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304화 (304/473)

< 제106장 - 유더 바이엘 #3 (유더와 코델리아 일러스트 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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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풍이 몰아친다.

폭뢰가 뒤따른다.

바람의 칼날이 날카롭게 세상을 베고, 번개의 폭발이 주변 일대를 거칠게 물어뜯는다.

바람의 검의 궁극 오의.

먼 옛날 이치에 도달했던, 검리를 깨달아 바람의 검성 자리에 오른 바이엘 백작가의 선조. 그가 남긴 바람과 번개의 길.

폭풍과 같은 연격이 펼쳐졌다.

연달아 터진 뇌성은 하나로 이어졌고, 열두 번의 검격은 마치 하나와 같았다.

엘리오는 정신적인 비명을 질렀다.

눈앞에서 사납게 몰아치는 바람의 검을 막아내기 위해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바람을 읽는다. 뇌격을 견뎌낸다.

카카카카카카카카캉-!

요란한 뇌성 속에 묻힌 소리.

엘리오의 검이 어렵사리 풍뢰열광참의 궤적을 따라갔다.

하지만 전부 따라갈 수 없었다. 다섯 번째 검격을 막았을 때부터 엘리오의 검은 어그러졌다. 바람에 더해진 뇌격 때문이었다. 검에 어린 힘을 견디기 어려웠다. 한 번 부딪혀 막을 때마다 검은 물론이고 손이 떨렸고, 팔에 무리가 갔다.

‘아니, 그게 다가 아니야!’

풍뢰열광참은 단순히 몰아치는 참격의 집합이 아니었다.

검리가 담겨 있었다.

제대로 막을 수 없게 만드는, 그 궤적을 오인하게 하여 결국 검을 놓치게 만드는 실로 현묘한 이치가 숨겨져 있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근접한 엘리오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소드 마스터들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진 그조차도 검리 앞에서는 무력했다.

풍뢰열광참에 의해 그의 검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콰가강!

여섯 번째 검부터 제대로 막을 수가 없었다.

일곱 번째 검부터는 사실상 억지로 검을 가져다대는 수준에 불과했다.

열 번째 검에서 검을 가져다대는 것조차 하지 못 했다.

검의 궤적이 흔들렸고, 팔이 뒤틀렸으며, 쥐고 있던 검이 손에서 놓아졌다.

열한 번째 참격.

열두 번째 참격.

검을 놓쳤지만 버텨보려 하였다.

몸을 뒤로 빼며 피해보려 했지만 무리였다. 풍뢰열광참의 검격이 만들어낸 바람의 감옥이 그런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빨려 들어간다.

사나운 바람의 이빨에 물어뜯기고 만다.

“칵!”

제대로 된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뇌성이 엘리오의 비명를 삼켰다. 거친 삭풍이 엘리오의 몸을 더더욱 옥죄었다.

그리고 유더는 마지막 열세 번째 참격을 준비했다. 흑룡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검을 당겼고, 손목을 돌려 세로로 서 있던 날을 눕혔다. 바람의 감옥에 갇힌 엘리오를 똑바로 노려보며 풍뢰열광참의 마지막 열세 번째 참격을 펼쳤다.

진정한 풍뢰열광참.

마지막 하나의 참격을 위해 준비된 열두 개의 참격.

휘둘렀다.

베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참격이 아니었다.

대기를, 공간을, 세상을 갈랐다.

바람의 감옥에 갇혀 있던 엘리오는 피를 쏟으며 두 동강 나는 대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무너졌다.

그리고 그를 대신하듯 엘리오의 등 뒤에 자리하고 있던 모든 것이 둘로 갈라졌다.

순간이지만 세상 자체가 갈라져 미끄러지는 것 같다는 착각마저 주었다.

“하아.”

유더는 멈추고 있던 숨을 토했다. 흑룡의 기운으로 이루어졌던 칠흑의 검이 흩어져 사라졌고, 유더는 왈칵 피를 토했다.

무리하게 칠문을 연 대가였다.

하지만 유더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 정도 부상쯤은 우습게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지금의 몸이었다. 그보다는 다른 것에 신경을 썼다.

‘검리.’

풍뢰열광참에 담겨 있던 것.

순간적으로 보았던 환상- 저 지평에 닿은 자만이 손에 넣을 수 있는 힘.

흩어져 사라졌다.

마치 지금의 일격이 한 여름 밤의 꿈이었던 것처럼 유더 자신의 손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감각은 남아 있었다.

제 손으로 펼친 검리를 온전히 잊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평으로 이어진 길.

그 길에 서 있던 자.

그로부터 전해 받을 수 있었던 바람의 검.

[후대! 후대!]

벨렌시아의 목소리가 유더의 정신을 붙잡았다.

