상상황이니까!”

“바람둥이.”

“으윽.”

생각해보면 소드 오리진을 손에 넣은 이후 바람피우는 것 같다면서 아예 검을 놓아버렸던 그녀였다.

그녀 입장에서 유더의 행동은 불륜 그 자체와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뭐가 불륜이야! 그냥 같이 쓰는 거지!’

애써 흥분을 가라앉힌 유더는 빠르게 말했다.

“벨렌시아 님, 부득이 검 두 자루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드래곤들을 상대하기 위함이니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대놓고 바람을 피우겠다는 건가요? 하렘 선언인가요?”

“아니이······.”

이게 왜 바람이냐고요.

‘그러고 보니 코델리아한테는 별 말 없지 않았나?’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벨렌시아는 검으로서 자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아, 정말이지 후대는 어쩔 수 없군요.”

“벨렌시아 님?”

“특별히 허락하도록 하겠어요. 후대 말대로 비상 상황이니까요. 후대는 아직 수련도 부족하고요.”

즉, 지금은 약하니 두 자루 검을 쓰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소리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후회하지 않게 해드릴게요.”

“진짜 바람둥이 같은 말이군요.”

눈을 가늘게 뜬 채 말한 벨렌시아는 다시 한숨을 쉬더니 어깨를 늘어트리며 말했다.

“아무튼 서두르죠. 의식 세계라 시간이 느리게 흐르긴 하지만 아예 정지한 것은 아니니까요. 지금 같은 시간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도 그리 길지는 않을 테고요”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대체 뭘 서두르라는 것일까.

“그야 그녀와의 만남이죠. 이제부터 운명을 함께할 사이인데 서로 소개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녀.

앞으로 운명을 함께할 상대.

유더는 자연스럽게 돌아섰다.

어둠 너머를 바라보았고, 거대한 존재를 인식하였다.

에인션트 블루 드래곤 아스카론.

용을 증오하는 용.

영육 모두를 얼티메이트 쓰리에 녹여냄에 따라 검령이 된 존재.

마치 죽은 것처럼 바닥에 길게 누워있는 블루 드래곤의 머리 위에 여인 하나가 서 있었다.

길고 푸른 하늘색 머리칼과 여신을 연상시키는 하얗고 하늘하늘한 옷.

우울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던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말하였다.

“힘을, 원하는가?”

자신을 소개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공간이 뒤틀렸고, 유더는 어느새 여인 앞에 있었다. 유더의 곁에 선 벨렌시아가 경계하듯 여인을 노려보았지만, 여인은 멈추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로 계속해서 말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용살의 의지와 복수뿐이었다.

“힘을 원한다면-”

클리셰적인 대사였지만 좋았다.

유더는 여인이 내민 손을 잡았고, 벨렌시아는 마치 질 수 없다는 듯 유더의 나머지 한 손을 붙잡았다.

벨렌시아의 손이 뜨거운 반면 여인의 손은 차가웠다.

여인은 천천히 눈을 떴다.

시리도록 파란 눈동자로 유더를 바라보며 말을 맺었다.

“-주겠다.”

용의 파멸을 초래할 힘을.

푸른 빛이 일었다.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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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더!”

코델리아가 외쳤고 유더는 번쩍하고 눈을 떴다.

눈앞에서 다시 한 번 블랙 드래곤의 성체 두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연이은 브레스 웨폰.

놈들에게도 꽤 무리한 일이었다.

유더의 손에 들린 아스카론이 그들에게 무리를 강요했다.

그리고 유더는 깨달았다.

고작 1단계에 불과했지만 아스카론의 진정한 힘을 이끌어냈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스카론이 포효했다.

오직 용들만이 들을 수 있는 울음소리가 항구 전체를 뒤덮었고, 방금까지 브레스 웨폰을 쏘기 위해 입을 벌렸던 드래곤들은 비명을 지르며 날갯짓을 했다. 마치 도망치듯 상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드래곤을 압도하는 드래곤 피어.

아스카론은 검신은 순백이었다.

일반적인 롱소드를 넘어 클레이모어에 가까운 양손검이었고, 검신과 손잡이는 이렇다할 구분 없이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푸른 보석.

손잡이와 검신을 잇는 부위에 박혀 있는 시리도록 파란, 아스카론의 눈동자와 같은 그것.

