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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294화 (294/473)

< 제104장 - 구출 >

제104장 - 구출

황족들은 현재 제도가 아닌 제도 밖에 위치한 작은 신전에 감금되어 있었다.

제도의 중심에 위치한 황궁에 있던 황족들을 굳이 제도 밖으로 끌어내 감금한 것이 아니었다.

애당초 이번 이동도 신전에 있는 황족들을 다시 황궁으로 불러들이는 것이었고 말이다.

정확한 사정은 이러했다.

“황제 폐하와 황태후 전하께서는 재상부의 이반을 간파하셨습니다.”

즉, 재상부가 쿠데타를 일으킬 것을 눈치 채고 황궁에서 미리 몸을 뺐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재상부의 재빠른 추적으로 인해 도주는 결국 실패하였고 황족들은 일단 인근에 있던 신전에 임시로 감금되었다.

바로 황궁으로 복궁시키지 않은 것은 황족들을 지키던 로열나이트들과의 싸움이 예상 이상으로 치열했던 터라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일단 뚜껑을 덮었다는 건데.’

이런 식의 일처리를 했다는 것은 재상부의 제국 장악이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말 제국을 완벽히 장악했다면 지금처럼 일을 진행할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막말로 그냥 황제를 제거해도 되고.’

어찌되었든 나쁘지 않은 소식이었다.

재상부가 제국을 온전히 장악하지 못 했다면 당장은 왕국과 바로 전쟁을 시작하기보다는 내부 진압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처리로 봐서는 폭력으로라도 찍어 누르겠다는 건가.’

통신망을 무력화시켜서 성십자 수호단의 눈을 속이고, 국경 봉쇄령을 내려 왕국의 시선을 차단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틈에 재상부 외의 세력을 찍어 눌러 제국의 힘을 하나로 집결시킨다.

무척 급하게 진행하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내전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을 터였다.

재상부- 즉, 악마 추종자들의 목적은 대륙 전체를 끌어들일 수준의 대환란이었으니 말이다.

제국 내전만으로는 부족했다.

제국과 왕국의 전쟁이 일어나야 했으니, 재상부가 택할 전략은 직접 군대를 움직여 상대를 찍어누르는 것보다는 상급 마인을 비롯한 강자들을 동원한 암살이나 불로영생을 미끼로 한 유혹일 가능성이 높았다.

‘어찌되었든 황족들을 확보하면 재상부의 계획에 지장을 줄 수 있어.’

황제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재상부의 반역을 폭로하고 진압을 선언하기만 해도 제국은 내전 상태로 돌입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일단 황제를 제거하기 보다는 확보한다는 건 단번에 친황파를 찍어 누를 정도의 장악력을 갖추지 못 했다는 거고.’

더욱이 제국에는 제3의 권력인 엘프 자본이 존재했다.

제도를 장악한 재상부라 하여 마음대로 일을 추진하기에는 걸리는 것들이 많은 상황이었다.

[아무튼 황제 구하면 된다 이거잖아.]

코델리아의 짧은 요약에 쓰게 웃은 유더는 다시 레온을 보았고, 레온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결행은 오늘 밤 8시. 이 지점을 지나갈 때 놈들을 습격할 겁니다.”

기습하기 딱 좋은 길목이었다.

즉, 상대방도 예상하고 있을 법한 지점이었다.

하지만 애당초 이번 작전은 함정인 걸 알면서도 들어가는 상황이었으니 더 이상 이에 대해 논할 것은 없었다.

그랬기에 레온은 마른 침을 한 번 삼키더니 유더와 코델리아를 보며 말했다.

“그··· 정말 작전대로 되는··· 것이겠죠?”

유더와 코델리아를 중심으로 세운 구출 계획.

다른 이가 말했다면 황당한 소리 말라며 타박했을 터였지만 유더와 코델리아의 말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어이가 없었기에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거 진짜 되는 거죠?

예?

가능한 거 맞죠?

“가능합니다.”

