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272화 (272/473)

< 제96장 - 명공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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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우스 달튼.

영웅전기2편 최후반부에 마주할 수 있는 장인으로, 무기 제작 솜씨만을 논한다면 영웅전기2의 배경이 되는 플레이아데스 최고라 할 수 있을 남자였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남자라는 사실과 아마도 엘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리고 마치 소드 시커의 고대 드워프들처럼 최강의 검을 만드는데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게 조금 잘못된 게, 카시우스는 꼭 검에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니야. 최강의 무구를 만들고 싶어 한다고 해야 하나. 사실 그것조차도 좀 다른 의미인 것 같지만.”

“무슨 말 하는지 잘 모르겠어. 왜 그렇게 빙빙 돌려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카시우스와의 대화로 추론해봤을 때 카시우스가 강력한 무구를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정말 궁극이나 최강을 이루고 싶다는··· 그런 구도가적 자세 때문은 아니라는 거지.”

소드 시커의 드워프들은 장인으로서 궁극이란- 절대로 도달할 수 없지만 그렇기에 도달하고픈 이상의 가치를 추구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카시우스는 달랐다.

그가 바라는 것은 궁극이나 최강 같은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을 가진 무구였다.

“다만 그 일정 수준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은 것뿐이지.”

“아, 알 것 같아. 나 그런 만화 본 적 있어. 그저 아버지보다 강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 아버지가 세계최강이라 세계최강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그런 만화가 있어?”

“어, 있어. 맨주먹으로 공룡 때려잡던 원시인도 나오고 막 사령술이랑 복제인간으로 미야마토 무사시도 부활시키고 막 그래.”

“그, 그래.”

말만 들어서는 어떤 만화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 유더였다.

“아무튼 중요한 건 카시우스가 그런 인물이라는 거지.”

이상이 아닌 현실을 추구하는 자.

하지만 유더가 보았을 때 그는 지쳐있는 자였다.

이미 한 번 이상 좌절을 맛보았고, 그렇기에 지쳐버렸지만 그래도 목표를 향해 일단 계속 나아가고는 있는 인물.

그가 강력한 무구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으로 무엇을 할 생각인지는 원작에 나오지 않았다.

영웅전기2와 멀티플레이에서만 플레이할 수 있는 2편과 3편 사이- 소위 말하는 2.5편까지만 등장하고 3편에서는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황상 죽거나 더 깊은 곳으로 은거한 거 같지만.’

2.5편까지만 해도 수많은 무구들로 가득찼던 그의 공방이 3편에서는 텅 비어 있었으니 말이다.

“원작에서는 말레키스 잡고 가면 알아서 도와줬지?”

“그랬지. 에인션트 드래곤을 재료로 한 무구 제작 자체에 흥미를 보였으니까.”

사실 이미 에인션트 드래곤을 재료로 한 무구 자체는 존재했다.

용살검 아스카론.

드래곤을 증오하는 드래곤- 그것도 에인션트 드래곤의 영육을 재료로 한 그 검은 실로 무시무시한 힘을 품고 있었다.

“그치만 아스카론은 드래곤이 아니면 그 힘이 안 나오잖아.”

“그래서 카시우스가 나섰던 거지.”

아스카론처럼 드래곤을 상대로만 힘을 발하는 것이 아닌, 다른 상대로도 극강의 힘을 발할 수 있는 무기를 원했으니까.

‘일단 카시우스가 자기 무기로 쓰러트리려는 자가 드래곤은 아닌 거 같긴 한데.’

잠시 고민하던 유더는 이내 생각을 접었다.

고민해봐야 답이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원작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을 가지고 있으니까 카시우스 반응도 다를 거야.”

“응응, 나두 그래서 막 두근두근해.”

헤헤 웃은 코델리아는 유더의 단단한 허리를 좀 더 꼭 끌어안았다. 속도를 조금 더 높이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유더와 코델리아는 속도를 더 높이지도, 한 걸음에 카시우스를 만나러 가지도 못 했다.

