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276화 (276/473)

< 제97장 - 막간 >

제97장 - 막간

이미 완성된 소드 오리진을 강화한다.

그것도 유더와 하나가 되어 있는 소드 오리진을.

‘어떻게?’ 라는 의문이 드는 문제였지만 카시우스는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일종의 인챈트다. 애당초 소드 오리진에 에인션트 블랙 드래곤의 힘을 더하는 동시에 구성 성분 역시 변화를 주는 거지. 뿔과 발톱, 비늘이 더해진다면 소드 오리진을 발동시켰을 때의 네 몸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단단해질 거다.”

‘그러니까 그걸 대체 어떻게 한다는 소리지?’

소드 오리진은 유더 자신과 하나였으니까.

설마 유더 자신의 몸을 통으로 제련한다는 것은 아닐 텐데.

“응? 아니긴. 네 몸을 통으로 제련하는 게 맞아.”

유더의 표정에서 속내를 읽었는지 카시우스가 쾌활하게 말했다.

“다만 널 쇳물에 녹이고 망치질하고··· 그러는 대신 마법적으로 제련을 할 거다. 솔직히 까고 말하자면 대장장이보다는 마법사로서의 역량이 필요한 제련이지.”

“으음··· 그렇군요.”

여전히 감이 잘 오지 않았지만 어쨌든 강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중요했다.

[후대는 참으로 단순하군요.]

“일부러 단순해지는 겁니다만······.”

내 몸에 말레키스의 일부를 주입하다니 싫어!

따위의 생각을 해봐야 괴로워지는 건 이쪽이니 그냥 단순단순하게 생각하는 쪽이 좋았다.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시간? 글쎄? 대충 석 달 정도?”

“그렇게나요?”

“아까도 말했지만 마법적 제련이 필요한 일이다. 네 몸을 에인션트 드래곤으로 변모시키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어.”

“으음··· 그렇군요. 그럼 그 석 달 동안은 제가 활동을 하거나 하기는 힘들까요?”

“어, 당연하지. 앞으로 석 달 동안은 그냥 반쯤은 식물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걸?”

재차 시원하게 웃은 카시우스는 유더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깜박했는데, 드래곤의 영육을 재료로 쓴 무구들이 다 그러하듯이 제대로 다루려면 용의 인자가 필요하다. 넌 이미 갖고 있는 거 같으니 문제없을 것 같지만 말이야.”

소드 오리진의 사용 요건에 아스카론처럼 ‘용의 인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 추가되는 상황이었지만 유더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유더 자신이 사용하지 못 하게 되는 것이라면 모를까, 이미 사용 조건을 충족한 상황에서 후대에 물려줄 일까지 고민하는 것은 지나친 사치였다.

‘일단 나만 아니면 돼.’

아니, 나만 쓸 수 있으면 돼.

유더가 그렇게 살짝 쓰레기로 오인 받을 것 같은 생각을 한 순간이었다.

[후대, 후대는 지금 절 후대 전용으로 만들려는 건가요? 후대가 아닌 다른 사람은 쓸 수 없게?]

“네? 어··· 혹시 싫으신 건······?”

[아뇨, 책임만 제대로 지어준다면 괜찮아요. 양다리도 걸치지 않고요.]

“으음, 예. 알겠습니다.”

물론 정말 급한 상황이 오면 양다리든 세다리든 걸칠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뭔가 이게 아닌 것 같긴 한데.’

단어 선택에 있어서 자꾸 오해를 살 여지가 증폭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유더는 금방 생각을 끊어냈다.

아까부터 계속 반복해서 말했듯이 지금 중요한 것은 소드 오리진의 강화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널 제대로 제련해 주마.”

에인션트 드래곤의 재료를 잔뜩 제공해주겠다고 해서 그런지, 아니면 마녀가 함께 있어서 그런지 카시우스의 반응이 원작보다 훨씬 더 쾌활한 것 같았다.

‘그나저나 카시우스가 악마였다니. 그럼 카시우스가 쓰러트리려 한다는 적은 누구지?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천사겠지만 마녀의 말대로 카시우스가 좋은··· 악마한테 좋은이란 수식어가 붙는 게 이상하지만 아무튼 그런 악마라면 설마 지옥의 대군주들인가?’

얼추 말이 되는 것도 같았다.

악마인 카시우스가 지옥이 아닌 인계에 있는 것도 설명이 되었고 말이다.

‘지옥은 대군주들의 영역이었으니까. 대군주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피신해서 힘을 기르고 있다 생각하면 말이 안 될 것도 없어.’

정말 그렇다면 적의 적은 친구인 법이니 앞으로 좀 더 돈독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유더가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나갈 때였다.

“그런데 마녀님.”

“말하렴, 아기 토끼야.”

