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4장 - 황금빛 태양 #3 (수정) >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하늘 높은 곳.
쏟아지는 비와 번개와 먹구름으로 인해 새카맣게 변한 그곳에서 태양이 떠올랐다.
높이 든 태양의 검을 중심으로 하늘이 갈라졌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
어둠이 양분되었다.
짙고 무거운 먹구름이 갈라지며 태양의 빛이 다시금 지상을 비추었다.
말레키스는 하늘을 보았다. 구천구문 제칠문의 힘을 단번에 쏟아부어 만들어낸 강렬한 태양의 힘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다. 다급히 솟구쳐 오르며 입을 크게 벌렸다.
“카아-!”
전력을 다한 브레스 웨폰.
그것이 하늘로 향했다. 태양을 부수고자 날아갔다.
그리고 란디우스는 두 손으로 솔라리의 신검 솔라 블레이드를 움켜쥐었다. 태양의 힘으로 위대한 검을 탄생시켰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강!
빛의 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백 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빛의 칼날이 란디우스의 손끝에서 휘둘러졌다.
그것은 진정한 태양.
그 어떤 어둠조차 베어내는 개벽의 검!
“우오오오오오!”
란디우스의 전신이 황금빛으로 빛났다. 개벽의 검이 브레스 웨폰과 정면에서 충돌했고, 기적을 일으켰다. 개벽의 검 앞에 브레스 웨폰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콰가가가강!
실로 엄청난 광경이었다.
브레스 웨폰을 개벽의 검이 정면에서 갈랐고, 브레스 웨폰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부서지는 칠흑 속에서 개벽의 검은 그 빛을 잃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아아!”
란디우스가 포효했다. 브레스 웨폰을 양단한 개벽의 검이 마침내 말레키스의 목에 닿았다. 그대로 쏟아져 내려 말레키스의 가슴을 갈라버렸다.
“크아악!”
말레키스가 비명을 질렀다. 가슴이 갈라지며 새빨간 피가 솟구쳐 올랐고, 신과 같은 존재는 짐승이 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크악! 크아악!”
말레키스는 계속해서 몸부림쳤다. 상처가 불에 데인 것처럼 뜨거웠다. 항상 고통을 주는 쪽이었기에 고통에 약한 말레키스는 작금의 상황을 견뎌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말레키스는 그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격렬한 분노가 공포를 이겨냈다.
비록 짐승으로 전락했다지만 말레키스는 여전히 에인션트 드래곤이었다.
용의 의지로 상처를 억눌렀다. 태양의 힘에 의해 상처의 치유가 더뎠지만 억지로 억누르며 날개를 펼쳤다. 어떻게든 날아올라 란디우스를 해하고자 하였다. 최후의 발악이라 해도 좋았다.
란디우스는 그것을 보았다.
방금 일격에 전력을 쏟아 부은터라 축 늘어진 솔라 블레이드를 다시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겨웠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살기를 내뿜는 말레키스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하였다.
그 올곧은 눈.
말레키스는 더욱 분노했다. 어떻게든 란디우스만은 죽이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다. 카를로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란디우스의 목숨을 빼앗고자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란디우스가 입술을 열었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라.”
나의 제자야.
너 또한 아침을 이끌 태양일지니.
란디우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말레키스가 의아함을 느낀 그 순간 순백의 광익이 어두운 하늘에 아름다운 궤적을 남겼다.
카이사가 그것을 보았다.
스칼렛이 웃음을 흘렸다.
카마엘이, 레나가, 벨키안이, 모두가 함께 하늘을 가르는 두 사람을 목격하였다.
“가즈아아아아!”
막타 치러!
코델리아가 경쾌하게 외쳤고, 유더가 그런 코델리아를 꽉 끌어안았다. 란디우스를 향해 날아오르던 말레키스의 가슴을 향해- 정확히는 아직도 놈의 가슴 한복판에 박혀 있는 아스카론을 향해 돌진했다.
“노오옴!”
말레키스가 노성을 토했다.
하지만 이미 개벽의 검에 의해 힘이 많이 빠진 상황이었다.
유더는 구천구문의 힘으로 말레키스의 드래곤 피어를 이겨냈다. 코델리아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공포를 이겨냈다.
“막타! 막타아아아아!”
자그마치 에인션트 드래곤의 막타였다.
더욱이 에인션트 드래곤을 격파하면 에인션트 드래곤의 드래곤 하트를 얻을 수 있었다.
게임뇌가 맹렬히 돌아갔다.
여기에 천사로서의 힘이 더해지니 드래곤 피어를 이겨내기에 충분했다.
“잡아!”
