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315화 (315/473)

< 제110장 - 선포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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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네.”

야영지.

푹푹 찌는 열대 우림의 한 가운데에 있었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코델리아마저 유더처럼 비인간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기본이 되는 것은 한 평의 아늑함.

칼날노래를 비롯한 야생의 신들에게 받은 물건들 대부분이 RPG의 법칙에 따라 더 좋은 장비들로 교체된 판국이었지만 그래도 쌩쌩히 현역으로 활약하는 물건이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한 평의 아늑함이었다.

딱 한 평짜리 텐트를 만들어내는 이 도구는 이름 그대로 한 평에 한해서는 완벽한 아늑함을 선사했다.

더욱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대마법사 코델리아였다.

쉴드를 펼쳐 벌레와 더위를 막은 뒤 빙계 마법으로 쉴드 안의 온도를 낮춘다.

물론 완벽히 차단하면 숨이 막혀 죽을 테니 얼음 근처에 공기구멍을 뚫어놓은 상태였다.

여기에 유더가 극한지기의 힘으로 만들어낸 얼음 쥬스까지.

유더의 품에 안겨 쥬스를 쪽쪽 빨아먹던 코델리아는 미간을 좁히며 키라라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걱정 돼?”

“응, 찾으러 가볼까?”

“그래도 플레이어블 캐릭터인데. 거기다 템도 잔뜩 쥐어줬고. 길 엇갈릴지 모르니 일단 대기 타는 게 나을 걸?”

더욱이 요즘 보면 키라라 역시 성장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애당초 도적과 몬스터 테이머 양쪽에 적성을 가진 아이이기는 했지만, 근래 들어 도적 쪽 능력의 성장이 범상치가 않았다.

‘스칼렛을 만나서 그런가.’

가만 보면 이것저것 배우는 것 같기는 하던데.

유더가 잠시 딴생각을 하는 동안 끙끙 앓는 소리까지 내며 고민하던 코델리아는 마침내 결정했다는 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딱 10분만 더 기다려 보고나서 그래도 안 오면 찾으러 가보자.”

“10분? 20분은 안 돼?”

“응? 왜?”

코델리아가 순진하게 되물을 때였다.

유더의 커다란 손이 코델리아의 허리를 슬며시 감았고, 움찔한 코델리아는 입술을 움츠리는가 싶더니 새침한 눈으로 유더를 돌아보았다. 천천히 기어오르는 유더의 손을 쳐내는 대신 자연스럽게 입술을 맞추었다.

‘키라라가 길을 잃었을 리가.’

걔가 얼마나 똑똑한데.

아마 그냥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주려고 잠시 자리를 비운 거겠지.

‘착해.’

나중에 츄르라도- 아니, 맛있는 거라도 좀 챙겨줘야지.

마음 속으로 키라라를 칭찬한 유더는 코델리아에게 집중했다. 믿을 수 없을만치 부드럽고 말캉말캉한 감촉을 느끼며 손에 살며시 힘을 주었다.

그러자 코델리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게임에 강한 그녀답게 호락호락 끌려 다니는 대신 혀끝만으로 유더를 밀어붙였다.

어느새 시작된 공방.

유더와 코델리아의 뺨이 똑같이 달아올랐다. 잠시 입술을 떼고 달뜬 숨을 토하는 두 사람의 얼굴에 몽롱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수풀 너머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에 깜짝 놀란 코델리아는 바로 유더를 박차며 일어섰고, 유더는 마음 속으로나마 폭언을 퍼부었다.

‘츄르 취소!’

하필 돌아와도 지금이니?

하지만 유더는 금방 이성을 되찾았다. 키라라가 저리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는 것은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걸 의미했으니 말이다.

“키라라?!”

“주인님!”

수풀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키라라는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허리와 목에는 커다란 뱀을 감고 있었는데, 헉헉 거리며 거친 숨을 토한 그녀는 유더와 코델리아를 보며 다시 소리쳤다.

“아, 악마 추종자들이!”

키라라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었다. 더 이어지지 못 했다.

콰광!

무지막지한 굉음이 키라라의 목소리를 집어삼켰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보다 멀리 보았고, 알 수 있었다.

