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331화 (331/473)

< 제117장 - 변수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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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라테스 평원에서는 문자 그대로 대회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왕국군 5만 7천과 재상군 6만 2천.

중앙에서 양측의 본대가 접전을 벌이는 가운데 측방과 후방에서도 각자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기병대를 이용한 우회기동과 예비대의 참전으로 인한 전선의 변화.

양측의 전력이 비등한 가운데 전술 또한 크게 밀리는 쪽이 없으니 우열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때일수록 오히려 위험하다.’

재상군을 이끄는 바톨레인 원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전장을 노려보았다. 전쟁에서 가장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는 순간은 접전을 펼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느 한 쪽이 등을 보이고 도망치기 시작할 때였다.

당장은 팽팽한 상황.

하지만 그렇기에 어느 한 쪽만 무너져도 한쪽으로 확 기울 수가 있었다.

그리고 바톨레인 원수에게는 그렇게 만들 변수가 하나 있었다.

‘마인들의 군대.’

악마의 눈의 최상급 마인 카라반이 이끄는 마인 군단.

카라둠 요새를 함락시킨 그들이 마인과 마물들 특유의 체력과 기동력을 살려 이 전장에 합류한다면, 왕국군의 후방을 두드린다면 팽팽한 접전을 순식간에 학살극으로 변모시킬 수 있었다.

전투를 시작하고 벌써 반 시간 남짓.

마침내 소식이 전해져 왔다.

“그, 급보!”

근방에 있던 통신 마법사의 외침에 바톨레인 원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위에 있던 부관들 역시 거의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어디에 있는 것이냐.

어디까지 온 것이냐.

통신 마법의 존재는 과거 전장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빠른 정보 교환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는 전술의 혁명을 불러왔다. 서로 먼 곳에 위치한 부대들이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연계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어서 말하라!”

참을성이 적은 부관 하나가 윽박지르듯 소리쳤지만 누구도 제지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들 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그, 그것이!”

통신 마법사는 울상이 되더니 땀을 뻘뻘 흘리며 쥐어짜낸 목소리를 토해냈다.

“져, 졌습니다.”

“뭐?”

“카라반의 군대가 대패했습니다!”

바톨레인 원수는 눈을 껌벅였다. 그리고 그것은 부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상도 하지 못 한 이야기.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전개.

“뭐,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나! 어?!”

부관 하나가 통신 마법사의 멱살을 틀어쥐며 윽박질렀지만 이번에도 막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너무나 당혹스러운 상황에 머리가 마비된 탓이었다.

“져, 졌습니다! 와해되었습니다! 현재 흩어져서 퇴각 중이라 합니다!”

통신 마법사에게는 죄가 없었다.

그는 그저 전해져온 전문을 읽은 것 뿐이었다.

“어떻게.”

온갖 소음이 넘쳐나는 전장임에도 불구하고 바톨레인의 원수의 작은 혼잣말은 근방에 있던 모두에게 닿았다.

“대체 누가.”

왕국군은 모두 이곳에 있었다.

자신들처럼 마인들과 마물들을 숨겨두었을 리는 없었다.

아니,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최상급 마인이 지휘하는 칠천에 달하는 군대를 반시간 만에 격파했다?

그 정도의 분대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이쪽과는 상황이 달랐다.

카라반의 군대는 카라둠 요새를 함락시키며 자신들의 위치를 노출시켰다.

즉, 전선에 나선 순간 그 정도 전력은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바톨레인 원수는 다시 눈을 깜박였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통신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것이냐.”

겨우 만들어낸 문장에 통신 마법사는 숨을 헐떡였다. 다시 한 번 쥐어짜낸 목소리로 답하였다. 스스로도 전문의 내용이 믿기지 않아서였다.

“두, 두 사람······ 두 사람에게 당했다고, 합니다.”

부관들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에 입도 열지 못 했다.

두 사람?

두 사람에게 최상급 마인이 이끄는 칠천 군대가, 그것도 마물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반 시간 만에 격파당했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통신 마법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직후, 통신 마법사가 꺼낸 한 마디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조금이나마 설득력을 부여했다.

“데몬··· 슬레이어.”

카라반의 군대를 격파한 두 사람.

악마 추종자들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그 이름.

바톨레인 원수는 다시 전장을 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섬광에 욕지거리를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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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윽··· 학··· 하······.”

