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7장 - 막간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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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유더와 코델리아의 영지는 지난 3개월 동안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것은 다모스 산 인근이었다.
몬스터들 때문에 사실상 버려진 땅이었던 것은 그야말로 옛말에 불과했다.
지금은 사실상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령의 핵심이었으니 말이다.
깡! 깡! 깡!
다모스 산 근처에서 깡깡깡 소리가 들려왔다. 수백 년 만에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한 블랙 혼 길드의 본거지- 블랙 타운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경쾌하다가도 때로는 묵직하게.
그리고 그것은 대로 위를 오가는 마차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수십 대에 달할 마차들이 다모스 산을 오갔다.
드워프들이 만든 질 좋은 장비들은 물론이고 다모스 산에 잠들어 있던 지하자원들을 운반하기 위함이었다.
새로운 산업이 들어서자 사람이 모였고, 사람이 모이자 다시 상업이 활성화되고, 그로 말미암아 다시 사람이 모이고.
물론 이제 겨우 3개월 남짓이었기에 작은 촌동네가 커다란 마을이 된 정도의 변화였지만 그 정도만 하여도 다모스 산 인근에서 평생을 보낸 이들에게는 대격변이라 할 수 있었다. 더욱이 저 선순환이 한계에 달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였고 말이다.
“새로 온 영주님이 대단하시지?”
“대단하시고말고. 다모스 산이 이리 변한 게 다 누구 덕분이겠는가. 아마 곧 여기, 그러니까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령 전체가 크게 발전할 걸세.”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시장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요깃거리를 앞에 두고 사내 둘이 대화를 나누었는데, 하나는 주민으로 보였고 다른 하나는 행색을 보아하니 행상인인 모양이었다.
“다른 영지랑 많이 다릅니까?”
옆 자리에 앉아 꼬치구이를 먹던 청년이 슬쩍 묻자 행상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장설을 시작했다.
“다르지, 다르고 말고. 내 이렇게 좋은 영지는 참으로 오랜만이란 말이야. 본래 이 정도로 급격한 발전이 이루어지면 세금도 같이 엄청 뛰는 법이거든? 난생 처음 들어보는 기상천외한 세금들도 팍팍 붙고. 내가 전에 있던 곳에서는 아 글쎄 날씨가 맑으면 맑은 날씨라며 세금을 걷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세금을 걷고 아주 가관이었다네.”
“허, 그런 곳도 있나?”
“있고말고. 돈에 환장한 귀- 아니지, 아무튼 환장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까. 통행세만 해도 장난이 아닐세. 다리 지날 때야 내 인정하네만 그 뒤로 문 한 번 지날 때마다 통행세를 걷는데 문이 한 둘이 아냐. 아예 통행세 때문에 없던 문을 만드는 경우도 봤네.”
“허허.”
다모스 산의 주민이 당혹스럽기 그지없다는 듯 눈을 껌벅이자 행상인은 더 신이 나 소리쳤다.
“반면에 이곳은 어떤가? 통행세를 걷기는 하지만 아주 저렴한데다가 마을- 아니, 이제는 도시지. 그래, 도시에 들어오고 나갈 때 한 번만 걷지 않던가. 이래야 사람이 모이지. 시작부터 통행세 팍팍 걷기 시작하면 남는 것도 없는데 여기 오겠나? 겨우 3개월 만에 이렇게까지 발전한 건 새 영주님의 수완 덕분이니 마음껏 찬양하게나.”
행상인의 말에 주변에 있던 이들은 피식피식 웃음을 흘릴 뿐 딱히 반발하는 이가 없었다.
행상인처럼 대놓고 찬양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다들 새로운 영주에게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듣자하니 새 영주님 덕분에 다모스 산 근방의 몬스터들도 다 사라졌다면서요? 정말인가요?”
청년이 다시 묻자 이번에는 다모스 산의 주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덕분에 정말 살만하게 됐어. 예전 같으면 다모스 산 인근에는 얼씬도 못 했는데, 이제는 안에 들어가서 땔감도 주워온다네.”
물론 산의 자원은 모두 영주의 것이었기에 땔감을 주어가는 것조차 허가가 필요했지만, 새로운 영주는 한시적으로나마 다모스 산을 개방해둔 상태였다.
아마도 몬스터가 정말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인 것 같았다.
“새로운 일자리들도 많이 생겼으니 살기 좋아진 거지.”
“마을이 커지니까 다른 곳으로 떠나네 어쩌네 하던 젊은 것들의 헛소리도 쑥 들어갔고.”
여기저기서 말들을 보태자 청년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새 영주가 정말 잘생겼다면서요?”
“아, 말해 무얼 하나. 진짜 미남이시지. 왕도에서도 그 정도 미남은- 아니, 세일룬 왕국 전체를 봐도 영주님 정도의 미남은 찾기 어려울 걸세.”
