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307화 (307/473)

< 제107장 - 비보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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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 마스터에게는 다섯 가지 비보가 있었다.

달빛에서 다른 달빛으로 공간을 뛰어넘게 해주는 문 크리스탈.

착용자에게 비행 능력을 부여하는 신속의 날개.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의 비늘로 만들어졌다는 적룡의 갑주.

모든 정신 공격을 막아내는 청룡의 수호.

만물을 꿰뚫어 보는 세크메트의 눈.

하나하나가 신비한 힘을 가진 강력한 아티펙트들로, 그 가치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

세크메트의 눈을 두 손에 든 스칼렛은 눈을 깜박였다.

안대처럼 생긴 세크메트의 눈은 적룡의 갑주와 마찬가지로 고대 무 제국의 유물이었는데, ‘보는 것’에 특화되어 있는 아티펙트였다.

일단 망원경처럼 멀리 볼 수 있었다.

확대축소 기능은 당연히 붙어 있었고, 아예 현미경처럼 쓰거나 열을 감지하는 것도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진 것이 꿰뚫어 보는 능력.

어둠은 물론이고 각종 환상까지도 간파할 수 있으니 그 효용성이 실로 굉장했다.

그랬기에 세크메트의 눈을 만지며 기뻐하던 스칼렛은 살짝 미심쩍은 얼굴이 되어 물었다.

“진짜 내가 가져도 돼? 승부나 그런 거 없이?”

“어, 너 가져.”

그냥 마법 쓰면 되니까.

그리고 사실 세크메트의 눈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전설급 장비였다. 말레키스를 쓰러트린 이후 신화급 장비들로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떡칠을 한 코델리아의 입장에서는 굳이 탐낼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다.

“진짜 가져도 되는 거지? 나중에 딴 소리 안 하는 거지?”

“어, 안 해.”

코델리아가 시원하게 말하자 스칼렛은 기분이 좋으면서도 나빴다.

‘너무 쿨한 거 아냐?’

그래도 로그 마스터의 비보인데.

우리 선조님의 보물인데.

막 갖고 싶다고 탐내야 정상 아냐?

입술을 삐쭉이던 스칼렛은 일단 세크메트의 눈을 머리에 썼다. 황금색 안대인 세크메트의 눈이었지만 끝부분을 어루만지며 주문을 외우자 좌우로 갈라진 뒤 작아져 스칼렛의 머리칼 속에 완전히 숨어버렸다.

불편한 곳이 없는지 머리를 조금 움직여 본 스칼렛은 이내 다시 코델리아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스칼렛 자신의 용무는 끝났지만 코델리아 쪽은 아니었다.

여전히 황제는 도주 중일 터였고, 레드 게이트와 오렌지 게이트에서는 난리가 났을 터였다.

당장 로그 마스터의 숨겨진 장소인 이곳에는 롬바르디 가문의 후계자인 엘리오 롬바르디가 꽁꽁 묶인 채 기절해 있었고 말이다.

스칼렛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즉답했다.

“유더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릴까 해.”

보편타당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스칼렛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그치만 지금 황제가 위험한 거 아냐? 상황도 모르잖아.”

물론 아예 레드 게이트 안으로 도망친 유더와 코델리아보다야 문 크리스탈을 이용해 밖으로 도망친 황제 쪽의 사정이 낫기는 하겠지만 만약의 사태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스칼렛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위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문 크리스탈 덕분에?”

“그것도 있지만 레드 게이트 밖으로 도망쳤으니까. 그리고 저기 보이는 엘리오가 증거야.”

코델리아가 구석에 쓰러져 있는 엘리오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엘리오는 우리를 추적해왔어. 즉, 적의 최대 전력이 우리를 따라왔다는 말이야. 레드 게이트의 남은 병력들로 고려해봤을 때 문 크리스탈··· 거기에 혼령질주를 쓰는 사라가 지키는 황족들을 따라잡을 가능성은 많이 낮아. 아, 혼령질주는 로열나이트 사라의 고유 이동기술인데, 대충 열라 빨리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하면 돼. 숲에서도 엘프들보다 빠를 정도니까 말 다했지. 아무튼 엘리오가 만약 문 크리스탈과 혼령질주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우리가 아니라 황제를 쫓았겠지만, 사실 엘리오에게도 이렇다 할 선택지가 없기는 했어. 우리가 오렌지 게이트를 돌파해서 옐로우 게이트에 이르면 자신의 이반 행위가 엘프 추밀원에 전해질 수도 있으니까. 엘리오 입장에서는 반드시 막아야만 하는 일이지. 엘리오의 행동으로 유추해보았을 때 엘리오와 그 추종자들은 대놓고 이반 행위를 드러낼 마음이 없었어. 아마 황제와 우리를 몰살한 뒤에 황제의 죽음을 다른 누군가- 아마 높은 확률로 로열나이트들에게 돌렸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레드 게이트에서 우릴 공격했을 리가 없으니까. 보다 확실하게 처리하려면 숲의 초입인 레드 게이트보다 안쪽에 자리한 오렌지 게이트가 유리하지 않겠어? 그런데 굳이 그걸 포기하고 그렇게 성급하게 나섰던 건 레드 게이트 내에서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는 거지. 아무래도 안쪽에 자리한 오렌지 게이트에는 엘리오의 입김이 닿지 않는 인물들도 다수 포진되어 있을 테니까. 그리고··· 황제가 만약 붙잡힌 상태라 해도 유더가 깨어나길 기다리는 쪽이 나아. 이미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이니까. 이쪽의 전력을 정상화 시키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최선이야.”

