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271화 (271/473)

< 제96장 - 명공 >

제96장 - 명공

아덴돌프는 드워프 장인이었다.

아르곤 항구에 거하는 드워프 장인의 숫자만 일백을 헤아렸지만 그는 그 중에서도 무척 특별한 드워프였다.

하얗고 풍성한 수염과 두꺼운 팔근육, 여느 드워프들보다 무려 한 뼘 이상 큰 장신.

그는 가히 드워프계의 조각미남이라 할 수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더 그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었다.

“조합장님, 이번에 어떻게든 해내지 못 하면 다음 조합장 선거는······.”

눈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드워프 장인-이라기보다는 상인에 가까운 조카 마린돌프의 말에 아덴돌프는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안다, 안다고 이놈아. 나도 잘 안단 말이다.”

드워프 길드 마스터.

아르곤 항구에 이름을 올리고 활동하는 모든 드워프 장인들의 권익을 대표하는 장인 조합의 장.

조합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깐깐하고 자존심 강한 드워프 장인들 모두가 인정할 만한 실력의 소유자여야 했고, 소심하고 영악한 인간들과 거래를 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하고 지혜로워야 했다.

여기에 조합장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해야 함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으며 드워프 조합장은 드워프들의 얼굴이나 다름이 없으니 얼굴도 잘생겨야만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기.

이러나저러나 조합장은 선거로 결정되는 선출직이었기 때문에 드워프 장인들 사이에서의 인기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어찌되었든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들을 완수해야만 오를 수 있는 것이 조합장 자리인 만큼 일단 되고 나면 자잘한 것부터 큰 것까지 챙길 수 있는 게 많았다.

9년.

아덴돌프는 자그마치 9년이나 조합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슬슬 다음 선거가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이득이 많은 만큼 조합장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 역시 많았는데, 마단체 가문의 탄돌이란 놈이 최근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오른 탓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호심탐탐 아덴돌프 자신을 쳐낼 기회를 노리고 있는 탄돌이었는데 여기서 실책 하나 저지르면 바로 탄핵이니 뭐니 시끄럽게 떠들어 댈 것이 분명했다.

“아오, 썅. 진짜 미치겠구만.”

평범한 어덜트 드래곤의 시체만으로도 이미 한 번 발칵 뒤집힌 아르곤 항구의 드워프 장인들이었다.

그런데 에인션트 드래곤이라니.

신과 같은 존재로까지 불리는 에인션트 드래곤의 시체라니!

‘갖고 싶다. 나도 진짜 무지막지하게 갖고 싶다.’

아덴돌프도 조합장이기 이전에 장인이었다.

평생 한 번 만져볼까 말까한- 아니, 일반적으로는 그냥 만지지 못 하는 것이 정상인 에인션트 드래곤의 비늘이나 이빨, 발톱으로 무기든 뭐든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어쩌면 필생의 걸작이 될지도 모르니까!’

소위 말하는 마스터 피스.

장인으로 나고 자라 후회 없이 살아왔다는 증표.

하지만 문제는 마린돌프가 발을 동동 구르며 읍소하고 있듯이 거래가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린돌프, 다른 루트는 정말 다 막힌 거냐?”

답답한 마음에 다시 묻자 마린돌프가 한숨을 푹푹 쉬며 답했다.

“예, 조합장님. 지금 그나마 거래 요청이라도 해볼 수 있는 건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과 어거스트 체이스 백작뿐입니다.”

에인션트 드래곤의 소유권을 가진 여섯 사람.

검귀 카마엘.

철인 란디우스.

성천사 레나.

사령술사 벨키안.

무검의 검사 유더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과 폭발천사 코델리아 어거스트 체이스 백작.

“미치겠구만 진짜.”

검귀 카마엘은 성십자 수호단의 단장이었고, 성십자 수호단에는 자체적인 장인 집단이 존재했다.

때문에 카마엘은 에인션트 드래곤의 작은 비늘조각 조차도 외부로 유출할 마음이 없었다.

모두 성십자 수호단 내에서 소화해야 했으니 말이다.

‘벨키안이라는 작자는 왕도에 있다고 하고.’

물리적인 거리가 너무 머니 거래는커녕 이야기조차 할 수 없었다.

