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3장 - 마음대로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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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후.
세일룬 왕국의 왕도 칼리움.
체이스 백작은 시선을 멀리한 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나.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바이엘 백작의 물음에 체이스 백작은 다시 씩 웃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닐세. 다만······.”
말끝을 흐리던 체이스 백작은 다시 웃었다.
평소 엄격 근엄 진지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그가 이렇게 연속해서 웃는 것은 무척이나 드문 일이었다.
“이상하게 자꾸 웃음이 나는군. 뭔가··· 염원하던 일이 마침내 이루어진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음··· 알 수가 없군. 하지만 자네는 예전부터 감이 좋았으니까. 어쩌면 유더나 코델리아에게 뭔가 좋은 일이 생긴 걸지도 모르겠군.”
“그럴지도.”
지금도 제국 땅 어딘가를 누비고 다닐 두 사람을 생각하면 걱정으로 마음 한 구석이 안 좋기는 했지만, 어딜 가든 잘하고 있으리라.
훗 하고 웃는 것으로 마음을 다스린 체이스 백작은 다시 정면을 보았다.
작년 건국기념회 때 묵었던 별궁의 정원은 올해 역시 아름다웠다.
‘전쟁인가.’
세일룬 국왕 헨리3세는 다프네 왕세녀가 들을 수 있다는 ‘천상의 목소리’를 근거로 삼아 놀라운 주장을 했다.
제국이 내전을 개시할 예정이고, 재상부는 이미 악마 추종자들에게 장악된 상태다.
제국의 섭정을 맡은 황태후는 다프네 왕세녀와 마찬가지로 천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왕국과 제국이 협력하여 악마 추종자들을 말살하여야 한다.
쉬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믿지 못 할 이야기도 아니었다.
이미 왕국에는 호국공의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평생을 바쳐 세일룬 왕국을 수호한 구국의 영웅조차도 악마 추종자들의 유혹을 이기지 못 해 타락하고 말았으니, 제국의 재상이라 하여 악마 추종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천상의 목소리를 통한 협력······.’
헨리3세와 다프네 왕세녀는 천상의 목소리를 저 머나먼 천계- 태양신 솔라리를 비롯한 여러 신들의 고향에서 내려오는 목소리라 주장했다.
아예 믿지 못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세일룬 왕가는 반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건국왕 리처드의 피를 강하게 이어받은, 소위 말하는 신혈의 일족이었다.
덕분에 다들 특별한 능력을 타고 났으니, 다프네 왕세녀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것도, 더욱이 그 목소리가 천계의 것이라는 것도 이상한 일까지는 아니었다.
만약 악마의 목소리였다면 왕도에 두루 쳐져 있는 수호진이 이미 그 목소리 자체를 쳐냈으리라.
‘하지만 협력은 천상의 논리에 불과하다.’
신의 눈으로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왕국과 제국은 적대국이었다.
실라테스 평원을 놓고 백 년을 넘게 싸워온 숙적이었으니 일시적으로 손을 잡는 것 까지는 가능해도 향후 영구적인 평화를 누리거나 하는 일 따위는 불가능했다.
‘중요한 것은 내전 이후.’
공교롭게도 공공의 적인 재상부가 장악하고 있는 땅은 세일룬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즉, 대륙 북부에 자리한 황제의 세력과 남부에 자리한 세일룬 왕국 사이에 재상부가 끼어있는 형국이었다.
그렇다면 양쪽에서 재상부를 압박하는 것이 가능했다.
황제는 남진하고, 왕국은 북진하면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내전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국왕폐하께서는 내전 중에 차지하게 된 제국의 땅을 황제에게 돌려주실까?
여기서부터는 인계의 문제였다.
그리고 체이스 백작은 길든 짧든 제국과의 전쟁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냐고 묻기에는 무슨 생각을 할지가 뻔하군.”
바이엘 백작의 말에 체이스 백작은 흥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품안을 뒤지며 말했다.
“허튼 소리는 그쯤하고, 각오나 단단히 하게나. 오늘 밤 또한 전쟁일 터이니.”
체이스 백작이 내민 것은 왕도의 명물 가운데 하나인 메이브 경매장의 참가권이었다.
아무래도 왕도에서는 그 세가 약해지는 북부의 귀족이라고는 하나, 이름 높고 강력한 힘을 가진 북부12가문의 가주들조차도 참가권이 없으면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메이브 경매장이었다.