“걱정마세요.”

유더와 코델리아가 각기 답하자 레온은 옆에 앉은 루카스와 카이사를 보았고, 저들끼리 무어라 쑥덕대던 두 사람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가능해 가능. 무조건 된다니까?”

네가 아직 얘네랑 일을 안 해봐서 그래.

카이사가 살짝 건들거리며 답하자 레온은 미간을 좁혔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으니까.

그냥 믿는다.

믿고 달려가 본다.

“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

제이 카르오니악.

제국이 자랑하는 열 두 명의 소드 마스터 가운데 하나인 그는 몰고 있던 백마의 고삐를 살짝 당겨 발걸음을 늦추게 하였다.

이제 슬슬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냄새가 난다.’

싸움의 냄새가.

이쪽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적들의 구린내가.

몰락귀족 출신인 제이 카르오니악은 거친 삶을 살아왔다.

말이 귀족이지 귀족다운 삶을 산 기간은 십년이 채 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이어진 이십여 년. 그는 각지를 전전하며 용병의 삶을 살았고, 용병이 때때로 살인자, 강간마, 강도와 동의어인 것은 제국이나 왕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소드 마스터가 되고 삼 년.

마침내 잃어버렸던 영지와 작위 모두를 회복한 그였지만 그는 황실을 좋아하지 않았다.

애당초 가문이 몰락한 것은 황실이 카르오니악 백작가를 정쟁의 버림 말로 쓴 탓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황실보다는 재상부를 가까이 하였고, 지금도 재상부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대비하라.”

제이 경이 낮게 말하자 오랜 세월 손발을 맞춰온 부하들이 대열 전체에 소리 없는 수신호를 전파했다.

‘로열나이트 놈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에 머리를 들이민 용기는 칭찬해주마.’

끌끌끌 흡족한 미소를 흘린 그는 숨을 멈추고 집중했다.

소드 마스터는 초인이었고, 초인의 인지범위는 범인과 비교를 불허했다.

그는 감지할 수 있었다.

저만치에 숨어 있는 자들.

그들의 숫자.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하고 있는 그들의 냄새.

제이 경은 싸움이 좋았다.

압도적인 힘으로 눈앞의 적을- 약자를 짓밟는 것은 몇 번을 반복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이제 곧이었다.

로열나이트에 소속된 소드 마스터는 이제 절대기사 갤러헤드 뿐이었다.

이미 한 차례 박살이 난 로열나이트에는 소드 마스터인 자신을 능가할 적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

목숨의 위협 없이 그저 약자들을 짓밟기만 하면 되는 손 쉬운 싸움.

용병으로 살아온 제이 경이 제일 좋아하는 싸움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숨을 가다듬었다. 희열을 억누르며 다시 말의 박차를 가했다.

달이 밝다.

바람이 분다.

풀벌레들이 시끄러이 울어댄다.

그리고 지금.

바로 이 순간!

“황제 폐하를 위하여!”

좌우에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큰 길.

왼쪽은 언덕, 오른 쪽은 수풀.

제이 경은 히죽 웃었다. 기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며 소리쳤다.

“왔구나! 대열을 갖춰라!”

옳다 좋구나.

이미 습격을 예상하고 있던 병사들이 즉각 반응했다.

황족들이 탄 창문 없는 검은 마차를 호위하고 있던 임페리얼 나이트들이 동시에 검을 뽑았고, 마법사들 역시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비록 백 명도 되지 않는 무리였지만 잘 무장된 육십 여 명의 병사들이 일시에 전투 태세를 갖추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제이 경은 정면을 보았다.

오랜 세월 애용한 투핸드 소드를 뽑아들며 만용에 찬 로열나이트들과 그 사병들이 달려오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수풀과 언덕 위에 그냥 멀뚱히 서 있을 뿐 달려오지 않았다.

뭐야, 저거.

저것들 뭐하는 건데?

화살이라도 안 쏴?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땅이 흔들렸다.

처음에는 가볍게.