‘철인이랑 성천사는 검귀에게 위임했다고만 하고.’

여섯 중에 넷이 빠지니 남은 것은 둘뿐.

그런데 이 둘은 왕국 전체에 소문이 자자한 세기의 커플이었으니 사실상 거래할 수 있는 대상은 하나뿐인 와중이었다.

‘뭐 이딴 상황이 다 있냐.’

공급처가 오직 하나뿐이니 공급처 사이를 오가며 가격을 조정한다든가 조건을 맞추는 일 같은 것이 불가능했다.

더욱이 저쪽이 가진 것은 희소성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을 에인션트 드래곤의 시체.

애당초 시장 가격이라는 것이 성립될 수 없는 물건이었으니, 작은 비늘조차도 부르는 게 값일 지경이었다.

‘이 와중에 어떻게 거래를 하라고!’

탄돌 놈에게 선동된 장인들은 아무튼 갖고 싶으니 구해오라고, 어떻게든 구해오라고 떼를 쓰는 상황이었고, 세기의 커플인지 뭔지는 이쪽의 거래 요청을 전부 반려하고 있는 판국이었다.

“값을 올리려는 걸까? 설마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 내외도 성십자 수호단에 넘기려는 건 아니겠지?”

“조합장님, 두 사람은 아직 약혼 상태지 결혼한 건 아닙니다.”

내외라니 그건 좀.

“아니, 미친놈아. 지금 그게 중요하냐? 안 그래도 성이 어거스트 바이엘이라 부르기도 빡세구만.”

“흠흠, 아무튼 이번 거래는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다음 조합장 선거는······.”

“안다고 이놈아. 이 자식도 이제 보니까 방법을 짜내는 게 아니라 땡강만 부리고 있네. 무작정 해내야만 하다고 하지 말고 네놈도 수를 좀 짜내보란 말이야! 엉?!”

아덴돌프가 성을 내자 삐질삐질 땀을 흘린 마린돌프는 반질반질한 이마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말했다.

“아무튼 큰아버지. 아니, 조합장님. 오늘 회담에는 지금까지와 달리 코델리아 어거스트 체이스 백작도 나온다고 하니 뭔가 좀 다르지 않겠습니까?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유더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은 코델리아 어거스트 체이스 백작의 말이라면 뭐든 들어준다고 하던데 말이죠.”

“그러니까 유더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보다는 코델리아 어거스트··· 에라이 썅! 안 불러! 풀네임 안 부른다고! 어차피 우리 밖에 없잖아!”

“워워, 진장하시죠.”

“하아, 후. 아무튼 네 말은 여자 쪽을 공략하란 말이냐? 막 목걸이 같은 뇌물이라도 바쳐서?”

“그것도 나쁘지 않죠. 여신에게 목걸이를 바치고 천국을 맛본 드워프들 이야기도 있잖습니까.”

천 년 남짓한 과거, 신들이 실제로 이 땅을 거닐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끄응, 좋아. 어떻게든 수를 마련해야 하니 바리바리 챙겨서 가보자. 있는 대로 다 들고 가면 그중 하나쯤은 여백작의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겠지.”

그리 결심한 아덴돌프는 짐을 한 아름 들고 회담 장소인 고급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곤란하군요. 몇 번이나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 쪽에서는 팔 생각이 없습니다.”

유더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

인간 기준으로도 새파랗게 어리고 드워프 기준으로는 아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갓난쟁이급 애송이였지만 호락호락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유더 개인도, 바이엘 백작가라는 가문도 만만치가 않았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검성이고 형은 십검호인데 본인은 왕가를 구한 영웅이라고?’

뭐냐 이 말도 안 되는 가문은.

더욱이 이제는 왕가를 구한 영웅 정도가 아니었다.

드래곤- 그것도 에인션트 드래곤을 처단한 남부의 대영웅이었다.

에인션트 드래곤 슬레이어.

왕가의 은인.

성십자 수호단의 신성.

인류최강으로 손꼽히는 철인 란디우스의 하나뿐인 제자.

‘미친, 영웅담에도 이런 설정은 안 나온다.’