“주니까 받기는 하겠다만 구하고 싶은 물건이라도 있나?”
“이번이 아마 전쟁 전의 마지막 경매일 테니까. 이것저것 좀 챙기고 싶은 게 있다네.”
“음······.”
또 정력제를 잔뜩 사려는 건가.
물론 손주가 보고 싶은 건 바이엘 백작도 마찬가지인 터라 딱히 말릴 생각은 없었다.
‘다만 필요가 없지 않나 싶을 뿐.’
지난번 왕도에서의 싸움이후 게일은 수인족 뺨치는 육체능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남부의 전설에 나오는 신수 펜리르와 비슷한 존재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첫날 밤에도 3일이나 나오지 않았고······.’
게일보다는 늘 아델리아가 걱정되는 바이엘 백작이었다.
그렇게 두 백작이 동상이몽을 이어나갈 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작 각하.”
“마이아?”
마이아 탄탈롯.
어린 시절부터 유더와 함께 자라다 못 해 사실상 유더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바이엘 가의 메이드.
아니, 이제는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가의 메이드 장이자 다모스 산 일대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실세 중의 실세였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바이엘 백작 입장에서는 오래 보아온, 과장 조금 보태서 딸 같은 아이였다.
반가운 마음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오랜만이구나.”
“예, 건강하신 것 같아 기쁩니다.”
사실 그렇게 오랜만도 아니었다.
게일의 결혼식 때 보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반가운 것은 반가운 것이었으니, 마이아가 체이스 백작에게 예를 표하는 동안에도 미소가 가시지 않는 바이엘 백작이었다.
‘그러고 보니 마이아도 얼른 혼처를 찾아야 할 터인데.’
아끼는 아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꽃과 같이 아름다운 마이아였다. 인상이 조금 차갑긴 해도 속마음은 따뜻하기 그지없으니 누굴 만나든 사랑받고 잘 살리라.
‘으으음······.’
어디 괜찮은 녀석이 없을는지.
바이엘 백작이 아저씨다운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 체이스 백작은 조금 더 현실적인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네가 여기엔 무슨 일이더냐. 달리아까지 함께.”
사실 같이 다니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다.
달리아는 유더와 코델리아가 함께 다스리는 어거스트 백작령의 기사단장이었으니, 메이드 장이자 실세인 마이아를 보호하기 위해 함께 움직이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었다.
“예, 다름이 아니오라··· 도련님이 부탁하신 일이 있어서 두 분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유더가?”
“예, 떠나시기 전에 제게 맡기고 가신 물건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책상 위에 편지와 함께 놓고 간 물건이었다.
“무엇이지?”
체이스 백작이 재촉하자 마이아는 누가 봐도 단정한 손동작으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들었다.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지면 두 분 백작님 앞에서 열어보라는 편지를 남기셨습니다.”
코델리아가 보았다면 네가 무슨 제갈공명이나 조조냐고 무어라 했겠지만 이 자리에 삼국지를 아는 자는 없었다.
“유더가?”
“그 녀석이······.”
하지만 유더의 비범함에 대해서는 이미 알만큼 아는 두 백작인 만큼 가벼이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체이스 백작이 주머니를 열기 전에 물었다.
“녀석이 말한 상황이 무엇이지?”
“제국과 왕국의 긴장이 강화되었을 때. 제국의 내전에 관한 소문이 들려올 때, 제국으로 떠나신 도련님과 아가씨의 연락이 한 달 이상 끊어졌을 때입니다.”
“과연.”
유더 그 녀석은 제국에서 내전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인가.
“알겠다. 열어보도록 하지. 알렉스?”
“자네가 열게.”
바이엘 백작의 말에 체이스 백작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마이아가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있던 주머니를 들어 올렸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주머니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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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코델리아는 눈을 뜨자마자 멍한 소리를 뱉었다.
하늘.
맑은 하늘.
낮.
아침은 아닌 것 같고 아무튼 낮.
머리가 멍하고 온몸에 힘이 없었다.
나른함 그 자체.
아니, 체력을 한계까지 쥐어짜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 그런 상태.
그대로 멍하니 눈을 깜박이던 코델리아는 비로소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으으.”
또 의식을 잃었구나.
