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4장 - 수호자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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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의 문 안 쪽에는 검고 어두운 공간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하늘과 땅이 서로 섞여 분간할 수 없었고, 고요가 만들어낸 적막에 절로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그랬기에 보다 눈에 띄었다.
어둠 속에 홀로 빛나고 있는 문.
밝고 환한 빛은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어둠에 집어삼켜질 것처럼 위태롭고 외로운 빛이었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깍지 낀 손에 힘을 주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가까이서 보니 하얀 문은 생각이상으로 거대했다.
“태양의 문이야.”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작에서, 그리고 현생에서도 몇 번이나 본 솔라리의 문이었다.
“위태로운 순백······.”
낮게 읊조린 유더는 공간 확장 주머니를 열었다. 그러자 네 번째 석판을 발견했을 때처럼 석판들이 절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구멍에 맞추자.”
유더가 석판 두 개를 건네자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태양의 문을 보았다. 중앙에 자리한 솔라리의 문장 밑에 구멍이 네 개 있었는데, 석판들과 마찬가지로 삼각형 모양이었다.
“예상대로 별 모양이야.”
오망성의 다섯 모서리.
구멍이 네 개인 이유는 이미 한 곳은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저것이 다섯 번째 석판.
“나부터 넣을게.”
유더가 석판을 구멍에 가져다대자 마치 자석처럼 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두 번째 석판에서는 더 강한 힘이 느껴졌고, 석판을 하나씩 끼울 때마다 문 자체가 발하는 빛 역시 강해졌다.
위태로운 순백에서 작렬하는 황금으로.
아침의 영광을 이끄는 빛으로.
마른 침을 꿀꺽 삼킨 코델리아는 자기 몫의 석판을 구멍에 가져다 대었다.
하나씩 끼울 때마다 코델리아의 고리와 광익 역시 반응을 보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네 개의 석판이 모두 제자리를 찾았을 때.
태양의 문에서 일어난 찬란한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집어삼켰다. 주변 일대를 빛으로 가득 채웠다.
“솔라리······.”
태양의 대천사.
플레이아데스의 인간들에게 태양의 신으로 추앙받던 다정한 여인.
문이 열렸다.
황금빛 태양의 문 너머에는 의외로 다시 어둠이 번져 있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시간.
붉은 노을과 보랏빛 하늘. 저 멀리서 하나둘 눈을 뜨는 작은 별들.
여기까지 와서 물러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유더는 코델리아의 손을 살며시 놓더니 앞으로 나섰다. 혹시 모를 위험에서 코델리아를 지키듯 아예 몸으로 가린 뒤 문 안으로 들어섰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공간이었다.
솔라리 교단의 신전 중에 비슷한 것이 있었다.
기둥 사이로 밀려오는 노을의 빛과 새하얀 바닥과 천장.
곳곳에 황금으로 새겨진 글씨.
“예쁘다.”
코델리아가 감탄하여 작게 말할 때 유더는 시선을 멀리하였다.
신전의 중심에 자리한 솔라리의 조각을 눈에 담았다.
흔히 발견되는 것처럼 검을 높이 들고 전의를 북돋는 모습이 아니었다.
솔라리는 자리에 앉아 여섯 장이나 되는 날개를 모두 늘어트리고 있었다. 허벅지 위에는 완전히 무장한 성갑의 기사가 그런 솔라리에게 안기듯 누워 안식을 맞이했다.
“피에타.”
미켈란젤로의 명작과 닮은 구도였다.
작게 중얼거린 유더는 솔라리의 조각상을 향해 나아갔다. 품에 안겨 있는 것은 가리우스가 분명했다.
“크다.”
가까이서 보니 실물사이즈가 아니었다.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솔라리의 머리 높이가 5미터는 훌쩍되는 것 같았다.
“마침내 당도했구나.”
단정하면서도 낮은 목소리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흠칫하며 정면을 보았다.
솔라리의 조각 아래 잘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칼과 떡 벌어진 어깨를 자랑하는 훌륭한 체구.
성직자들이 즐겨 입는 성의를 입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전사인 그였다.
“태양의 챔피언 가리우스 님을 뵙습니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공손히 예를 표하자 잘생긴 남자는- 가리우스는 머쓱한 얼굴로 웃었다.
“나도 반갑다. 그리고 너무 예를 차리지 않아도 된다. 여기 있는 나는 무덤을 지키기 위해 남겨진 사념에 불과하니 말이다.”
말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자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침내’라는 표현조차도 상투적인 인사말일 뿐 실제로 기다림을 느꼈다고 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굳이 방정맞게 구는 대신 공손한 자세를 유지했고, 가리우스의 사념은 쓰게 웃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석판의 인도를 모아 이곳에 당도한 이들이여. 그대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이곳은 나의 무덤이다. 동시에 교단의 가장 위대한 비보로 이어지는 최후의 관문이기도 하지.”
