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1장 - 자이난 협곡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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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리 교단의 네 번째 석판.
원작 진행 중 발견된 유일한 석판은 자이난 협곡에 있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개판이 된 자이난 협곡 어딘가에.
코델리아는 눈을 껌벅였다. 어버버 거리다 유더를 돌아보았고, 억지로나마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아, 아니지?”
저기 아니지?
피해 범위 밖이지?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솔직하게 답했다.
즉,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기 맞아.”
“으앙.”
네 번째 석판 찾으러 왔는데 네 번째 석판이 사라졌다니!
어째 익숙한 문장이었지만 그래서 더 서글픈 코델리아였다.
“괘, 괜찮지 않을까? 맞아! 아무리 석판이라도 솔라리 교단의 신물이잖아!”
일반적인 석판이라면 부서졌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신물이 그리 쉽게 부서질 리 없었다.
유더 역시 힘겹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괜···찮을 거야.”
아마도.
하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다.
지진과 낙석.
그야말로 와장창인 상황.
원작에서 네 번째 석판은 작은 석실 안에 들어 있었는데 석판은 둘째치고 과연 석실이 무사할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말꼬리를 흐리던 유더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자이난 협곡 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분명 큰 지진이 나긴 했지만 설사 석실이 무너졌더라도 석판이 부서진 게 아니라면 어찌어찌 찾아내는 게 가능할 것 같기는 했다.
“멀리 가지 않았기를 바라자.”
본래 있어야 할 장소 근처에 있기를.
유더의 말을 알아들은 코델리아는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그리고 십여 분 뒤.
“흐에에······.”
유더의 등에 업혀 있던 키라라가 특유의 울음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애당초 의식을 잃지는 않았지만 너무 놀라고 지쳐 넋이 나가 있던 그녀였다.
“정신이 좀 들어?”
“주···인님?”
키라라가 눈을 껌벅이며 느릿느릿 주변을 확인하였다.
넓고 단단한 유더의 등과 살짝 아래쪽에서 들리는 코델리아의 목소리.
유더의 키가 워낙 크다보니 등에 업힌 키라라도 자연스럽게 코델리아보다 머리 높이가 높았다.
그래서 코델리아는 까치발까지 세워가며 손을 쭉 뻗은 끝에 겨우 키라라의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었다.
“괜찮아, 다 끝났어. 많이 놀랐지?”
다정하게 묻자 반사적으로 머리를 숙여 코델리아의 쓰다듬을 즐기던 키라라는 몸을 움찔했다.
“히에에.”
일종의 PTSD라고 해야 할까.
수인족들은 인간보다 짐승에 가까운 부분들이 있었고, 너무 큰 두려움이나 충격을 경험하면 짐승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키라라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며 꼬리를 빳빳이 세우자 코델리아는 더욱 가엾다는 얼굴이 되었다.
“으유, 우리 키라라 불쌍해.”
[저기, 코델리아 님 때문에 저렇게 된 거 아닌가요.]
멜리사의 지적은 언제나 타당했지만 언제나처럼 무시당했다.
코델리아는 키라라의 머리를 몇 번 더 쓰다듬어 주었고, 키라라는 두려움과 안도라는 상반된 감정 속에서 고양이답게 갸르르 거렸다.
“그런데 코델리아.”
“응?”
코델리아가 쓰다듬기 편하도록 자세를 살짝 낮추고 있던 유더는 턱짓으로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커다란 바위들 밑에 깔려 혀를 빼물고 있는 하얗고 커다란 뱀의 머리.
“저거··· 아직 살아있는 거 같은데?”
“어?”
유더의 말에 깜짝 놀란 코델리아는 뱀의 왕- 나가로스를 돌아보았다.
‘분명히 막타 쳐서 경험치 먹었는데?’
하얀 빛의 고리 역시 떠올랐었고.
더욱이 코델리아가 보기에는 딱히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눈도 감은 채였고, 꼼짝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살아있는 거 맞아?”
“어, 약하지만 기운이 느껴져.”
거기까지 말한 유더는 업고 있던 키라라를 내려놓은 뒤 나가로스에게 다가섰다.
몸길이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괴수였던 만큼 머리 역시 거대해 사람 하나 정도는 우습게 삼킬 것 같았다.
“뱀의 왕 나가로스.”
자이난 협곡의 레이드 보스.
가죽과 이빨, 독 등등 하나하나가 가치 있는 알짜배기.
작게 읊조리며 눈을 가늘게 뜬 유더는 어느 순간 놈의 머리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유더야?”
유더는 대답하는 대신 조금 더 집중했다.
투시안을 사용해 꿰뚫어 보더니 나가로스의 머리 한 가운데에 수도를 꽂아 넣었다.