유더와 코델리아가 아스카론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 순간 코델리아는 그라비티 마법을 사용해 마치 지면위에 선 것처럼 말레키스의 가슴에 자리했다.
“쿠오오!”
말레키스가 자신의 가슴을 때리고자 하였다.
거대한 주먹이 다가오자 일단 그림자가 머리 위를 덮었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막기 전에 친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일 터니!
“일단 한 방!”
아스카론을 통해 힘을 방출했다. 약해질대로 약해진 말레키스는 그 일격에 반응해 고통을 토했고, 덕분에 주먹은 두 사람을 제대로 맞추지 못 했다. 바로 옆을 때릴 따름이었다.
“멈추지 마! 한 방에 간다!”
유더가 말했고, 코델리아는 유더를 보았다.
단숨에 뜻이 통한 두 사람은 제각기 해야할 일을 수행하였다.
아스카론을 이용한 한 방.
단순했다.
아스카론에게 강대한 힘을 부여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힘으로는 부족했다.
아무리 약해졌다고는 하나 에인션트 드래곤을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이쪽 역시 무리를 해야만 했다.
“우오오오!”
유더가 양기와 음기를 동시에 일으켰다.
검은 태양으로부터 막대한 양기가 방출되었고, 타고난 극한지기가 왼손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균형이 맞지 않았다.
타고난 이래 계속 억누르기만 했던 극한지기가 검은 태양의 양기와 대등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유더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 옆에는 코델리아가 있었다.
“알마스!”
코델리아가 오른손에 극한의 검을 쥐었다. 한기를 잔뜩 일으킨 뒤 재차 마법을 발동시켰다.
“라이프 드레인, 리버스!”
유더에게 생명의 힘을, 극한의 힘을 밀어넣는다. 부족한 한기를 보충하여 음과 양의 균형을 맞춘다!
그리고 사계의 가호가 더해졌다.
겨울의 힘이 음기를 강화했고, 여름의 힘이 양기를 강화했다.
음과 양.
코델리아와 감각과 유더의 계산이 정확히 맞물려 완벽한 균형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 순간 유더는 서로 상극인 두 힘을 충돌시켜 어마어마한 힘을 탄생시켰다.
“아스카로오오온!”
밀어넣는다.
불어넣는다.
그리하여 일깨운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스카론이 포효했다.
드래곤을 증오하는 드래곤이 용의 파멸을 이끌었다.
콰가가가가가가!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 아스카론으로부터 일어난 순백의 빛이 말레키스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에 그치지 않고 가슴 그 자체를 파괴했다. 마치 안에서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가슴이 터져나갔다.
“아아악!”
말레키스가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뇌가 타버릴 것 같은 고통에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 했다. 날갯짓을 하기는 커녕 지면을 향해 추락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순백의 고리가 생기지 않았다.
말레키스의 가슴이 부서지며 비늘과 함께 허공으로 튕겨져 나간 유더와 코델리아는 정면을 보았다. 유더는 익숙하지 못한 음양의 힘을 폭발시킨 여파로 인해 영육 모두가 너덜너덜했다.
코델리아 역시 유더에게 보태주었던 왼손은 물론이고 좌반신 전체가 피투성이였다. 마력 역시 동이 나 작은 마법조차 발동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코델리아의 목에는 며칠 전 유더가 준 선물이 걸려 있었다.
어덜트 드래곤의 드래곤 하트.
코델리아가 광익을 펼쳤다. 유더가 코델리아의 허리를 안았고, 코델리아는 드래곤 하트의 마력을 흡수했다. 오른 주먹을 당기며 정면을, 부서진 가슴 너머에 자리한 말레키스의 심장을 똑똑히 보며 소리쳤다.
“정령왕 펀치!”
주먹을 내질렀다. 그 순간 허공을 부수며 나타난 정령왕의 주먹이 말레키스의 붉고 거대한 심장을 강타했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말레키스가 다시 절규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 이상 버티지 못 했다. 정령왕의 주먹이 말레키스의 심장을 강타하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뜯어내버렸기 때문이다.
“크아아!”
그것이 마지막 숨이었다.
온전치 못한 상태로 깨어난 말레키스의 최후였다.
“안돼애애애애!”
시실리아의 비명이 굉음에 묻혔다.
말레키스의 거체가 지면과 충돌했고, 어마어마한 흙먼지가 일었다.
쿠르릉-! 쿵!
지면이 뒤흔들렸다.
그리고 마지막 벼락이 쳤다.
말레키스라는 원동력을 잃은 이상 현상이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지워진다.
비가 그친다.
풍랑이 가라앉고 수면이 평화를 되찾는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지면에 안착했다.
다리에 힘이 풀린 터라 동시에 넘어지고 말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하아, 하아, 하.”
