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309화 (309/473)

< 제108장 - 그랜드 소드 마스터 #2 (아델리아 일러스트 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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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전기2에서 유더가 사용하던 최고의 보법은 신뢰십이보였다.

빠른 번개.

하지만 사실 신뢰십이보는 단순히 보법으로만 볼 수 없었다.

그 안에 보법뿐만 아니라 신법과 심법으로서의 묘리 역시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 천하삼십육보는 순수한 보법에 가까웠다.

그것이 질풍이십사보로 진보함에 따라 신법의 묘리가 더해졌다.

검은질풍이 되어 황금빛 선풍과 함께 나아가는 흑풍도래.

야생의 땅에서의 주 이동수단이었던 그것.

그리고 다시 질풍이십사보가 신뢰십이보가 되었다.

신뢰십이보의 첫 번째 발걸음인 초풍신뢰는 무지막지한 순간 가속 능력을 활용한 보법이었다.

두 번째 발걸음인 뇌신초래는 초풍신뢰에 보다 빠른 속도를 부여하는 보법인 동시에 번개의 힘을 다룰 수 있게 해주는 심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발걸음인 흑뢰번천.

검은 번개가 사방을 뒤덮었다.

유더는 번개와 함께 사라졌고, 번개와 함께 나타났다.

초풍신뢰와 뇌신초래를 초월한 순간 가속 능력.

아니,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의 유더는 사실상 공간을 도약했다.

마법으로 비유하자면 헤이스트가 아닌 블링크인 셈이었다.

콰가강!

벼락이 쳤다. 엘룬의 등 뒤에서 나타난 유더의 수도가 섬광처럼 날아들었고, 엘룬은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더니 검면으로 유더의 수도를 흘려보냈다. 갑작스러운 배후의 공격을 받은 것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매끄러운 대응이었다.

하지만 번개는 끝나지 않았다.

검은 번개가 사방을 뒤덮었고, 유더는 사방에서 나타나 엘룬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쾅! 쾅! 쾅!

말도 안 되는 빠르기였다.

더욱이 그냥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블링크와 같이 공간을 도약했기에 진퇴로의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초풍신뢰나 뇌신초래 때는 사용할 수 없던 진퇴로까지 쓰기 시작하니 유더의 공격은 일반적인 검사의 입장에서는 기상천외하기까지 하였다.

쾅! 쾅! 쾅! 쾅! 쾅!

연이어 울리는 굉음에 스칼렛은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직접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유더의 움직임을 전부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나마도 무지막지한 재능의 소유자인 스칼렛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성벽 위에서 지켜보는 엘프 기사들은 유더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는 것조차 하지 못 했다.

검은 번개가 하늘을 뒤덮는다.

마구 쏟아져 적을 유린한다.

엘룬 역시 유더의 움직임을 온전히 읽어내지 못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였다.

동시에 검을 위해 태어나 검을 위해 살아온 검의 화신과도 같은 자였다.

보지 못 한다면 느낀다.

오감을 총동원하여 유더의 움직임에 대응한다.

엘룬은 이해하지 않았다.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놀라운 직감으로 답을 내었다.

마치 코델리아처럼 말이다.

검과 수도가 맞물린다.

전신을 활용한 유더의 맹공 속에서 몸을 놀린다.

엘룬은 노도와 같은 유더의 공세에 힘으로 저항하지 않았다.

바람을 타고 하늘을 누비는 깃털처럼 부드러움으로 유더의 공격을 받아냈다.

위태로우면서도 여유로운 그것은 마치 하나의 춤과 같았다.

지켜보던 코델리아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엘룬의 움직임이 유더와 닮았다.

얼핏 보면 전혀 다른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둘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존재했다.

하나의 뿌리.

유더도 깨달았다.

벨렌시아가 반가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의 검술이에요.]

요정검 벨렌시아가 소드 오리진을 얻기 전까지 사용하던 검법.

어떻게 된 것일까.

유더의 의문에 벨렌시아는 빙긋이 웃으며 답해주었다.

[후대, 저는 제자가 많았어요.]

그녀는 대륙 제일의 검호였으니까.

유더처럼 붙잡고 키운 제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검술의 일부를 전수한 제자는 일백 명이 넘었다.

때문에 하이엘프의 피를 잇는 엘룬이 벨렌시아의 검술을 할 줄 아는 것은 그렇게까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놀랍네요. 부족한 부분은 자기류 검술로 메운 것 같은데 그 변화가 무척 재미있어요.]

벨렌시아가 엘룬의 검을 칭찬했다.

유더 또한 그러했다.

엘룬과 공방을 나눌 때마다 신묘함을 느꼈다.

검을 저렇게도 쓸 수 있구나.

