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283화 (283/473)

< 제99장 - 재회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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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전기2에는 모두 열한 명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 존재했다.

세일룬 왕국에 넷, 야생의 땅에 둘, 제국에 다섯.

‘유더, 코델리아, 루카스, 카이사, 붉은바람.’

세일룬 왕국 출신 넷은 이미 서로 친밀한 사이였고, 여기에 야생의 땅 출신인 붉은바람이 더해졌다.

하지만 남은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숫자는 무려 여섯에 달했다.

진주인공 막시밀리언과 검의 천재 레온 가드리엘, 영웅전기 시리즈 최고의 미녀이자 4차원 캐릭터인 아델라이데, 유일한 노인 캐릭터인 케인즈, 취한 용의 가호를 받는다는 사라, 야생의 땅 출신의 고양이 수인 키라라.

플레이어블 캐릭터 전원을 모아 하나의 세력을 꾸리겠다는 유더의 계획대로라면 제국에 건너가자마자 만나야 할 인물들이 가득인 상황이었다.

‘케인즈와 키라라를 빼도 넷이니까.’

둘을 빼는 이유는 단순했다.

기본적으로 선량한 성격의 소유자들인 플레이어블 캐릭터들 중에서 유독 두 사람만 악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둘 사이에도 차이가 있지만.’

케인즈는 세상의 온갖 세파를 다 경험한 범죄자였다. 소매치기부터 시작해 강도나 살인 같은 강력범죄까지 모두 아우른 그는 일반인들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달랐다.

‘하고 싶은 일은 그냥 다 한다.’

그야말로 무법자 같은 캐릭터.

하지만 그렇다고 극악무도한 사이코패스 살인마 같은 것은 아니었다.

직업이 범죄자이고,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범죄를 저질러서 그렇지 의외로 상식적인 부분이 많았다. 나름 인간미도 있었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하여 케인즈가 선인인 것은 아니었다.

마피아 영화에 흔히 나오는 주인공 캐릭터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자기 주변에는 다정한 면모도 곧잘 보이고 상식적인 선도 잘 지키는 편이지만 그래봐야 결국엔 악당인 것처럼 말이다.

‘키라라는 뭐··· 배신자지.’

케인즈가 제대로 된 악당이라면 키라라는 소악당 캐릭터였다.

이기적이고 약삭빠르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배신을 밥 먹듯이 하지만 그렇다고 타고난 악인은 아닌, 누굴 만나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삶의 방식이 바뀔 수 있는 도둑 고양이.

케인즈가 혼돈 악 성향이라면 키라라는 혼돈 선쯤 되리라.

어찌되었든 이 둘을 제외해도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넷이나 남은 상태인 터라 유더와 코델리아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붉은 달의 라이제강 레이드는 앞으로 딱 한 번 밖에 쓸 수 없는 꼼수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봉인을 풀면 재봉인이 어려울 테니까.’

애당초 그래서 맨 처음 이후에는 다시 봉인을 풀지 않았던 것이고.

만약 봉인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면 기회가 되는 족족 불러내서 샌드백으로 삼았을 터였다.

‘폭렙업의 기회는 단 한 번뿐.’

사실 이미 말레키스를 잡는 것으로 레벨 업을 잔뜩 한 유더와 코델리아인 터라 오랜 세월 봉인되어 약해진 라이제강을 잡는다 하여 폭발적인 레벨 업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다른 인물들은 달랐다.

유더와 코델리아처럼 대놓고 레벨 업 이펙트가 나타나지 않아서 그렇지 플레이아데스에는 레벨이란 개념이 존재했고, 강력한 적과의 전투로 경험치를 얻어 레벨을 올리는 일 역시 가능했다.

즉,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의 레벨을 단숨에 높여 전력을 강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다 모으고 할 것이냐, 지금 가진 인원들만으로 할 것이냐.’

전자 쪽이 얼핏 보면 이상적으로 보였지만 사실 그렇지만도 않았다.

참여 인원이 많아질수록 경험치는 쪼개 먹기 마련이었으니까.

더욱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을 다 모으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예 잡을 기회가 없어질 수도 있고.’