“영주 마님도 엄청나게 아름다우시다던데.”
“그렇고말고. 마을 젊은 것들 중에 상사병 앓다 쓰러진 놈들이 한 둘이 아냐.”
세금 이야기를 할 때보다 오히려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
그리고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우리 영주님이고 우리 영주마님이었으니까.
일단 잘나고 멋지고 다른 지역 가서 자랑할 만한 사람이면 괜히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기분도 좋아지고 하는 법이었다.
“이야, 거기다 새 영주님은 그렇게 강하시다면서요? 영주 마님은 아예 성천사 레나 님과 마찬가지로 천사라 하시던데.”
“여기저기서 알짜배기 소문만 쏙쏙 잘도 들었구만. 전부 사실일세. 이제 곧 왕도에서 영주님을 십검호에 올린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네.”
“십검호? 우리 영주님은 아직 십대 아니셨나?”
“그러니까 대단한 거지. 천재 중에 이런 천재가 어디있겠나.”
“거기에 마님은 천사님이시고.”
“부럽다.”
“허허, 이 사람 보게. 말조심 하게나. 영주님 내외시네.”
“흠흠.”
“그래도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니까.”
“인정.”
“어, 인정.”
공감대가 형성된 주민들은 다시 웃음을 터트렸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던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은 이야기 정말 잘 들었습니다. 제가 술 한 잔 씩 돌리고 가죠.”
“오오오?”
“젊은 친구가 아주 바람직해!”
“크게 될 상이로다.”
아무렇게나 이어지는 칭찬에 적당히 호응한 청년은 정말로 술값을 계산한 뒤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몇 걸음.
청년의 머릿속에서 차게 식은 목소리가 울렸다.
[후대여, 추합니다.]
자기 입으로 자기 칭찬하는 소문을 흘리다니.
하지만 유더는 폴리모프 마법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한 뒤 언제나처럼 뻔뻔하게 답했다.
‘민심에 약간의 추임새를 더한 것뿐입니다. 없는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사실이었으니까.
유더 자신은 잘생겼고, 코델리아는 엄청나게 예쁜데다 천사이기까지 했다.
십검호 이야기도 사실이었고 말이다.
[후대여,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란 말이 있는 거 아나요?]
‘그래도 필요한 일이라··· 더욱이 낯선 곳에 오면 일단 민심을 장악해야 하는 겁니다. 현지인들과 친해져야 작전 활동이 수월해지죠. 행상인들도 괜히 푼 게 아닙니다.’
유더의 말을 가만히 듣던 벨렌시아는 유더의 영육 속에서 눈을 껌벅였다.
방금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깐. 잠깐만요, 후대. 행상인을 풀어요?]
‘예, 소문 좀 뿌리라고 몇 사람 고용했습니다. 물론 적절한 루트로요.’
장사하러 온 행상인이 하라는 장사는 안 하고 괜히 술집에 죽치고 앉아 영주님 찬양을 해댄 것이 아니었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도 알고 양발도 알아야 하니까요.’
유더가 아무렇지 않게 개소리를 하자 벨렌시아는 다시 눈을 껌벅였다.
지난 3개월 동안 많이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만만찮은 유더였다.
[후대, 후대는 정말 능구렁이 같군요.]
‘그래서 싫으신가요?’
[말하는 것 좀 봐.]
벨렌시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자 유더는 따라 웃었지만 잠시 뿐이었다. 이내 다른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좋아!’
코델리아가 있었다면 분명 그렇게 답해줬을 텐데.
[후대여, 조금만 참아요. 오늘 만나기로 했잖아요?]
‘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인내하고 있습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도시 밖까지- 아니, 아예 코델리아가 머물고 있던 저택까지 마중을 나가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다. 애당초 코델리아의 생일조차 참고 넘어간 자신이 아니었던가.
‘많이 섭섭했을 텐데.’
그나마 도시 내를 돌아다니는 지금과 달리 코델리아의 생일- 그러니까 두어 달 전에는 골방에 갇혀 골골대던 자신이라 별 도리가 없기는 했다.
코델리아의 생일이 지났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겨우 기억해낼 정도로 정상이 아니었고 말이다.
[그래도 덕분에 많이 강해졌으니 된 거겠죠. 소드 오리진도 생각한 것 이상의 성장을 이뤘고요. 블랙 혼 길드의 드워프들도 지금의 소드 오리진을 보면 깜짝 놀랄 거예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아직 조정 기간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얼추 각성 신화 용검으로의 강화- 아니, 진화가 이루어진 소드 오리진이었다.
[설화십이검의 숙련도도 높아졌고요.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정말 흥미로운 검술이에요.]