저런 식의 공격도 가능했구나.

공방이 하나 된다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유더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그것은 엘룬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으로 좇기조차 힘들 정도로 엄청난 초고속의 격전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했다. 마치 둘만 따로 시간의 흐름에서 유린된 것처럼 찰나를 인지했다.

서로 같은 뿌리를 두었다.

그렇기에 서로 닮았다.

엘룬은 유더의 검에서 벨렌시아의 자취를 읽어냈고, 유더는 엘룬으로부터 자신이 나아가야할 길을 엿볼 수 있었다.

엘룬이 활짝 웃었다.

흑뢰번천의 어마어마한 속도를 따라잡느라 전신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자꾸 웃음이 나왔다. 조금 더 보고 싶었다. 조금 더 하고 싶었다.

그것은 유더도 마찬가지였다.

엘룬과 검을 한 번 나눌 때마다 유더의 검술이 발전했다.

유더답지 않은 일이었지만, 분석하여 계산하는 대신 직관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엘룬이 비틀거렸다.

유더 역시 더 이상 흑뢰번천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

엘룬은 자신의 검에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나갔다.

유더는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검과 검이 교차한다.

더 이상 초고속의 대전은 없었다.

검은 번개와 화려한 검강이 충돌하는 일도 없었다.

맞물리고 헤어지고 다시 교차하고.

엘룬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너무나 행복해서, 지금의 행복이 이제 곧 끝난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유더는 숨을 토했다. 멈추었고, 엘룬에 대한 경의를 담아 지금의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검을 선보였다.

풍뢰열광참.

쏟아지는 바람과 번개의 검에 엘룬이 호응했다. 마찬가지로 펼칠 수 있는 최선으로 답하였다.

꽃이 피었다.

달맞이꽃이 만발했다.

부서지고 흩어진 빛이 아름답게 흩날렸다.

그리하여 이어진 열세 번의 교류.

유더와 엘룬은 서로를 지나쳤다.

비틀거리던 엘룬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고, 유더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거친 숨을 토했다. 어찌어찌 서있었지만 팔다리가 모두 저리고 떨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결판이 났다.

얼핏 엘룬이 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아니었다.

그렇다고 유더가 진 것 역시 아니었다.

‘과연 검성.’

그랜드 소드 마스터.

제칠문을 여는 과정에서 검술이 진일보 했지만 갈 길이 멀었다.

유더 자신보다 훨씬 더 지평에 가까운 그녀의 검을 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엘룬은 몸을 떨었다. 스스로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다시 한 번 미소지었다.

유더의 검.

눈부시게 아름다운 검은 번개.

엘룬은 생각했다.

만약 유더가 자신과 비슷한 경지의 검술을 구사한다면.

앞으로 더 나아가 지평에 닿는다면.

오싹했다.

그래서 더더욱 미소가 그려졌다.

보고싶다.

그런 유더와 검을 나누고 싶다.

“너무 좋아.”

엘룬이 울면서 웃었고, 유더는 결국 돌아서서 주저앉았다. 엘룬만큼은 아니었지만 미소를 흘렸다.

“너, 벨렌시아 님의 검을 써.”

엘룬이 말했다. 유더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 검에는 벨렌시아 님의 검이 담겨 있습니다.”

구극태양신공과 설화십이검 모두가 벨렌시아에 의해 다시 태어났으니까.

엘룬이 다시 아이처럼 웃었다. 기억을 더듬듯 손가락을 꼽더니 유더를 보며 말했다.

“소드 오리진. 맞지? 궁극의 검. 벨렌시아 님이 쓰시던.”

“예, 맞습니다.”

이번에도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고, 엘룬의 두 눈에는 부러움과 기쁨이 가득 차올랐다.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두 손으로 누른 그녀는 이내 다시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말했다.

“고마워, 너무너무 좋았어. 너도 무척 좋아. 나 너 좋아해. 너랑은 결혼해도 좋아. 결혼하고 싶어. 빈첸죠 할아버지도 허락하실 거야.”

순식간에 쏟아져 나온 말에 유더는 쓰게 웃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갑작스러운 청혼에 답했다.

“정말로 감사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제게는 이미 짝이 있어서요.”

엘룬의 눈동자가 굴러갔다. 저만치 서 있는 코델리아를 보았고,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부러워.”

유더는 다시 한 번 쓰게 웃었다.

그녀가 유더 자신을 남자라기보다는 함께 검을 수련할 검사로 본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검사로서 손을 내밀었다.

“다음에 다시 한 번 검을 나누죠.”

“응, 오늘 배운 거 다 소화한 다음에.”

엘룬은 해맑게 웃었고, 유더 역시 웃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모두.

