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269화 (269/473)

< 제95장 - 승전 #2 >

&

크든 작든 싸움에는 언제나 뒷정리가 필요했다.

도주하는 적에 대한 추적, 포로 확보, 아군 생존자의 수습처럼 말이다.

“시실리아가 보이지 않습니다.”

성십자 수호단의 단원인 카르멘의 보고에 카마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말레키스가 워낙 대범위 마법을 많이 사용한 터라 전장은 물론이고 시신들까지 엉망진창이 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시실리아의 시신 역시 망가진 것일까?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시신들 사이에 시실리아가 끼어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겠지.’

아무리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다 해도 종족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에 여자, 엘프, 강력한 마력이 깃든 육체, 은발, 타락한 다크 엘프 특유의 연한 보랏빛 피부 등등의 조건이 주어진다면 얼굴이 망가졌든 몸의 일부가 소실되었든 시실리아의 시신을 구분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하지 못 했다.

시실리아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

‘도주한 건가.’

정황상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카마엘은 미간을 좁힌 채 쯧하고 혀를 찼다.

“어쩔 수 없군.”

에인션트 드래곤 말레키스라는 거대한 위협 때문에 그 빛이 바라긴 했지만, 시실리아 역시 강력한 사령술사였다.

그녀가 살아서 섬을 빠져나갔다면 어떤 식으로든 대륙에 해악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수호단을 통해 각지에 현상수배를 내려라.”

“알겠습니다.”

마법에 능한 시실리아라면 현상수배 정도로 붙잡힐 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크든 작든 그녀의 행보에 방해가 된다면 그만큼 대륙이 안전해질 터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말레키스와 오르가를 참살하였으니 다행인가.’

말레키스는 죽었고 그의 휘하 삼기사 가운데 살아남은 것은 오직 시실리아 하나뿐이었다.

용군단도 사실상 궤멸하여 섬을 빠져나간 건 겨우 몇 마리 뿐이었으니 삼백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남부의 위협은 사실상 뿌리가 뽑힌 셈이었다.

“오크들과 고블린들의 처리는 어떻게 되었지?”

“대부분 이렇다 할 저항 없이 항복했습니다. 애당초 용군단의 공포로 인해 붙잡혀 있던 놈들이 대다수였고··· 눈앞에서 그런 광경을 보았으니까요.”

그런 광경.

150미터에 달하는 악룡이 날뛰고, 그런 악룡을 덮치는 거대한 플래시 골렘과 하늘에서 끊임없이 내려치는 번개.

지진과 폭풍우가 이는 가운데 100미터가 넘는 빛의 검으로 어둔 하늘과 악룡을 한 번에 베어낸 인간의 영웅.

여기에 악룡의 숨통을 끊은 빛의 일격까지 있었으니, 그야말로 신화를 눈앞에서 목격한 셈이었다.

오크와 고블린이 아닌 어느 종족이든 감히 맞설 생각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군. 어떻게 처리할지도 들었나?”

“남부는 아직 노예를 부리긴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으니 전부 노예로 잡아들이진 않을 겁니다. 주변의 오크 부족에게 몸값을 받고 넘기거나, 고블린 왕국과 접촉을 하겠죠.”

“어느 쪽이든 쉽지는 않겠군.”

“예, 하지만 그렇다고 항복한 이들을 모조리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포로로 잡힌 오크와 고블린들의 숫자는 수천에 달했으니, 눈 딱 감고 몰살하는 것도 무리였다.

윤리 문제를 떠나 남부 주변에 자리한 오크 부족들이나 고블린 왕국이 이를 용납할 리 없었으니 말이다.

“뭐, 알아서들 하겠지.”

이후의 일들은 남부7가문의 몫이었다. 성십자 수호단이 개입할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카마엘은 보다 중요한 일을 입에 담았다.

“말레키스의 시체는 어떻게 되었지?”

“말씀하셨던 것처럼 남부7가문이 욕심을 내고 있습니다. 현재는 저희 성십자 수호단이 지키고 있지만 언제 생떼를 부릴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전리품은 승자의 몫이었다.

그리고 이번 전투의 최고 전리품은 역시 누가 뭐라해도 말레키스 그 자체였다.

