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313화 (313/473)

< 제110장 - 선포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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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킹엄 후작의 영지는 실로 광활했다.

단순 크기만 놓고 보자면 세일룬 왕국의 3분지 1에 해당하는 북부 전체와 대등할 정도였다.

당연히 제국 내에서도 가장 넓은 영지였는데, 버킹엄 후작가가 이렇게까지 방대- 아니, 광대한 영지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땅은 넓지만 의외로 쓸모 있는 땅이 적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당대 버킹엄 후작이 외가와 친가를 비롯한 여러 혈족들의 공동상속인이 되어 막대한 토지를 물려받았다는 사실이었다.

땅이 넓지만 쓸모없는 땅이 거의 절반에 가깝다.

때문에 엄청나게 광대한 영지를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황가나 주변 귀족들의 견제가 그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버킹엄 후작에게는 자식이 많은 터라 지금처럼 광대한 영지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당대 버킹엄 후작 때까지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래도 일단 땅이 크단 말이지.’

땅에 비해 사는 사람이 적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땅이 워낙 넓다보니 사람도 많았다.

‘지하자원도 풍부하고.’

여러 가지 의미로 러시아- 정확히는 구소련과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버킹엄 후작령에는 실제로 질 좋은 광산이 여럿 있었고, 광물 자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드워프들이 가장 많이 거하는 땅이기도 했다.

“버킹엄 후작이 마중을 나올 겁니다.”

오랜만의 고향 방문이라 그런지 그림자 숲을 벗어난 이후 내내 표정이 좋은 황태후였다.

적지나 믿을 수 없는 이들의 땅이 아닌 정말 안심할 수 있는 곳에 들어온 것도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근 십여 년 만의 고향 방문이기도 하였다. 표정이 좋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저도 좋습니다.”

제도를 벗어난 이후 웃긴 웃어도 얼굴 한 구석에 어두운 곳이 있던 황제 역시 환한 미소를 지었다.

딱 나이 대에 맞는 해맑은 미소 말이다.

“황제 폐하, 버킹엄 후작의 깃발입니다.”

레온이 저만치 앞을 가리키며 말하자 담소를 나누던 황제와 황태후 모두가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먼 곳을 보았다.

“버킹엄 후작가의 깃발이 맞습니다.”

날개달린 사자의 문장.

황태후가 기뻐 말하자 황제는 마차 위에서나마 발을 동동 굴렀다. 평소 황제의 체통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놓던 황태후도 이번만은 넘어가니, 황제는 동생들과 함께 마음껏 기뻐할 수 있었다.

그림자 숲을 벗어나고 이틀.

일행은 북부의 웅크린 사자라 불리는 버킹엄 후작과 조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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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더와 코델리아 일행이 버킹엄 후작과 조우하고 있을 때 왕국 북부- 바일룬에서는 일단의 무리가 행군을 개시했다.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이 이끄는 일종의 연합군이었다.

제국의 국경 봉쇄령으로 인해 이미 한 번 소집령을 받은 두 백작이었지만 막상 그 뒤로 제국이 제법 잠잠했기에 바일룬에서 각기 출전 준비만 할 뿐 움직이지는 않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어제부로 왕도에서의 출전 명령이 떨어졌다.

바이엘 백작은 기사단을 이끌고 출병했고, 체이스 백작은 붉은 여명 탑의 마법사들과 함께 바이엘 백작의 무리에 합류했다.

그렇게 다시 하루.

각기 흑마와 백마 위에 탄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래서 정말 곤란했다네.”

남부의 오펀드 후작에게서 온 편지.

귀족적인 수사를 모두 제하고 나면 내용 자체는 간단했는데, 한 마디로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아니 그게 우리 잘못인가?”

“잘못이라 우길 만은 하지.”

카이사 오펀드의 가출.

북부에 있는 결혼식에 참가한다고 나가더니 ‘가출의 프로’들과 함께 가출해버렸다.