마치 부유하는 것처럼 정처없이 흘러가려던 유더의 이지를 일깨워 현실을 보게 하였다.

“코델리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

작게 말한 유더는 돌아섰다.

그리고 멍청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는 수많은 이들을 마주하였다.

넋이 나간 엘프들.

겁에 질린 마인들.

입을 크게 벌린 채 눈을 깜박이다가 이쪽을 보고는, 눈이 마주쳤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반사적으로 엄지를 치켜세우는 코델리아.

쩔어.

우리 유더 진짜 개쩔어! 진짜 개쩐다구!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감탄하는 코델리아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유더는 웃었다. 피를 토한 직후였지만, 풍뢰열광참에 힘을 모두 쏟아 부은 터라 남은 힘은 그야말로 쥐꼬리만 했지만 허세를 부렸다. 천천히 수도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계속할까?”

스칼렛이 옆에 있었다면 왜 자꾸 사람을 부끄럽게 하냐며 손발을 꼬았을 대사와 모습이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는 전혀 다르게 와닿았다.

엘프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마인들은 이미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뒤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너, 너무 멋져!’

우리 유더 저렇게 멋있어도 돼?

꺄!

콩깍지에 의해 얼굴이 빨개진 코델리아는 속으로나마 꺅꺅 거렸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 한 엘프들과 마인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개중에 몇 명이 쓰러진 엘리오를 수습하려 했지만 어디까지나 시도가 전부였다.

유더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들은 필생의 용기를 쥐어짜 입을 열었고, 유더는 그들에게 도망칠 명분을 주었다.

“죽이진 않는다. 엘프들 전체와 싸울 생각은 없다.”

유더의 말에 엘프 기사들은 이를 악물고 괴로워하더니 이내 돌아서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으로 유더는 한 가지 사실을 확신했다.

‘역시 엘리오만의 반역인가.’

엘프 전체의 뜻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예상대로 엘리오의 소관인 오렌지 게이트만 넘으면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 터였다.

‘악마의 힘은 쓰지 않았어.’

엘리오에게는 정령의 힘만이 함께하고 있었다.

즉, 악마와 계약하지 않은 순수한 상태라는 뜻이었다.

‘역시 속은 건가.’

악마 추종자 집단이 아닌, 악마 추종자들을 사낭개로 부리는 재상부와 손을 잡았다고 생각한 것인가.

주전파인 재상부와 손을 잡아 주화파인 황제를 실각시킨다.

엘리오의 머릿속에서는 지금의 배반이 제국 내의 권력 다툼 정도로 그려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나저러나 황제 시해를 꾀했으니 가주 자리에 오르는 건 무리겠지만.’

여기까지였다.

생각을 끊은 유더는 다시 숨을 헐떡이다 제자리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유더!”

깜짝 놀란 코델리아가 얼른 다가와 유더 앞에 쪼그려 앉았고, 유더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왜? 어디 아파? 피 토한 거 맞지? 맛탱이 가서 웃는 거 아니지?”

저렴한 표현에 유더는 다시 웃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항상 보던, 당장 지금도 보고 있는 코델리아인데 마치 오랜 시간 보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너무 그리웠고, 너무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눈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에 감사하고 싶었다.

“유더야?”

유더는 무어라 답하는 대신 두 손을 뻗어 코델리아를 안았다. 둘 다 앉아 있는 상태라 자세가 미묘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유더? 너 우는 거 아니지?”

저도 모르게 한 말에 흠칫 놀란 코델리아는 유더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무리였다. 유더의 품에 안겨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코델리아의 말대로 유더는 울고 있었다.

그런데 유더 자신도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두 눈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릴 따름이었다.

[후대, 괜찮은 건가요? 칠문을 여는 과정에 뭔가 이상이 있었던 건 아니죠?]

벨렌시아의 걱정 섞인 물음에 유더는 반사적으로 여러 가지 것들을 떠올렸다.

지평으로 이어진 길.

저만치 앞에 서있던 남자.

오랜만에 모습을 보이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말까지 건네며 손을 내밀었던 선녀.

그녀가 했던 말.

유더 자신답다는 이야기.

검리.

바람의 검.

“유더야. 괜찮아. 다 괜찮아. 나 여기 있어. 어디 안가.”

코델리아가 유더를 마주 안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그녀 자신도 정확히는 알지 못 할 말을 하였고, 그 말에 유더는 새삼 다시 안도했다. 작고 가냘픈 코델리아가 으스러질까 두려우면서도 그녀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미안, 조금만 잘게.”

온전히 자신을 되찾은 유더는 작게 속삭인 뒤 코델리아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음과 양의 기운을 폭발시켜 검은 태양을 폭주시킨 여파였다.