하지만 이변을 느낀 직후에는 거칠고 강하게.

“뭐, 뭐야?!”

“지진?!”

병사들의 비명 소리는 이어지지 못 했다. 거칠게 비틀리며 찢어진 땅이 병사들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으아아아?!”

“어, 어스퀘이크?!”

평범한 마법이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대마법사가 아니라면 전조도 없이 이런 마법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쿠르릉!

쿠르릉!

땅이 뒤흔들리고 부서졌다. 병사들의 대열이 단번에 무너졌고, 마법사들은 충격에 빠져 지팡이를 들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 아니, 대부분이 낙마해 바닥을 구르기 바빴다.

“버, 버텨라! 오래 가지 않을 거다!”

마법사 가운데 하나가 필사적으로 외친 순간이었다.

쾅! 쾅! 쾅!

곳곳에서 굉음이 터지며 잿빛 연기가 주변을 뒤덮기 시작했다. 지진으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혼란에 빠져 있던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마법사들!”

제이 경이 급한대로 외치자 마법사들은 바닥에 엎드린 채 주문을 외웠다.

그래도 다들 전투마법사들인 터라 혼란한 와중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바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돌풍을 부른다. 연기를 걷어낸다.

지진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이건 마법으로 땅을 흔든 여파였다. 이제 곧 지진이 멎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바람을 부른다면, 일단 연기를 걷어낸다면-

“사일런트 필드!”

낭랑하며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려퍼진 순간이었다.

침묵이 전장을 지배했다.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주문을 들을 수 없었고, 갑자기 끊어진 마법은 완성되지 않고 흩어졌다.

‘이, 이런 미친?!’

전투 마법사 가운데 하나가 경악을 토했다.

사일런트 마법을 개별도 아니고 전장 전체에 광범위하게 걸다니.

인간에게 이런 것이 가능하기는 한단 말인가?

맞는 말이었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천사인 코델리아에게도 사실 무리한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효과 범위.

마법사는 전장 전체라 지레짐작했지만 실제로 펼쳐진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았다.

그냥 옆으로 3미터 정도만 굴러가도 다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터였다.

콜록거리는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그 증거였고 말이다.

하지만 혼란한 와중이었다.

아무리 전투마법사라 해도 마법이 중단된 여파도 있는 터라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틈을 로열나이트들이 파고들었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언덕과 수풀에서 방독면을 뒤집어 쓴 로열나이트들과 그 종자들이 호송대를 덮쳤다.

비록 임페리얼 나이트 쪽이 두 배 이상 많았지만 연막 속이었다.

제대로 앞도 볼 수 없는데다가 호흡도 힘든 마당이니 로열나이트들을 제대로 상대할 수 없었다.

“마차를 지켜라!”

제이 경의 노성이 터졌다.

그냥 외침이 아닌, 기사들의 마법이라 불리는 기사도였다.

그 힘이 어찌나 강대한지 제이 경과 마차 사이의 연막이 모두 흩어졌을 뿐만 아니라 혼란에 빠져 있던 병사들과 마법사들 역시도 정신을 차렸다.

“막아라!”

“마법을!”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사들 또한 수인 마법을 펼침과 동시에 갖가지 마도구들을 발동시켰다.

연기를 몰아내고 마차의 파손을 막는다. 결국 놈들의 목적은 황족들의 확보였으니, 마차를 부수지 못 하면 황족들 역시 데려가지 못 하리라!

옳은 판단이었다.

참으로 합리적이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유더의 계산을 벗어나지 않았다.

“마, 마차가!”

각종 방어 마법으로 떡칠이 된 마차가 허공 높이 떠올랐다. 녹색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거인이 손이 마차를 들어 올린 것이었다.

“소, 소환 마법?”

“아니! 염동력이다!”

마법사들이 갑론을박하는 사이에도 마차는 그대로 쑥 들어 올려져 마법사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우오오!”

바로 그때였다.