막 아르곤 항구를 벗어나려는 찰나에 두 백작, 정확히는 체이스 백작의 호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편한 몸으로 어딜 또 그렇게 가려는 것이냐.”

고급 숙소.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아버지를 마주하고 앉은 유더와 코델리아는 슬쩍 서로를 돌아보았다.

‘유더야, 유더야. 이거 통신 및 추적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 맞는 거 같지?’

‘아마도? 그리고 마법사는 내가 아니라 너인 거 알지?’

‘우씨, 지금 그게 중요해?’

입술을 살짝 삐쭉인 코델리아는 팔목에 달고 있던 얇은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며칠 전 마주하자마자 건강에 좋은 거라고 채워주셨는데, 진짜 목적은 전자발찌였던 모양이다.

‘아버지 미워. 딸한테 어쩜 이러실 수가 있어?’

‘그렇지만··· 전과가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전과.

이미 가출을 몇 번이나 반복한 코델리아였으니 말이다.

‘야, 그 중에 절반. 아니 거의 다 너 때문이거든?’

‘그래서 나도 차고 있잖아.’

유더가 반대쪽 손을 슬쩍 들어올리자 코델리아는 다시 입술을 삐쭉였다.

“코델리아, 뭔가 불만이라도 있는 것이냐?”

“네? 아, 아뇨. 불만 없어요, 아버지.”

코델리아가 약간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자 체이스 백작은 엄격하고 근엄한 자세를 유지했고, 옆에 있던 바이엘 백작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또 가출할 이유는 없겠지. 이미 가출 중이니 말이야. 그렇지 않느냐, 유더?”

“그··· 예, 아버지.”

부드럽지만 안에 뼈가 든 말이었다.

유더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답하자 바이엘 백작은 다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유더, 어딜 가고 있던 것이냐.”

“그냥··· 코델리아와 주변 일대를 달려볼 생각이었습니다.”

야밤의 드라이브라고 할까요.

‘유더야, 유더야. 이건 딱히 거짓말 안 해도 되지 않아?’

‘생각해보니 그러네.’

저도 모르게 일단 숨겼는데, 생각해보니 딱히 숨길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다.

아마 이 자리에 스칼렛이나 카이사가 있었다면 사기가 몸에 뱄다고 비난했으리라.

“그랬군. 아무튼 유더, 그리고 코델리아. 우리가 이렇게 너희를 부른 건 항구에 돌고 있는 소문 때문이다.”

“소문···이요?”

“그래, 드워프 장인들의 집단 이주를 꾀하고 있다지?”

바이엘 백작의 눈빛은 부드러웠고, 체이스 백작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기에 유더는 고민 없이 답했다.

“예, 이번 여행 도중에 잠시 저와 코델리아의 영지에 들렀는데, 거기서 고대 드워프들의 도시 유적을 발견했습니다.”

“뭐? 도시 유적? 고대 드워프들의?”

과연 마법사답게 체이스 백작 쪽의 반응이 컸다.

유더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예, 정확히는 소드 시커의 일곱 길드 가운데 하나인 블랙 혼 길드의 도시입니다. 드워프들을 그곳에 이주시켜서 고대 도시의 기능을 부활시킬 생각입니다.”

고대 드워프들의 시설과 당대 드워프들의 솜씨.

그리고 거기에 더해질 에인션트 드래곤과 어덜트 드래곤으로부터 뽑아낸 각종 진귀한 재료들.

“영지의 근간이 될 사업이 뚝딱 만들어지는 셈이구나.”

바이엘 백작의 말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정말 말처럼 뚝딱 만들어질 가능성은 낮았다.

현실에는 언제나처럼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문제들이 들러붙기 마련이었으니 말이다.

“영지에 다수의 이주민들을 새로 들이는 것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단순히 사람만 푼다고 될 일이 아니지. 더욱이 너희는 아직 영지를 제대로 시찰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영지의 실황은 보이는 것과 다를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예, 아버지. 명심하겠습니다.”

