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314화 (314/473)

< 제110장 - 선포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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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더와 코델리아는 다음날 아침 바로 황제와 황태후에게 알현을 청했다.

엄밀히 말하면 황제의 가신은커녕 제국민조차 아닌 두 사람인 터라 오고가는 것에 황제의 허락을 구할 이유 따위 조금도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황제에게 직접 이야기를 전해야 했다.

‘역시 예상대로 눈빛들이 좋지 않네.’

재상부에 이어 일부라고는 하나 엘프들까지 배신을 한 마당이었다.

같은 편이었던 이들조차 믿지 못 하는 와중에 적대국인 세일룬 왕국의 귀족들을 믿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그냥 귀족도 아니었다.

자그마치 그랜드 소드 마스터와 대마법사- 제국식으로 부르자면 그랜드 위자드였으니 잔뜩 경계하는 것이 당연했다.

‘어딜 간다는 거지?’

‘뭔가 후방에서 공작을 하려는 거 아닐까?’

‘겨우 두 사람이지만 그랜드 소드 마스터와 그랜드 위자드라면······.’

‘지금까지 협력한 것도 더 크게 배신하기 위한 계략일지 모른다. 경계의 끈을 늦춰서는 아니된다.’

눈빛들이 얼마나 흉흉한지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흉흉한 것은 버킹엄 후작이었는데, 그는 당장이라도 유더와 코델리아 두 사람을 구금해야 한다고 소리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 했다.

버킹엄 후작조차도 사납게 노려만 볼 뿐 싫은 소리 하나 내뱉지 않았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와 그랜드 위자드니까.’

수틀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를 자들.

더욱이 지금 황제 진영에는 확실한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없는 상황이었다.

절대기사 갤러헤드는 적진에 붙잡혀 있는 신세였고, 엘룬은 엘프들의 땅인 그림자 숲을 나온 적이 생애 단 한 번도 없는 자였다.

검신의 경우엔 아예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지경이었고, 외국과의 전쟁이 아닌 내전이라면 과연 황제의 편을 들어줄지도 의문인 인물이었다.

‘제국의 마지막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백수왕 크라수스는 재상부의 편이고.’

즉, 현재 황제의 막사에는 일대일로 유더를 제압할 수 있는 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뜻이었다.

여기에 그랜드 위자드인 코델리아가 더해진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시비를 거는 것 자체가 무모한 짓이었으니 말이다.

‘일단은 아군이다. 괜히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

버킹엄 후작은 척박하면서도 광활한 영지를 오랜 시간동안 지키며 가꾸어온 자였다.

타고난 성격은 괄괄했지만 인내심 역시 강했고, 감정적인 판단으로 일을 그르치기에는 그간 쌓아온 경험이 너무 많았다.

‘적이 아니다. 제어해야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스무 살도 되지 않아 그랜드 소드 마스터 엘룬과 동수를 이룬 괴물.

하지만 그래봐야 개인이었다.

황제에게 충성하는 소드 마스터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충분한 숫자의 마법사들이 집결하면 어떻게든 대응이 가능했다.

그러니 지금은 참는다.

괜한 의심으로 신실한 아군일지 모를 자를 적으로 돌리지 않는다.

‘다소간의 만행은 눈감아 주마.’

제국도 아닌 왕국의 인간이 황제를 모시다 말고 다른 곳에 다녀오겠다 한다.

더욱이 지금은 평시가 아니었다.

내전이 반발하기 직전인- 아니, 사실상 이미 내전이 반발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였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고, 막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버킹엄 후작은 한 걸음 물러서기로 마음먹었다.

유더의 예상대로 말이다.

‘역시 버킹엄 후작.’

여간한 중급 마인조차도 프로파일링을 해둔 유더였다.

버킹엄 후작은 제국편에서 꽤나 중요한 인물이만큼 그 성격이나 행도패턴은 이미 숙지해둔 상태였다.

머리칼은 없지만 수염은 풍성한 그는 백전연마의 노장이었고, 사소한 일에 치우쳐 대사를 그르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버킹엄 후작이 허락한다면······.’

유더는 황태후 쪽을 돌아보았다.

과연 이번에도 예상한 그대로의 반응들이 돌아왔다.

버킹엄 후작과 눈빛을 교환한 황태후는 황제의 귓가에 무어라 작게 속삭였고, 황제는 불안한 얼굴로나마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알겠다. 허락하겠다. 허나 빨리 돌아와야 한다. 알겠나?”

“그리하겠습니다.”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각기 예를 표하며 답하자 황태후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외국인인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한심하기는 했지만, 이러나저러나 아군이라 생각하면 든든하기 짝이 없는 두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용무가 끝났다면 물러가도록 하라.”

버킹엄 후작의 말에 황제는 입술을 움츠리며 유더와 코델리아를 보았고,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황제에게 공손히 예를 표한 뒤 방을 나섰다.

그리고 이십여 분.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루카스 일행과도 적당히 인사를 마친 유더와 코델리아는 각기 말 위에 올라탔다.