거기다 본인과 가문만 잘난 것도 아니었다. 약혼녀와 그쪽 가문- 그러니까 처가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근위마법병단 사상 최연소 단장, 붉은 여명 탑의 탑주, 왕립학회에 몇 번이나 논문을 낸 저명한 마도학자.

유더 어거스트 바이엘의 처가인 체이스 백작가의 이야기였다.

여기에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아예 약혼녀인 코델리아 체이스는 인간도 아닌 천사라고 한다.

진짜 천사 말이다.

‘으윽, 예쁘긴 진짜 예쁘구만.’

유더 옆에 생글생글 웃으며 앉아 있는 코델리아를 힐끔 돌아본 아덴돌프는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 가슴을 진정시키고자 열심히 심호흡을 하였다.

진짜 천사라 그런지 아덴돌프의 심미안이 자꾸만 미쳐 날뛰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코델리아를 모델로 조각상이라도 하나 만들고 싶은 아덴돌프였다.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에인션트 드래곤의 시체였으니 말이다.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님. 부디 다시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거래를 할 마음이 없습니다.”

유더가 이번에도 곤란하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하자 아덴돌프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유더의 속마음이 대충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이 자식, 거래할 마음이 진짜 없는 게 아냐.’

저 능구렁이 같은 표정과 눈빛과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아덴돌프 자신이 놀면서 조합장 노릇을 9년이나 한 것이 아니었다.

이 정도는 단번에 간파할 수 있었다.

‘거기다 씨발, 진짜 거래할 마음도 없는 놈이 매번 이렇게 만나냐?’

유더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에게는 거래할 마음이 있었다.

보다 유리한 거래를 하기 위해 이러고 있을 뿐!

‘마음 같아서는 그냥 다 때려 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에인션트 드래곤이었으니까.

에인션트 드래곤이었으니까!

눈물을 삼킨 아덴돌프는 아니꼬운 마음을 참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뭐라도 말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아덴돌프 조합장님.”

“네? 아, 예. 말씀하시죠.”

유더 쪽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이었다.

아덴돌프가 얼른 두 손을 모아쥐고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자 유더는 조형적으로 무척이나 아름다운, 하지만 아덴돌프 입장에서는 한 대 쳐주고 싶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듭 말씀드린 것처럼 에인션트 드래곤의 일부를 드워프 장인 조합에 판매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약속된 말끝 흐리기에 아덴돌프는 조바심을 느꼈지만 참고 인내했다.

이제야 유더의 진짜 속내가 드러날 것 같았으니 말이다.

‘뭐냐, 대체 뭐냐.’

진짜 터무니없는 가격이라도 제시하려는 거냐?

하지만 아니었다.

유더는 그냥 값을 올려 파는 1차원 적인 짓을 하는 대신 전혀 다른 것을 입에 담았다.

“다른 방식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죠.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아닌, 다른 거래라면요.”

“어떤··· 거래 말씀이신지요?”

“사실 어떻게 보면 거래가 아닐 겁니다. 계약에 가깝겠죠.”

계약.

어차피 거래할 때도 계약서는 쓰기 마련이었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늬앙스.

아덴돌프는 미간을 좁히며 다음 말을 기다렸고, 유더는 코델리아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까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제 제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다음날 오후.

조합 회관에 모인 드워프들 사이에서 커다란 소란이 일었다.

“뭐?! 조합장이 이주할 사람을 모은다고?”

“물건 사러 간 사람이 왜?”

“잠깐, 그보다 이주라니. 아르곤 항구를 떠난다는 말인가? 어디로? 갑자기 왜?”

그랬다.

물건 사라고 보냈던 조합장은 물건을 사오는 대신 엉뚱한 공문을 가지고 돌아왔다.

북부로의 대이주 계획.

아덴돌프를 필두로 한 바란토 가문은 남부를 떠나 북부- 정확히는 중앙과 남부의 경계지점에 존재하는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의 영지로 이주한다.

함께 갈 사람은 바란토 가문에 이주 신청서를 제출하라.

“북부로?”

“조합장네 가문이 떠난다고? 아르곤 항구랑 조합장 자리랑 다 버리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바란토 가문이 아르곤 항구에 뿌리 내린 지 벌써 200년이 넘었으니 말이다.