유더가 공손히 답하자 바이엘 백작은 빙긋 웃으며 체이스 백작을 돌아보았다.

“그쪽도 할 말 있으면 지금 하게.”

“흠흠, 할 말이라면 많이 있지.”

헛기침으로 목을 정돈한 체이스 백작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에인션트 드래곤과 어덜트 드래곤의 시체는 정확히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지? 단순히 대단한 전리품이 생겼다고 해서 좋아할 상황이 아니다. 그 전리품은 왕실까지도 탐을 낼만한 엄청난 물건이니 말이다.”

체이스 백작의 말 역시 옳았다.

그리고 그랬기에 유더 역시 그에 대한 고민은 이미 끝마친 상황이었다.

“운반 자체는 성십자 수호단에 의존할 생각입니다. 재료 자체는 내다 팔기보다는 드워프 장인들을 통해 영지에서 소화할 생각이고요.”

“자신들에게 팔라는 압박이 적지 않을 텐데?”

“좀 건방진 이야기입니다만···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권력이니까요. 왕실에는 섭섭지 않게 이것저것 보낼 생각이고요.”

현재 유더의 위치는 결코 낮지 않았다.

영지를 가진 백작이었고, 친가와 처가 역시 그 세력이 결코 작지 않았다.

유더 본인도 곧 십검호 자리에 오를 터이니 말이다.

그러니 왕실과의 관계만 다져놓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설사 공작가라 할지라도 쉽사리 유더를 압박하지는 못 하리라.

“그래, 언제나처럼 계획이 있구나.”

“아버지께서도 언제나 그러셨으니까요.”

“허허.”

바이엘 백작과 유더가 훈훈하게 덕담을 주고받자 체이스 백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앞으로 며칠 내로 다시 떠나는 것이냐?”

“예,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스승님과 카마엘 님, 레나 님도 함께 저희 영지로 가실 예정입니다.”

“파라곤의 영웅들이?”

사실 란디우스와 레나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정처 없이 떠도는 야인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성십자 수호단의 필두단장인 검귀 카마엘까지 합류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의외였다.

“그게··· 카마엘 님께도 조금 가르침을 받기로 했습니다.”

음양합일을 보다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극한지기를 키울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카마엘의 무공이었다.

구극태양신공에 대비되는 설화십이검.

일단 현재 계획대로라면 영지에 돌아간 뒤 적어도 3개월 정도는 요양과 수련에 매진할 예정이었다.

“허허, 파라곤의 영웅들인가.”

철인 란디우스와 검귀 카마엘.

십검호에 속하지 않지만 그건 그 둘이 세일룬 왕국이란 틀을 벗어난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인류최강과 그에 버금가는 존재.

저 제국의 검신외에는 비할 바가 없다는 검의 괴물들.

‘좋구나, 좋긴 좋은데.’

바이엘 백작은 쓴웃음을 지었다.

유더가 파라곤의 영웅들에게 직접 교육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는 기뻤지만, 같은 검사로서 아쉬움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이엘 백작가의 검술인 바람의 검.

이미 유더에게는 늦었다.

유더는 이미 자신만의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아쉽구나.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더욱이 바람의 검이라면 이미 게일이 이어받고 있었으니까.

질풍검이라 불리는 십검호를 후계자로 두고 있는 마당이니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좋아, 그럼 정리하면 다음과 같군. 며칠 내로 영지에 귀환할 것이고, 파라곤의 영웅들과 함께 수련도 할 거다. 더불어 드워프들은 고대 도시에 이주시킬 것이며 에인션트 드래곤의 시체는 성십자 수호단을 통해 운반한다. 왕실에도 일정량을 진상할 것이고.”

“말씀하신대로입니다.”

유더가 빙긋 미소지자 체이스 백작은 훗하고 웃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이왕 나선 거 나와 바이엘 백작도 도와주도록 하마. 유더 네가 비록 이런 종류의 일에 능통하다고는 하나 아직 경험이 일천하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즉, 두 백작이 영지관리에 관한 도움을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그래.”