마녀가 귓가에 숨을 후-하고 불어넣으며 말하자 움찔한 코델리아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른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숲에서 저희랑 헤어지신 다음에요, 그 다음에 어떻게 되신 거예요?”

헤아려 보면 벌써 1년 가까이 지난 과거의 일이었다.

코델리아의 물음에 마녀는 후후 웃더니 다시 속삭이듯 말했다.

“숨어서 힘을 회복하고 있었단다. 덕분에 이렇게 아기 토끼도 만질 수 있게 되었지.”

마녀가 배를 쓰다듬자 코델리아는 다시 흠칫흠칫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하고 싶은 말을 이어나갔다.

“마녀님. 그럼 앞으로는······.”

“힘을 더욱 회복해야겠지. 몸도 하나 새로 만들고.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단다.”

코델리아를 무릎에 앉힌 채 여기저기 쓰다듬고 있는 마녀였지만 지금은 육체가 없는 상태였다. 워낙에 강력한 마녀의 영혼인 터라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이지를 유지하고 더 강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육체가 필요했다.

‘우웅··· 아무튼 잘 된 거겠지?’

마녀에게 당장 도와달라는 말은 하지 못 했지만 원작대로면 마녀는 지옥의 대군주들과 적대관계였으니까.

원작에는 없던 강력한 아군이 생긴 셈이었다.

‘어쩌면 대소환을 막는 일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몰라.’

아니, 마녀의 성향상 반드시 도와줄 터였다.

“헬레나!”

바로 그때였다.

유더를 붙잡고 한참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카시우스가 이쪽을 보며 크게 소리쳤다.

“짐 챙겨! 한동안 나가 있을 테니까! 여기 꼬맹이 집에 가서 작업 마칠 때까지 몇 달간 먹고 살 거야!”

거기까지 말한 카시우스는 마치 란디우스처럼 껄껄 웃으며 유더의 등을 팡팡 두드려댔다.

그리고 그 모습에 마녀는 우아한 미소를 머금었다.

“정말이지 기운도 좋단 말이지. 그렇지 않니?”

“어,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마녀님. 카시우스 님이랑은······.”

“내가 계약한 악마들 중 하나였단다.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악마이고.”

눈빛을 보아하니 무언가 장구한 사연이 있을 것 같았지만 마녀는 자기 이야기를 떠벌떠벌 늘어놓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대로 입술을 꾹 닫아 코델리아를 아쉽게 하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자, 그럼 우리도 가자꾸나, 아기 토끼야. 카시우스 저 바보는 나한테 짐이 하나도 없다는 걸 곧잘 까먹는단 말이지.”

어찌되었든 카시우스와 절친한 사이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기에 코델리아는 더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애당초 생각하는 것은 유더의 몫이었고 말이다.

‘맞아, 맞아. 생각은 유더, 행동은 나. 적재적소란 말이지?’

어깨를 으쓱인 코델리아는 새삼 카시우스의 공방을 돌아보더니 헤죽 웃었다.

‘아무튼 파워 업이야.’

장비도 좋은 걸로 새로 뽑을 거고 말이야.

유더는 소드 오리진을 강화하니 좋고, 카시우스는 재료를 잔뜩 얻으니 좋고, 코델리아 자신도 새 장비와 마녀의 가르침을 받으니 좋고.

[자, 잠깐만요. 설마 저 지금보다 더 묻히는 건 아니겠죠? 네?]

이제 곧 교체될 장비, 문라이트에 삽입되어 있는 멜리사가 작은 목소리로 의문을 제시하는 가운데 유더와 코델리아는 카시우스의 공방을 나섰다.

&

유더와 코델리아가 귀환하고 다시 사흘이 지났다.

아르곤 항구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커다란 배들이 바쁘게 오갔는데, 안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귀중품들이 실려 있었다.

“이번 피해를 복구하는 건 물론이고 남부7가문··· 아니, 남부6가문 모두 엄청나게들 챙길 거야.”

어덜트 드래곤의 시체가 수십 구에 달했으니 말이다.

“그럼 우리는?”

“성이라도 몇 채 지을까?”

유더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코델리아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유더와 코델리아는 정말 엄청난 벼락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일룬 왕국 전체로 봐도 두 사람보다 부자인 십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거의 대부분 장비 만드는데 쓸 예정이지만.’

각지의 마탑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을 들고 달려들 게 뻔했지만 돈보다는 장비가 중요했다.

돈으로도 못 사는 장비가 수두룩했으니 말이다.

‘장인어른만 좀 챙겨 드리면 되겠지.’

그간은 물론이고 요즘도 받아먹는 것들이 참으로 많았으니까.

장어라든가, 굴이라든가, 산삼이라든가.

어째 근래 들어서는 툭툭 던져주시는 것들의 효능이 일정 방향으로 편중된 느낌이었지만 말이다.

