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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286화 (286/473)

< 제100장 - 아르곤 제국 >

제100장 - 아르곤 제국

붉은 달의 라이제강을 쓰러트린 일행은 한동안은 바이엘 백작가에 머물기로 하였다.

갑자기 높아진 레벨에 따른 각종 능력치의 폭풍 성장에 익숙해질 필요도 있었고, 이번에 새로 얻은 재료들로 다시 새로운 장비를 만드는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제국에 갈 준비도 해야 하고.’

이러나저러나 세일룬 왕국 내부를 돌아다니는 것과 국경 밖 외국으로 나가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했다.

특히 지금 당장은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를 유지 중이라고는 하나 세일룬 왕국이 건국된 이래 지금까지 몇 번이나 전쟁을 반복해온 아르곤 제국에 가는 것이니 이것저것 준비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다녀올게. 아마 일주일 정도 걸릴 거야.”

“알았어, 이쪽 애들은 나한테 맡기고 잘 다녀와.”

그렇게 답한 코델리아는 한참이나 유더를 꼭 끌어안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유더분 일주일치를 충전 중이라는, 유더 말고는 모두가 미적지근한 눈이 된 이유 때문이었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바일룬의 바이엘 백작가를 떠난 유더는 다모스 산으로 귀환했고, 예정대로 일주일가량을 머물렀다.

“쉽지 않네.”

다모스 산 중턱에 자리한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가의 저택.

수련실에 홀로 앉아 명상을 하던 유더는 비지땀을 흘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구천구문 제칠문.

제육문을 열고 벌써 4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칠문으로의 길은 요원하기만 한 것 같았다.

‘토대 자체는 만든 것 같은데.’

왕도에서 제육문을 처음 연 이후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겪은 유더였다.

소드 오리진을 얻어 육체의 내구도 자체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강해졌고, 강적들과의 연전과 에인션트 블랙 드래곤이라는 경험치 덩어리를 쓰러트린 덕분에 그야말로 폭발적인 레벨 업을 한 상태였다.

구천구문의 새로운 문을 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막대한 생명 에너지와 새로운 문을 견뎌낼 수 있는 강건한 육체.

앞서 말한 폭발적인 레벨 업 덕분에 양쪽 모두 갖추었다는 것이 유더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명상을 하고 구천구문의 구결을 외워도 이전처럼 바로 다음 단계의 문을 열수가 없었다.

‘스승님 말씀대로인가.’

제칠문부터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단순히 더 큰 힘을 쏟아 부어 새로운 문을 여는 것은 제육문까지만이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오히려 지금까지가 비정상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그래도 4개월··· 아니, 근 5개월이나 정체되니까 답답하네.’

란디우스가 들었다면 피가 거꾸로 솟았을 이야기였지만 유더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이야기였다.

지금까지는 적어도 2~3달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새로운 문을 열어왔으니 말이다.

‘깨달음이라.’

전생에 몇 번인가 본 무협 소설에서나 마주한 단어.

유더가 익힌 실전형 무술에도 굳이 따지면 깨달음이라는 게 있기는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건 깨달음이라기 보다는 요령에 가까우려나.’

전생이든 현생이든 유더의 전투는 언제나 계산을 근거로 했다.

적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예측해 딱 맞는 대응을 내놓는다.

당연한 합리와 누적된 경험이 만들어낸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전투를 행한다.

“아, 모르겠다.”

유더는 뒤로 발라당 쓰러져 수련실의 천장을 보았다.

란디우스는 계속된 실전 속에서 무리를 깨달았다고 했는데, 그 무리라는 것이 대체 뭘까.

‘잘 모르겠어.’

듣자하니 칼을 안 쓰고 일부러 손발만 쓰는 것도 나름 깨달음을 위해서라는데.

‘이해가 안 가.’

대체 그런 차력쇼와 깨달음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사실 란디우스 본인도 깨달음을 위해 이것저것 다 해보는 중이라는 걸 보면 애당초 그 깨달음이라는 것 자체가 애매하기 짝이 없는 무언가인 것 같았다.

“벨렌시아, 뭔가 해줄 말 같은 거 없나요?”

유더가 마음 속에 묻자 바로 벨렌시아의 대답이 돌아왔다.

[없어요.]

“저기요?”

