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255화 (255/473)

< 제91장 - 아르곤 항구의 밤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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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실리아는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을 알고 있었다.

영웅.

종의 한계를 초월한, 누가 뭐라 해도 우연일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킨 자들을 일컫는 말.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은 진정한 영웅들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데몬 프린스는 물론이고 그의 군대까지 격퇴한 그들은 이 시대의 신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들과 같아.”

시실리아가 이미 알다 못해 직접 경험한 자들.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이 그러한 것처럼 기적을 일으킨 존재들.

“카를로스.”

남부의 대영웅.

드래곤 슬레이어.

“라이온 D 세일룬.”

세일룬 왕국을 세운 자.

격세유전을 통해 신화시대의 힘을 타고난 자. 이미 존재 자체로 기적이라 할 수 있을 반인반신의 괴물.

카를로스와 라이온은 영웅이었다.

종의 한계를 초월하여 누가 뭐라 해도 우연일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키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기적을 일으켰다.

시실리아의 주인이자 사랑인 에인션트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를 인간의 몸으로 격퇴하였으니 말이다.

“유일한 위협.”

카를로스와 라이온은 이제 없었다.

십검호라는 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힘은 결코 카를로스와 라이온에 미치지 못 했다.

그렇기에 시실리아는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을 예의주시하였다.

그들 외에는 다시 한 번 기적을 일으킬 자들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하나가 되지 못 했다.

카마엘과 란디우스는 제각기 대륙을 종횡하였고, 성천사 레나는 어느 날 사라져 실종되었다.

벨키안 역시 은둔하여 행방을 알 수 없었고 대드루이드 프란은 자연 속으로 사라져 소식이 끊긴 것이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

“그러니 괜찮아.”

다섯은 다시 하나가 되지 못 했으니까.

제각기 대륙을 누빌 뿐 남부에 집결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설사 그들 다섯이 모두 다시 뭉친다 할지라도 말레키스님께서 온전히 부활만 하신다면 괜찮으리라.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이 다시 한 번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말레키스 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시리라.

시실리아는 거친 숨을 쉬었다.

수하로 부리는 아룡들의 눈을 통해 아르곤 항구를 보았고, 그랬기에 저도 모르게 손을 떨고 말았다.

“거기에 있구나. 똑똑히 보도록 하라.”

란디우스가 말했다.

아룡들을 똑바로 노려보며, 마치 그 너머에 자리하고 있는 시실리아가 보인다는 듯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이었다.

“제일문.”

란디우스가 호흡을 바꾸었다.

차례대로 구천구문의 문을 하나씩 개방하였다.

하나의 문을 열 때마다 항구 전체가 진감했다.

제일문.

제이문.

제삼문.

“키아아!”

항구를 뒤흔드는 거대한 힘에 아룡들이 발광했다.

멧돼지 수인들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뒷걸음질 쳤고, 블랙 드래곤의 성체들은 완성시킨 마법을 감히 사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 했다.

제사문.

제오문.

시실리아는 눈을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구천구문 제육문을 개방함에 따라 란디우스가 터득한 이능은 그녀가 눈을 돌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육문.

구천구문의 여섯 번째 문이 개방된 그때.

콰앙!

굉음이 대기를 뒤흔들었다.

란디우스의 전신에 황금빛 아우라가 일었고, 무지막지하다고 밖에 표현 못 할 힘이 그로부터 일어 주변 모두를 압도했다.

실로 지상에 강림한 태양이라 해도 좋았다.

“마도··· 아 대.”

마테오는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 했다. 그가 십검호였기 때문이다.

‘있을 수 없어.’

마테오는 십검호였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과 달리 란디우스의 발하고 있는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 대략적이나마 추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저게 다가 아니다.’

끝이 아니다.

란디우스는 더 큰 힘을 숨기고 있다.

저 괴물은 저기서 더 강해질 수 있다.

“크아아아아!”

블랙 드래곤 한 마리가 포효했다.

공포에 미쳐버린 것인지, 아니면 공포를 이기기 위함인지 알 수 없었지만 란디우스를 향해 돌진했다. 입을 크게 벌려 브레스 웨폰을 내쏨과 동시에 준비했던 마법들을 발사했다.

콰가가가가-!

검푸른 브레스 웨폰이 빛의 기둥이 되어 질주했다.

바로 양옆으로 사이한 저주의 힘이 요사스런 귀곡성을 울렸다.