본래라면 아직 사용할 수 없어야 할 풍뢰열광참을 사용한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알았어. 다음은 누나한테 맡겨. 누나가 다 해결해줄게.”

코델리아가 유더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너무나 믿음직한 그 말에 유더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거짓말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아.”

그리고 코델리아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키가 엄청 커서 그런지 어마어마하게 무거워진- 솔직히 100킬로그램도 넘을 거 같은 유더를 조심조심 눕힌 뒤 어깨를 늘어트렸다.

[일단 물러갔지만 자기들 대장을 붙잡힌 상태니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빨리 도망치죠.]

멜리사의 말은 타당했다.

코델리아는 유더의 얼굴을 잠시 쓰다듬다가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 그럼 한 번 가보실까?”

무릎을 탁탁 턴 코델리아는 염동력을 발휘해 유더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린 뒤 저만치에 쓰러져 있는 엘리오 곁으로 다가갔다.

“확실히 기절한 거 맞지?”

발로 얼굴을 툭툭 건드려 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기절한 척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바인드 마법으로 꽁꽁 묶은 뒤 패럴라이즈까지 건 코델리아는 엘리오 역시 염동력으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잠자코 지켜보던 멜리사가 말했다.

[이제 어느 쪽으로 가실 생각이죠? 레드 게이트? 오렌지 게이트?]

엘리오를 인질로 하면 어느 쪽으로든 이동이 가능할 거 같기는 했다.

“으으음······.”

변수가 있다면 레드 게이트에서 나타났던 상급 마인.

놈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설마 루카스와 카이사 쪽을 잡으러 간 건가?

‘둘이 함께면 상급 마인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황제 쪽은 문라이트가 있으니 어떻게든 약속한 장소까지는 도망쳤을 가능성이 높았다.

“오렌지 게이트로 가자.”

[오렌지 게이트로요?]

“응, 유더는 지금 무방비 상태니까. 사실 나도 아까 루카스네 탈출시킬 때 마력을 좀 많이 쓰기도 했고, 방해 마법들 떨쳐내려고 무리했거든.”

물론 대마법사급 마력을 가진 코델리아인만큼 아직 싸울 여력이라면 충분했지만 그래도 유더가 무방비 상태인 지금 조금의 변수도 만드록 싶지 않았다.

“레드 게이트는 위험할 수 있어.”

뭐가 숨어있을지 알 수가 없으니까.

“거기다 귀쟁이는 본래 레드 게이트에서 황제랑 우리를 잡을 생각이었잖아? 오렌지 게이트보다 방비가 훨씬 철저할 게 분명해.”

그리고 어쩌면 오렌지 게이트의 병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럼 인질을 써서 오렌지 게이트를 넘는 건가요?]

“그래두 되고, 아니면 엘리오로 위협해서 오렌지 게이트 너머··· 그러니까 진짜 엘프? 착한 엘프? 아무튼 옐로우 게이트에 거하는 엘프들을 불러낼 수도 있고. 요는 배반하지 않은 엘프들에게 엘리오가 친 사고를 알리고 협력을 얻어내는 거야.”

그 편이 황제와 합류하기도 더 좋을 거고.

[와아.]

“왜? 감탄했어?”

[예, 생각을 하실 수 있었군요. 하실 수 있는데 안 하셨던 거예요. 못 하신 게 아니라!]

“야, 부러트려 버린다?”

[예? 아, 그, 예?]

멜리사가 당황하는 사이 코델리아는 쯧하고 혀를 한 번 차더니 가볍게 손발을 풀었다.

적재적소라 유더에게 생각을 맡겼을 뿐 코델리아 자신도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었다.

아니, 당연한 거 아닌가? 못 할 리가 없잖아!

“너 미워, 너 싫어.”

[코델리아 님?]

“한동안 말 안 걸어 줄거야.”

유치하게 혀까지 베 내민 코델리아는 끙끙 거리는 멜리사- 문라이트를 갈무리한 뒤 오렌지 게이트 쪽으로 돌아섰다.

엘프들의 영역.

코델리아로 환생한 이후 처음 와보는 땅.

그런데 이상하게도 묘한 감이 들었다.

무척이나 반가운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만 같다고 해야 할까.

‘가보면 알겠지.’

새삼 기절한 유더의 뺨을 쓰다듬은 코델리아는 쪽하고 입술을 한 번 맞춘 뒤 오렌지 게이트를 향해 비행 마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코델리아의 동물적인 직감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오렌지 게이트.

본격적인 그림자 숲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그 곳에는 뜻밖의 인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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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님이 그려주신 유더와 코델리아 팬아트입니다.

멋진 그림 정말 감사합니다 :D

< 제106장 - 유더 바이엘 #3 (유더와 코델리아 일러스트 포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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