“흑룡촉수.”
[후대? 설마 진짜 그 이름으로 갈 건가요?]
유더가 기술명을 열심히 외치며 싸워도 무어라 하지 않던 벨렌시아였다.
벨렌시아도 생전에는 종종 유더처럼 기술명을 외쳐댔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명에도 품위과 격조가 있는 법이었다.
흑룡촉수라니. 흑룡촉수라니!
벨렌시아의 태클에 유더는 입술을 움츠렸지만 일단은 꿋꿋하게 기술을 펼쳤다.
이전에 제국의 소드 마스터들과 싸울 때 처음 사용한 기술로, 흑룡의 기운 여러 개를 마치 촉수처럼 조종하는 것이었는데 지금처럼 작고 가늘게 만들어서 정밀조종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으으음··· 직관성도 기술명을 지을 때 고려해야 할 점 중 하나이긴 하죠. 하지만 그래도······.]
벨렌시아가 미련을 못 버리는 그때 유더의 손끝에서 뻗어나간 작은 흑룡의 기운이 나가로스의 머릿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유더는 마치 내시경을 조종하는 의사처럼 투시안으로 나가로스의 머릿속을 보며 흑룡의 기운을 조종했고, 이내 작고 여린 무언가를 꽉 움켜쥐었다.
“키아아!”
꺅꺅 거리는 작은 비명 소리는 마치 새끼의 울음소리 같았다.
유더는 흑룡에 붙잡혀 끌려나온 작은 뱀의 목을 콱 눌러 잡았다.
코델리아가 깜짝 놀라 물었다.
“나가로스의 새끼야?”
“아니, 그보다는··· 나가로스의 재생체?”
뱀의 재생.
오랜 옛날부터 허물을 벗는 뱀은 불로영생의 상징물로 여겨졌다.
그리고 실제로 뱀의 왕인 나가로스는 마치 불사조처럼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이 가능했다.
“진짜 불사조 같네.”
야생의 땅에서 보았던 불사조도 본래 모습 그대로 부활하는 대신 유아체로 다시 태어났으니까.
지금의 나가로스 역시 이전의 나가로스와 완전히 같은 존재라 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았다.
“어떻게 할 거야?”
코델리아가 재차 묻자 유더는 잠시 나가로스를 내려다보았다.
반짝이는 하얀 비늘과 노란 눈동자를 가진 나가로스는 영물답게 지금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를 아주 잘 알았다.
“키이잉······.”
뱀에게도 표정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나가로스는 최대한 불쌍한 척을 했고, 유더는 씩 웃더니 코델리아와 키라라를 돌아보았다.
“키라라 주자.”
“네?”
“오!”
당황한 건 키라라였고, 손뼉을 치며 감탄한 것은 코델리아였다.
“맞아맞아. 키라라 주면 좋겠다. 지금은 새끼지만 그래도 뱀의 왕이니 도움이 될 거야. 그치? 응?”
코델리아의 제안에 키라라는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다시 유더와 나가로스를 보았다.
“키이잉··· 키이잉······.”
아직 새끼라 그런지 제대로 된 말은 못 했지만 눈빛과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제발 살려줘.
아무튼 살려줘.
얘네 무서워.
필사적이기까지 한 외침.
불사조와 마찬가지로 전생의 기억이 일부나마 남은 탓이었다.
“해, 해볼게요!”
측은지심과 어쩐지 모를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낀 키라라는 손을 번쩍 들며 말한 뒤 낑낑 거리며 나가로스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그··· 나가로스! 나,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키라라의 몬스터 테이밍은 마법이라기보다는 초능력에 가까운 기술이었다.
어쩐지 모를 부끄러움 탓에 얼굴이 빨개진 키라라가 친애의 뜻을 담아 손을 내밀자 나가로스는 바로 반응했다.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비틀어 댔다.
“하, 한대요.”
야생의 땅의 불사조가 자꾸 생각나는 이유는 왜일까.
유더가 손에 힘을 풀자 나가로스는 얼른 키라라의 팔로 옮겨 타더니 마치 오랫동안 키운 애완용 뱀처럼 키라라의 어깨 위에 자리를 잡았다.
“와, 성공한 거지? 응?”
염동력으로 폴짝 뛰어오른 코델리아가 흥분해서 묻자 키라라 역시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성공이에요. 이제 제 친구에요.”
“우와, 우리 키라라 대단해. 언니가 많이 칭찬해.”
코델리아가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키라라의 얼굴에도 다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더는 홀로 생각했다.
‘해피엔딩이구나.’
나가로스는 목숨을 건졌고, 키라라는 뱀의 왕을 얻었고, 코델리아는 키라라가 잘해줘서 행복하고.