물론 유더가 익힌 것은 설화십이검을 소드 오리진에 맞게 변용한 것이었다.
카마엘과 함께 검술을 체술로 바꾸는 과정이 무척이나 즐거웠는지 벨렌시아는 요즘 틈만 나면 설화십이검 이야기를 꺼냈다.
[후대, 카마엘과는 다시 만날 거죠?]
‘예, 다시 만나야죠.’
사실 카마엘만이 아니었다.
란디우스와 레나 역시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령을 떠난 상황이었다.
카마엘의 경우엔 성십자 수호단의 일이 있었고, 란디우스와 레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대사교 마누엘라를 추적하기 위함이었다.
[자, 그럼 후대. 빨리 돌아가죠. 카시우스에게 점검 받을 시간이에요. 빨리 점검 받아야 코델리아를 만나죠.]
‘예, 예. 알겠습니다.’
무협에서 스승은 부모와 같다더니 언제부터인가 잔소리가 는 벨렌시아였다.
[후대여, 지금 뭔가 무례한 생각을 하지 않았나요?]
‘아뇨, 전혀.’
허허허 웃은 유더는 다모스 산 중턱에 세워진 영주 저택을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마차 한 대가 대로를 지난 그때 유더는 저택 정문에 서서 마른침을 삼켜댔다.
괜히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신발을 털고, 주머니의 물건을 확인한 뒤 다시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평소 같으면 한 소리 했을 벨렌시아였지만 이번에는 침묵했다. 유더가 왜 저러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거의 다 온 것 같네요.]
벨렌시아의 말에 유더는 숨을 크게 내쉰 뒤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았다.
과연 마차 한 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어거스트 체이스 백작의 문장이 새겨진 마차.
유더는 당장 지면을 박차고 싶은 다리를 애써 억누른 뒤 기다렸고, 마침내 도착한 마차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우르르 쏟아지듯 튀어나온 소녀가 하나.
분홍빛이 어린 붉은 머리칼이 인상적인 소녀.
그녀가 고개를 들어 유더를 보았다.
유더 역시 그녀를 보았고, 오랜만의 눈빛을 교환하였다.
“흠흠.”
소녀는 애써 침착하게 자세를 정돈한 뒤 우아하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본래는 마차에서 마이아와 달리아가 내리는 것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그것까지는 도저히 무리였다.
유더도 그랬다. 가만히 서서 기다려야 했지만 자꾸만 좀이 쑤셔 그러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결국 먼저 터진 것은 코델리아였다.
꽉 쥔 주먹을 흔들며 안달하던 그녀는 단숨에 지면을 박차더니 아예 광익을 펼쳤다. 1초라도 더 빨리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며 소리쳤다.
“유더야!”
정말로 1초 남짓.
부름을 채 마치기도 전에 유더 앞에 당도한 코델리아는 그대로 유더의 품에 뛰어들었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았다. 그대로 허리만 붙잡아 높이 들더니 빙글빙글 돌기까지 했다.
“우리집 짐승!”
“어흥! 어흥!”
지켜보는 이들 모두가 민망함의 도가니탕에 빠질 것 같은 교환이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 애당초 주변을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몇 번인가 더 코델리아를 번쩍 들며 빙글빙글 돌던 유더는 다시 코델리아를 품에 꼭 안았고, 코델리아는 유더의 품에 안겨 코를 킁킁거렸다. 오랜만의 유더 냄새를 만끽하기 위함이었다.
“진짜야, 진짜.”
망상이나 가짜가 아냐. 진짜 유더야.
그렇게 생각한 순간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상할 정도로 강해진 감정 때문이었다.
“코, 코델리아?”
하지만 코델리아는 무어라 답하는 대신 유더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대로 훌쩍이더니 3개월간 억눌러온 마음을 짤막한 말로나마 표현하였다.
“너무 좋아.”
부풀어 오른 마음 때문에 가슴이 터질 거 같아.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꼭 끌어안았다. 가슴이 마구 두근거려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었지만 최대한 노력했다.
1년하고 몇 개월 전.
그러니까 전생을 각성한 직후의 자신들이 지금의 자신들을 보면 무어라 할까.
아니, 1년 후의 자신들에 대해 들려주면 코델리아가 무어라 할까.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심드렁한 표정으로 툭 내뱉듯 말하는 코델리아의 얼굴을 떠올린 유더는 돌연 웃기 시작했고, 가슴에 매달려 울던 코델리아는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냐는 듯 눈을 깜박이며 유더를 바라보았다.
“유더야?”
유더는 대답하는 대신 코델리아의 살짝 벌어진 입술에 입술을 포개었다. 그러자 코델리아는 더 묻는 대신 살며시 눈을 감으며 3개월만의 유더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모두는 저마다 헛기침을 토하며 서로를 보았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렇게 좋을까요?”