평소에도 해적들을 사냥하며 거칠게 놀던(?) 카이사였지만 가출 같은 것은 한 적이 없거늘.

오펀드 후작은 이게 다 유더와 코델리아 때문이라는 논리를 펼쳤고, 바이엘 백작으로서는 이를 부정하기가 힘들었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왕국 제일의 가출마- 가출의 프로라는 것은 전국민이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흐레스벨그 백작은······.”

“그쪽에서도 편지가 왔네. 훨씬 더 점잖은 투이기는 했지만.”

루카스 흐레스벨그.

유더가 두각을 드러내기 전까지만 해도 북부 최고의 기린아라 불리던 청년.

루카스 역시 게일과 아델리아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그대로 가출해버렸으니 흐레스벨그 백작으로서는 바이엘 백작가와 체이스 백작가 탓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다소 걸러들어야 하긴 하겠지만 오펀드 후작가가 카이사 양 때문에 지금 꽤 곤란한 처지라는 것 같더군.”

“그건 또 무슨 이야기지?”

체이스 백작의 물음에 바이엘 백작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오펀드 후작가가 남부7가문- 아니, 6가문의 필두로 나설 수 있던 것은 카를로스의 유산인 아스카론 덕분이네. 그건 자네도 잘 알겠지?”

“알고 있지.”

“그런데 그 아스카론이 사라졌네. 정확히는 모조품만 남기고 진짜가 사라졌지.”

“잠깐, 그렇다면 설마?”

“바로 그 설마일세.”

카이사 오펀드가 진짜 아스카론을 가지고 가출했다.

그렇지 않아도 갑자기 필두 자리를 빼앗겨 불편하던 나머지 다섯 가문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호재였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매일같이 오펀드 후작가를 물어뜯고 있으리라.

“그런데 그 카이사가 가출했다는 말이군.”

“우리 애들과 같이.”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은 사이좋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별 일은 없겠지?”

“없을 거라 믿어야지. 많이 강해지기도 했고.”

유더와 코델리아 모두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아니, 이걸 단순히 눈부신 운운하는 수사어구 정도로 넘어갈 수 있을까?

불과 1.5년 만에 코델리아는 대마법사가 되었고, 바깥출입도 마음대로 못 할 만치 병약하던 유더는 십검호의 일원이 되었다.

비정상적인 성장.

하지만 그 성장이 진짜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두 백작이었다.

“어찌되었든··· 이번에도 무언가 뜻이 있겠지.”

바이엘 백작의 말에 체이스 백작은 미간을 찌푸리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의 가출들도 하나하나 따져보면 단순한 사랑의 도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인 해석일수는 있어도 한 번 가출할 때마다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이번에 돌아오면 그냥 바로 결혼시키는 게 어떨까 하네.”

“나도 찬성이네. 굳이 약혼 상태로 질질 끌 필요가 없겠지.”

그리고 사실 노리고 있는 부가효과가 있었다.

두 백작은 마치 미리 약조한 것처럼 저만치에서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게일과 아델리아를 돌아보았다.

그야말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광경.

그냥 서로 쳐다만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분홍빛 아우라 같은 게 보이는 기분이었다.

“확실히 줄긴 했지.”

결혼한 이후 바깥출입이 극도로 줄어든 두 사람이었다.

당장 결혼식 이후에도 근3일 이상을 방에만 처박혀 있기도 했고.

“실로 흐뭇하군.”

체이스 백작이 뿌듯한 얼굴로 말하자 바이엘 백작은 작게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할아버지가 될지도 모르겠군.”

“좋지, 할아버지.”

거기까지였다.

서로 마주보며 씩 웃는 것으로 사담을 마친 두 사람은 표정을 고치고 왕국의 일을 논하기 시작했다.

“왕세녀 전하의 부르심이라지?”

“그렇다더군. 더욱이··· 단순히 대비 차원의 움직임이 아닌 것 같네.”