“후우··· 후······ 으······.”

실라테스 평원 인근.

정확히는 한창 싸우고 있는 왕국군과 재상군이 간신히 보일락 말락한 낮은 언덕 위.

유더와 코델리아는 둘다 잔뜩 지친 얼굴로 땀을 뻘뻘 흘려댔다.

“후으··· 하··· 이, 이거··· 효, 효과··· 있는 거··· 마자?”

“이써, 무조건 이써.”

유더의 등에 업힌 코델리아는 하늘에 연속해서 마법의 빛을 만들어냈다.

멀리서도 잘 볼 수 있도록 붉은 색으로, 마치 금방이라도 전장을 향해 달려들 것처럼.

유더와 코델리아는 승리했다.

단 둘이서 칠천에 달하는 군대를 패퇴시키는 어마어마한 위업을 달성했다.

물론 둘이서 칠천 군대를 전멸시킨 것은 아니었다.

쓰러트린 것은 일천 남짓.

물론 그것도 어마어마한 숫자였지만, 카라반의 분대 전체를 패퇴시키기에는 다소 부족한 숫자였다.

‘-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애당초 군대에서 ‘전멸’은 정말로 병사 전원이 죽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전투 속행 불가능 상태.

최고 지휘관인 카라반과 바로 그 밑이라 할 수 있을 상급 마인 둘이 죽은 순간 마물들의 군대는 머리를 잃은 셈이 되었다.

거기에 연이은 황금빛 폭풍의 질주.

지휘관을 잃은 마물들이 마구잡이로 도망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하아··· 하······ 주게써··· 죽겠다고······.”

코델리아는 결국 반 탈진 상태가 되어 몸을 축 늘어트렸다.

라이프 드레인으로 유더의 체력을 잔뜩 흡수하긴 했지만 또 그만큼 마력을 소모한 터라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황금빛 폭풍은 그 위력과 범위만큼이나 어마어마한 마력을 필요로 했고, 아무리 대마법사급 마력을 가진 코델리아라 해도 자력으로는 5분 이상 유지하기 힘든 마법이었다.

그런데 그런 마법을 장장 15분 이상 사용하였으니 퍼지는 것이 당연했다.

“하아··· 하······.”

사실 죽겠는 건 유더도 마찬가지였다. 라이프 드레인으로 체력을 쪽쪽 잡아먹혔으니 말이다.

[그런 것 치고는··· 멀쩡하지 않나요?]

벨렌시아의 의문은 당연했다.

어느새 뻘뻘 흘리던 땀도 멎었고, 코델리아와 쌍을 이루며 거칠어졌던 호흡 역시 안정세를 찾고 있었다.

“회복이 빠르니까요.”

유더 자신이 무한체력인 이유는 소위 말하는 피통 자체가 큰 것도 있었지만 회복 속도가 무시무시하게 빠른 것 역시 한 몫을 했다.

조금만 쉬면 금방 다시 회복을 한다고 해야 할까?

빨피 만들었는데 몇 분 뒤에 보면 어느새 풀피 되어 있는 그런 캐릭터라 할 수 있었다.

“가붕이··· 유더.”

무한 회복의 매운 맛을 가장 격렬하게, 죽을만큼 체감한 인물의 발언에 유더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튼··· 효과가 있네.”

미묘하긴 했지만 전선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눈치 빠른 바톨레인 원수가 한 가지 판단을 내렸음에 불과했다.

‘우리가 끼기 전에 발을 뺀다.’

최상급 마인이 이끄는 마물 군대가- 그것도 칠천에 달하는 부대가 대패하여 도주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통신 마법이 발달한 세상이었지만 정확한 전황까지는 알 수 없을 터이니 바톨레인 원수에게는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의 존재가 너무도 무겁게 다가올 터였다.

‘그런데 그 둘이 지금 가고 있다고 신호를 열심히 보내고 있다 이거지.’

물론 붉은 불빛만으로 그게 유더와 코델리아일지, 그냥 마법사가 만들어낸 빛일지 분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카라반의 분대가 나타났어야 할 방향에서 거리를 좁혀오는 불빛은 바톨레인 원수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방어 태세로 굳힌 다음에 틈을 봐서 물러나려 할 거야.”