아스카론이 유더에게 힘을 부여하였다.

하얀 검신 위로 푸른 빛을 발하는 용살의 기운이 어렸다.

블랙 드래곤의 비늘과 가죽 따위 용살의 힘 앞에서는 무력할 따름이었다.

“키아악!”

“키악!”

블랙 드래곤 두 마리가 하늘에서 요동을 치며 울부짖었고, 미소 짓고 있던 코델리아가 흠칫하며 정면을 보았다.

마테오와 그 수하들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더욱이 그들만이 아니었다.

코델리아는 본능적으로 돌아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미친.”

검은 밤하늘을 뒤덮는 것들이 있었다.

말레키스의 검은 용군단에 속해 있는 아룡들.

시실리아는 더 이상 병력을 아끼지 않았다.

마테오라는 카드를 공개하는데 이어 휘하에 있는 병력 모두를 쏟아부었다.

‘아스카론.’

말레키스를 쓰러트린 용살의 검.

저것만은 반드시 빼앗아야 했다. 탈취해야만 했다.

“크아악!”

와이번과 드래이크들이 포효하며 돌진해왔다. 그리고 그들로 다가 아니었다.

“땅이 울리고 있어.”

카이사가 말한 그대로였다.

멀리서부터 돌진해오는 무리들로 인해 땅이 울리고 있었다.

블랙 핸드 용병단의 멧돼지 수인들.

가모르 칸이라는 주인을 잃은 그들은 시실리아의 수하에 들어갔고,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부름에 따라 전장에 나섰다.

“장관이군.”

마테오가 웃으며 말했다.

당장 그가 이끌던 마물들만 하여도 그 숫자가 수십에 달했다.

여기에 루클리아 백작가의 검사들이 다시 스무 명 이상 더해졌고, 하늘의 아룡들 수십과 지상의 멧돼지 수인 일백이 더해지니 그 전력이 실로 굉장했다.

더욱이 하늘에는 블랙 드래곤의 성체가 두 마리나 있지 않은가.

‘남부7가문은 나서지 못 한다.’

아르곤 항구는 왕실 직할령이었다.

남부7가문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중립지였고, 때문에 남부7가문은 아르곤 항구 내에는 무척이나 적은 숫자의 사병만을 거느리고 있었다.

‘기껏해야 열에서 스물 남짓.’

그 정도 숫자로 나설 남부7가문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집을 지키거나 도망치는데 급급할 터였다.

‘기사단이 나서도 소용없겠지.’

아르곤 항구를 지키는 왕실 직할의 시라이온 기사단.

하지만 그들도 기껏해야 스무 명 남짓에 불과했다. 경비병의 숫자도 서른 남짓에 불과했으니, 이 자리에 나섰다가는 개죽음만 당할 뿐이었다.

“이쪽에게 약속된 승리나 다름없다.”

마테오는 나직이 말하며 검을 뽑아들었고, 그의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 젠장.”

유더가 발휘한 아스카론의 힘에 뺨을 붉히며 아이처럼 좋아하던 카이사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사방을 에워오는 불길한 기운에 몸을 경직시키더니 급히 코델리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까 그거! 달빛!”

문 크리스탈을 이용한 공간 도약.

하지만 당장은 무리였다.

하루 세 번 사용이 가능한 문 크리스탈의 공간 도약은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약간의 준비 시간을 필요로 했다.

“쿨타임이야.”

“그게 뭔데!”

하지만 대답하는 코델리아의 분위기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당장은 쓸 수 없다는 소리이리라.

“이런 젠장.”

다시 욕지거리를 토한 카이사는 숨을 크게 고르더니 등에 차고 있던 도끼를 뽑아들었다.

이리 된 이상 미친 듯이 날뛸 뿐이었다.

카이사 오펀드는 겁에 질린 강아지가 아닌 용맹한 늑대였으니 말이다.

“정면대결은 무식한 짓이야. 퇴로를 찾아야 해.”

스칼렛이 빠르게 말하며 사복검을 늘어트렸다.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광익을 펼쳤고, 그녀의 머리칼이 검게 물들었다. 타천사의 힘이었다.

그리고 유더는 하늘을 주시하였다.