그냥 어덜트 드래곤의 시체조차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기 마련이었는데 자그마치 에인션트 드래곤의 시체였다.

그것도 몸길이가 150미터에 달하는!

‘솔직히 상상도 못 하겠군.’

셈이 빠른 카마엘이었지만 말레키스의 시체가 금전적으로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닐지 얼른 계산할 수 없었다.

너무나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올 터였기 때문이다.

‘눈이 벌개져서 달려들겠군.’

말레키스의 위협 앞에 일단 힘을 모아 싸웠지만 이제는 그 위협이 사라진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가문의 이득을 챙기기 위한 서로간의 투쟁이었다.

그리고 카마엘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전장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마자 이번 전투에 직접 참여한 가주인 오펀드 후작과 카게하마 백작을 필두로 하여 남부7가문의 인사들이 카마엘의 막사에 들이닥쳤다.

“우리는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오,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일뿐!”

카게하마 백작이 목소리를 높이자 남부7가문의 가주 대리인들이 일치단결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말레키스의 시체를 성십자 수호단으로부터 빼앗기 전까지는 일단 동맹 상태를 유지하려는 모양이었다.

“이번 전투에 우리 남부7가문은 실로 막대한 비용을 들였소. 큰 희생 역시 치렀지. 이번 전투로 죽거나 다친 자의 숫자만 일천을 넘게 헤아린다오.”

오펀드 후작이 제법 점잖게 말을 덧붙이자 카게하마 백작이 적극 동의한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말레키스는 우리 남부의 오랜 적이었소. 이제 우리는 삼백 년 전의 피 값을 받아야만 하오.”

이번 전투만으로는 명분이 약하다 생각했는데 조상들까지 들고 나온 카게하마 백작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카마엘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전부 예상 범위 안에 있던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알겠다. 이번 전투에서 그대들의 공 역시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겠지. 함대를 운용한 것은 남부7가문이니 말이다.”

카마엘의 말에 카게하마 백작은 활짝 웃었고, 가주들의 대리인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오펀드 후작은 아니었다. 그의 몸에 흐르는 신수의 피가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감은 언제나처럼 적중했다.

“용장군 오르가를 비롯한 용군단의 시체- 즉, 어덜트 드래곤들의 시체에 관한 권리는 모두 남부7가문이 갖는 것이 어떻겠나?”

“음음, 당연한 말씀이··· 잠깐, 지금 무어라 하셨소?”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카게하마 백작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자 카마엘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해주었다.

“용군단의 시체는 남부7가문의 것이 될 것이라 말했다.”

용장군 오르가를 비롯한 용군단의 어덜트 드래곤들.

말레키스를 쏙 빼놓은 이야기에 카게하마 백작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어허! 그게 지금 무슨 말이오. 이번 전투에서 우리 남부7가문이-.”

“활약을 했지. 용군단과 오크들과 고블린들과도 잘 싸워주었어. 그러니 오크들과 고블린들에 대한 권리 역시 모두 남부7가문이 가지면 되겠군.”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 남부7가문이-”

거기까지였다. 흥분으로 인해 얼굴이 새빨개진 카게하마 백작이었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 했다.

카마엘이 너무나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검귀 카마엘.

저 대륙의 검신과도 대등하다 여겨지는, 성십자 수호단 최강의 검사.

철인 란디우스와 함께 데몬프린스를 격퇴한 파라곤의 영웅.

그가 싸늘하게 웃었다. 카게하마 백작을 똑바로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말해봐라, 남부7가문이 무엇을 하였지? 말레키스와의 싸움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지?”

“그, 그것이······.”

카게하마 백작은 말을 잇지 못 했다. 카마엘의 차가운 시선이 두렵기도 했지만, 말레키스와의 싸움에 관해서는 정말로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놈을 쓰러트렸다. 그러니 말레키스의 시체는 우리가 갖도록 하겠다. 너희는 나머지를 갖도록 해라.”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

그들 대부분이 소속 없이 떠도는 야인들이었지만 카마엘은 아니었다.

그는 성십자 수호단의 여섯 단장 가운데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진 자였고, 무력만을 보자면 성십자 수호단에서 가장 강한 자였다.

그의 말이 가지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크윽.”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말레키스와의 싸움은 실로 신화적이었고, 그렇기에 보통 인간인 남부7가문은 끼어들 여지가 조금도 없었다.