줄줄이 설명을 이어가던 코델리아는 미간을 좁혔다. 스칼렛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왜?”

“무, 무서운 아이.”

정말로 연기였구나.

블랙망토한테 귀엽게 보이려고 멍청한 척하고 있던 거였어!

[저 지금 완전 소름 돋았어요. 등골이 오싹해요.]

멜리사도 작게 말했다.

코델리아가 이런 식의 사고를 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니.

방금 이야기는 유더가 해준 이야기를 그대로 읊은 것이 아니었다. 코델리아 스스로 생각해서 한 말들이었다.

[하면 되는 분이셨어!]

“확 부러트린다?”

코델리아의 경고에 멜리사는 침묵했고, 스칼렛은 닭살이 돋은 팔을 마구 비벼댔다.

“야, 야, 야. 그 반응은 뭐야. 어? 내가 생각하는 게 신기해?”

“신기하지. 어흥어흥 거리다 킁킁 거리면서 오, 맛있는 냄새가 난다. 코델리아 먹는다. 코델리아 잔다! 하면서 본능대로 행동하는 게 평소의 너잖아.”

“아니거든? 그리고 야. 나 마법사야, 마법사. 그것도 대마법사라구.”

“그래, 그래서 대마법사는 모두 똑똑하다는 편견을 깨는··· 그런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이게 진짜. 세크메트의 눈 뺏는다?”

코델리아의 일차원적인 협박에 스칼렛은 얼른 머리를 감싸며 물러섰다.

그러자 잠시 침묵하고 있던 멜리사가 말했다.

[부부는 닮는다고 하니 그런 게 아닐까요?]

방금 모습은 정말 유더 같았으니까.

멜리사의 말에 코델리아는 순간 얼굴을 붉히더니 뺨을 긁적이며 물었다.

“그, 그래? 그렇게··· 보여?”

부부라니 참.

아직 약혼 밖에 안 했는데.

코델리아가 본격적으로 몸을 꼬며 부끄러워하자 스칼렛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더니 다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아무튼 유더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자고?”

“어, 나도 마력 회복 좀 하고. 명상 할 테니까 주변 좀 지켜줘.”

그렇게 말한 코델리아는 유더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더니 그대로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시켰다.

마법사들의 필수 기술 가운데 하나인 마나 회복술- 메디테이션이었다.

그리고 약 두 시간 여.

멜리사와 잡담을 나누던 스칼렛은 시선을 돌렸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거의 동시에 움직였기 때문이다.

“후우.”

긴 숨을 토하며 유더가 몸을 일으켜세웠다. 깊은 명상에 빠져 있던 코델리아 역시 부드럽게 눈을 떠 정면을 보았다.

‘진짜 환상의 커플이네.’

동시에 깨어난 거야 물론 우연이겠지만, 저 두 사람이기 때문에 일어난 우연 같기도 하였으니까.

새삼 감탄한 스칼렛이 무어라 말을 꺼내려 했지만 유더와 코델리아가 좀 더 빨랐다.

깨어나자마자 서로를 돌아본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에게 다가갔다.

“몸은 이제 괜찮아?

“괜찮아. 너는?”

“나두 괜찮아.”

다정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더니 뺨을 어루만졌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입술을 맞추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두 번째는 길고 진하게.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잠시 넋이 나갔던 스칼렛은 이내 빨개진 얼굴로 소리쳤다.

“야! 야야! 내가 보고 있거든?”

[저도 늘 보고 있습니다.]

두 여인의 항의에 코델리아의 뺨을 어루만지던 유더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응, 알아. 근데?”

보고 있어서 뭐.

보고 있어도 할 거거든?

유더의 말에 스칼렛과 멜리사는 말을 잃었고, 벨렌시아는 미적지근한 눈이 되었다.

코델리아는 코델리아다운 생각을 하였고 말이다.

‘미, 미친 거 아냐?’

근데 뭔가 멋있는 거 같기도 하고?

콩깍지의 힘이었다.

어찌되었든 뻔뻔한 말을 한 유더였지만 이내 헛기침을 한 뒤 자세를 바로 했다.

사실 유더 자신이 봐도 방금은 좀 무리수이긴 했다.

‘엘리오를 쓰러트린 직후에 갑자기 치솟았던··· 그때 그 감정의 여파인가?’

“유더야?”

“어, 아니. 아무 것도.”

코델리아의 눈에 걱정이 번지자 얼른 웃어 보인 유더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녀의 허리를 안았다.

그리고 그 모습에 다시 한숨을 내쉰 스칼렛이 말했다.