키라라가 이야기한 것.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코델리아가 유더를 돌아보았고,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같은 답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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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눈의 상급마인 카라칼은 빠르게 판단했다.

자이난 협곡을 에워싼 광활한 열대우림.

이곳에 자리 잡고 의식을 진행한 것이 벌써 4개월 째였다.

상급마인 씩이나 되는 그녀가 이런 오지 중의 오지에까지 나오게 된 이유는 하나.

제국 후방에 막대한 환란을 일으킬 재앙을 탄생시키기 위함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우림의 일부를 개간한 뒤 거대한 마법진을 형성한다.

주기적으로 제물을 바쳐가며 조금씩 의식의 완성도를 높인다.

길고 지난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4개월 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완성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왕국과 제국의 사정이 변해 이번 재앙 계획이 보다 중요해진 이 때에.

검은 머리칼의 고양이 수인 소녀.

지금까지 바친 수많은 제물들의 시신으로 가득한 구덩이를 본 그녀를 붙잡지는 못 했지만 목격은 하였다.

그렇기에 카라칼은 뒤쫓겠다는 수하들을 만류한 뒤 결단을 내렸다.

“의식을 완성시킨다.”

“예?”

가까이에 있던 수하 하나가 당황한 얼굴로 눈을 껌벅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의식을 완성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제물 또한 그러했고 말이다.

하지만 카라칼에게도 이유가 있었다.

“데몬 슬레이어들과 함께 다닌다는 고양이 수인일 가능성이 높다. 즉, 이 우림 어딘가에 데몬 슬레이어들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유더와 코델리아.

악마 추종자들 입장에서는 번번이 앞을 가로막는 역병과 같은 존재들.

“어설프게 엮이면 오히려 손해만 볼 수 있다. 그러니 일의 진행을 서두른다. 놈들이 와서 난장판을 만들기 전에 일을 완수하고 철수한다.”

일단 완성시키면 그 뒤는 문제없었다.

설사 악명이 자자한 데몬 슬레이어들이라 할지라도 재앙의 탄생을 막지는 못 하리라.

“하, 하지만 제물과 마력이······.”

하급 마인의 말에 다른 수하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무리하게 의식을 완성하려면 시간보다는 제물- 즉, 마력이 부족한 판국이었다.

“그거라면 괜찮다.”

빙긋 웃으며 말한 카라칼은 손을 휘둘렀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금발 미녀인 카라칼이었지만 그녀의 팔은 아니었다. 마치 사마귀의 팔처럼 날카롭게 변한 그것이 주변 일대를 휩쓸었고, 카라칼의 근처에 서 있던 하급 마인들과 악마 추종자들의 머리가 우수수 떨어졌다.

츄확-!

머리 잃은 시체들이 피를 분수처럼 뿜어대는 가운데 카라칼은 급히 주문을 외웠다. 하급 마인들의 마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의식을 완성시켰다.

“가라, 가려무나.”

재앙이 되어 환란을 부르려무나.

작게 속삭인 카라칼은 서둘러 마법진 밖으로 몸을 날렸다. 마법진이 방출하기 시작한 빛이 붉은 빛기둥이 되는 것을, 그 안에서 바라마지 않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환한 미소와 함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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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빛기둥이 솟구친다.

선명한 핏빛인 그것이 부서지고 흩어진다. 그리하여 안에 있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너무나 거대했기에 명확히 볼 수 있었다.

불타는 거인.

녹아내리는 존재.

용암으로 뒤덮인 붉은 거인이 괴성을 토했다. 우림 전체를 뒤흔들었고, 두려움에 잠식된 동물들은 도망칠 엄두조차 내지 못 했다.

키라라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적게 잡아도 50미터는 될 것 같은 거인을 보며 생각했다.

“달라.”

원작의 모습이 아니었다.

원작 속의 재앙은- 칠대 재앙 가운데서도 특히나 피해 범위가 막대하여 자연재해로까지 불린 불의 거인 카르트는 훨씬 더 크고 흉악하게 생긴 존재였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포효하는 저 거인이 카르트라 확신했다.

