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277화 (277/473)

< 제97장 - 막간 #2 (초반부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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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달이 뜬 밤이었다.

올려다보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처럼 하늘엔 별이 가득했고, 반짝이는 별빛 사이에 자리한 밤의 바다는 검고 두려운 대신 푸르고 아름다웠다.

가만히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던 코델리아는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렸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을 때보다 더 반짝이는 눈이 되고 말았다.

유더가 하늘을 우러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솔직히 너무 멋있어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반칙이야, 반칙.’

키는 또 언제 저렇게 자란 것일까. 이제 180 후반은 족히 될 것 같았다. 나란히 서서 옆을 돌아보면 유더의 머리는커녕 어깨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코델리아는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입술을 살짝 깨문 채 숨을 죽이고 유더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머리칼이 젖어 있었다.

헝클어진 채 흘러내린 그것은 검고도 푸르렀으며, 그렇기에 새하얀 피부가 더욱 더 돋보였다.

오똑한 코와 부드러운 선을 그리는 입술, 조형적으로 완벽한 턱.

하지만 코델리아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하늘을 향하고 있는 눈동자.

콩깍지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근사했다.

어둠 속에 번지듯 녹아드는 저 녹색의 빛은 마치 신비로운 마법과도 같았으니 말이다.

두근두근 거리는 가슴을 살짝 짓누른 코델리아는 다른 쪽 손을 뻗어 유더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대로 손을 잡아도 될 터인데, 어쩐지 소매를 당기고 싶어서였다.

짧게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소심하게 당겼지만 반응하지 않을 리 없었다.

밤하늘을 우러르던 유더가 고개를 돌렸고, 그대로 코델리아를 바라보았다.

녹색 눈동자.

코델리아는 괜히 다시 입술을 깨물더니 어물쩍 시선을 돌렸다.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해질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음에는 콩닥콩닥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심장의 고동 소리 때문에 다른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유더도 들으면 어떡하지?

바로 그때였다. 유더가 손을 뻗어왔다. 소매를 쥐고 있던 손을 꼭 붙잡았고, 코델리아는 유더의 커다란 손을 어찌할 생각도 하지 못 했다. 살짝 꼼지락 거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코델리아.”

낮은 부름에 코델리아는 다시 몸을 살짝 떨었다.

이상하게 목소리를 듣기만 했는데도 부르르 몸이 떨리는 기분이었다.

심장의 고동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얼굴에 열이 올라 정말 확하고 뜨거워졌으니 말이다.

목이랑 뺨이랑 귀랑.

아니, 그냥 몸 전체가.

“코델리아.”

유더가 다시 불렀다.

귀를 간질이는 달콤함에 코델리아는 용기를 내 고개를 들었다.

다시 유더를 보았고,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스쳤다.

‘기분 좋아.’

저도 모르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유더의 커다란 손이 다가오더니 그대로 귓가를 따라 흘러내리던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뜨거운 뺨 위에 자리했다.

유더의 손은 서늘했다.

극한지기를 타고났기 때문이라는데, 어찌되었든 코델리아는 유더의 손이 좋았다. 가만히 손바닥에 뺨을 기대니 그대로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뺨을 감싼 유더의 손을 다시 감싸듯 손에 품었다.

유더가 웃었다.

그대로 빙긋 웃더니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고, 그대로 콧등을 지나 콧잔등에도 입술을 맞추었다.

부끄러웠다.

한 없이 부끄러웠지만 이상하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고만 싶었다.

“코델리아.”

세 번째 부름.

코델리아는 살며시 눈을 감았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와 입술을 맞추었다. 그대로 흐르듯 턱 선을 지나 목 위를 훑었고, 도드라진 쇄골을 혀끝으로 가볍게 핥았다.

불에 데인 것만 같았다.

뜨겁고 날카롭고 괴로운.

코델리아는 다시 살짝 눈을 떴다. 유더의 손길에 이끌려 그대로 자리에 몸을 눕혔다. 저도 모르게 애타는 시선을 보내고 말았다.

“유더야.”

작은 부름에 유더가 반응했다. 유더 역시 애타는 시선을 보내왔다.

짜릿한 떨림.

두근거리는 가슴.

그리고 이상하리라만치 쏟아지는 땀.

“흐에?”

멍한 소리를 흘리며 코델리아는 눈을 떴다.

침침한 가운데 뺨이 뜨겁고 눅눅했다.

“아우?”

다시 멍한 소리를 내고 몇 초.

눈을 번쩍 뜬 코델리아는 얼른 상체를 일으켜 세웠고, 침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으며 울상을 지었다.

“아우, 앙돼.”