카마엘의 말마따나 말레키스와의 싸움에서는 사실상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 하였으니 권리를 주장하기도 어려웠다.

“그럼··· 설마 성십자 수호단이 전부 가져갈 셈인 겁니까?”

가오란 백작의 대리인이 용기를 내 묻자 카마엘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 전투에 공훈이 있는 자들에게 나눌 것이다. 성십자 수호단은 나의 몫만을 가져가겠지.”

“그렇다면······.”

“정확히 여섯으로 나눌 셈이다.”

파라곤의 다섯 영웅 가운데 넷인 카마엘 자신과 란디우스, 레나, 벨키안의 몫.

그리고 유더와 코델리아 두 사람의 몫.

“본토까지의 운반이라면 성십자 수호단이 책임질 터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으으음··· 알겠습니다.”

상대가 상대이니 강짜를 부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성십자 수호단이 꿀꺽하는게 아니라 정말로 이번 전투에 참여한 이들끼리 나눠가진다니 윤리적인 비난을 가하기도 어려웠다.

‘이렇게 된 이상 중간 수수료라도 챙기는 수밖에 없겠군.’

말레키스의 시체를 처분하려면 어찌되었든 상단을 거쳐야 했으니까.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이야 카마엘이 있는 성십자 수호단을 거칠 가능성이 높았지만 왕국의 귀족인 유더와 코델리아는 어떻게든 이쪽에서 구워삶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가장 유리한 건 우리인가.’

오펀드 후작은 이번 전투에도 참여한 막내딸의 얼굴을 떠올렸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카이사와 막역한 사이 같으니 남부7가문 중에서는 제일 앞서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남부7가문 사이에서 다시 희비가 갈리는 것을 목격한 카마엘은 작게 웃었다.

저들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지 않을 거다.’

속이 까만 유더 녀석이 상대였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한시름 놓았군.’

이 자리에 있는 건 아무래도 무투파들이다 보니 설득이 쉬웠다.

명백한 진실 앞에서도 억지를 부릴 정도로 후안무치한 자는 없었으니 말이다.

‘란디우스와 레나가 좋아하겠어. 벨키안 선생님도 그렇고.’

야인으로 떠도는 세 사람이라 하여 물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애당초 대륙 전역을 떠돌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벨키안의 경우엔 실험을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소모하곤 했으니 더더욱 이번 일을 반가워할 터였다.

‘아예 그냥 실험재료로만 쓰실 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말레키스의 시체를 확보하였으니 자신의 몫은 다한 셈이었다.

“그럼 나머지 일들을 논하도록 하지.”

카마엘은 아예 화제를 돌려버렸고, 남부7가문은 한숨을 푹푹 쉬며 철수와 포로 운송 문제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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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오후.

아르곤 항구에 위치한 고급 숙소의 침실- 정확히는 침대 위.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운 유더의 곁에는 마찬가지로 환자복 차림인 코델리아가 있었다.

“몸은 좀 어때?”

“그럭저럭 괜찮아. 아직 내공 운용은 좀 힘들지만··· 일단 외상은 다 나은 느낌이야.”

어거지로 음양합일을 사용한 결과 유더의 몸은 걸레짝이나 다름 없는 상태가 되었다.

단순히 마력을 많이 소비한 코델리아와 달리 영육 자체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그래두 낫긴 낫는 거지?”

“당연하지. 내 안에는 생명의 구가 있잖아? 요양이 좀 필요하긴 하겠지만 낫기는 무조건 나을 거야.”

“헤헤, 다행이다.”

코델리아가 안심했다는 듯 푸근하게 웃자 유더 역시 따라서 웃었다.

“그보다 코델리아 넌 어때?”

“난 괜찮아. 마력도 회복되었고. 그냥 몸이 좀 축난 것뿐인데 이건 쉬면 금방 나을 거야.”

코델리아가 보란 듯이 팔뚝을 들어올리자 유더는 빙긋 웃었다. 저래봐야 알통하나 없이 매끈한 팔이었지만 어찌되었든 건강한 것 자체는 사실 같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말레키스를 잡았어.”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인션트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

원작에서는 아르곤 항구뿐만 아니라 세일룬 왕국의 남부 전체를 초토화시킨 파괴의 화신.