그 왜 있지 않은가.

최종전을 위해서라며 포션을 아끼고 아끼다보니 막상 최종보스 다 잡고 나서도 포션이 남아도는 상황 같은 것이.

‘아끼다 똥 되지.’

모름지기 물건은 쓸 수 있을 때 써야 하는 법.

한치 앞을 모르는 와중에 아낀다고 삽질하기 보다는 쓸 때 써서 레벨 업을 팍팍 해두는 편이 생존율을 높이기에도 좋았다.

“후우, 후우. 조금 긴장이 되는군요.”

벨카인 산맥으로 향하는 마차 안.

루카스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마차가 벨키안 산맥으로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모양이었다.

[엄청 기대하는 거 같지?]

[루카스니까.]

영웅담 마니아인 루카스에게 데몬 프린스를 쓰러트리기 위해 떠나는 지금의 여정은 그야말로 꿈의 현실화가 아닐까?

‘말레키스랑 싸운 이야기 듣고는 진짜 안절부절 못 했으니까.’

카이사가 들려준 이야기에 흥분하다 못해 열병이 난 것 같은 루카스였다.

그때 제가 있었다면.

아아, 저도 그 자리에 있었어야 하는데.

왜 저는 그곳에 없었던 걸까요.

저도 좀 불러주시지.

등등.

이미 3개월이 넘게 지난 일이라 소문이 돌만큼 돌았지만 직접 전투에 참여했던 카이사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는 현장감과 생동감이 달랐다.

‘뭐··· 사실 카이사도 말레키스와의 싸움에서는 거의 구경만 했지만.’

그래도 두 눈으로 직접 보긴 했으니까.

‘거기다··· 진짜 가슴이 웅장해지는 광경이기도 했고.’

말레키스와의 전투 자체는 그렇게까지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 화려함과 웅장함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백여 미터에 달하는 골렘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드래곤의 육탄전.

드래곤 브레스를 정면에서 박살내며 쏟아져 내린 세상을 가르는 개벽의 검.

루카스가 흥분해서 방방 뛰는 것도 당연했다.

“으유, 긴장은 무슨. 아주 신나서 죽으려고 하는구만. 소풍가는 거 같지?”

카이사가 까르르 웃으며 말하자 루카스는 얼굴을 빨갛게 붉혔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다. 정말로 신이 났기 때문이다.

“루카스, 그럴 땐 솔직해지면 좋아.”

“네?”

“자, 날 따라해 봐.”

신이나, 신이나, 엣헴, 엣헴, 신이나.

코델리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루카스는 더더욱 당황했지만 마지 못해 입을 열기는 하였다.

“시, 신이 나.”

“응응, 바로 그거야. 신이 나. 신이 나. 엣헴, 엣헴?”

“신이 나.”

코델리아가 다시 재촉하자 루카스는 어색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며 화답했고, 결국 카이사는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귀여워! 너무 귀여워! 남자애가 이렇게 귀엽긴 또 처음이네.”

그야말로 박장대소하니 루카스는 이제 얼굴뿐만 아니라 전신을 붉히기 시작했다. 물론 카이사는 그 모습을 보고 더욱 웃어댔고 말이다.

“흥, 바보 같다. 남자는 듬직한 맛이 있어야 한다. 우리 태양노래 오빠처럼.”

붉은바람이 코웃음을 치자 루카스는 신음을 흘리며 괴로워했고, 태양노래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러니까 진짜 무슨 소풍 가는 거 같아.]

[그러게.]

코델리아와 짤막하게 메시지 마법을 주고받은 유더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1년하고 몇 개월 전에 보았던 것과 거의 같은 풍경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옛날 생각나네.’

전생의 기억을 각성한 이후 나섰던 코델리아와의 첫 데이트.

물론 당시만 해도 양쪽 모두 데이트가 아니라 퀘스트라고 박박 우겨댔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날 코델리아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챙이 넓은 하얀 모자를 쓴 채 어색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

[뭐야, 갑자기 왜 웃어? 응?]