유더 또한 기존의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아직 재앙이 되기 전이야.”

광룡 얄라바스카로 거듭나기 전이었던 마도 왕국 마젤란의 인공정령.

괴수 자바워크로 변하기 전이었던 그림자 숲의 마수.

같은 논리였다. 눈앞의 거인은 아직 카르트가 되지 못 했다.

‘알 것 같아.’

원작에서 불의 거인 카르트가 등장하는 장소는 근방에 자리한 카탄 산맥이었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지진을 일으키는 불의 거인은 제국 북부에 자리한 화산들을 일제히 폭발시켜 문자 그대로 대재앙을 이끌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화산 폭발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을 뒤덮은 분진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2차 피해가 발생한 탓이었다.

그런 불의 거인 카르트.

아직이었다.

원작에서는 근 100미터 가까이 되는 놈이었지만 지금은 60미터 남짓이었다.

‘동력원. 촉매.’

광룡 얄라바스카는 마젤란의 엘프들이 만들어낸 인공 정령왕이 용맥의 힘을 흡수한 결과 탄생한 괴물이었다.

괴수 자바워크 역시 마수가 최상급 마인과 결합하여 탄생한 존재였으니, 눈앞의 용암 거인 역시 재앙으로 거듭나기 위한 촉매가 필요할 터였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무엇이 놈의 전직템이 되는 것일까.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이번에도 거의 동시에 같은 곳을 돌아보았다.

우림 너머에 자리한 자이난 협곡.

그 중심에 위치한 레이드 보스.

뱀의 왕 나가로스.

놈이 둥지를 튼 장소.

별의 기운이 뭉쳐 발산되는 용맥이 자리한 땅!

“움직여요!”

키라라의 말대로였다.

용암 거인이 움직였다.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대신 자이난 협곡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쿵! 쿵! 쿵!

지진이 일어났다. 놈이 걷는 길을 따라 불길이 치솟았다. 습기가 높은 우림이라 숲 전체가 단번에 타오르진 않았지만 방치하면 큰 불이 될 것이 분명했다.

유더는 숨을 멈췄다.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동시에 진행했다.

원작에서 놈이 등장하는 것은 두 달 후.

나비 효과로 인해 원작과 상황이 꽤 달라지긴 했지만 두 달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놈은 지금 정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60미터에 달하는 거인.

몸 길이가 150미터에 육박했던 말레키스에 비하면 작았지만, 그래도 거대했다. 너무 거대해서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타격을 입히는 것조차 무리일 것 같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해야 할 것은 재앙의 탄생을 막는 것.

자이난 협곡을 향해 이동 중인 놈을 저지하는 것.

‘걷고 있어.’

이동 속도를 계산하면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짤짤이 한다는 기분으로 지속적인 손상을 입히면 막는 것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유더!”

코델리아가 팬텀 스티드들을 소환했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각기 올라탔고, 키라라는 폴짝 뛰어올라 코델리아의 등 뒤에 매달리듯 자리했다.

“시간이 있어. 다리를 집중 공격해서 이동속도를 늦추자.”

무려 60미터에 달하는 거인이었지만 충분한 화력을 갖춘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더욱이 덩치 때문에 보폭이 크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움직임이 느린 놈이었다.

시간은 충분하다.

그러니 냉정하게 대처하면 된다.

재앙의 탄생을 막고 다시 한 번 악마 추종자들의 음모를 거꾸러트린다.

‘재앙이 되기 전에 죽인다.’

이렇게 발견한 것이 오히려 행운이리라.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너무 놀란 키라라가 딸꾹질을 하였다.

유더와 코델리아 역시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하고 말았다.

“나, 난다.”

거대한 용암의 날개.

용암 거인의 등 뒤에서 거대한 날개가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날개를 가진 것들이 대개 그러하듯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씨, 씨발?!”

저게 난다고?

걷는 게 아니라 날아서 간다고?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한 코델리아는 도리질을 쳐 잡념을 떨쳐냈다. 팬텀 스티드의 배를 차 날아올랐다.

“막아!”

유더를 태운 팬텀 스티드 역시 허공을 달렸다.

용암 거인을 향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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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0장 - 선포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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