교단의 마지막 비보.
저 위대한 챔피언 가리우스의 무덤마저도 비보로 이어지는 중간 단계에 불과하게 만드는 그것.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이 정도로 소중하게 여겨질 만한 것들 가운데 둘은- 솔라 블레이드와 성검 클라우 솔라스는 이미 세상에 나와 있었기에 더욱 범위를 좁힐 수 있었다.
하지만 유더는 굳이 입에 담는 대신 가리우스의 말을 경청했다.
그의 제자들- 그러니까 이제까지 석판들이 숨겨져 있던 성전사들의 무덤처럼 바로 천사들이 튀어나와 자신들을 경계하는 대신 가리우스의 사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석판은 이미 다 모았다.
석판에 접근하는 자라면 누구든 공격하는 무덤의 수호자들도 없었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하나.
“너희에게 교단의 비보를 맡길 수 있을지, 너희에게 그럴만한 힘과 자격이 있는지 시험을 치르겠다.”
예상대로의 수순이었다. 게임이든 소설이든 클리셰라 할 수 있는 전개였으니 말이다.
‘문제는 시험이 뭐냐는 거지.’
이제 와서 갑자기 교리 해석 같은 시험이 내려오면 아무리 유더와 코델리아라 해도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뭘 고민해. 어차피 싸우는 거겠지. 안 그래?]
코델리아가 속편한 얼굴로 메시지를 보내자 유더는 미간을 좁혔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괜찮아, 괜찮아. 힘을 시험해본다잖아. 그럼 무조건 전투지. 어쩌면 가리우스랑 싸우는 걸지도 몰라.]
오히려 호승심이 솟는다는 듯 씩 웃은 코델리아는 문라이트를 고쳐 쥐었고, 유더는 한숨을 토했다.
두 눈 가득 전의를 불태우는 코델리아가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중증이군요. 이 정도면 진짜 병이에요.]
벨렌시아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 유더는 코델리아의 허리를 안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르며 다시 가리우스의 사념을 보았다.
“시험에 응할 수 있는 것은 한 명 뿐이다. 그 한 명이 통과하면 같이 온 자 역시 통과가 가능하고, 그 한 명이 실패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두 번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단호한 선언에 코델리아는 예상 외라는 듯 미간을 좁혔다. 본래 이런 시험은 무한 리트라이가 기본이었으니까.
그런데 딱 한 번뿐이고, 참가할 수 있는 것도 한 명 뿐이라니.
“누구와 싸우는 거죠?”
이미 시험 이퀄 전투라고 단정 지은 코델리아의 물음에 가리우스의 사념은 옅은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누가 시험에 응시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둘 중에 누가 나올 것이지?”
참가자에 따라 싸울 대상이 바뀐다.
어쩌면 약점을 찌르는 상대가 나오는 구조일지도 몰랐다.
[진짜 그런 식이면 머리 굴려봐야 소용없나.]
어차피 누가 나오든 약점을 찔릴 테니까.
코델리아가 입술을 깨물며 살짝 불평하자 유더는 코델리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할게.”
맥락상 일대일 전투가 될 가능성이 높았고, 둘 중 일대일 전투에 특화된 것은 유더였다.
코델리아는 원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쪽에 특화되어 있었다.
“후우··· 어쩔 수 없지. 다치지 말구. 알았지?”
“튼튼한 거 알잖아?”
요 이틀간 질리도록 느꼈을 테고.
유더가 장난스럽게 윙크하자 얼굴을 붉힌 코델리아는 괜히 유더를 한 대 툭 친 뒤 가리우스의 사념을 돌아보았다.
“얘가 나갈 거예요.”
“과연 그러한가.”
가리우스의 사념이 미소 지은 순간 신전 전체가 변모했다.
애당초 실체가 아닌 환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솔라리의 조각상이 신전 끝으로 쭉 밀려났고, 대신이라도 되듯 중앙에는 커다란 경기장이 치솟았다.
가로 세로가 각기 적어도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정사각형 경기장.
높이도 1미터쯤은 되는 것 같았다.
“시험에 응할 자는 경기장에 오르라. 그대가 기억하는 최강의 검사가 시험을 내릴 것이니.”
가리우스의 말은 조금 의외였다.
약점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검사가 나온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쉬운 상대는 절대 아닐 터였다.
‘내가 기억하는 최강의 검사?’
다시 말하자면 유더 자신이 알고 있는 검사들 가운데 가장 강한 자.
‘란디우스 스승님은 아닐 테고.’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긴 했지만, 도무지 검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역시 카마엘이나 벨렌시아 둘 중 한 명이 나오는 것일까?
[제가 나올 가능성이 높겠군요.]
