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6장 - 유더 바이엘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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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에는 열두 명의 소드마스터들이 존재했고, 그 중 셋은 엘프였다.
엘리오 롬바르디.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임박했다 여겨지는 자.
그는 엘프답게 평범한 소드 마스터들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수련에 바쳤다. 제국의 검신조차도 수련 시간만을 논한다면 그보다 아래였다.
더욱이 그는 하이엘프였다.
평범한 인간이나 엘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신체능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하나.
유더는 엘리오의 눈을 보았다. 욕망과 노여움, 조급함으로 뒤덮인 그 눈을 보는 순간 악마 추종자 건으로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싸워야 한다.
아무리 엘프들이라 해도 전원이 유더 자신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자리에 모인 엘프들은 소수였고, 엘리오만 쓰러트리면 활로를 열 수 있었다.
“강하구나.”
엘리오가 말했다.
삼백 년 가까운 삶을 살아온 그는 결국 참지 못해 재상부와 손을 잡기는 했지만 그렇다 하여 보는 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상급 마인 둘이 당했다.
재상부에게 이미 들은 이야기를 떠나, 지금 이렇게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강하다.
이쪽 역시 전력을 다해야만 한다.
엘리오는 숨을 삼켰다.
엘프스티드 위에서 뛰어내림과 동시에 검을 뽑아들었다. 자신에게 노도처럼 달려드는 유더의 공격을 막아내며 소리쳤다.
“정령합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 중에서는 오직 붉은 바람만이 사용할 수 있던 그것.
엘리오가 소리친 순간 대지의 정령들이 호응했다. 땅에서부터 솟구친 정령들이 엘리오의 몸에 깃들며 그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하였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가가!
엘리오의 검이 빨라졌다. 유더 역시 속검으로 대응했고, 두 사람의 격돌은 순식간에 이십 합을 넘겼다.
“크윽.”
유더는 신음을 흘렸다.
정령합체로 인해 반정령 상태가 된 엘리오의 모습이 변하였다. 야성의 힘을 받아들인 그는 더 이상 호리호리한 엘프가 아니었다.
전신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송곳니가 길게 솟구쳤고, 눈에서는 붉은 안광이 일었다. 머리에는 아예 사슴의 뿔이 돋아났다.
“우오오오오오!”
엘리오가 마치 짐승처럼 외치자 실로 웅장한 기운이 그의 검에 실렸다.
발 딛고 있는 대지가 엘리오에게 끝없는 힘을 부여하였다.
“유더!”
코델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엘리오의 연격이 퍼부어졌다.
빠르고 정확했다. 더욱이 야성의 힘을 받아들인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대로 된 검술을 구사했다.
이백 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수련해온 그의 검은 비록 이치에는 닿지 못 했지만 날카로움과 현묘함을 갖추었다.
[집중해요 후대.]
벨렌시아는 긴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소드 오리진의 검령으로서 유더를 도왔다. 조금이라도 더 유더의 힘을 이끌어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전설 그 자체라 해도 좋을 검호였던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엘리오와 검을 나누면 나눌수록 유더가 이길 가능성은 낮아져 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엘리오의 검술이 유더를 능가했다.
유더는 분명 천재였다.
제이 경이 절감했듯이 그의 검술은 이미 일반적인 소드 마스터들에 비해 부족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소드 마스터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같은 엘프 소드 마스터들을 제한다면 그와 수련 기간을 비교할 수 있는 소드 마스터가 아예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 검의 길을 걸어온 자였다.
유더가 지금까지 다른 소드 마스터들과 대적했을 때 그들을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검술보다는 신체 능력과 압도적인 기운의 크기 덕분이었다.
설사 유더보다 검술이 뛰어난 소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유더의 괴력과 상식을 초월한 속도, 무지막지하다고 밖에 표현 못 할 태양의 기운 앞에서는 견뎌내지 못 했다. 뒤의 것들이 검술의 격차를 뒤집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오는 달랐다.