[하지만 후대, 정말 없는 걸요. 본래 무리라는 것에는 정답이 없는 거예요. 천 개의 꽃에 저마다 다른 천 개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듯이 각자가 깨닫는 무리 또한 천차만별이에요. 제가 했던 방식이 그대로 남에게 통한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게 얻은 깨달음이 저와 같을 거라는 보장 역시 없어요.]

“그래도 참고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반대로 방해가 될 수도 있죠. 만약 후대의 깨달음이 제가 얻은 깨달음과 정반대라면, 그 형태가 판이하게 다르다면 제 경험은 오히려 후대에게 독이 될 수 있어요.]

보통 성공한 꼰대들은 자신의 방식에 확신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내가 옳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라고 하기 마련이었는데 벨렌시아는 그런 면모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너무 방치플레이 같단 말이지.’

벨렌시아가 적극적으로 입을 여는 건 이미 확립된 기술에 관한 것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초식의 연계나 강력한 일격 필살의 기술 같은 것들 말이다.

“하아.”

대체 그놈의 깨달음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제칠문 열어야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먼데.

‘그러고 보니······.’

유더는 눈을 감고 여인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코델리아나 벨렌시아가 아닌, 검은 머리칼을 길게 기른 단아한 여인의 얼굴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선녀.

제삼문을 열었을 때부터 나타나 유더 자신에게 흑룡의 기운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기술들을 전수해주었던 여인.

하지만 그녀는 제오문 이후로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애당초 그녀는 누구인 것일까.

“떡밥이 왤케 많아. 이거 다 풀 수는 있는 거야?”

누구에게인지 모를 항의를 토한 유더는 머릿속을 비워버렸다. 지금 당장은 고민해봐야 답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냥 무식할 정도로 역량을 높이다보면 억지로라도 칠문을 열 수 있겠지. 강적과의 싸움에서 팍!하고 각성을 할 수도 있고.

본래 영화나 소설을 보면 곧잘 그런 장면들이 나오지 않던가.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후대, 극적인 순간의 각성이라든가··· 그런 영웅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에 의존하는 것은 참으로 못된 버릇이에요. 세상 일이 그렇게 형편 좋게 돌아갈 리가 없잖아요? 설사 그런 식의 각성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언제나 그러라는 법은 없어요. 괜히 되도 않는 것에 의존하다가 훅 하고 가는 수가 있어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데 왜 오늘따라 벨렌시아가 꼰대로 보일까.

물론 저렇게 예쁜 꼰대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이들이 넘쳐나겠지만.

‘내가 지치긴 했구나.’

아무렇게나 흘러가던 의식의 흐름을 멈춘 유더는 머리를 가볍게 털어낸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튼 벨렌시아, 오늘 수련은 여기서 마칠게요.”

이제 슬슬 바일룬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으니 말이다.

수련실을 나온 유더는 서산 너머로 기우는 해를 보다가 몸을 씻었다.

이제 곧 밤이었지만 오히려 밤이기에 출발할 마음을 품은 유더였다.

“가시려고요?”

정원에 서서 달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이아가 다가와서 말했다.

메이드 장이 된 이후 왜인지 안경을 쓰기 시작한 그녀는 언제나처럼 침착하고 단아했다.

마이아 탄탈롯

유더 자신에게는 친누나나 다름이 없는, 어린 시절부터 쭉 보아온 또 하나의 가족.

아마 코델리아를 제외한다면 유더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을 타인.

그렇기에 그녀는 이미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어째서 코델리아는 바일룬에 남았는지, 유더가 이제부터 무얼 하려는지.

때문에 유더는 숨기지 않고 말하였다.

“제국에 다녀올 거야.”

유더의 말에 마이아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이미 세일룬 왕국 곳곳을 돌아다닌 유더인 터라 다음은 외국이 아닐까 막연히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말 제국의 이름이 나오자 순간 턱하고 숨이 막힌 탓이었다.

하지만 마이아는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아니, 평정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도련님.”

“응, 마이아.”

유더가 답하자 마이아는 입술을 움츠렸다. 한걸음을 내디딘 뒤 고개를 들어 유더를 보았다.

예전과 달리 올려다봐야한 하는 유더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고작 1년하고 몇 개월.

하지만 정말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백작위나 십검호의 자격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끔은 그리워요.”

과거의 유더가.

몸이 약한 터라 언제나 마이아 자신에게 의존하던 어린 도련님.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했던 과거의 나날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이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이렇게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훌쩍 자란 유더가.