이 와중에도 코델리아를 위로 올리고 자신이 먼저 쓰러진 유더는 거친 숨을 토했고, 유더의 가슴에 엎드린 코델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이좋게 피를 토했다.
“커헉.”
“컥.”
유더의 영육은 걸레짝이 난 상태였다.
코델리아 역시 무리하게 마력을 쥐어짜낸 터라 그 반발로 만싱창이가 된 와중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연달아 떠오르는 새하얀 빛의 고리 속에서 바보처럼 실실 웃어댔다.
그리고 다시 피를 토했다.
이번에는 유더 혼자였고, 코델리아는 유더의 가슴 위에서 헐떡이다 말했다.
“우리가 이겼어.”
말레키스를 쓰러트렸어.
비록 막타만 쳤지만, 아무튼 우리가 남부의 멸망을 막아냈어. 세일룬 왕국을 지켜냈어.
사실 막타만이 아니었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레나를 구하고, 란디우스의 생각을 바꾸고, 파라곤의 영웅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여기에 아스카론이 더해졌다.
스칼렛과 카이사를 비롯한 모두가 유더와 코델리아 두 사람에 의해 모인 것이었다.
말레키스가 깨어나기 전에 섬에 당도하여 놈의 가슴에 아스카론을 꽂아넣을 수 있었던 것도 두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고 말이다.
만약 그러하지 못 했다면, 열거한 것들 가운데 하나만 부족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를 만들지 못 했으리라.
유더는 헐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묻은 손으로나마 들어 코델리아의 뺨을 어루만졌다.
하늘에서 빛이 쏟아졌다.
뒤늦은 함성이 먼 곳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레벨도 엄청 올랐구.”
빛의 고리가 몇 개나 생겼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나중에 신전에 가서 확인해봐야겠지만, 어찌되었든 폭업인 것만은 분명했다.
유더는 코델리아의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의 가슴에 턱을 대고 웅크리는가 싶더니 슬쩍 시선을 돌렸다. 입술을 살짝 깨물며 수줍게 말했다.
“다음.”
아까의 다음.
지금 하고 싶은 것.
유더는 순간 흠칫했지만 이내 똑같이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럽게 코델리아의 머리를 안았고, 코델리아는 유더의 가슴에 엎드린 채 목을 뻗었다. 유더와 입술을 포개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살며시 벌어진 입술 사이로 코델리아의 혀끝이 뻗어나갔다. 유더의 혀와 부드럽게 얽혀 하나가 되었다.
너무나 낯선 경험이었다. 때문에 코델리아는 순간 흠칫했지만 정말로 잠깐뿐이었다.
입술을 맞추고 혀를 섞고 타액을 나누는, 평소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을 하며 가슴의 고동을 느꼈다.
“하아- 하.”
얼마나 이어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서로의 입술과 입술이 벌어졌고 코델리아의 숨결이 유더의 입술에 닿았다. 가늘게 이어진 타액이 끊기기도 전에 달뜬 호흡이 다시 한 번 유더의 입속을 파고들었다.
비릿한 피맛.
하지만 동시에 달콤한 그것.
“유더야.”
“어, 코델리아야.”
장난스럽게 서로를 불렀다. 코델리아는 새침하게 웃더니 유더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좋아해.”
정말정말 좋아해.
사랑해는 아직 부끄럽지만,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있어.
유더가 숨을 멈추었다. 입술을 벌려 무어라 답을 내놓으려 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답을 듣는 대신 유더의 귀에 입술을 맞추었고, 혀까지 살짝 내밀었다. 덕분에 움찔한 유더는 평소라면 절대로 내지 않을 소리를 내고 말았다.
“바보.”
흐흣하고 음흉하게 웃은 코델리아는 다시 입술을 맞추었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받아들였다. 작고 가냘픈 몸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십여 미터 밖.
마치 선이라도 그어 놓은 것처럼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서 있던 레나가 카마엘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떡하지?”
“일단··· 란디우스나 돌보도록 하자. 적의 잔존 병력도 무시할 순 없으니 정리하고.”
“어, 응.”
역시 그게 좋겠지?
카마엘과 레나는 물러섰고, 와- 하며 달려왔던 스칼렛과 카이사는 차게 식은 눈이 되어 돌아섰다. 마음 같아서는 때와 장소를 가리라고 훈계를 늘어놓고 싶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눈감아 주기로 했다. 남부를- 아니, 왕국을 구한 영웅들이었으니 말이다.
야생의 땅.
왕도.
그리고 이곳 남부에 이르기까지.
황금빛 태양 아래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이어질 또 한 번의 승리를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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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4장 - 황금빛 태양 #3 (수정)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