연속해서 밀려드는 어마어마한 환희와 끝없이 이어지는 격렬함에 몇 번이나 의식을 잃었으니까.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일단 무지무지하게 좋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죽을 거 같은 것두.’
좋긴 좋은데, 너무 힘들다.
“흐으으.”
기지개를 켤 힘도 없어서 누운 채 부들부들 떤 코델리아는 억지로라도 상체를 일으켜 세우려 노력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우리 공주님, 일어났어요?”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흠칫한 코델리아는 목소리를 따라 눈동자를 굴렸고, 이내 자신 앞에 당도한 유더를 볼 수 있었다.
‘얜 지치지도 않나?’
그야말로 멀쩡함 그 자체.
아니, 오히려 힘이 더 넘치는 것 같았다.
얼굴에도 생기가 가득했고 말이다.
“배고프지? 밥 먹자.”
배가 고픈 것은 사실이었기에 코델리아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유더는 일단 코델리아에게 포션부터 주었다. 제법 강력한 체력 회복 포션이었는데, 끔찍하게 비싼만큼 효과도 좋은 물건이었다.
“후아아······ 이제 좀 살겠네.”
겨우 목소리를 토한 코델리아는 일단 상체부터 일으켜 세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나 예상대로 아침이 아닌 낮이었다.
“자, 소화하기 좋게 죽을 준비했어.”
어디서 났는지 낮은 상까지 준비해서 음식들을 하나하나 내어놓는데, 종류가 실로 다양했다.
죽, 국, 구이, 조림, 튀김 등등.
척 봐도 몸에 좋아 보이는 음식들이 한 가득이었다.
“저기, 이거 만드레이크 아냐?”
“어, 맞아.”
“저건 산삼이고.”
“그것도 맞아.”
“저건 장어?”
“정답.”
“이건 일단 몸에 엄청 좋은 버섯이겠지?”
“훌륭한 안목이십니다. 자양강장에 좋은 음식들이죠.”
유더의 뻔뻔한 설명에 코델리아는 눈을 가늘게 떴고, 유더는 코델리아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우리 공주님 몸이 너무 약한 것 같아서 특별히 준비했어. 이거 먹고 힘내자, 응? 어유, 볼 훌쩍 들어가서 수척해진 거 봐.”
유더가 안타깝다는 듯 걱정하는 얼굴로 말하자 코델리아는 감동의 눈물을 뚝뚝 흘리는 대신 미적지근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저기요, 내가 약한 게 아니라 너님이 말도 안 되게 강한 거거든요?”
카이사의 책에 나오는··· 그러니까 막 판타지로 범벅이 된 등장인물들도 너처럼은 못 하거든요?
그리고 누구 때문에 수척해졌는데.
어? 누구 때문에 수척해졌는데!
코델리아의 타당한 항의를 한 귀로 흘려들은 유더는 일단 죽부터 한 숟갈 떠서 코델리아에게 내밀었다.
“자, 아 해봐. 아.”
“아우 진짜.”
하지만 왜일까.
입을 아 하고 벌리고 싶은 것은.
코델리아는 주변에 누가 없는지를 슥슥 살핀 뒤 입을 아 하고 벌렸다.
멜리사는 자기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코델리아가 수치사 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찌되었든 아.
“응응, 잘 먹는다. 우리 애기 잘 먹어요.”
이게 진짜.
가만 놔뒀더니 뭐라는 거야.
하지만 짜증과는 별개로 이상하게 가슴 한 쪽이 또 두근두근 거렸다.
마치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즐겁다는 듯이 말이다.
“자, 다시 한 입.”
유더가 푸고 코델리아가 먹고.
배가 고파서 그런지 신기하게 주는대로 팍팍 배 안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완식했을 때.
유더가 손수건으로 코델리아의 입을 닦아주며 물었다.
“어때? 약발이 좀 들어?”
아무래도 밥에 약까지 친 모양이었다.
“으음··· 어느 정도?”
확실히 체력이 확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게임으로 치면 여관에서 하룻밤 자거나 완전회복 포션을 먹은 기분?
“음, 좋아. 운동도 하고, 몸에 좋은 것도 더 먹어서 체력을 기르자.”
“···차라리 회복 마법을 쓰는 건 어떨까.”
힐이랑 리커버리를 병용한다거나.
별 생각 없이 내놓은 제안에 유더의 눈이 번쩍였다. 덕분에 당황한 코델리아는 어버버 거리며 말했다.