몰라볼 정도로 강해진 지금의 유더가.

왕국의 영웅. 왕가의 수호자. 에인션트 드래곤 슬레이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데도 유더가 새삼 너무나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만의 작은 도련님.’

스스로의 생각에 다시 웃었다. 저도 모르게 촉촉해진 눈가를 가리듯 평소에는 짓지 않던 환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몸 건강히 다녀오세요.”

어째서 지금 이런 미소가 그려지는 것일까.

왜 이런 애달픈 감정이 드는 것일까.

유더는 마이아를 마주했다. 어쩐지 모를 위화감 속에서 마주 웃었다.

몇 번 보지 못 한,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마음에 깊이 남아 있는 마이아의 미소에 응답하듯 그녀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도, 도련님?”

“다녀올게.”

유더의 말에 마이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느새 자신을 품 안에 쏙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로 커진 유더의 등을 몇 년 만에 꼭 끌어안으며 눈을 감았다.

“다녀오세요.”

“응, 마이아. 다녀올게.”

마이아의 등을 두드린 유더는 팬텀 스티드를 불러낸 뒤 그 등에 올라탔다. 다시 한 번 마이아를 바라보았다.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활짝 미소 짓는 마이아.

다행이라 말하며 마지막 온기를 나눠주던 그녀.

환상이었다. 착각에 불과했다.

어깨에 숄을 걸친 채 푸른 머리칼을 길게 늘어트린 마이아는 이쪽을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대신 손을 흔들며 자신을 배웅했다.

“무사히 돌아오셔야 해요. 아셨죠?”

“당연하지. 올 때 선물도 사올게. 마이아야말로 건강히 잘 있어. 알았지?”

돌아온 인사에 마이아가 다시 웃었다.

이렇게 많이 웃는 마이아는 유더에게도 낯설었다. 하지만 무척이나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녀올게.”

다시 한 번 의식적으로 말한 유더는 팬텀 스티드를 몰아 밤하늘로 날아갔다.

눈물 흘리며 미소 짓는 마이아 대신, 방금 마주한 활짝 웃는 마이아를 떠올리며 북쪽을 바라보았다.

&

“강해졌습니다.”

다음날 아침.

새벽에 도착한 유더를 수련실에서 마주한 루카스는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진짜 강해졌어.]

코델리아의 부연 설명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벨렌시아의 평가를 들었기 때문이다.

[예전과는 기도 자체가 달라요. 지난 번 싸움으로 정말 많이 강해진 것 같네요.]

폭발적인 레벨 업의 성과.

플레이 아데스의 인간들은 유더나 코델리아처럼 레벨 업 이펙트가 없을 뿐이지 레벨 업 자체는 가능했다.

즉, 레벨 업 자체는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만의 치트라기 보다는 플레이아데스의 모두가 누리는 세계의 법칙이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나나 코델리아 쪽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건 이미 증명이 되었지만.’

레벨 업 이펙트가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 둘 뿐이고.

루카스나 카이사는 눈앞에서 유더가 레벨 업을 해도 새하얀 빛의 고리를 보지 못 하였다.

어찌되었든 라이제강 레이드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신전에 가서 정확히 측정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루카스든 카이사든 레벨이 거의 수십 단위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 정도 레벨 업이라면 신체 능력이나 마력량이 두 배 이상이 되었으리라.

“이제 완전히 적응한 느낌입니다.”

“흐흐, 나도.”

요 일주일 사이 더 친해졌는지 루카스의 어깨에 매달리듯 몸을 기댄 카이사가 미소를 흘렸다.

‘카이사는 레벨 업 효율이 좋으니까.’

똑같이 1레벨만 올라도 다른 플레이어블 캐릭터들보다 신체 능력의 성장 폭이 높은 그녀였다.

건들건들한 미소에 어린 자신감을 보니 신체 능력이 정말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 같았다.

“오빠야. 우리도 강해졌다. 이제 피닉스 더 잘 다룬다.”

루카스에게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붉은바람이 눈을 빛내며 말하자 뒤에 있던 태양노래도 가슴을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강해졌어. 아직 미숙하지만 정령합체도 가능해.]

코델리아의 메시지에 유더는 작게 감탄을 토했다.