당장 두 백작부터가 영지의 정예들을 이끌고 나서는 판이었다.

북부의 갈까마귀들조차도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으니 어쩌면 제국과 대대적인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도착하면··· 그때 알게 되겠지.”

왕도에서 내려온 명령은 국경으로의 이동이 아니었다. 정예병을 이끌고 왕도로 올 것을 명하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어떤 계획이 있는 것일까.

두 백작은 다시 정면을 보았다.

북부와 중앙의 경계를 넘어 왕도를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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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킹엄 후작과 조우한 날 밤.

워낙 넓은 버킹엄 후작령이다 보니 후작령의 수도라 할 수 있을 대도시 그랑펜까지 가는 데만 앞으로 이틀 가량이 필요할 지경이었다.

때문에 일행은 버킹엄 후작의 가신인 레논 자작의 성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솔라리 교단의 석판?”

스칼렛이 눈을 깜박이며 묻자 유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이런 석판이 총 네 개가 있고, 그 중 세 개를 모았어. 그리고 마지막 석판이 있는 곳을 알고 있고.”

유더의 방에는 코델리아와 스칼렛뿐만 아니라 루카스와 카이사, 거기에 키라라도 함께 하고 있었다.

레온과 사라도 부를까 했지만 앞의 세 사람에 비하면 아직 그렇게까지 관계가 깊지 않은 두 사람이었다.

“유더 공자, 그렇다면··· 남은 네 번째 석판을 찾으러 떠나실 거란 말씀입니까?”

“예, 그럴 생각입니다. 버킹엄 후작과도 합류했으니 이제 슬슬 다녀와도 될 것 같아서요.”

더욱이 네 번째 석판은 버킹엄 후작령과 그림자 숲의 경계 지점 중 하나인 자이난 협곡에 숨겨져 있었다. 동선을 고려해도 지금 가지러 가는 것이 맞았다.

코델리아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석판을 모두 모으면 솔라리 교단이 남긴 최후의 비보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해. 그게 뭘지는 몰라도 분명 악마 추종자들과의 싸움에 도움이 되겠지. 본격적으로 전쟁··· 내전이 시작되기 전에 확보해두는 편이 좋다고 봐.”

네 개의 석판을 모두 모았을 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솔라리의 비보는 영웅전기2에도 나온 적이 없었기에 유더와 코델리아라 해도 알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솔라리의 유산- 그것도 교단이 남긴 최후의 비보였다.

설사 전투용 무구가 아닐지라도 막대한 신성력을 품고 있을 터이니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터였다.

‘결국에는 준비.’

왕도에서 호국공과의 싸움에 대비해 최대한 아군을 모으고 전투력을 끌어올린 것과 같은 이치였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각기 보충 설명을 마치자 카이사는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무튼 그래서 보물찾기 하러 간다는 거지?”

“뭐··· 대충?”

코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이사는 씩 웃더니 옆에 있던 루카스의 목을 끌어안았다.

“흐흐, 좋아. 루카스도 좋지?”

“어? 응. 나, 나도 좋아. 누나.”

이런 종류의 스킨십은 물론이고 카이사를 누나라 부르는 것에도 익숙하지 못 한 루카스였다.

저도 모르게 뺨을 붉히며 말하니 카이사의 얼굴에도 약하게나마 홍조가 떠올랐다. 왜인지 몰라도 입맛까지 다셨고 말이다.

하지만 카이사에게는 애석하게도 이 자리에는 스칼렛이 있었다.

스칼렛은 카이사의 뒷목을 붙잡아 당기는 것으로 두 사람의 스킨십이 더 이상 이어지지 못 하게 한 뒤 자연스럽게 코델리아를 돌아보았다. 무어라 항의하는 카이사의 말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바로 출발하는 거야?”

여기서 더 북쪽으로 가면 자이난 협곡까지의 길이 꼬일 수가 있었다.