입술 사이로 질질 흘러내린 침이 페이지를 잔뜩 뒤덮고 있었다.

마이아가 보았다면 너무 부끄러워서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은 문구들 옆에는 한층 더 파렴치한 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침에 젖어 엉망이었다.

“우으.”

코델리아는 일단 침을 닦아낸 뒤 손바닥 위로 작은 열기를 만들어냈다.

자연 건조시키다가 남들이 보면 낭패이니 마법으로 얼른 해치울 셈이었다.

‘꿈이었네.’

어째 항상 비슷한 곳에서 끊기는 꿈.

이상하게 일정 선 이상을 벗어나지 못 하는 꿈.

왜일까.

어째서 항상 여기서 끊기고 마는 것일까.

이다음이 이어진다면 대체 어떤 꿈이 펼쳐지는 것일까.

“흠흠, 흠흠흠.”

잠시 그 뒤를 상상해본 코델리아는 얼른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뺨이며 목이며 발갛게 달아올라 숨쉬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으, 음란마귀 안돼요. 아웃이에요.’

혼자 작게 중얼거린 코델리아는 몇 번이나 도리질을 한 뒤 침대 밑에 숨겨둔 상자에 얼른 책을 집어넣었다.

‘다음부터는 조심해야지.’

혼자 깼으니 망정이지 마이아가 깨워줬다면 민망해서 죽었으리라.

“우으.”

사실 요즘 들어 드문드문- 아니, 은근히 자주 있는 일이었다.

‘이게 다 카이사랑 스칼렛 때문이야.’

두 사람이 준 책들 때문이고말고.

그러니까 내 잘못이 아니야.

열심히 읽고 또 읽은 건 나지만 아무튼 두 사람 잘못이야.

‘응응, 그렇고말고. 거기다 진짜로 나쁜 건 유더인걸.’

매일매일 함께 있다가 없어져 버렸으니까.

영지에 도착하고 벌써 3개월.

블랙 혼 길드의 유적에 작업장을 만든 카시우스는 유더를 무려 3개월 동안이나 감금하고 있었다.

뭐, 사실 감금이라기 보다는 유더가 제련 때문에 그곳에 머물고 있는 것이었지만, 아무튼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3일에 한통씩 오는 편지에 따르면 소드 오리진을 각성 신화 용장비로 제련하는 동시에 카마엘에게 수련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몸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내공 수련 정도는 가능했으니까.

카마엘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설화십이검이었다.

극양의 무공인 구극태양신공에 대비되는 극음의 무공으로, 영웅전기 1편부터 3편에 이르기까지 카마엘이 애용한 터라 코델리아에게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유더 보구 싶다······.”

저도 모르게 말한 코델리아는 입술을 몇 번 삐죽이더니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평소였다면 그대로 축 늘어져서 우울해 했을 터였지만 오늘은 달랐으니 말이다.

“헤헤헤.”

그것도 그런 것이 이제 곧 만날 수 있었으니까.

무려 3개월 만에 유더와 다시 만나 쪽쪽- 아니, 유더와 얼굴을 맞댈 수 있었으니까.

“신이나, 신이나, 엣헴엣헴 신이나.”

오랜만에 어깨춤까지 춘 코델리아는 책상 위에 고이 모셔둔 편지를 새삼 다시 펼쳤다.

하얗고 예쁜 종이 위에는 유려한 글씨로 짧고 담백한, 하지만 무척이나 임팩트 있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아델리아 언니와 게일 아주버님의 결혼.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은 대 이벤트.

두 사람의 결혼식은 북부- 그러니까 두 사람의 고향이자 유더와 코델리아의 고향인 바일룬에서 거행될 예정이었다.

“흐흥, 흐흐흥.”

아델리아 언니의 얼굴을 떠올린 코델리아는 흐흐흐 웃다가 돌연 다시 얼굴을 붉혔다.

아버지와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다음’이 떠오른 탓이었다.

“흠흠, 흠흠흠.”

청첩장을 고이 접은 코델리아는 새삼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 방을 나섰고, 거짓말처럼 마이아를 마주하였다.

“마, 마이아?”

도둑질하다 걸린 것처럼 코델리아가 움찔하자 마이아는 미간을 살짝 좁히더니 작게 한숨을 쉬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코델리아 님, 뺨이 엉망이에요.”

“응? 아, 응. 미안.”

코델리아는 민망해져서 얼굴을 붉혔고, 마이아는 손수건을 꺼내 코델리아의 뺨에 들러붙은 글자들을 적당히 닦아냈다.