란디우스는 그것을 보았다. 피하거나 막는 대신 주먹을 움켜쥐었고, 내질렀다.

브레스 웨폰을 향해 황금빛 권격을 꽂아넣었다!

쾅!

주먹이 브레스 웨폰을 분쇄했다.

빛의 기둥을 파괴했다. 아니, 거기에 그치지 않고 역류시켰다.

콰가가가가가가-!

검푸른 브레스 웨폰이 황금빛 힘에 떠밀려 블랙 드래곤에게 향했다.

저주의 마법이 란디우스를 덮쳤지만 강철의 의지와 천하무쌍의 육체를 가진 란디우스에게 한낱 저주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크악!”

역류한 브레스 웨폰의 파편에 맞은 블랙 드래곤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쾅!

란디우스가 지면을 박찼다.

천하삼십육보.

아니, 질풍이십사보였다.

황금빛 선풍을 두른 란디우스는 한 번의 도약으로 블랙 드래곤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압축했다.

“블링크?!”

단거리 공간 도약.

스칼렛이 저도 모르게 비명처럼 외쳤지만 아니었다.

그냥 지면을 박차 빠르게 움직인 것뿐이었다.

하지만 효과는 블링크와 같았다.

블랙 드래곤의 머리 위에 나타난 란디우스는 그대로 주먹을 내리쳤다.

쾅!

몸길이 30미터에 달하는 드래곤의 거체가 머리부터 곤두박질 쳤다. 단순히 추락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지면과 충돌했고, 란디우스는 허공을 박참으로써 다시 한 번 더 블랙 드래곤과의 거리를 좁혔다. 반사적으로 도망치려는 드래곤의 꼬리를 붙잡더니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치 그래야만 한다는 것처럼 제자리에서 몸을 회전시켰다.

“오오오오오!”

드래곤의 거체가 거짓말처럼 붕 하고 떠오르더니 란디우스를 중심으로 마구 회전하기 시작했다. 비현실적인 광경이었지만 분명 현실이었다.

“하아!”

콰가강!

란디우스가 집어던진 블랙 드래곤이 바닥을 마구 뒹굴며 지면을 부쉈다. 이미 머리를 맞았을 때부터 인사불성이던 놈은 뒹굴던 와중에 의식을 잃었는지 몸을 축 늘어트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단 세 번.

성체인 블랙 드래곤을 쓰러트리는데 필요한 공격의 숫자.

아니, 중요한 것은 공격의 횟수 따위가 아니었다.

하나하나의 과정이었다.

“시, 실화냐.”

카이사가 말했고, 스칼렛은 억지로 숨을 쉬었다. 실시간으로 파괴되고 있는 상식 속에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 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약간은 바보처럼 웃었다. 유더의 소매를 잡아당겨 자신을 보게 하더니 자기 가슴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정말 가슴이 웅장해져.”

“그러게.”

유더도 바보처럼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란디우스가 재차 지면을 박차 올랐다.

충격과 공포로 인해 멈춰버린 항구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만들었다.

“카악! 카아악!”

하늘에 머물고 있던 블랙 드래곤 한 마리가 기겁을 하며 날갯짓을 했다. 어떻게든 도망치고자 급히 날아올랐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우오오오오!”

란디우스의 주먹이 놈의 가슴을 강타했다. 거대한 블랙 드래곤이 허공에서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는 광경이 참으로 기이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

“카악! 칵!”

란디우스가 블랙 드래곤을 마구 패기 시작한 그때 유더와 코델리아는 다시 서로를 보았다. 한 차례 눈빛을 교환하더니 제각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쾅!

유더는 초풍신뢰를 펼쳤다. 란디우스에게 격침당한 블랙 드래곤에게 접근하더니 그대로 얼티메이트 쓰리 아스카론을 활성화 시켰다.

아아아아아아-!

아스카론이 포효했다.

드래곤을 증오하는 드래곤의 한기가 새하얀 검신을 뒤덮었다.

‘잘 먹겠습니다!’

이미 뻗은 놈이지만 막타는 쳐야 했으니까.

유더는 투시안으로 블랙 드래곤의 가슴을 보았고, 드래곤 하트의 위치를 정확히 포착했다. 배를 까고 뒤집어진 놈의 상체에 올라탄 뒤 아스카론을 꽂아 넣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아스카론이 다시 한 번 포효했다.

지독한 한기로 블랙 드래곤의 드래곤 하트를 에워싸더니 놈의 힘과 마력은 물론이고 그 영혼까지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드래곤 베인.