스칼렛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돌연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답했다.

“출발하긴 할 건데 그··· 뭐랄까. 나랑 유더만 휙 하고 다녀온다고 해야 하나······.”

질질질 말꼬리를 흐리는 게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때문에 스칼렛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재차 물었다.

“둘이서만 다녀온다고?”

“응. 굳이 여럿이서 우르르 몰려갈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세 사람은 여기 남아서 파워 업에 집중해줬으면 하구. 응응, 바로 그거지.”

말하다말고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일단 되는대로 말하다가 본인도 동의한 느낌이었다.

자이난 협곡까지 유더와 둘만 가겠다.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둘이서만 여행을 다닌 두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왜일까.

로그 마스터의 촉이라고 해야 할까?

평소와는 어쩐지 의미가 다른 느낌이었다.

“흐으응.”

스칼렛이 눈을 가늘게 뜨자 코델리아는 입술을 움츠리며 괜히 딴 곳을 보았고, 동물적인 직감 하나는 코델리아에게 뒤지지 않을 카이사가 코를 킁킁거렸다.

‘뭔가 냄새가 나는데. 너도 그렇지?’

카이사의 눈빛에 스칼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와 정황상 카이사가 무슨 말을 할지는 뻔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스칼렛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키라라도 데려가는 게 어때?”

“키라라를?”

코델리아뿐만 아니라 그 옆에 꼭 붙어 앉아있던 키라라도 눈을 깜박였다.

너무나 예상 밖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칼렛에게는 나름의 근거가 준비되어 있었다.

“네 번째 석판이 있는 곳, 지금 이야기대로라면 자이난 협곡이잖아? 거기라면 동물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키라라가 도움이 될 거야. 키라라가 테이밍 할 만한 몬스터도 많을 테고.”

자이난 협곡은 길이 험하기로 유명한데다 거대한 괴조 로크들의 집단 서식지였다.

오가는 이조차 없는 오지 그 자체였으니 결국 길을 아는 것은 근방에 사는 동물들뿐이었다.

“오, 과연. 키라라 양이라면 동물들에게 물어서 길을 알아낼 수 있겠군요.”

루카스가 탁하고 손뼉을 치며 말하자 스칼렛이 바로 그거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않아? 빨리 다녀와야 하니까. 더욱이 그렇게까지 큰 위험이 있는 곳도 아니고.”

스칼렛의 말은 틀리면서도 맞았다.

거대한 괴조들이 판치는 자이난 협곡은 일반적으로 보면 위험한 장소가 맞았다.

하지만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유더와 대마법사인 코델리아에게는 위험한 곳이 아니었다.

“으으으······.”

그치만 그러면 유더랑 단 둘이 여행을 할 수가 없잖아!

-라고 소리치고 싶은 코델리아였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아직 얼굴 가죽의 두꺼움이 부족한 코델리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끙끙 앓기만 하였는데, 더더욱 속내를 드러내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졌다.

“와, 그럼 주인님이랑 같이 가는 거예요? 전 좋아요. 같이 가게 해주세요. 네?”

키라라가 허리를 끌어안으며 애교를 부리니 코델리아로서는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우으으······.’

유더랑 둘이서만 여행하면 눈치 안 봐도 되는데.

어디 숨을 필요도 없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씩하고 사악한 미소를 짓는 스칼렛과 카이사는 무시할 수 있었지만 순진한 얼굴로 역시 스칼렛 양은 똑똑하군요!- 운운하는 루카스와 함께 가고 싶다며 눈을 빛내는 키라라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으, 응. 그래. 가, 같이 가자.”

“진짜요? 정말 좋아요. 너무너무 좋아요 주인님.”

“으응··· 나두.”

키라라는 코델리아의 가슴에 뺨을 비비며 좋아했고, 코델리아는 한 없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한 사람.

이 모든 대화를 지켜보던 유더는 창밖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긴 한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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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0장 - 선포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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