그간 쌓아온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버리고 간단 말인가.

“근데 진짜 간다는데? 벌써 짐까지 다 꾸리고 있어.”

정말로 그러했다. 아덴돌프만 짐을 싸는 것이 아니라 바란토 가문 전체가 중앙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 해답은 바란토 가문에서 파견한 마린돌프에 의해 밝혀졌다.

“뭐?! 고대 드워프들의 도시라고?!”

궁극의 검을 추구한 드워프들의 집단인 소드 시커?

그중 하나인 블랙 혼 길드가 세운 지하 도시?

끌렸다.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대로라면 블랙 혼 길드의 시설들이 다수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고대 드워프들의 기술!”

“지금은 잃어버린 빛나는 문명!”

드워프 장인들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고대 드워프들의 도시라니.

그곳에 거하며 고대 드워프들의 도구로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조합장이 고대 도시의 시장이 된다더군.”

“과연, 그럼 옮길만 하지.”

조합장보다 더 높은 자리였으니 말이다.

더욱이 그냥 도시인가? 다른 무엇도 아닌 드워프들의 고대 도시였다.

“그런데 진짜 있기는 있는 건가? 우리 중에 본 사람 아무도 없잖아.”

“아니, 그래도 출처가 출처잖나. 설마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이 거짓말을 했으려고?”

“그것도 그러네.”

에인션트 드래곤 슬레이어인 동시에 왕가를 구한 구국의 영웅.

그런 인물이 이런 일로 사기를 칠 리 만무했다.

“그럼 정말 가는 건가? 아르곤 항구 떠나는 거야?”

“잠깐, 그럼 에인션트 드래곤은? 그거 거래는 누가 하고?”

아니, 애당초 조합장이란 양반이 책임감 없이 이렇게 떠나도 되는 거란 말인가?

드워프들이 웅성웅설거리는 가운데 마린돌프는 또 다른 소식을 전해왔다.

드워프 장인들의 마음을- 심지어는 마단체 가문의 탄돌까지도 이주를 결심하게 만든 소식이었다.

“에인션트 드래곤을 재료로 무상 공급한다고?”

“아니, 아니. 잠깐. 이건 공급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고용되는 거 아냐?”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가에 고용된다.

고대 드워프 도시에 살며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의 의뢰에 대응한다.

“고용이면 또 어떤가. 어차피 지금이랑 뭐가 다른데?”

“그것도 그렇구만.”

어차피 지금도 남부7가문의 의뢰를 해결해주며 밥벌이를 하는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중앙으로의 이주.

고대 드워프들의 도시.

에인션트 드래곤의 비늘과 발톱과 이빨.

“그럼 가야지.”

“맞아, 가야지.”

“가자.”

“가자.”

“가즈아!”

드워프 장인들 거의 전체가 이주를 위해 짐을 싸기 시작했다.

사실상 아르곤 항구 일대의 주요 산업체중 하나인 ‘드워프 공방’이 통으로 떠나는 셈이었다.

자연 이 소식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남부 전체에 퍼졌는데, 그중에서더 특히 크게 반응한 것은 남부7가문 가운데 하나인 생크루트 자작가였다.

“떠나? 중앙으로 떠난다고?”

언제나처럼 화려하고 도발적인 붉은 드레스 차림을 한 생크루트 자작은 황당하기 그지없다는 얼굴로 눈을 껌벅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드워프 공방은 생크루트 자작가가 눈독을 들이고 있던 먹이였으니 말이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었다.

본래 드워프 공방을 통해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던 것은 루클리아 백작가였다.

그런데 그 루클리아 백작가가 이번 말레키스 사건을 통해 몰락하고 말았다.

‘즉, 지금이야말로 드워프 공방을 통으로 삼킬 호기라 이거지.’

그런데 드워프 공방이 아예 이주한다고?

남부를 떠난다고?

“말이 돼? 이번에 우리랑 체결한 계약들은? 그건 다 어떻게 하고?”

“이제 막 계약해서 아직 진행된 것도 없으니··· 그냥 위약금 낸답니다.”

“뭐야?”

계약을 어겼으니 위약금을 낸다.

당연한 일이긴 했지만 이것 역시 당혹스러웠다.