물론 그 와중에 읽은 글자들 때문에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마이아는 숙련된 메이드답게 못 본 척 하였다. 여기서 더 말해봐야 다 같이 민망해질 따름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 적당히?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응? 뭐, 뭐가?”

코델리아가 당황해서 어버버 거리자 마이아는 더 말하지 않았다. 이미 뜻은 통하였으니 말이다.

마이아 탄탈롯.

유더의 전속 메이드였던 그녀는 바이엘 가를 나와 어거스트 바이엘 가로 거처와 직장을 옮긴 상태였다.

지금까지는 유더의 전속 메이드였지만, 이곳에서의 신분은 달랐다.

무려 메이드장이자 백작가의 실세가 되었으니 말이다.

“달리아는?”

“순찰 중입니다. 점심 식사 전에는 돌아온다 하였으니 금방 돌아올 거예요.”

코델리아의 호위기사였던 달리아 역시 어거스트 바이엘- 아니, 어거스트 체이스 백작가로 옮겨 온 상황이었다.

그녀의 직위는 백작가의 기사단을 이끄는 기사단장이었다.

‘낙하산이든 뭐든 내 맘인걸.’

거기다 달리아는 실력도 좋고.

그리고 사실 이번에 새로 창립한 기사단인 터라 딱히 낙하산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마이아, 내일이 맞는 거지? 응? 내일.”

“네, 맞아요. 내일이랍니다.”

마이아의 대답에 코델리아는 마음 속으로 너무 좋아를 연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일이면 드디어 3개월 만에 유더를 만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신이나, 신이나, 엣헴엣헴 신이나.”

코델리아가 저도 모르게 어깨춤을 추자 마이아는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이 되었지만 이내 작게 웃었다.

이러나저러나 귀여웠던 데다가 마이아 자신도 내일이 무척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바일룬으로 떠난다.

물론 코델리아 혼자 갈 수는 없으니 유더와 함께.

‘수련의 성과도 보여줘야지.’

책으로 예습 정말정말 많이 했으니까.

‘아, 아니. 그거 말구.’

스스로에게 태클을 건 코델리아는 머릿속을 오염시키기 시작한 망상들을 걷어낸 뒤 마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한 달 정도 함께 있다가 훌쩍 떠난 서쪽 숲의 마녀.

그녀에게 배운 것들 덕분에 3개월 전보다 한층 더 진보한 코델리아 자신이었다.

‘이제부터는 오펜스 타임이라 이거지.’

코델리아 자신도 강해졌고, 유더도 강해졌을 테니까.

지금까지는 세일룬 왕국에서 일어날 사건들을 막기 위해 뽈뽈뽈 돌아다닌- 어찌보면 방어 일변도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터였다.

대소환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자 7대 재앙의 저지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까지는 똑같았지만 훨씬 더 공격적인 움직임이 가능했다.

악마 추종자들의 지부를 턴다거나, 미리 선제 공격을 가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니까.’

주먹을 불끈 쥔 코델리아는 고개를 팍팍 끄덕인 뒤 영지의 각종 일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이 워낙 정비를 잘해준 덕분에 알아서 휙휙 잘도 돌아가는 영지였지만 그래도 확인 작업은 반드시 필요했다.

달리아와 마이아의 도움을 받아 서류 작업을 끝낸 뒤에는 혼자서 수련.

다시 달리아와 마이아와 함께 식사를 마친 뒤에는 이것저것 하다가 잠자리에 들기.

순간 침대 밑의 상자가 떠오른 코델리아였지만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은 일찍 자야했으니까.

‘그, 그리구······.’

내일은 진짜 유더가 있을 테니까.

망상 속의 유더가 아니라 진짜 유더가.

“우우웅.”

유더의 얼굴이 떠오르니 절로 얼굴까지 붉어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더니 다 거짓말인 모양이었다. 3개월 동안 못 봤더니 오히려 더더더 보고 싶어진 유더였다.

‘응, 좋아. 결정했어.’

아주 그냥 만나기만 해봐.

만나기만 하면······.

입술을 움츠린 코델리아는 그대로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었고, 쪽쪽쪽 소리를 내다 잠을 청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코델리아는 아침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한 뒤 마차 위에 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혼자 슝하고 날아가고 싶었지만 마이아와 달리아도 함께 가야했으니까.

“그렇게 좋으세요?”

달리아가 마차 문을 닫으며 묻자 마이아가 소리죽여 웃었고,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두 사람 앞이었기에 솔직하게 말하였다.

“응, 좋아. 너무 좋아.”

너무너무 보고 싶어.

달리아와 마이아가 다시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두근두근거리는 코델리아의 고동 소리에 호응하듯 마차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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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7장 - 막간 #2 (초반부 수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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