“흠흠.”

“응? 왜?”

“아니, 그냥. 아무 것도 아냐.”

으쓱으쓱 어깨춤을 추며 신나하는 코델리아의 이마에 몇 번인가 입술을 맞춘 유더는 다시 부두 쪽을 바라보았다.

성십자 수호단의 감시 하에 선원들이 짐을 내리고 있었는데, 거의 다가 에인션트 드래곤 말레키스의 잔해들이었다.

“우리 이제 돌아가는 거야?”

“그래, 집에 가자.”

아직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영지의 저택.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의 집.

‘뭐, 둘이서만 살 건 아니지만.’

카시우스와 마녀는 물론이고 란디우스와 레나, 카마엘까지도 함께 가기로 했으니 말이다.

‘여기에 드워프들까지 있고.’

아버지와 장인어른께서도 영지 장악을 위해 한동안은 함께 하신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어 달은 시끌시끌할 것 같았다.

“그런데 유더야.”

“어, 코델리아야.”

“언니랑 아주버님 있잖아. 앞으로 넉 달 정도 뒤라고 했지?”

두 사람의 결혼.

그리고 아버지들께서 넌지시 계속 언급하시는 그 다음의 일들.

코델리아는 더 말하는 대신 유더의 품에 몸을 기댔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르곤 항구의 북문 근처.

“잘 가!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고! 설사 세상 끝이라 해도 달려갈 테니까! 수련도 열심히 해둘 거라구?”

다음에는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그저 도움만 받는 게 아니라 이쪽이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배웅 나온 카이사가 손을 크게 흔들며 소리치자 우르르 떠나는 마차들의 최후미- 커다란 사두마차에 타고 있던 코델리아 역시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소리쳤다.

“잘 있어! 카이사! 나중에 만나!”

“그래! 꼭이야! 스칼렛 그 계집애까지 해서 또 셋이 신나게 놀자!”

“응! 알았어!”

십대 후반 소녀들의 대화 치고는 지나치게 어린애- 그것도 남자 아이들의 대화 같았지만 카이사와 코델리아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코델리아! 그리고 잊지 마! 책에서 본대로만 해! 본대로만! 알았지?”

“으응! 고마워 카이사!”

순간 종이봉투 안에 있던 책을 떠올린 유더는 열심히 딴청을 했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코델리아는 계속해서 손을 흔들 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마차 안.

벌써부터 쿨쿨 졸기 시작한 카시우스와 마주하고 앉아 있던 서쪽 숲의 마녀 헬레나는 곰방대에 불을 붙인 뒤 한 모금을 깊이 빨아들였다. 영혼만으로도 산 사람과 다름없는 행동을 하며 창밖을 돌아보았다.

지난 1년.

사실 코델리아에게 말한 것처럼 숨어서 힘을 회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 또한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약간의 의심.

무언가 이상한 기분.

그리고 마침내 마녀는 지난 1년간 느껴온 위화감의 정체를 어느 정도 간파할 수 있었다.

란디우스와 레나.

마녀 자신.

세바스찬 르귄과 남부의 많은 사람들.

마녀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곰방대의 연기를 길게 뱉은 그녀는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보았고, 이내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과연.”

다르구나, 달라.

달라져 버렸구나.

1년 전 유더와 코델리아를 처음 만났을 때.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봉인이나 마녀 자신에 대해서는 알면서 막상 마녀의 힘에 대해서는 모르던 코델리아.

마찬가지로 지식이 불균형했던 유더.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어째서 그러했는지 짐작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도, 조금 더 확인해 봐야겠지?’

마녀 자신의 가설이 정답인지.

그리고 정답이라면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하얗고 긴 연기를 재차 토한 마녀는 시선을 멀리하였다. 신비로운 초록빛 눈동자로 저만치 먼 곳에 자리한 생크루트 수도원을- 어린 신 아탈리아가 잠든 땅을 바라보았다.

&

시간은 바쁘게 흘러갔다.

겨울이 지나 해빙의 봄이 찾아왔고, 바뀐 계절을 따라 대지 역시 그 옷을 갈아입었다.

세일룬 왕국 역시 많은 변화를 맞이하였다.

남부에서는 오펀드 후작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질서가 정립되었고, 북부에서는 야생의 땅의 주민들과 북부인들 사이의 교역이 시작되었다.

헨리 2세는 정력적으로 일했다. 호국공의 반란 이후 사람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그의 지도 아래 중앙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하고 단단해져 제국이 찌르고 들어올 틈 따위를 내주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 남짓.

말레키스와의 결전으로부터 석 달이 지났을 때.

열여덟 살이 된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결혼을 코앞에 둔 게일과 아델리아의 청첩장이었다.

&

< 제97장 - 막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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