“하아, 좋아. 아무튼 블랙망토. 대강의 사정은 코델리아에게 들었어.”

황제의 상황과 엘리오의 배신 등등.

스칼렛과 멜리사에게 재차 이야기를 확인한 유더는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엘리오를 보며 말했다.

“엘리오 롬바르디가 완전히 악마 추종자들 편에 붙었을 가능성은 낮아. 아마 악마 추종자들을 부리는 재상부와 손을 잡았다- 같은 감각이겠지. 그러니 엘리오를 죽이기보다는 살려서 엘프들에게 데려가는 편이 나을 거야.”

유더의 해설에 스칼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 태생인 그녀가 듣기에도 그럴싸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확실히 엘프들이 악마 추종자들이랑 아예 손을 잡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되긴 하니까. 그래도 좀 충격이긴 하네. 재상부와 손잡은 소드 마스터들이야 그렇다 쳐도 엘프 소드 마스터까지 저쪽으로 돌아서다니 말이야.”

왕도에서부터 함께한 스칼렛이었다.

그러다보니 제일검과 호국공의 배반은 물론이고 세뇌되어 적이 되었던 세바스찬 르완과 아예 그냥 악마 추종자들 편이 되었던 남부의 검호 마테오 루클리아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는 배신의 아이콘인가.’

스칼렛이 차마 입밖으로 내진 못 한 생각을 할 때 비슷한 생각을 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메시지 마법을 주고 받았다.

[생각해보니 진짜 막장 아냐? 소드 마스터면 군사력의 핵심인데 그치들 사이에서 배신자가 이렇게 많다니. 여태까지 망하지 않은 게 신기하네.]

[그래서 원작에선 망하잖아.]

[그러네?]

유더의 말마따나 원작에서는 왕국이고 제국이고 죄다 망했으니까.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니 왕국이고 제국이고 망하기 직전의 막장 상황인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렇지, 망하려면 망할 만 해야지.]

멀쩡하던 나라가 갑자기 망하는 건 개연성에 문제가 있으니까.

코델리아가 홀로 감탄하는 가운데 유더는 엘리오의 상태를 한 번 살핀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더 자신에게 당해 이미 반시체 상태였는데 각종 마비 마법에도 절여진 상태라 앞으로 몇 시간은 얌전히 잠들어 있을 터였다.

‘괜히 시간을 질질 끌 필요는 없겠지.’

유더 자신은 깨어났고 코델리아도 마력을 회복했다.

여기에 스칼렛까지 더해졌으니 이제는 서두를 때였다.

“오렌지 게이트로 가자.”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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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 마스터의 비보가 숨겨진 비밀 장소 밖은 의외일 정도로 조용했다.

“수색대가··· 없다?”

엘리오의 부하들이 자신들을 찾기 위해 사방을 누비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코델리아의 이야기를 듣고 바짝 긴장해있던 스칼렛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크메트의 눈으로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딱히 보이는 것이 없었다.

“진짜 없는 거 같은데?”

어째서일까.

유더는 대강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고작 몇 시간 사이에 이런 변화가 생길만한 이유는 하나뿐이었으니 말이다.

“빈첸죠가 눈치 챈 모양이네.”

엘리오의 이반을.

아무리 레드 게이트와 오렌지 게이트가 엘리오의 소관이라 해도 그 안에 자리한 모든 엘프들을 자신의 사람만으로 가득 채운 것은 아닐 터였다.

‘애당초 레드 게이트에서 일을 벌인 것도 그래서일 테고.’

코델리아가 추측한 것과 같은 논리였다.

오렌지 게이트까지 완벽히 장악한 상태였다면 굳이 레드 게이트에서 일을 벌일 필요가 없었을 터였다.

“그럼··· 안전한 건가?”

“그건 가봐야 알겠지.”

빈첸죠 롬바르디는 어린 시절 악마들에 의해 고향과 가족을 모두 잃은 자였다.

그런 그가 악마 추종자들과 타협하는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악마 추종자들과 손을 잡지 않는다 해서 반드시 이쪽 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롬바르디 가문의 후계자가 황제 암살을 꾀하였다.

아무리 빈첸죠가 엘프들의 대부이자 추밀원의 수장이라 한들 쉬이 잠재울 수 없는 스캔들이었다.

때문에 빈첸죠가 자신의 왕국이라 할 수 있을 그림자 숲에서 어떤 식으로 반응할 거라고는 확언하기가 어려웠다.

엘리오를 처벌하는 것으로 일벌백계할 것인가.

아니면 엘리오의 스캔들을 지우기 위해 사건 자체를 묻어버리려 할 것인가.

후자보다는 전자의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코델리아의 안위가 걸린 일이기에 유더는 방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십여 분 뒤.

오렌지 게이트의 앞.

허리춤에 검 한자루만 달랑 찬 가벼운 차림의 여인이 관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검고 긴 머리칼과 졸린 듯 나른한 눈빛.

“안녕. 처음 만나네. 내 이름은 엘룬이야. 엘리오가 사고를 쳤다며?”

현존하는 엘프 최강의 검사.

그랜드 소드 마스터 엘룬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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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7장 - 비보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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