용의 파멸.

아스카론이 흡수한 용의 힘의 일부가 용의 문장을 통해 유더에게도 전해졌다. 유더가 가진 용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유더가 버스를 타며 꿀을 빨고 있을 때 코델리아는 광익을 펼쳐 날아올랐다. 단숨에 레나 곁으로 다가가더니 활짝 웃으며 천상의 심판을 내밀었다.

“같이 해요!”

야생의 땅에서 이미 한 번 해보았던 것.

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찬가지로 활짝 웃으며 코델리아의 허리를 한 팔로 안더니 다른 한 손을 천상의 심판 위에 올렸다.

[뭐 하는 거냐! 싸워라! 정신 차리란 말이다!]

시실리아가 다급히 외쳐 아룡들을 일깨웠지만 너무 늦은 대처였다. 아룡들이 급히 입을 벌리며 코델리아와 레나에게 달려들었을 때는 이미 심판의 날이 발동된 후였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

하늘에서 빛의 칼날들이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하나하나의 위력이 범상치 않으니 아룡들은 버티지 못 하고 지상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크악!”

바로 그때 머리가 박살난 블랙 드래곤이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쾅하는 소리에 카이사와 스칼렛은 얼른 그쪽을 돌아보았고, 어느새 몸을 날린 유더가 반죽음 상태인 블랙 드래곤에게 막타를 치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그리고 이는 공격해왔던 무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실리아의 지배를 받는 마물들과 멧돼지 수인들은 본능을 거스르는 명령에 울부짖으며 돌진했고, 루클리아 백작가의 검사들은 급히 마테오를 돌아보았다.

“어, 어찌해야!”

“우리도 돌진해야- 마테오 님?!”

루클리아 백작가의 검사들은 당황했다. 방금까지 자신들 곁에 있던 마테오 루클리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 설마?”

검사 가운데 하나가 크게 소리치며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는 이내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알았다.

첫 번째 블랙 드래곤이 내동댕이쳐진 그때 이미 소리 없는 도주를 시작한 마테오였다.

“마테오 님!”

“저, 저희도 같이!”

하나하나 공들여 키운 검사들이었지만 마테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잠시라도 지체했다가는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이 강하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했다.

저 정도로 강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다.

‘혼자서는 무리다.’

저들은 셋이었고 이쪽은 하나였다.

마인들과 마물들 따위 숫자로 셈할 수 없었다. 일정 선을 넘은 자들의 싸움에 선을 넘지 못한 자들의 숫자 따위는 무의미했으니 말이다.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

일단은 물러나야 했다.

시실리아를 다시 만나 전력을 보강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이는 시실리아 역시 공감하는 바였다. 애당초 멧돼지 수인들과 마물들이 사방으로 퍼진 것은 항구의 민간인들을 공격해 란디우스를 비롯한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을 바쁘게 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두 번째 드래곤을 쓰러트린 직후 란디우스는 마테오가 아닌 멧돼지 수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마테오 님!”

검사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멀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작정하고 도주하는 십검호를 잡을 수 있는 것은 똑같은 십검호나 그 이상의 존재들뿐이었다.

“빌어먹을!”

마테오는 욕지거리를 토하며 급히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마테오의 검은 그저 허공만을 벨뿐이었다. 수십, 수백 마리의 까마귀들이 동시에 울부짖으며 그런 마테오의 곁을 지나쳤고, 사방으로 비산하며 날갯짓하니 마치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어리석구나, 마테오 루클리아.”

까마귀 떼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검귀 카마엘.

성십자 수호단에서 가장 강한 자.

그는 란디우스와 달랐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다소의 희생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자였다.

‘아니, 희생은 없다.’

이 자리에는 란디우스가 있었으니까. 그가 무고한 희생을 막아줄 터이니까.

란디우스에 대한 카마엘의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오직 마테오에게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츠카가가가가가가-!

한기가 넓게 퍼지며 지면이 얼어붙었다.

새하얀 머리칼 사이에 자리한 카마엘의 차가운 두 눈이 마테오를 주시하였다.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냐.”

이 자리에 선 것은 분신 따위가 아니었다.

검신에 필적한다고 알려진 검귀 카마엘의 본신이었다.

“마테오 루클리아, 너를 구금하겠다.”

카마엘이 검을 뽑아들었다.

란디우스의 태양과 상반되는 극한의 힘을- 달의 검을 펼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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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1장 - 아르곤 항구의 밤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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