“원작에서는 최후반부에나 가능한 일이었지?”

“그래, 아마··· 지금까지 한 일들 중에서 가장 크게 원작을 바꾼 걸지도 몰라.”

말레키스를 쓰러트리는 것은 원작 최후반부에나 가능했으니까.

더욱이 데몬프린스에 필적하는 힘을 가진 놈의 영향력은 북부에서 출연할 예정이었던 대악마 크레이믈러나 호국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제 세일룬 왕국은 무너지지 않을 거야.”

무너질만한 요인을 모조리 제거해버렸으니까.

북부는 건재했고, 본래라면 침략자가 되어야 할 야생의 땅은 든든한 동맹이 되었다.

왕도가 비록 큰 환란을 겪었지만 왕가 자체는 건재했고, 호국공의 일로 말미암아 당대의 국왕 헨리 2세는 원작과 달리 보다 현명하고 강력한 왕으로 거듭났다.

남부는 물론이고 세일룬 왕국 전체를 거꾸러트릴 저력을 갖고 있던 말레키스와 용군단은 제대로 봉기하기도 전에 무너져 사라졌다.

망할래야 망할 수 없는 상황이 된 셈이었다.

유더의 이야기에 코델리아는 다시 기분 좋게 웃더니 침대 맡에 상체를 기대며 말했다.

“7대 재앙 가운데서도 벌써 두 개나 막았구. 이제 다섯 개밖에 안 남았어.”

원작에서는 7대 재앙 앞에 무너져 내린 제국이었지만 이번에는 다를 터였다.

재앙의 숫자가 줄었고, 재앙에 함께 맞설 왕국이 존재했으니 말이다.

“그래, 그러니··· 아마 이제부터는 정말 우리가 알지 못 하는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을 거야.”

대소환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큰 환란이 필요했다.

세일룬 왕국과 제국의 멸망.

7대 재앙으로 인한 각지의 혼란.

말레키스에 의해 지옥으로 변해버린 남부.

이 모든 조건들이 갖추어졌기에 원작 최후반에 대소환이 일어난 것이었다.

“대소환을 일으키는 자··· 원작에서는 루트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놈들 역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환란을 일으키려 하겠지.”

그리고 그 환란은 왕국보다는 제국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화재가 나려면 불씨가 필요했으니까.”

세일룬 왕국에는 더 이상 이렇다할 불씨가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아마 악마 추종자들 역시 이제는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의 존재를 부담스럽게 여기기 시작할 터였다.

근 1년 사이 놈들이 꾸몄다 실패한 모든 일들에 자신들이 개입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유더야, 이번에 몸 다 나으면 제국에 가는 거야?”

“아마 그래야겠지?”

진주인공인 막시밀리언을 비롯해 제국 쪽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을 만나야 했으니까.

“다만 지금까지랑은 조금 다르게 움직일 거야. 여태까지는 큰 위험이 일어날 걸 알고 그에 대비하는 좀 수동적인 움직임이었잖아?”

“응응, 그랬어.”

“그래,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공격을 할 차례야. 지금까지의 우리와 이제부터의 우리는 다르니까.”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힘과 권력이 있으니까?”

“빙고. 거기에 재력과 인맥 역시 있지.”

근1년 전의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가 악마 추종자들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다들 제대로 듣지 않았을 터였다.

실제로 북부12가문의 자제들을 대상으로 한 유괴 사건 때도 기사단을 출동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유더 자신은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이었고 코델리아는 어거스트 체이스 백작이었다.

영지도 있었고, 아직 없지만 곧 생길 무지막지한 재력 역시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왕국을 이끄는 왕족들과도 긴밀한 관계인 두 사람이었다.

‘여기에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까지.’

1년 전의 자신들이 아니었다.

세일룬 왕국 내에 자리하고 있는 악마 추종자들의 본부를 직접 타격하는 것도 가능했다.

“흐흐흣, 맘에 들어. 공격 좋아.”

코델리아가 까맣게 웃자 유더 역시 까맣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왕국을 깨끗이 한 다음에 제국을 들쑤시는 거야. 7대 재앙도 지금까지의 경험상 몇 개는 조기에 차단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고.”

재앙이 되기 전에 제거한다.