특히 마지막 부분이 마음에 든 유더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 말했다.
“작지만 뱀의 왕이니 강한 독을 가지고 있을 거야. 잘 활용해 봐.”
“네, 주인님.”
수줍게 답한 키라라는 나가로스의 작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미소지었다.
그야말로 훈훈하고 따뜻한 광경.
하지만 오랫동안 이어지진 못 했다. 중요한 건 나가로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일단··· 가볼까?”
원작에서 네 번째 석판이 있던 장소.
협곡이 무너지며 함께 무너진 터라 지금은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좌표라는 것이 존재했다.
‘휩쓸려서 파묻혔어도 근처에 있긴 하겠지.’
대충 반경 100미터 안에 있지 않을까.
스스로 떠올린 숫자에 쓰게 웃은 유더는 코델리아와 키라라를 데리고 정해진 위치로 이동했다.
그런데 도착한 직후였다.
“어?”
코델리아가 돌연 고개를 갸웃하더니 광익을 펼쳤다. 고리까지 꺼내 온전한 천사로 화한 뒤 날개를 파닥이며 말했다.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
이러나저러나 솔라리의 신물이었으니까.
솔라리 계열 천사인 코델리아와 비슷한 기운을 방출하는 석판이었다.
코델리아는 그대로 날개를 파닥이더니 어느 한 지점으로 날아갔고, 염동력을 발휘해 잔뜩 쌓인 돌들을 걷어냈다.
그렇게 5분 남짓.
땀을 뻘뻘 흘리던 코델리아가 자리에서 폴짝 뛰며 소리쳤다.
“찾았다!”
솔라리 교단의 네 번째 석판.
코델리아의 힘에 반응했는지 옅지만 하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오오.”
감탄한 유더는 짝짝 박수를 친 뒤 코델리아가 찾아낸 네 번째 석판을 들어올렸다.
틀림없는 진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석판답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이 일어났다.
네 번째 석판을 찾은 순간 나머지 석판 세 개가 모두 공명하며 빛을 발했다.
“빨리 꺼내봐!”
코델리아의 재촉을 받으며 공간 확장 주머니를 뒤진 유더는 나머지 석판 세 장을 모두 꺼냈다.
세 장 중 두 장은 진짜였고, 나머지 하나는 유더가 내용을 베껴 만든 복제품이었지만 중요한 건 석판이 아닌 새겨진 글귀인지 셋 모두가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글자들로부터 방출된 새하얀 빛.
석판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저들끼리 맞물려 빙글빙글 도는가 싶더니 이내 석판들 사이에 열쇠 모양의 빛이 형성되었다.
‘물질생성!’
유더의 생각대로였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잔해를 비롯해 주변의 물질들을 빨아들인 열쇠 모양의 빛은 이내 실체를 가진 진짜가 되었다.
쿠르릉!
연이어 들려온 굉음.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에는 본래 석판이 놓여 있던 장소가 있었다.
“석판이 떨어져요!”
키라라의 외침에 유더는 급히 석판 쪽을 돌아보았다.
처음 날아오를 때처럼 석판들이 두둥실 바닥에 내려앉았고, 유더는 허공에 고정된 열쇠를 회수했다.
거의 사람 팔뚝만한 크기의 커다란 열쇠였다.
“코델리아.”
코델리아에게 열쇠를 건넨 유더는 석판들을 회수한 뒤 소리가 들린 발향으로 달려갔다.
겹겹이 쌓인 바위들을 걷어내며 투시안을 발동시켰다.
바위 아래 존재하는 것.
누가봐도 인공물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직육면체!
바위를 열 개쯤 걷어내자 아직 남은 바위들 사이로 하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더는 좀 더 속도를 높여 바위들을 걷어냈고, 마침내 평평한 바닥을 마주할 수 있었다.
금속처럼 매끈한 바닥 위에 새겨져 있는 솔라리의 기도문들.
하얀 빛을 발하는 문자들을 가볍게 어루만진 유더는 근처에 있던 바위들을 좀 더 걷어내 석실의 옆면을 발굴했다.
“열쇠 구멍이 있어.”
석실의 옆면. 마치 문처럼 새겨진 그림 한 가운데 위치한 커다란 구멍.
코델리아의 얼굴이 흥분으로 달아올랐다.
열쇠와 구멍이 있는데 여기서 끼워보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었다.
“열께!”
코델리아는 들고 있던 커다란 열쇠를 구멍에 꽂아 넣은 뒤 힘을 줘서 돌렸다.
그러자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우르르 하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히아아.”
키라라의 감탄과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빛.
석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
< 제111장 - 자이난 협곡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