유더는 대답하는 대신 코델리아의 볼을 살짝 꼬집었고, 코델리아는 입술을 삐쭉이긴 했지만 화를 내거나 손을 쳐내는기는 커녕 그냥 얌전히 유더에게 자기 볼을 맡겼다.

말랑말랑, 쫀득쫀득.

만지고 있어도 만지고 싶은 코델리아의 뺨을 조물딱 거리던 유더는 주변의 시선에 살짝 헛기침을 토한 뒤 손을 놓았다.

“흠흠, 아무튼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요.”

붉은 달의 악마 라이제강과의 결전이.

유더의 말에 루카스는 눈을 빛냈고, 나머지 일행은 살짝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데몬 프린스 격퇴와 지금의 분위기 사이의 괴리감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붉은 달의 라이제강.

피의 대악마. 뱀파이어들의 군주.

남부에 말레키스의 악명이 자자하듯이, 북부에는 여전히 놈에 대한 악명과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놈에게 직접 죽은 이들의 숫자만 해도 수만을 우습게 헤아렸고, 놈의 언데드 군단에 의해 멸망한 나라만 셋에 달했다.

만약 솔라리의 챔피언인 가리우스가 목숨을 바쳐 놈을 저지하지 않았더라면 북부 자체가 궤멸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뭐, 말레키스만 하겠어? 거기다 봉인된 상태라며.”

카이사가 짐짓 기운차게 말했지만 눈이 경직되어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긴장되기는 한 모양이었다.

때문에 유더는 다시 한 번 모두를 안심시켰다.

“놈을 옭아맬 방법은 확실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욱이··· 이 이상이 없을 정도로 단단히 준비하기도 했고요.”

“응응,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코델리아가 활짝 웃으며 말하자 다들 억지로나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삼십분 남짓.

마차는 마침내 목적지인 언덕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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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한 꽃밭 너머.

벼랑 아래를 슥 내려다본 코델리아는 유더를 돌아보았고, 유더는 기다렸다는 듯이 두 팔을 벌렸다.

“안기시죠.”

“오올, 이번에는 다른 거야?”

“약속했으니까.”

구음절맥만 나으면 안아준다던 약속.

“흐흣, 좋아.”

코델리아가 폴짝 뛰어 목에 매달리자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번쩍 안아들어 소위 말하는 공주님 안기 자세를 취했다.

1년하고 몇 개월 전과는 정반대라 해도 좋을 상황이었다.

“아버님도 이제 만족하시겠지.”

안기는 게 아니라 안았으니까.

코델리아는 무어라 답하는 대신 유더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고, 유더는 씩 웃은 뒤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태양노래 오빠, 나도.”

“그럴까?”

히죽 웃은 태양노래는 붉은바람을 번쩍 안아들더니 그대로 몸을 날렸다.

그리하여 남은 두 사람.

루카스와 카이사는 저도 모르게 서로를 돌아보았지만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우린 그냥 각자 뛰자?”

“그, 그러죠.”

분위기에 휩쓸릴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루카스와 카이사가 각자 절벽을 타고 내려가고 다시 이십 여 분.

예전에 왔을 때는 한참 걸렸던 길을 단숨에 주파한 유더는 동굴 안으로 모두를 인도했다.

“이쪽입니다.”

앞장서서 나아가는 유더의 옆에는 코델리아가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이래저래 감개무량했기 때문이다.

‘우리 유더가 이렇게 커졌어. 단단해졌어.’

예전에는 진짜 작고 병약했는데.

키는 코델리아 자신보다도 작았고, 손목은 어찌나 가는지 조금만 힘을 주면 빠직하고 부러질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키도 엄청 자랐구, 팔뚝도 두껍구, 가슴도 단단하구.’

이렇게 팔을 꼭 끌어안으면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진짜 무슨 나무를 끌어안은 기분이었으니까.

‘그리구······.’

이렇게 팔을 가슴에 안으면 안 그런 척 하면서 내심 긴장하는 게 느껴져서 귀여웠다.

“흐흣, 흐흐흣.”

귀엽다기 보다는 엉큼한 웃음소리에 카이사가 차게 식은 표정을 지었지만 코델리아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웃으며 조금 더 세게 유더의 팔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다시 십여 분 뒤.