“드워프들이 단체로 돌기라도 한 거야? 대체 왜 이러는데?”

“그게······.”

생크루트스 자작의 비서는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드워프 장인 조합에 파다한 소문을 전하였고, 생크루트 자작은 이를 악 물었다.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엄밀히 말해 드워프 장인 조합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이렇게 뜯어가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평소에 하던 것처럼 남부7가문의 힘으로 밀어버리고 싶다.

드워프들에게 물리적인 위협도 가하고 싶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상대는 에인션트 드래곤 슬레이어였으니까.

철인 란디우스의 제자이자 왕가의 은인이며 본인 자체도 사상 최연소 십검호 자리가 확정된 초월적인 강자였으니까.

‘뭐 이딴 자식이 다 있어?’

거기다 약혼녀는 천사라고? 영웅담에서 튀어나온 놈이라도 돼?

‘아, 진짜! 미인계도 안 통할 테고.’

약혼녀가 천사인데 미인계가 통할 리가.

당연히 뇌물도 안 통했다. 에인션트 드래곤을 잡은 순간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의 재력은 생크루트 자작가를 초월했으니 말이다.

“드워프들은? 뭔가 놈들을 붙잡을 방법 없어?”

“하지만······.”

“하지만 뭐?”

“에인션트 드래곤 줄 거냐고··· 에인션트 드래곤 줄 수 있냐고 콧방귀를 뀌어대니······.”

비서가 말꼬리를 흐리자 생크루트 자작은 가슴을 두드려댔다.

“아니, 아니, 아니이!”

드워프 공방을 손에 넣기 직전이었는데!

꿀꺽할 수 있는 타이밍이었는데!

“살짝 미안하긴 하네.”

전혀 다른 장소.

생크루트 자작가의 저택이 있는 방향을 돌아본 유더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유더 역시 생크루트 자작가가 드워프 공방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게 다 세계를 구하기 위한 거니까.’

앞으로의 싸움은 악마 추종자들과의 전면전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는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뿐만 아니라 일단의 무리를 무장시킬 수 있는 많은 수의 장비들이 필요했다.

“괜찮아. 생크루트 자작 완전 나쁜 사람이더라. 가문의 힘으로 작은 상인들 막 찍어 누르고, 못된 짓 많이 했어. 드워프들도 우리랑 가는 게 훨씬 좋을 거야.”

약간은 순박하기까지 한 코델리아의 말이었지만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코델리아의 말마따나 생크루트 자작가의 만행은 유명했으니 말이다.

“음, 좋아. 커버 칠 이유로 충분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명분과 평소 저지른 생크루트 자작가의 만행.

여기에 드워프들의 삶의 질까지 고려한다면 이번 선택은 최선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흥흥, 아무튼 잘 됐다.”

드워프들이 고대 도시에서 살기 시작하면 영지의 산업 자체가 발전할 테니까.

많은 물품이 오가다보면 상업 역시 발전할 터이고.

‘그럼 영민들도 잘 살게 되겠지? 영민들도 늘어날 테고.’

영지에 일자리가 많아질 테니까.

물론 너무 단순한 생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틀린 생각인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한 건 해결했으니 바로 다음 건으로 넘어갈까?

“응응, 좋아.”

유더의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코델리아는 어느 한 방향을 향해 휙하고 돌아섰다.

두 사람의 다음 목표.

남부를 떠나기 전에 반드시 만나야만 하는 사람.

‘전설의 명공 카시우스.’

에인션트 드래곤의 비늘로 신화급 용의 장비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남자.

남부 깊은 곳에 은거하고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참으로 험난한 과정들을 거쳐야 했지만 유더와 코델리아에게는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어딘지 알지?”

카시우스가 숨어 사는 곳.

“어, 당연히 알지. 오랜만에 말 타고 갈까?”

“응, 좋아. 말 타고 가자.”

코델리아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유더는 씩 웃으며 팬텀 스티드를 소환하였다.

물론 두 마리가 아닌 한 마리를 말이다.

“타시죠.”

“네, 백작님.”

유더가 앞에, 코델리아가 뒤에.

두 사람을 태운 팬텀 스티드가 허공을 박차올랐다.

&

< 제96장 - 명공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