벨렌시아의 말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카마엘··· 그는 검귀라 불릴 만한 실력의 소유자지만 아직 검리에는 닿지 못 하였으니까요.]
그러니 벨렌시아 자신이다.
하지만 유더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하지만 벨렌시아 님을 제대로 경험해본 적은 없으니··· 어쩌면 엘룬이나 제일검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엘룬일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제일검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왕도의 싸움에서 마주했던 제일검은 당시의 유더에게는 절망 그 자체나 다름이 없었으니 말이다.
“누가 나오든 잘 할 거야. 아까 말했듯이 다치지 말구. 알았지? 여차하면 바로 항복하거나 경기장 밖으로 뛰어내리는 거다?”
게임이 아닌 현실이니까.
코델리아의 걱정 섞인 당부에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내친 김에 손을 뻗었다. 코델리아를 품에 안고 입술을 맞춘 뒤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다녀올게.”
“다녀와. 그리고 다녀오면··· 다음을 이어서 하자.”
나름의 응원일까.
코델리아가 빨개진 얼굴로 한 말에 멜리사와 벨렌시아는 동시에 괴로움을 표했지만 유더는 빙긋 웃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연인의 이마에 다시 한 번 입술을 맞춘 뒤 경기장에 올랐다.
하늘이 변했다.
노을에서 황혼으로, 밤이 오기 직전의 시간으로.
바람이 불었다.
경기장 주위를 어둠이 에워쌌고, 유더의 맞은편에 빛이 모여 사람의 형상을 이루었다.
‘일단 남자.’
키가 컸다. 유더 자신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180 중후반은 될 것 같은 키였다.
검은 머리칼 아래 눈과 코를 가리는 검정색 부분 가면을 쓰고 있었고, 허리에는 한 자루 장검을 차고 있었다.
갑옷은 경갑. 이렇다 할 장식 없이 온통 검정 일색인 옷.
‘누구지?’
카마엘은 저렇게 크지 않았다. 제일검과 체격은 비슷했지만 느낌이 전혀 달랐다.
엘룬과 벨렌시아는 더더욱 아니니 그야말로 영문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기억하는 최강의 검사.
누구일까. 설마 전생의 기억까지 포함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혹여 현생에서 만나지 않은, 영웅전기3편의 인물들까지 포함하는 것은-
[후대!]
벨렌시아의 외침과 동시에 눈앞이 번쩍였다.
검은 가면의 사내가 검을 뽑아든 그 순간 십 미터 넘게 떨어져 있던 거리가 0이 되었다.
막는다.
수도를 놀렸다.
검이 밀려오는 각도에 맞춰서 팔의 위치를 조절했다.
그리고 찔렸다.
사내의 검이 수도 위로 미끄러지는가 싶더니 상상도 하지 못 했던 곳에서 갑자기 각도를 바꿔 찌르고 들어왔다.
“큿?!”
유더는 급히 뒤로 몸을 튕겼지만 상대가 그것을 두고 보지 않았다. 추적하듯 마찬가지로 지면을 박찼다.
[후대!]
유더도 알았다. 바로 구천구문의 힘을 발했다. 기어를 올리듯 일문부터 칠문까지를 연달아 개방해 강력한 기파를 연속해서 발산했다.
쾅! 쾅! 쾅! 쾅! 쾅!
충격에 공간이 뒤흔들렸다. 검은 가면의 사내를 밀쳐내기에 충분한 힘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밀려나지 않았다.
유더가 칠문의 힘을 발한 그 순간 검을 휘둘렀다. 충격파 그 자체를 베어 갈라지게 만들었다.
“하!”
그 순간 유더가 흑뢰번천을 펼쳤다. 배후를 점하는 것이 아닌, 그저 사내와의 거리를 벌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콰강!
검은 번개가 쳤다. 수십에 달하는 그것들이 하늘을 뒤덮었다.
엘룬조차도 흑뢰번천을 발동시킨 유더가 정확히 어디로 이동할지는 간파하지 못 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유더가 검을 휘두르는 순간을 포착해 맞상대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검은 가면의 사내는 달랐다.
검은 번개가 친 그때 이미 시선을 돌렸다. 유더가 택한 진퇴로를 정확히 간파해 돌진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면에 안착하자마자 유더는 다급히 수도를 휘둘러 사내의 접근을 차단하려 했다.
검기가 하늘을 갈랐다. 그리고 다시 사내가 검을 휘둘렀다. 유더의 검기를 똑같은 검기로 맞상대하는 대신 허공을 그어 파훼했다. 유더의 검기는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단숨에 흩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어떻게.
벨렌시아는 알았다.
흑뢰번천을 단번에 간파한 것도, 허공을 베어 검기를 분쇄한 것도 모두 하나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아니, 벨렌시아는 확신했다.