마침내 봉인지에 도달한 유더는 일행을 쉬게 한 뒤 본격적으로 벨라스틴의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 유더가 마법진 작업하는 동안 우리는 장비 점검하자.”

코델리아의 제의에 모두는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이번 전투에 나서면서 새 장비들을 갖춘 상태였기 때문이다.

일단 카이사는 그랜드 오더를 들었다.

본래 코델리아가 사용하던 것이었지만 대형병장기라는 그랜드 오더의 특성상 괴력을 가진 카이사에게 더 어울렸기 때문이다.

물론 코델리아도 그냥 내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카이사가 이번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얼티메이트 포- 폭령검 매직 블라스터를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유더가 남부를 떠나기 전에 남겨준 정보에 따라 챙겨온 것이었는데, 확실히 코델리아가 자신의 졸업템으로 삼을만한 무기였다.

‘마법 증폭 효과가 있으니까.’

정확히는 어떤 마법이든 강력한 폭발로 바꾸는 특수 능력이 있었는데, 폭탄마인 동시에 마법사인 코델리아에게 무척이나 어울리는 무기였다.

“루카스, 아스카론은 쓸만해?”

“예, 확실히 궁극의 검이라 불릴만 하군요.”

루카스 역시 잔뜩 상기된 얼굴로 아스카론을 휘둘러보고 있었다.

본래 오펀드 후작가에 고이 모셔져 있어야 할 검이었지만 그냥 그렇게 썩히기에는 너무 아까운 검이었으니까.

유더의 지령을 받은 카이사가 가짜와 바꿔치기 한 뒤 슬쩍 들고온 상황이었다.

“코델리아 언니. 나도 좋다. 이 장비 정말 좋은 거 같다.”

“응응, 에인션트 드래곤 장비인걸.”

붉은바람과 태양노래는 다모스 산에서 만든 용장비로 전신을 무장한 상태였다.

그리고 사실 루카스와 카이사 역시 무기만 얼티메이트 시리즈일뿐 방어구는 모두 용장비를 걸치고 있었다.

‘깔맞춤 같네.’

다들 검은색 용장비를 갖추고 있으니 제복이라도 갖춰 입은 것처럼 통일감이 느껴졌다.

‘어떡해, 막 가슴이 웅장해져.’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을 모으고, 에인션트 드래곤을 재료로 한 용장비들로 무장시키고.

그냥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해지는 기분이었다.

“다 했다.”

그리고 때마침 들려온 유더의 선언에 코델리아는 빙글 돌아선 뒤 매직 블라스터를 고쳐 쥐었다.

“그럼 지금 바로 소환하는 거야?”

“당연하지.”

질질 끌어서 좋을 게 없으니까.

유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짓하자 모두는 미리 정해진 위치에 자리했고, 유더는 마지막으로 코델리아에게 말했다.

“이번에도 부탁할게.”

벨라스틴의 마법진을 가동시키기 위한 마력의 부여.

코델리아는 손가락에 상처를 내서 마법진에 신혈神血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직후.

동굴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법진이 빛났고, 1년하고 수개 월 전 있었던 일이 똑같이 재현되었다.

공간을 가르고 나타나는 붉고 거대한 존재.

사지가 쇠사슬에 묶여 봉인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형성하는 자.

태양노래와 붉은바람은 거친 숨을 토했다.

카이사는 저도 모르게 말레키스를 떠올렸고, 루카스는 ‘빌트바인 영웅전’의 한구절을 마음 속으로 읊조렸다.

그리고 유더와 코델리아.

두 사람은 나란히 선 채로 붉은 달의 라이제강을 마주했다.

“확실히 봉인이 약해졌어.”

“벨라스틴의 마법진의 효력이 다하면 놈이 해방될 거야.”

코델리아는 감각적으로 느꼈고, 유더는 계산의 결과 확신했다.

그리고 다시 몇 초.

붉은 달의 라이제강이 천천히 눈을 떴다. 붉은 안광을 빛내며 포효했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단순한 웨이크닝이 아니었다. 격렬한 분노가 담긴 노여움의 외침이었다.

[잡것들이 다시 날 찾아왔구나!]