유더는 혼자, 코델리아는 키라라와 함께.

[황제가 좀 우울해 보이지 않았어?]

[우리한테 정이 꽤 든 것 같았으니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린 황제 입장에서 유더와 코델리아는 몇 번이나 자신을 구해준 은인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집 짐승이 워낙 예쁘니까? 어린 애들은 예쁜 사람을 좋아하는 법이지.]

[음, 뭐··· 우리집 사기꾼도 얼굴 하나는 잘생겼으니까.]

코델리아가 키득 웃으며 답하자 유더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능글맞은 얼굴로 물었다.

[얼굴만 잘생겼어?]

[어?]

[얼굴만 잘생겼나구.]

유더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더니 이내 흥흥 거리며 대꾸했다.

[다른 곳은 아직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흠, 그렇단 말이지.]

유더가 씩 웃자 코델리아의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어째 여기서 더 대화를 이어나가면 또 부끄러움의 도가니탕에 퐁당 빠지게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튼 가자.”

일부러 육성을 내자 유더는 더 질질 끄는 대신 바로 말을 받아주었다.

[그래, 가자. 이왕 갈 거 즐겁게 가자고.]

굳이 메시지로 답한 것은 키라라 때문이었다.

워낙 눈칫밥을 먹고 자란 아이라 이 정도 말로도 위축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그냥 코델리아랑 단 둘이 가고 싶지만.’

말도 같이 타고, 계속 붙어있고 싶지만.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유더는 괜히 투덜거리는 대신 호쾌하게 웃었고, 그 모습에 다시 만족한 코델리아는 키라라의 허리를 와락 안으며 말했다.

“그럼 가자, 키라라.”

“네, 주인님!”

“좋아, 좋아. 가즈아!”

“가즈아!”

키라라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치자 코델리아는 까르르 웃으며 말을 출발시켰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이제 곧 제국은 물론이고 세계의 운명을 건 내전이 시작되는 건 기정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얼굴만 구기고 있을 수 없었으니까.

“가자.”

괜히 작게 말해본 유더는 말의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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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더와 코델리아 일행이 떠나고 얼마 안 있어 황제와 버킹엄 후작 역시 다시 이동할 채비를 갖추었다.

목적지는 버킹엄 후작령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자 각지의 가신들이 모이고 있는 대도시 그랑펜.

황제의 행렬은 버킹엄 후작인 합류한 이후 훌쩍 커져 호위하는 이들만 수백 명이 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 루카스와 카이사, 스칼렛은 행렬 내에서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레온과 사라처럼 로열나이트도 아니고 유더와 코델리아처럼 함부로 어찌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절대강자 역시 아니다.

애매한 위치의 외국인.

하지만 루카스는 주변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브리즈 페어리들에게 얻어낸 각종 약재로 만든 영약을 매일 복용하며 이동하는 틈틈이 수련에만 집중했다.

‘강해지고 있어.’

유더가 만든 영약의 효과는 확실했다.

데몬 프린스와의 싸움 이후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운이 급성장하여 이제 한동안 성장은 없겠거니 생각했거늘 오산이었다.

유더는 다양한 종류의 영약을 만들어 약발이 약해지는 것을 막았고, 덕분에 루카스는 매일매일 영육 모두가 쑥쑥 성장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루카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카이사와 스칼렛 역시 성장을 거듭했다.

두 사람은 하루가 멀다하고 강해졌으며, 또 아름다워졌다.

‘아, 아름다운 건 좀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영약의 좋은 기운을 흡수한 결과 카이사고 스칼렛이고 피부와 머릿결이 이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으니 말이다.

더욱이 체질개선과 체형개선 역시 이루어지고 있는 터라 루카스의 말마따나 강해진 만큼 아름다워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이는 루카스에게도 적용이 가능한 이야기였다.

매일매일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강하고 아름답게 변하는 세 사람.

사실 이는 유더와 코델리아가 선택과 집중을 택한 결과였다.

‘레온과 사라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제 와서 키우기에는 시간과 자원이 부족해.’

플레이어블 캐릭터답게 재능 하나는 부족함이 없는 레온과 사라였지만 만난 시점이 너무 늦었다.

때문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다섯 명의 레벨을 골고루 5씩 올리는 대신 세 사람의 레벨을 10 올리고 두 사람은 방치하는 선택과 집중을 택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유더가 옳았다.

세 사람은 기대 이상의 성장치를 보이고 있었다.

남을 질투하거나 비뚤어진 마음을 품는 대신 향상심을 가지고 무던히 노력하는 루카스.

남부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 묘한 경쟁 심리를 가지고 있던 카이사와 스칼렛.

세 사람의 성격과 아직은 조금 미묘한 삼각관계가 맞물리니 예상한 것 이상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했다.

그리고 하나.

유더가 아예 예상조차 하지 못 했던 변수가 존재했다.

‘뭐지, 이 감각은?’