“아니, 나중에. 어, 나중에.”
지금 말고 나중에.
좋긴 좋은데, 너무너무 좋은데 지금은 뭔가 너무 끌려가는 느낌이었으니까.
당하기만 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질 수 없지.’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 없지.
이쪽도 기술을 연마해서 제대로 반격을 해줘야지.
묘한 곳에서 경쟁심리가 발동한 코델리아가 각오를 다질 때였다.
“그럼 연습해야겠네?”
“어?”
“방금 그런 생각하지 않았어?”
그리 말하며 유더가 코델리아의 허리를 안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또 바짝 붙어 앉은 상태였다.
“아니이··· 그··· 어! 연습! 연습하고 나서. 어, 그래. 연습한 다음에.”
“어떻게 연습하려고?”
“어?”
“아니, 연습한다며. 그럼 어떻게 연습할 건데.”
외통수였다.
혼자서도 무리고 남하고는 더더더 절대로 무리였으니까.
“어··· 그게··· 어······.”
빨개진 얼굴로 주저주저하는 사이 어느새 또 자리에 눕혀졌다. 유더의 커다란 몸이 하늘을 가려버렸다.
그리고 들려오는 작은 속삭임.
“내가··· 얼마나 참았는지 알아?”
야생의 땅에서 지금까지.
코델리아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오싹한 기분에 등골이 서늘했다. 하지만 동시에 기대와 흥분으로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하, 한 번 만이야. 알았지?”
오늘은 꼭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
파이어 페어리들도 만나고, 가리우스의 무덤도 둘러봐야 하니까.
코델리아가 타이르듯 소심하게 말하자 유더는 무어라 답하는 대신 코델리아의 귀를 살짝 깨물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는 코델리아의 쇄골을 어루만지며 다시 한 번 짐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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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 후대는 정말 짐승이에요.]
벨렌시아의 목소리에는 뼈가 있었다.
어떻게 검을 동시에 두 자루나 쓸 수 있냐고 타박할 때와 비슷하게 말이다.
거기에 더해진 약간의- 아니, 그냥 커다란 부끄러움과 민망함.
하지만 유더는 적당히 흘려들은 뒤 언덕 아래 펼쳐진 별의 무덤을 바라보았다.
서쪽에서는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노을이 번지는 가운데 파이어 페어리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 저마다의 빛을 발했다.
‘역시··· 평범하게 놀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네.’
그보다는 차라리 무덤을 지키고 있다는 쪽이 맞을 것 같았다.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사실 코델리아가 자고 있을 때- 그러니까 아침에 홀로 별의 무덤에 내려가 본 유더였다.
하지만 가리우스의 무덤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무언가 강력함 힘에 의해 숨겨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흐으음, 그랬구요. 그거 때문에 낮 시간은 그냥 기다린 거군요. 그런 거겠죠?]
미적지근한 벨렌시아의 말에 유더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시간이 되었고, 페어리들이 나타났으니 이제 정말 일을 진행해야만 했다.
챔피언 가리우스.
솔라리 교단의 위대한 기사.
그의 무덤에 숨겨져 있는 솔라리 교단 최후의 비보.
“기분이 좀 묘해.”
코델리아의 목소리였다.
유더의 옆에 선 그녀는 머리를 뒤로 한데 묶은 뒤 천사의 광익을 펼치며 말을 이었다.
“묘한··· 기분이 들어.”
여기까지 오며 수많은 보물들을 얻어왔다.
숨겨진 장소도 몇 개나 찾아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분이 달랐다.
무언가- 숨겨진 비밀에 다가서는 기분.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될 것만 같은 예감.
“괜찮아? 조금 더 쉬지 않아도 돼?”
“누구누구 때문에 엄청 지쳤지만 포션도 많이 마셨으니까 괜찮아.”
“그래, 이제부터 매일 연습하자.”
능청스럽게 말하는 유더의 엉덩이를 발로 한 대 차준 코델리아는 문라이트를 고쳐 쥔 뒤 숨을 깊이 삼켰다.
“가자.”
파이어 페어리들에게 가호를 갈취- 아니, 얻어내고 가리우스의 무덤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기 위해.
그리고 그곳에 숨겨진 비밀.
유더와 코델리아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쏟아지는 달빛을 받으며 나란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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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3장 - 마음대로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