유더 입장에서야 좋기만 한 이야기였으니까.

“아무튼··· 이번에는 이쪽이 전할 이야기가 있다.”

체이스 백작의 말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들었다.

열심히 사고치고 다닌 건 이쪽인데 아버지들 쪽에서 대체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일까.

“아델리아와 게일이 결혼하기로 했다. 애당초 예정되어 있던 일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정말 날이 잡혔다고 할 수 있지.”

“와, 진짜요? 언제인데요?”

코델리아의 물음에 체이스 백작은 씩 웃으며 답했다.

“4개월 뒤다.”

“잠깐만 그럼··· 와, 딱 좋은 봄이네요?”

“그런 셈이지.”

봄의 신부 아델리아.

잠시 상상해본 유더와 코델리아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빙긋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너희다.”

“네, 저희··· 네?”

“너희도 조금 있으면 생일이 지나 열여덟 살이 되니까. 더욱이 둘 모두 백작위를 가진 귀족이고.”

체이스 백작의 말에 코델리아는 멍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그러니까 지금 아버지 말대로면······.

“물론 당장은 아니다. 아델리아와 게일이 결혼하고··· 그 뒤에도 몇 달 정도 시간을 가져야 할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먼 미래까지는 아니란 소리지.”

앞으로 길어야 1년 남짓.

갑작스러운, 하지만 흐름상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야기.

코델리아는 다시 몇 번이나 눈을 깜박였다.

천천히 심호흡을 했고, 습관적으로 손을 뻗어 유더의 소매 끝자락을 살짝 붙잡았다.

그리고 그 모습에 바이엘 백작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체이스 백작은 흥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아무튼 이야기는 이쯤 하도록 하고 우린 슬슬 돌아가도록 하마.”

“음? 벌써?”

“더 눌러앉아서 뭐하겠나.”

바이엘 백작은 체이스 백작을 일으켜 세우며 눈짓으로 눈치를 줬다.

최대한 평정을 유지한 채- 하지만 어째 뻣뻣하게 굳어 있는 유더와 그런 유더의 소매자락을 꼭 붙잡은 채 얼굴을 붉히고 있는 코델리아.

“가세나.”

“흠.”

체이스 백작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다는 얼굴이었지만 바이엘 백작은 완고했다.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한 뒤 서둘러 방을 나섰다.

그리고 1분.

다시 2분.

“저기, 유더야”

“어, 코델리아야.”

코델리아는 유더를 돌아보았고, 유더 역시 그러했다.

매일매일 보던 그 얼굴.

하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흠흠.”

“음음.”

양쪽 모두 헛기침을 터트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유더의 소매 자락을 꼭 붙잡은 코델리아의 손처럼 말이다.

“유더야.”

“어, 코델리아야.”

“우리 있잖아. 나중에··· 겨, 결혼 하는··· 거지?”

코델리아가 다시 유더를 보았고, 유더 역시 그러했다.

결혼.

약혼 다음에 오는 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수순.

하지만 직접 입 밖에 내서 말하니 그 느낌이 달랐다.

두 백작이 저렇게 나오니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코델리아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유더의 가슴 또한 그러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여러 가지 의미로 촉촉이 젖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몇 초.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로의 입술이 맞닿으려는 순간.

“미안, 어째 나는 항상 이런 타이밍 같네. 누가 짜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야.”

친숙한 목소리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급히- 그러니까 유더는 미간을 좁히며, 코델리아는 화들짝 놀라며 창가 쪽을 돌아보았다.

“스칼렛!”

“어, 나야. 핑크폭탄.”

스칼렛이 빙긋 웃으며 인사하자 코델리아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도도도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작별 인사 하려고.”

“어?”

작별?

깜짝 놀란 코델리아가 반사적으로 스칼렛의 손을 붙잡았다. 마치 헤어지기 싫다는 것처럼 말이다.

“진정해, 핑크폭탄. 아예 영원히 안녕하자는 게 아니니까.”

“그럼? 잠깐만?”