[검리에 닿았어요!]
이치에 닿았다. 근원에 도달했다.
눈앞의 사내는 지평을 바라보는데 그치지 않고 마침내 도달한 자였다.
[후대!]
콰강!
다시 한 번 흑뢰번천이 작렬했다. 평소의 유더였다면 심리의 허를 찌르기 위해 오히려 검은 가면의 사내 방향으로 돌진했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흑뢰번천을 간파하는 상대였다.
돌진하는 순간 허리를 베일 것이 분명했다.
‘침착하자.’
진정하자.
유더는 의식을 가속시켰다. 짧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 생각할 시간을 만들었다.
검리에 도달한 상대와는 싸워본 적이 없었다.
벨렌시아와의 대련은 말 그대로 대련에 불과했다.
때문에 유더는 정보에 집중했다.
일단 상대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검리에 도달한 자.
검은 머리칼.
180중후반의 키.
거기까지였다.
유더는 순간적으로 숨을 멈추었다.
지면에 안착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흑뢰번천을 간파한 검은 가면의 사내가 정확히 이쪽으로 몸을 날렸기 때문도 아니었다.
‘데몬베인?!’
검신 전체가 은색인 성검.
유더 자신이 루카스에게 넘겨준 비보.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었다. 유더의 정신을 순간이나마 마비시킨 것은 사내의 검이 아닌 검술이었다.
‘바람의 검.’
몇 수 보지 않았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바이엘 백작가에 전해지는 바람의 검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떻게.
설마 하니 아버지란 말인가? 그도 아니면 형?
둘 다 아니었다.
유더는 수도를 휘두르는 대신 마구잡이로 흑룡의 기운을 발산했다. 검은 가면의 사내가 이번에도 우아하기까지 한 검격으로 흑룡의 기운들을 분쇄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거친 숨을 토하며 소리쳤다.
“벨렌시아!”
쾅!
유더의 등 뒤에서 빛이 작렬했다. 지금껏 침묵하고 있던 드래곤 슬레이어 아스카론이 빛을 발하며 솟구쳐 올랐다.
벨렌시아였다.
그녀가 유더의 힘을 빌려 아스카론을 조종하였다. 일종의 어검술이었다.
카카카카카캉!
아스카론이 맹렬한 빛을 발하며 검은 사내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벨렌시아의 기량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세로 밀어붙이던 아스카론은 겨우 몇 수만에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좋았다. 유더는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다. 벨렌시아가 만들어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바람의 검을 펼쳤다.
풍뢰열광참.
검은 가면의 사내는 그것을 보았다.
벨렌시아와 겸격을 교환한 직후이기에 유더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지만 이해했다. 검리를 깨우친 그에게 유더의 검은 닿을 수 없었다.
콰가가가가가-!
폭풍같은 연격이 허공만을 갈랐다.
검은 가면의 사내는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풍뢰열광참을 무효로 돌렸다.
앞의 다섯 수는 피하였고, 뒤의 일곱 수는 검으로 흘려보냈다.
최후의 일격에는 똑같이 공격을 펼쳐 정확히 상쇄시켰다.
콰가강!
소드 오리진과 하나된 이후 처음으로 유더의 팔이 피로 물들었다.
유더는 뒤로 크게 튕겨져 나갔고, 벨렌시아가 조종하던 아스카론 역시 멀리 날아가 지면을 뒹굴었다.
하지만 검은 가면의 사내 역시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최후의 일격을 교환한 그 순간 유더가 흑룡의 기운을 단숨에 발산한 덕분이었다.
사내의 옷 곳곳이 찢어졌다.
검은 가면 역시 일부가 부서졌다.
유더는 거친 숨을 토하며 그런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이제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바로 다시 검을 드는 대신 손을 들어 부서진 가면을 벗었다.
검은 머리칼이 흩어지며 예상대로의 얼굴이 드러났다.
유더 바이엘.
유더 자신의 얼굴.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가리우스는 분명 유더가 기억하는 최강의 검사가 나올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저 유더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강진호가 기억하는 영웅전기2의 유더?
아니었다.
영웅전기2의 유더는 검리에 닿지 못 했다.
바람의 검 또한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인가.
가리우스가 설마 거짓을 말한 것일까?
유더가 숨을 골랐다. 벨렌시아가 의식을 집중했다.
그리고 직후.
검은 가면의 사내는- 또 하나의 유더는 검을 길게 늘어트렸다. 한 걸음을 내디디며 유더와 벨렌시아는 물론이고 경기장 밖에서 지켜보던 코델리아마저 절망에 빠트릴 한 마디를 내놓았다.
“구천구문.”
선인의 신공.
또 하나의 유더가 문을 열었다.
경기장은 물론이고 신전 전체를 칠흑의 기운으로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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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4장 - 수호자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