정령합체를 한 그의 신체능력은 유더보다 다소 부족했지만 일반적인 소드 마스터들을 상회했고, 대지에서부터 끝없이 솟구치는 기운은 유더가 발하는 검은태양의 힘에 능히 맞설만 하였다.
검술에서 앞섰다. 신체 능력과 기운의 크기에서는 밀리지 않았다.
즉, 지금의 엘리오는 유더보다 우월했다.
카가가가가강!
다시 검격이 이어졌다.
유더는 예상 이상으로 강한 엘리오의 전투력에 이를 악물었다.
벨렌시아는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역시 깨달음이 필요했다.
비단 칠문을 떠나 깨달음이 있어야지만 유더의 검이 보다 이치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후대, 후대.]
안타까운 마음에 벨렌시아는 무어라 제대로 된 말을 늘어놓지 못 했다.
이제와서 속공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생사결의 싸움에서 얻는 필생의 깨달음.
하지만 애당초 기대할 것이 못 되었다. 벨렌시아 자신이 이전에 유더에게 말했듯이 그런 것에 의존했다가는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쾅! 쾅! 쾅!
검이 교차했다.
엘리오의 검은 점점 더 빨라졌다.
놈의 공격은 점점 더 거세어져 갔다.
검격마다 막대한 기운이 폭발하는 것이 실로 무시무시했다.
그랬기에 벨렌시아는 거친 숨을 토했다. 타는 가슴을 움켜쥐며 괴로움을 토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눈을 깜박였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대?]
엘리오의 검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분명 더 거세지고 있었다.
그런데 유더는 그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엘리오가 더욱 더 빨라지고 거칠어진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유더를 몰아붙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더가 엘리오의 검을 맞상대한다.
열세여야 할 유더가 어떻게든 엘리오에 맞춰 나아간다.
어떻게.
대체 무슨 수로.
설마 정말로 싸우는 와중에 깨달음을 얻고 있는 것인가?
벨렌시아는 유더에게 집중했다. 이심동체라 할 수 있을 그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유더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해냈는지.
[씨발.]
란디우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욕지거리가 나왔다.
하지만 노여움에 차지 않았다. 코델리아가 항상 주장하는 것처럼 감탄사에 가까웠다.
[진짜 씨발.]
이게 돼?
이런 게 가능해?
태어나서 손에 꼽을 정도밖에 욕을 해보지 않았던 검희는 시원하게 웃었다. 유더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다시 한 번 의식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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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마주친 순간 유더 역시 알 수 있었다.
이길 수 없다.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
칠문을 열지 않는한 놈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는 것은 무리였다.
왕국을 출발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틈이 날 때마다 고민했지만 결국 깨달음의 그림자도 밟아보지 못 했다.
깨달음.
추상적인 개념.
유더는 전생에도 수많은 실전을 경험했다.
그랬기에 마음가짐의 차이로 어마어마한 전투력의 차이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깨달음은 너무 낯설었다.
더욱이 유더 자신뿐만 아니라 코델리아의 목숨까지 걸린 실전의 와중에 그런 불확신한 것에 의존할 수는 없었다.
엘리오는 원작에서보다 강했다.
나비효과의 영향인지, 아니면 악마 추종자들과 손을 잡고 무언가 다른 힘을 손에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지금 확실한 것은 놈을 이기기 위해서는 칠문을 열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유더는 계산을 시작했다.
불확실한 깨달음에 거는 대신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믿었다.
지금까지 싸워온 방식에 승부를 걸었다.
‘일문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더는 엘리오의 공격을 막아내며 생각했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정확한 기억력으로 떠올렸고, 다시 한 번 체감했다.
일문이 열리던 순간.
일문을 열기 위해 필요했던 과정. 그 사이에 유더 자신의 영육에서 일어난 변화.
이문을 살폈다.
삼문을 기억했다.
일정한 패턴을 찾아냈고 최대한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일치시켰다.
콰가강!
검과 검이 교차했다.