“어, 진짜 잠깐은 아니고. 한··· 몇 달 정도?”

스칼렛이 키득하고 웃자 유더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제국에 돌아가려고?”

“어, 그럴 생각이야. 여기 남아있어 봐야 당장 더 할 일도 없고.”

스칼렛이 어깨를 으쓱이자 코델리아는 얼른 붙잡은 손을 당기며 말했다.

“나랑 승부는? 나랑 승부하기로 했잖아.”

로그 마스터의 이름을 건 승부.

하지만 스칼렛은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안 해.”

“지금은?”

“어, 해봤자 질 게 뻔하니까?”

단순 무력면에서 자신이 밀린다는 사실은 이미 왕도에 머물 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말레키스와의 싸움을 거치면서 아플 정도로 실감하고 말았다.

‘아예 사는 세계가 달라.’

지금 이대로는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조차 무리였다.

‘그러니 강해져야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더 강해져야지.

너무나 큰 격차에 좌절하고 무너질 수도 있었지만 스칼렛은 그러지 않았다.

우물쭈물 자신을 바라보는 코델리아의 뺨을 쭉 잡아당기며 말을 이었다.

“제국에 가서 남은 로그 마스터의 비보들을 모을 거야. 실력도 더 기를 거고. 그러니까··· 다음에 만날 때는 진짜 승부를 하는 거야. 알았지?”

“응, 아라써. 기대하게.”

“그래, 깜짝 놀라게 해줄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해두고.”

마지막에 다시 키득 웃은 스칼렛은 코델리아의 다른 한쪽 뺨도 쭉 잡아당기더니 그대로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다음에 보자, 핑크폭탄.”

“응, 스칼렛 언니.”

“이럴 때만 언니래.”

스칼렛은 킥킥 웃더니 그대로 코델리아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더는 저도 모르게 헤아리던 숫자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이제 진짜 가야겠다. 다음에 봐.”

“응, 언니. 다음에 봐. 꼭.”

“그래.”

다시 코델리아의 이마에 입술을 맞춘 스칼렛은 그래도 미련이 남는지 코델리아의 뺨까지 꼬집은 뒤에야 유더를 돌아보았다.

“너도 잘 지내고, 블랙망토.”

“그래, 스칼렛 너도.”

유더와의 인사는 짧고 담백했다.

스칼렛은 여전히 소매자락을 붙잡고 싶어서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코델리아의 뺨을 두드려준 뒤 다시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갔네.”

“가버렸어.”

그간 정이 많이 들었는지 대놓고 시무룩해진 코델리아였다.

때문에 유더는 자리에서 일어나 코델리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제국에서 다시 볼 거니까 너무 낙담하지 마. 그리고 오히려 잘 된 거 아냐? 몇 달 뒤에는 우리도 제국에 가야하니까.”

“응, 맞아. 우리도 제국에 갈 거니까.”

스칼렛은 몇 달 뒤에 또 만날 거니까.

코델리아가 일부러라도 활짝 미소짓자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너무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손이 간 것이었다.

‘거기다 요즘엔 반항도 안 하고.’

유더를 필두로 하여 만나는 사람마다 뺨을 꼬집어대니 익숙해진 것일까?

아니면 꼬집는 사람이 유더 자신이라 그런 것일까.

유더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코델리아의 뺨을 꼬집던 손을 놀려 부드럽게 어루만졌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코델리아.”

작은 부름에 코델리아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팔을 뻗어 유더의 목을 끌어안더니 까치발을 설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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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이른 아침.

코델리아를 단단히 업은 유더는 지면을 박차 올랐다.

일정상 오늘은 꼭 카시우스를 만나야만 했다.

“새벽··· 합체··· 유데리아······.”

여전히 잠이 덜 깬 코델리아가 비몽사몽하며 웅얼거렸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새삼 다시 고쳐 업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삼키며 북서쪽- 명공 카시우스의 은거지가 있는 방향을 향해 질풍처럼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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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6장 - 명공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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