“그러게요.”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할까.
마이아와 달리아는 어깨를 으쓱인 뒤 두 사람의 해후가 끝나기를 기다렸고, 결국 30분 남짓이 지나자 기다리기를 포기했다.
여전히 붙어 쪽쪽 거리는 두 사람을 강제로 뜯어낸 뒤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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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더는 코델리아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아직 온기가 남은 그녀의 시신을 보듬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더는 늘 그랬던 것처럼 주변을 인지하고 있었다. 경지에 도달한 구천구문의 효과였다. 칠문을 연 이후 유더는 싫어도 주변을 인지해야만 했다.
유더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마르고 갈라진 목으로 목소리를 내는 대신 그저 저만치 자리한 교회의 문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발걸음 소리였다.
습관처럼 속으로 숫자를 헤아리자 거짓말처럼 교회의 문이 열리며 낯익은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더.”
교회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루카스였다.
성왕십자검의 계승자인 그는 붉은바람과의 격전으로 외팔이가 되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과거보다 강해져 있었다.
유더는 대답하는 대신 다시 고개를 숙여 코델리아를 보았고, 루카스는 이를 악물었다.
두 사람의 사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였기 때문이다.
“유더.”
루카스는 다시 한 번 유더를 불렀다.
코델리아는 죽은 것이냐고, 이번에야말로 끝이 난 것이냐고, 마지막 순간에는 인간으로 돌아온 것이냐고- 그런 것들은 묻지 않았다. 물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유더, 카이사의 부상이 심해. 스칼렛에게 서부전선이 돌파당했어.”
진홍의 마녀.
새로운 7대 재앙 가운데 하나.
그녀와 싸워 이길 수 있다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성십자 수호단 내에서도 오직 유더 하나뿐이었다.
그렇기에 루카스는 지금 이 자리에 선 것이었다. 호적수로서, 친구로서 유더에게 애도의 시간을 주고 싶었지만 스칼렛을 막아야만 했다.
유더는 눈을 감지 않았다. 한 순간이라도 더 길게 코델리아를 바라보기 위함이었다. 활짝 웃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낮게 말했다.
“아델라이데는.”
“레온을 막고 있어. 그쪽도 역부족이야.”
레온 가드리엘.
검술이란 영역에서만큼은 저 막시밀리언과 호각에 이르렀던 검의 괴물.
막시밀리언이 죽은 지금 그는 대륙 최강의 검호였다. 유더조차도 그와의 싸움에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유더는 잠시 침묵했다.
사실 아델라이데가 무얼 하고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상황이 절망적이고, 자신들의 행동은 그저 발버둥에 불과하다는 사실 역시도 너무나 잘 알았다.
결국 인류는 멸망하리라.
대소환을 막지 못 한 그때 이미 세계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유더······.”
“루카스.”
유더는 작게 말했다. 억지로라도 미소를 짓고자 했지만 결국 엉망진창이 된 얼굴로 마저 말을 이어나갔다.
“잠시만, 잠시만 둘이 있게 해줘.”
성십자 수호단장.
인류 최강의 검호.
세계의 마지막 희망.
아니었다. 그렇게 거창한 존재가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자리한 것은 자신의 반쪽을 잃어 부서지기 직전인,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작고 여린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루카스는 입술을 닫았다. 무어라 더 말을 잇는 대신 돌아서서 교회를 나섰다.
문이 닫혔다. 다시 어둠이 교회 안을 채웠다. 결국 울음을 터트린 유더는 코델리아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마인이 된 이후에도 그녀의 손에 자리하고 있던, 유더로 하여금 끝끝내 그녀를 포기하지 못 하게 만들었던 약혼반지를 어루만지며 마지막 눈물을 쏟아냈다.
“코델리아.”
마로 물든 그녀의 육신에 성스러운 힘을 불어넣었다. 조금씩 재로 화해 흩어지는 그녀와 마지막 입맞춤을 나누었다.
세계는 멸망하리라.
지옥의 악마들과 천계의 천사들의 싸움으로 지상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리라.
발버둥은 결국 발버둥으로 끝나고 말리라.
재가 흩어졌다.
더 이상 코델리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유더는 이를 악물었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끌어안으며 지독한 두려움과 공허함에 시달렸다. 재가 되어 흩어진 코델리아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였다. 코델리아를 죽이고 그녀의 시신을 불태운 자신을 증오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어째서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
유더는 코델리아의 반지를 손에 쥐었다.
이미 사라진 신에게 기도를 바쳤다. 보답 받을 수 없는 기도임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 하였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기를.
다시 함께할 수 있기를.
“코델리아.”
반지를 움켜쥔 유더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는 정말로 잿빛뿐인 세계를 마주하며 지친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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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7장 - 막간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