어느 순간부터 느껴진 위화감.

검을 휘두를 때마다, 조금씩 강해질 때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을 체험했다.

마치 오래 전에 한 번 지나갔던 곳을 다시 지나가는 것 같은 기분.

망망대해를 무작정 헤매는 것과 이정표를 따라 나아가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나아간다.

저 머나먼 지평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미 한 번 지나갔던 길.

그렇기에 알고 있는 길.

세 사람의 실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세 사람의 감정 역시 강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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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일행과 헤어지고 삼일 째.

유더와 코델리아는 마침내 자이난 협곡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넓고 광활한 버킹엄 후작령이었는데, 자이난 협곡은 그 중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자리한 오지 중의 오지였다.

“아마존 같네.”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북부에 위치한 만큼 타령보다 전체적으로 추운 편에 속하는 버킹엄 후작령이었지만 자이난 협곡은 예외였다.

이상 기후가 지배하는 이곳은 열대 우림과 메마른 협곡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정확히는 메마른 협곡을 광활한 열대 우림이 휘감고 있는 형태였는데, 어찌되었든 덥고 습하다가 덥고 건조해지는, 한 마디로 살기 더러운 땅이었다.

“이제 사막만 가보면 되겠다. 그치?”

“그러네.”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다보니 여간한 지형을 다 마주했으니까.

유더는 벌레와 뱀 등이 가득할 것 같은 수풀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전생에도 별의 별 곳을 다 돌아다닌 유더였지만 묘하게도 이런 열대우림은 제대로 가본 적이 없었다.

‘어찌되었든 자이난 협곡.’

영웅전기2에서는 그렇게까지 중요한 곳이 아니었다.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레벨 노가다용 사냥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자이난 협곡보다는 차라리 인근에 위치한 카탄 산맥 쪽이 훨씬 더 중요했는데, 영웅전기2 중후반부의 주적인 7대 재앙 가운데 하나가 나타난 땅이었기 때문이다.

‘협곡에서 용무를 마친 뒤에 잠깐 들러야 할지도.’

카탄 산맥의 재앙이 등장하는 건 적어도 몇 달 뒤였지만 이미 원작의 흐름을 벗어난 지 오래인 상황이었다.

운이 좋다면 야생의 땅이나 영원의 숲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온전한 재앙이 되기 전의 재앙을 격퇴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아무튼 서두르자.”

“응!”

“네!”

코델리아에 이어 키라라가 예쁘게 답했고, 일행은 열대우림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몇 시간.

해가 질 무렵이 되자 유더와 코델리아는 야영 준비를 시작했고, 키라라는 주변 동물들과 대화를 해보겠다며 슬쩍 야영지를 빠져 나왔다.

‘그래, 잘했어. 사람이 눈치가 있어야지.’

코델리아 곁에서 멀어지자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좋다고 계속 엉기기만 하면 귀찮아 할 게 분명해. 이미 여러 번 경험해 봤잖아?’

키라라는 부정하는 대신 발걸음을 빨리 했다.

지난 번 레드 게이트에서 도망친 이후 들리기 시작한 목소리였다.

아니, 애당초 목소리인지조차 의문이었다.

그저 키라라 자신의 생각이 환청처럼 들리는 것은 아닐까, 버림받을까봐 두려운 마음에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이 아닐까.

‘이미 따라온 것부터가 실수지만 괜찮아. 코델리아는 마음이 약하니까. 눈앞에서 불쌍한 척만 조금 하면 돼. 예전에도 많이 해봤잖아?’

배신하고 배신하고 또 배신하고.

안심하고 돌아서는 코델리아의 등 뒤에 칼을 꽂는 모습이 떠올랐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광경이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키라라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스스로의 머리를 마구 때려 나쁜 생각들을 몰아냈다.

배신하지 않을 거야. 이번에는 다를 거야. 돈 때문이 아니야. 배신하지 않을 거야. 나도 배신하지 않을 수 있어. 더 이상은 배신하고 싶지 않아.

저도 모르게 눈물까지 쏟은 키라라는 그대로 몇 번이나 훌쩍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코델리아가 챙겨준 손수건을 꼭 쥐고 발걸음을 떼었다.

‘도움이 될 거야.’

이번에는 꼭.

이번만은 반드시.

단순히 둘 만의 시간을 만들어주려 나온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성의껏 동물들의 말을 들어볼 생각이었다.

마땅한 동물이 뭐가 있을까.

어떤 동물에게 이야기를 들으면 좋을까.

키라라는 주변을 둘러보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코델리아가 위험할 수 있으니 너무 멀리가지 마라 했지만 작은 동물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다보니 어느새 야영지에서 제법 먼 곳까지 오고 말았다.

[바로 저기야.]

이쪽을 어떻게 잡아먹을 수 없을까 기회를 살피는 커다란 구렁이의 말에 키라라는 보란 듯이 단검을 움켜쥔 뒤 시선을 멀리하였다.

수풀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숨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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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0장 - 선포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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