성벽 위의 엘프 기사들은 넋이 나가 누구하나 입을 열지 못하였고, 그건 스칼렛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남부에서도 유더는 분명 강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유더를 보지 못 한 건 겨우 몇 개월 남짓.

그 사이에 이렇게까지 강해지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가능해.’

스칼렛은 스스로의 물음에 답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실제로 가능하다 생각했다.

아직 유더 정도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스칼렛이었다. 하지만 눈부신 재능을 가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유더의 검이 진보했다.

엘룬과의 대련 한 번으로 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씨발.’

저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스칼렛 자신도 나름 천재였는데, 재능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는데.

저건 천재를 넘어섰다.

아니, 어쩌면 진정한 천재는 저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몰랐다.

스칼렛 안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그리고 그런 스칼렛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코델리아는 돌연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왜?’

목소리를 내는 대신 눈으로 묻자 코델리아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더니 히히 웃으며 말했다.

“우리집 유더야.”

착하고 멋지고 잘생긴 우리집 사기꾼.

멋있지?

네가 봐도 끝내주지?

응?

대답을 갈구하는 코델리아의 모습은 무척이니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스칼렛은 원하는 답을 내주는 대신 고개를 돌렸다.

“씨발.”

진심이 담긴 감탄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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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게이트가 활짝 열렸다.

비틀비틀 위태롭게 나아가는 엘룬의 뒤를 따라 일행은 관문 안으로 들어섰고, 어느새 도열해 있던 엘프 기사들이 일행을 향해- 정확히는 유더를 향해 열렬한 시선들을 보냈다.

순수한 경의.

제국의 엘프들은 오만했다.

자신들에 비해 너무나 짧은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하찮게 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 했다.

유더와 엘룬의 대련은 저 오만한 엘프 기사들에게조차 순수한 경탄을 토하게 만들었다.

“엣헴엣헴 신이나.”

코델리아는 작게 중얼거리며 어깨를 으쓱였고, 스칼렛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 한숨을 토했다.

그리고 엘룬은 빙글 돌아서며 말했다.

“엘리오는 감옥에 가둘 거야. 밤이 늦었지만 황제 폐하가 계신 곳을 알려줘. 그림자 기사단이 모시러 갈 거야.”

너무나 맑고 순수해서 바보처럼 보일 지경인 엘룬이었지만 정말로 바보인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어리숙해 보이는 언행은 사실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귀찮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유더의 말도 안 되는 조건들을 수락한 것은 아무튼 빨리 유더와 대련하고 싶다는 열망도 열망이었지만, 어지간한 일 정도는 모두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말이다.

추밀원의 13가주 가운데 하나인 동시에 엘프 최강의 검사.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엘룬의 말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재상부는 제국 전역을 장악하기 위한 공작을 펼치고 있을 터이니, 한시라도 빨리 황제와 함께 제국의 북부- 황태후의 고향인 버킹엄 후작가에 당도해야만 했다.

“황제 폐하는 어디 계시는데?”

“설명만으로는 어려울 듯 하니 제가 직접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겠어?”

유더의 말에 엘룬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하지만 유더는 문제없다는 듯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체력은 자신 있으니까요.”

애당초 엘룬과 동수 아닌 동수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흑뢰번천 때문만이 아니었다.

가히 무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어마어마한 체력 덕분이었다.

더욱이 체력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유더는 회복력 역시 남달랐다.

대련이 끝나고 겨우 십여 분 남짓이 지났을 뿐이지만 벌써 상당량의 체력을 회복한 유더였다.

“알았어. 그럼 부탁할게.”

그리 말한 엘룬이 무어라 소리치자 검은 갑옷과 망토로 무장한 그림자 기사들이 유더에게 다가섰다.

모두 일곱이었는데 하나하나가 레온에 필적할 강자들로 보였다.

“코델리아, 다녀올게.”

“응, 밤길 조심하구.”

유더는 엘룬을 신뢰했고, 그렇기에 코델리아 역시 소드 마스터임에도 불구하고 엘룬을 믿었다.

[음, 편견은 좋지 않아요.]

멜리사의 공허한 말이 울리는 가운데 가볍게 입술을 맞추는 것으로 인사를 마친 코델리아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자 유더 역시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섰다.

“이쪽입니다.”

유더와 그림자 기사들이 오렌지 게이트를 떠났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유더와 황제 일행이 조우했을 때.

제국의 엘프들을 이끄는 추밀원의 1인자.

빈첸죠 롬바르디가 오렌지 게이트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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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림님이 생일 축전으로 그려주신 아델리아 일러스트입니다.

- 가운데 남자는 게일이 아니라 그냥 장수A라더군요. ㅎ

< 제108장 - 그랜드 소드 마스터 #2 (아델리아 일러스트 포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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