엘리오의 검을 흘리는 것은 무리였다. 받아내는 것에 급급했다.
하지만 조금씩 놈의 검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었다. 막연히 운에 기대어 막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한 위치에 검을 가져다대었다.
갑자기 검술이 는 것이 아니었다.
감각이 예민해지고 있었다.
문을 열었던 순간에 가까워질수록 오감이 날카로워졌다. 아니, 소위 말하는 제육감이라는 것이 열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제사문.
제오문.
실전 중임에도 불구하고 기운의 흐름을 조절했다. 호흡을 맞추었고, 마침내 제육문을 열었을 당시의 자신을 완벽히 재현했다.
검은태양이 포효했다.
유더는 엘리오의 검을 크게 쳐낸 직후 날카로운 돌려차기를 펼쳤다. 엘리오를 물러서게 함과 동시에 지면을 발로 찍었고 음과 양의 기운을 동시에 일으켰다. 검은태양을 강제로 폭발시켰다.
쾅!
미친 짓이었다.
아무리 유더 자신이 음양지체라 할지라도 이런 식의 폭발은 위험했다. 제멋대로 터져나가는 폭발을 완벽히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유더는 그것을 해냈다.
환생하며 얻게 된, 전생을 초월하는 계산 능력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천무지체가 다시 한 번 무의 화신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벨렌시아가 맹렬한 폭발을 조금이나마 억눌러주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하나.
오문 이래로 보지 못했던 그녀.
“참으로, 유더 당신답군요.”
그녀가 말했다.
온통 검은 세상에서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웃었고, 유더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
막연히 선녀라 부르고 있지만 그녀는 누구인 것일까.
스승님의 추측처럼 과거 구천구문을 구사해 지옥의 대군주를 쓰러트린 고대의 선인인 것일까?
그리고 그녀의 말.
참으로 유더 자신답다는 그녀의 말.
가볍지 않았다.
무거웠다.
무언가 어린 것이 있는 말이었다.
선녀가 유더를 보았다. 다시 손을 내밀었고, 유더는 그 손을 붙잡았다. 그녀의 인도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한걸음을 내디뎠다.
쾅! 쾅! 쾅!
연달아 기운이 폭발했다.
유더의 전신에서 검은 흑룡의 기운이 요동쳤고, 주변 일대를 뒤덮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힘이- 실로 태양과도 같은 힘이 지상에 강림했다.
구천구문 제칠문.
그렇기에 유더는 볼 수 있었다.
아득히 먼 저 지평의 너머를.
그 지평으로 이어진 기나긴 길을.
그리고 저만치 앞에 서 있는 자.
그가 돌아섰다.
유더를 보며 미소지었다.
무어라 속삭이며 손을 내밀었다.
“-위해.”
어렴풋이 들린 그때 빛이 눈앞을 뒤덮었다.
지평과 길 대신 현실이 보였다.
당황한 엘리오가 포효하며 마주 돌진해오는 것이 보였다.
엘리오 롬바르디.
그랜드 마스터에 근접한 소드 마스터.
그의 검이 보였다.
그의 검을 알 수 있었다.
이해.
높아진 검의 경지.
그리고 더해진 하나.
바람이 불었다.
한줄기 바람이 요동쳤다.
유더가 지금까지 보지 못 했고, 이해하지 못 했던 그것.
엘리오가 다가왔다.
검격을 쏟아냈다.
그랬기에 유더 역시 검무를 펼쳤다.
설화십이검의 묘수에 한 가지를 더하였다.
바람의 검.
바이엘 백작가에 전해지는, 과거 검리에 도달했던 이가 창안한 지평으로 이어진 또 하나의 길.
유더의 손끝에서 펼쳐졌다.
바람과 번개로 이루어진 그것이 다시 한 번 일어나 세상을 진감시킬 포효를 내질렀다.
풍뢰열광참.
바람과 번개의 검.
엘리오의 검이 어그러졌다.
그는 더 이상 유더를 이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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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6장 - 유더 바이엘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