정령합체는 붉은바람의 궁극기였으니 말이다. 미숙하다고는 해도 일단 가능하다 했으니, 어쩌면 현재 눈앞의 네 명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은 붉은바람일지도 몰랐다.

‘좋아, 좋아. 이래야 꼼수 쓴 보람이 있지.’

그리고 뭐라고 해야 할까.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던 부채감이 해소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간 루카스나 카이사, 붉은바람이 얻었어야 할 갖가지 기연들을 의도치 않게(?) 뺏어 먹은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였으니 말이다.

“과연 멋지군요. 열심히 해주신 여러분을 위해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유더의 말에 일행이 다시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용장비를 받은 이후 일행에게 있어 유더는 일년에 여러 번 찾아오는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였다.

“일단 카이사, 성스러운 쇠사슬입니다.”

“아싸!”

라이제강의 사지를 봉인하고 있던 솔라리 교단의 쇠사슬을 한 번 녹인 뒤 갖가지 재료를 첨부해 만든 쇠사슬이었다.

카이사가 쓰기 쉽도록 적당한 크기로 개량되었을 뿐만 아니라 카시우스의 특별한 마법까지 더해져 절대적인 강도를 자랑하게 되었다.

“흐흐, 신난다.”

쇠사슬을 붕붕 돌리며 좋아하는 짐승녀의 모습에 흠칫한 유더였지만 일단 우리집 짐승이었기에 넘어가기로 했다.

“나머지 분들은······.”

루카스에게는 데몬베인의 칼집을, 붉은바람에게는 라이제강의 혼을 써서 만든 마력증폭기를, 태양노래에게는 라이제강의 뿔로 만든 창을.

하나씩 나눠주고 나자 코델리아가 쪼르르 다가와 소맷자락을 당겨대기 시작했다.

“나는? 응? 나는?”

내껀 없어요?

조르는 표정에 씩 웃은 유더는 공간확장 주머니에서 마지막 물건을 꺼내들었다.

“자, 새로 업그레이드 한 도폭선이랑 신형 폭탄.”

무려 라이제강과 말레키스의 피를 써서 만든 물건으로, 일반적인 도폭선이나 폭탄과는 그 위력 면에서 궤를 달리하는 물건들이었다.

“우와앙.”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은 코델리아는 도폭선과 신형폭탄을 곰인형 안듯이 꼭 끌어안더니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카이사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쟤들 좀 막장 같지 않아?”

약혼녀에게 폭탄을 선물로 주는 약혼자나, 그걸 받고 진심으로 좋아하는 약혼녀나.

루카스는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험담을 하는 것은 기사의 도에서 어긋나는 일이었기에 애써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쇠사슬 받고 좋아하는 카이사에게 지금 같은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었고 말이다.

“아무튼 오빠야, 이제 우리 제국 가는 건가?”

붉은바람이 여전히 짧은 공용어로 묻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고작해야 한 시간 남짓 뒤, 아침 식사를 마친 일행에게 생각지도 못 한 소식이 전해졌다.

“제국 쪽 지부들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다급히 날아온 까마귀로부터 카마엘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성십자 수호단의 제국 지부들.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세일룬 왕국에서 일을 망친 악마 추종자들이 제국에서 연합해 더 큰 일을 벌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지금처럼 성십자 수호단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 했기 때문이다.

“정확한 상태는 알 수 없다. 다만 갑자기 궤멸당한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통신망 자체에 손을 댄 것으로 추정된다.”

성십자 수호단은 과거 솔라리와 함께 강림한 대천사 가브리엘의 유산을 통해 먼 거리에서도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대륙 곳곳에 위치한 중계기를 통해 마법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었는데, 제국 쪽 중계기에 이상이 생겼다면 지금처럼 연락이 두절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유더가 몇 가지 사항을 더 물으려 한 찰나에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달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가씨! 큰일 입니다!”

이번엔 대체 무슨 일일까.

설마 체이스 백작이나 아델리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다행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히 다행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국이 정전협정의 파기를 선언했습니다! 국경이 전부 봉쇄되었어요!”

달리아의 외침에 카마엘의 까마귀조차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다시 한 번 서로를 돌아보았다.

제국의 정전협정 파기와 국경 봉쇄.

이로부터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제국과의 전면전.

왕국이 붕괴한 원작에서는 애당초 성립될 수 없었던 초유의 사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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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0장 - 아르곤 제국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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