라이제강은 유더와 코델리아를 잊지 않았다. 두 사람을 뇌리에 분명히 새기고 있었다.

데몬 프린스의 분노.

봉인지 전체가 진감했다. 만약 벨라스틴의 마법진이 없었다면 무지막지한 위력의 정신공격이 일행 모두를 휩쓸었을 터였다.

[약해졌어. 봉인이 약해졌어.]

라이제강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전신의 근육을 꿈틀거리며 사지에 힘을 가하자 거대한 쇠사슬들이 삐그덕 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어리석은 잡것들 같으니. 너희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였구나. 죽음으로의 문을 열었구나.]

봉인을 부수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은 여전히 무력할 라이제강 자신이었다.

하지만 라이제강은 그 무력한 시간 따위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에 비하면 눈앞에 자리한 것들은 버러지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실제로 이전에 마주했을 때 역시 자신에게 아주 조금의 피해조차 입히지 못 한 놈들이지 않은가.

봉인을 깬다.

마침내 다시 세상으로 나아간다.

눈앞의 인간들을 도륙한 뒤 증오스러운 솔라리 교단을 멸하고 인세에 지옥문을 열어 자신의 군단을 불러들인다.

업화에 휩쓸리는 인계.

비명과 울부짖음을 토하며 죽어가는 인간들.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해주마.]

아이를 죽여 그 부모에게 먹이고, 사랑하는 연인끼리 서로를 죽이게 하리라.

감히 자신에게 수백 년에 달할 치욕과 고통을 안겨준 대가를 치르게 해줄 것이다.

[크크크크큭··· 크하하하하하하하!]

라이제강이 폐부 끝에서부터 끌어올린 것 같은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코델리아가 말했다.

“응, 안 돼.”

봉인을 깨고 나가기는 개뿔이.

오늘이 네 제삿날이거든요?

코델리아가 상큼하게 웃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자 라이제강은 노여워하는 대신 코웃음을 쳤다.

어리석은 버러지의 만용에 웃음을 터트렸다.

[벌레 같은 것들. 네깟 것들이 봉인되었다고는 하나 이 몸에게 조금이라도 위해를-]

거기까지였다.

코델리아는 왼손으로도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며 광익을 펼쳤고, 머리 위로 천사의 고리를 형성하였다.

천사.

그것도 이제는 9급이나 7급이 아닌, 무려 5급에 달하는 강력한 천사.

벨라스틴의 마법진에 신성한 천사의 힘이 더해졌다.

라이제강은 갑자기 강해진 봉인에 움찔하였고, 이내 다시 눈을 부릅떴다.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가자, 피닉스.”

붉은바람의 머리 위로 불멸의 새가 날아올랐다. 어마어마한 마력을 발산하였고, 태양노래가 용장비를 움켜쥔 채 미소지었다.

카이사가 그랜드 오더를 발동시켰다. 루카스가 아스카론에 성왕십자검의 신성한 힘을 더하였다.

그리고 한 사람.

라이제강에 정면에 선 남자.

[보여줘요, 후대.]

벨렌시아가 말했다.

유더와 호응하여 얼티메이트 원- 소드 오리진의 힘을 개방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유더의 사지가 변모했다.

칠흑의 검.

바라보는 순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강철의 사지.

녹색의 오라가 칠흑의 검을 감쌌다. 소드 오리진의 강맹함에 라이제강이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낀 그때 구천구문의 힘을 개방하였다.

절정에 달한 제육문.

그로 인해 방출되는 검은 태양의 힘!

라이제강의 힘이 일순 밀려났다.

유더의 기운이 봉인지를 가득 채워 라이제강을 전율케 하였다.

[자, 잠깐. 잠깐!]

라이제강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지만 유더는 들어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앞으로 십분.

라이제강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 하고 얻어맞아야만 하는 시간.

“헤헤, 헤헤헤헤.”

코델리아가 활짝 웃으며 양손에 나눠 쥔 문라이트와 매직 블라스터를 들어 올렸고, 유더가 발걸음을 내디뎠다.

신명나는 매타작의 시간이었다.

&

< 제99장 - 재회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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