제이 경이 말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투핸드 소드에 푸른 검기를 씌워 마차를 집어 올리던 거인의 팔을 베어버렸다.

츠콰학!

오라 블레이드의 예기에 염동력이 흩어졌다.

덕분에 마차가 지면에 추락했지만 방어 마법은 괜히 걸어둔 것이 아니었다. 지면을 한 바퀴 구른 제이 경은 서둘러 마차를 향해 달렸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레온이 크게 외치며 검을 뽑아들었다. 하지만 제이 경에게 달려드는 대신 마법을 펼치려는 마법사들과 그들을 호위하는 임페리얼 나이트들에게 돌진했고, 그건 루카스와 카이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제이 경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감히 자신에게 등을 보인 세 사람을 처단하고자 푸른 검기가 실린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휘두르기 직전!

콰강!

제이 경이 급히 뒤돌아서며 검기로 지면을 박살냈다.

실패였다. 본래 노린 것은 지면 따위가 아니었다.

눈앞의 청년.

새카만 칠흑의 기운을 양 팔에 두른 채 반쪽짜리 가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있는 청년을 마주한 순간 제이 경은 알 수 있었다.

지난 이십여 년 동안 그의 목숨을 지켜준 감이 소리치고 있었다.

강하다.

제이 경 자신보다 강하다.

짐승.

괴물.

사람이 아니라 맹수를 눈앞에 두고 있는 기분.

그렇기에 제이 경은 사납게 웃었다. 자기보다 강한 상대에게 무릎 꿇고 항복하는 대신 소리쳤다.

“카이사르!”

쾅!

소리친 직후였다. 마차의 문 하나가 박살나며 인영 하나가 솟구쳐 올랐다.

사자 수인.

제국의 열두 소드 마스터 가운데 하나!

거대한 대검을 든 카이사르가 제이 경과 합을 맞추듯 청년의 등 뒤에 자리했다. 더욱이 전부가 아니었다.

일부러 매복을 무시하고 지나갔던 선발대에 숨어 있던 이가 반전하여 달려왔다.

카이사르와 마찬가지로 수인이었다.

늑대, 여인.

열두 소드 마스터 가운데 하나이지만 사실 검보다는 창에 가까운 장대가 긴 언월도를 다루는 자.

극풍의 마트리나가 청년의 측면을 점하니 소드 마스터 셋이 삼각형을 이룬 꼴이었다.

“함정에 걸렸구나!”

제이 경의 얼굴에 희열이 번졌다.

다름 아닌 황족을 호송하는 일이었다.

재상부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이번 일에는 정도 이상의 힘을 쏟아 부었다.

아마 너희도 함정이란 것을 알고 들어왔겠지.

하지만 설마 이 정도로 대비가 되어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소드 마스터가 셋.

하나나 둘도 아닌, 무려 셋이나 되는 초인들.

제이 경은 용병이었다.

애당초 자존심 따위 버린 지 오래였다.

합격이든 뭐든 눈앞의 상대를 박살낼 수 있다면 좋았다.

그래서 웃었다.

함정에 빠진 청년과 로열나이트들을 마음껏 비웃었다.

하지만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 이상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동요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청년은 그러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원의 불꽃과도 같은 녹색의 눈동자로 제이 경 자신을 보더니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어, 그래.”

예상대로구나.

그래도 황제인데 소드 마스터가 셋은 나와야 정상이지.

생각대로 검성 클래스는 없구나?

제이 경의 얼굴에 당혹이 번졌다.

카이사르와 마트리나 역시 흠칫 놀라 뒤로 크게 물러섰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보여줘요, 후대.]

에인션트 드래곤과의 전투가 후대를 얼마나 강하게 만들어 주었는지를.

지금의 후대가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를.

“육문이면 떡을 치겠군.”

[후대, 육문까지 밖에 못 열지 않나요?]

벨렌시아의 날카로운 지적에 유더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극에 달한 육문의 힘을 개방하였다.

&

< 제104장 - 구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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