“그와중에 챙길 것도 챙기고?”

“그래야지.”

얼티메이트 시리즈 가운데 아직 주인이 없는 마지막 하나인 얼티메이트 포 매직 블라스터의 확보.

여기에 아케이만 시리즈와 가리우스의 무덤을 가리키는 석판까지 모아야 했다.

페어리들의 가호 역시 얻어야 했고 말이다.

“은근 바쁘겠네.”

“그래도 한동안은 여유가 있을 거야. 원작에서도 세일룬 왕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제법 텀이 있었으니까.”

“응응, 그러게. 일단은 푹 쉬자. 건강해지는 게 우선이니까. 수련도 일단은 미루고. 알았지?”

“그래, 그렇게 할게.”

유더가 순순히 답하자 다시 미소지은 코델리아는 돌연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더니 슬쩍 주변을 살폈다.

커다란 침실에는 유더와 코델리아 두 사람 뿐이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코델리아는 입술을 몇 번 움츠리더니 슬쩍 손을 뻗어 유더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코델리아?”

유더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답하는 대신 괜히 소매만 더 잡아당겼고, 어느새 빨개진 코델리아의 얼굴에 유더는 흠흠 헛기침을 토했다.

코델리아가 저렇게 꼼지락 거리는 이유.

빨개진 얼굴로 조르듯이 소매를 당기는 원인.

헛기침을 토하며 민망함을 누르던 유더는 결국 웃고 말았다.

코델리아가 하는 짓이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더는 조금은 짓궂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하고··· 싶어?”

코델리아의 얼굴이 더욱 더 빨개졌다. 하지만 평소처럼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대신 슬쩍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소맷자락을 당기며 애틋한 시선을 보냈다.

“흠흠.”

저도 모르게 다리를 꼬고 누운 유더는 주변을 살피더니 코델리아에게 팔을 붙잡아 당겼고, 코델리아는 침대 위로 기어올라 유더에게 다가갔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술을 맞추었다.

가볍게 살짝, 하지만 이내 무겁고 농밀하게.

그리고 유더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코델리아는 역시 천재였다. 단 이틀 만에 유더 자신을 완벽하게 공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유더가 코델리아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자 코델리아는 유더의 목을 끌어안더니 보다 적극적으로 유더를 공략했다.

아직 키스에서 더 나아가지 않은, 거기서 딱 멈춘 진도였지만 이틀 전에 비해 여러 가지 의미로 크게 발전한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1분, 2분.

서로가 서로를 갈구하며 공략하던 그 순간.

유더와 코델리아는 동시에 흠칫하더니 동작을 멈추었다.

서로에게 푹 빠져 있는 와중이었지만 문 너머로 작은 인기척을 느꼈기 때문이다.

누가 온 걸까?

하지만 기다려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인기척이 저 멀리 떠나는 것만이 느껴졌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었나?’

아니면 작은 동물이라든지.

하지만 유더는 더 이상 생각을 잇지 못 했다.

인기척이 사라지자 코델리아가 다시 적극적인 공세를 취해왔기 때문이다.

이대로 갔다가는 완패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승패의 기준 자체를 잘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질 수는 없지.

유더는 코델리아의 허리를 안은 팔에 힘을 주며 코델리아의 목뒤를 붙잡은 뒤 자세를 바꾸었다. 눌리던 자세에서 누르는 자세가 되어 이번에는 유더 자신이 공세를 펼쳤다.

그리고 그렇게 두 사람 간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험험.”

“흠흠.”

문 밖의 두 사람.

급히 사일런트 마법과 기척 제거로 자신들의 존재를 숨긴 두 백작은 서로를 마주하였다.

스칼렛과 달리 경우를 아는 둘이었기에 문을 벌컥 여는 대신 눈빛과 제스쳐, 메시지 마법으로 각자의 뜻을 전했다.

‘잠깐 차라도?’

[한 시간 뒤쯤에 돌아오도록 하지.]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

뒤늦게 도착한 두 백작은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복도를 떠났다.

그리고 반 시간 뒤.

두 백작이 고급 숙소 1층에 위치한 카페에 마주 앉아 아이 이름에 대해 열띤 토론을 이어가고 있을 때.

유더와 코델리아의 방문을 두드리는 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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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5장 - 승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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