아스카론을 경계하는 듯 상공 높은 곳에서 마법을 준비하는 블랙 드래곤들과 저만치에서 날아오고 있는 아룡들, 그리고 여전히 땅을 울리며 돌진해오는 블랙핸드 용병단을 모두 눈에 담았다.

‘후대여, 두려워 마라. 내가 그대와 함께할 것이니.’

소드 오리진 벨렌시아.

그녀의 말에 유더는 미소지었다.

수많은 적들에게 포위되어 최악의 위기를 맞이했지만 두려워 떠는 대신 기분 좋게 고개를 돌렸다. 코델리아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유더야?”

“아직 모르겠어?”

이게 무슨 말일까.

생뚱맞게 모르겠냐니.

그래서 코델리아는 유더의 눈을 보았고,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마테오를 비롯해 자신들을 포위한 병력에 정신이 팔려 놓쳤던 사실을 깨달았다.

그랬기에 유더와 똑같이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뭐야, 쌍으로 미친 거야?”

카이사의 물음에 스칼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던지고 싶었던 물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블랙 드래곤들의 마법이 완성되고, 어느새 거리를 좁힌 아룡들과 멧돼지 수인들이 울부짖으며, 십검호의 일원인 마테오가 거리를 좁혀오는 이때.

유더는 밤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예상대로의 일이 일어났다.

멀리서부터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검귀 카마엘.”

영웅전기 1편의 진주인공.

플레이아데스를 대표하는 사대 검사 가운데서도 필두.

맹목적으로 돌진하던 멧돼지 수인들의 선두가 무너져 내렸다.

한줄기 푸른 섬광이 그들 사이를 휩쓸자 붉은 피가 난무했다. 깨끗하게 두 동강 난 멧돼지 수인들의 시신이 하얗게 서리가 인 바닥 위를 뒹굴었다.

그리고 까마귀 떼가 흩어졌다.

그 사이로 하얀 머리칼을 가진 칠흑의 검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이사는 눈을 크게 떴다.

스칼렛은 하늘을 보며 눈을 빛냈다.

코델리아는 환히 웃으며 말했다.

“성천사 레나.”

하늘에서 순백의 빛이 쏟아져 내렸다.

마치 코델리아가 사용했던 심판의 날처럼 빛의 검 수십이 아룡들의 선두를 집어삼켰다.

“크아아악!”

“카악! 칵!”

선두에 있던 와이번 여럿과 드레이크 두어 마리가 지상에 곤두박질 쳤다.

기세좋게 날아오던 아룡들은 주춤하였고, 자신들 앞에 선 순백의 천사 앞에서 본능적인 두려움을 토했다.

성십자 수호단의 단원들.

유더와 코델리아보다 며칠 앞서 아르곤 항에 도달한 그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였다.

검귀 카마엘과 성천사 레나를 이 자리에 불러내었다.

그리고 저 둘의 등장이 의미하는 또 하나의 것.

마테오는 등 뒤를 찌르는 섬뜩한 감각에 몸서리를 쳤다. 십검호의 자리에 이른 이래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등 뒤를 돌아보았다.

그만이 아니었다.

시실리아가 동원한 병력 전체가 그의 존재를 인식했다. 너무나 거대한 존재감에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대지 위에 우뚝 선 자.

중앙 광장을 가로지르는 대로 한복판에 선 거인.

“항상 근육이 함께하기를!”

코델리아가 환호하며 소리쳤다.

너무 놀란 카이사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고, 스칼렛은 전설의 등장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 모든 시선과 관심에 그가 응답했다.

“강철의 마음, 불굴의 의지, 천하무쌍의 육체.”

블랙 드래곤의 성체가 둘.

수십의 아룡과 일백을 헤아리는 멧돼지 수인들.

왕국의 십검호 가운데서도 중간 이상이라 평가받는 중압검 마테오 루클리아.

그런 그가 길러낸 스무 명의 정예 검사들.

이제는 수십을 넘어 일백을 헤아리게 된 마물들과 열이 넘는 하급 마인들.

적은 많았다. 도시 하나 쯤은 얼마든지 멸망시킬 수 있는 전력이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양과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육문이면 떡을 치겠군.”

철인 란디우스.

인류최강의 힘이 아르곤 항 전체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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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1장 - 아르곤 항구의 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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