이미 회전이 시작된 마당에 갑자기 발을 빼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나마 저런 움직임이 가능한 것은 재상군이 애당초 카라반 부대의 합류를 기다리는 형태로 병력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즉, 애당초 수비적이었다는 거지.’

그리고 수비적인 것은 왕국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라반 부대의 존재는 왕국군에게도 무척이나 큰 짐이었을 터이니 말이다.

“음, 뭔가 뿌듯하단 말이지.”

“하아··· 하······ 뭐가?”

“아니, 우리 둘 때문에 저 정도의 대군이 움직인다는 사실이.”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이더니 이내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러네?”

“어, 우리 진짜 강해졌나보다.”

전황을 바꿀 수 있는 검성.

홀로 일군과 대적할 수 있는 대마법사.

“아유, 우리집 사기꾼 검성.”

“응, 우리집 짐승 마법사.”

코델리아와 유더가 서로를 보며 정답게 주고받자 멜리사는 한숨을 토했다.

[후······ 설마 여기서 아앗, 아아앗, 하악하악 너무 좋아! 같은 일을 하지는 않겠죠?]

일반적이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지만 두 사람이었으니까.

이미 많은 전례를 보아온 멜리사의 불안한 목소리에 코델리아는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삐쭉였다.

“누, 누굴 짐승으로 아나.”

[저기요, 애칭이 짐승인 사람이 무슨 말을······.]

거기다 지금까지 본 게 있거든요?

멜리사의 팩트 폭격에 코델리아는 다시 입술을 움츠리더니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유더의 뺨을 괜히 꼬집었다.

[아무튼 후대, 이제 어떡할 생각이죠? 이대로 왕국군에 합류하나요?]

“일단은 그래야겠죠.”

짧게 답한 유더는 숨을 크게 골랐다. 여전히 툴툴 거리는 코델리아를 고쳐 업은 뒤 지면을 박차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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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의 행방은 유더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최대한 수비적인 자세를 유지하던 재상군은 마물들을 퇴각의 제물로 바친 뒤 도주하기 시작했고, 왕국군은 무리해서 그런 재상군을 추격하지 않았다.

“마물들을 격파해라!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이다!”

일단 회전이 벌어진 이상 어느 한 쪽이 완벽하게 발을 빼는 것은 불가능했다.

실제로 재상군은 이번 전투로 말미암아 1만이 넘는 마물들을 잃었고, 후퇴 과정에서 적잖은 수의 병력을 잃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톨레인 원수는 후퇴를 선택했다.

최상급 마인이 이끄는 칠천 병력을 패퇴시킨 미지의 전력이 본격적으로 전장을 휘젓기 시작하면 재상군 전체가 완패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마물들은 어떻게든 보충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겠지만.’

어찌되었든 유더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완전히 지친 코델리아와 그럭저럭 회복하긴 했어도 풀 컨디션은 아닌 유더 자신이 바톨레인 원수가 생각한 것처럼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무리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승리는 승리.’

왕국군은 승리했고 재상군은 패배했다.

그리고 여기에 반가운 소식이 하나 더 있었으니.

“코델리아!”

“언니이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유더와 코델리아가 합류한 지점에 게일과 아델리아가 있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 이후 못 봤으니 벌써 몇 달 만의 재회였다.

“아유, 우리 동생. 우리 애기.”

“헤헤, 우리 언니.”

적지로 떠난 동생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아델리아였다.

감정이 폭주해 평소보다 더 격렬하게 코델리아를 반겼고, 코델리아는 그런 아델리아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좋아했다.

그런데 그렇게 서로의 체온과 체향을 나눈 뒤 얼마나 지났을까.

아델리아가 돌연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잠깐.”

“어?”

“아니, 뭔가··· 변한 거 같은데.”

“벼, 변해?”

“어, 뭔가. 뭔가 좀 더 어른이 된 것 같은··· 그런 느낌?”

아델리아의 지적에 코델리아는 단번에 얼굴을 붉히더니 뻘뻘뻘 땀을 흘려대기 시작했다.

역시 우리 언니.

언니도 짐승이었어.

안 그러면 말이 안 돼.

그도 그럴 것이 얼굴만 보고 그런 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누가 봐도 수상쩍은 코델리아의 반응에 아델리아는 미간을 더욱 좁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도끼눈을 뜨며 말했다.

“야, 코델리아. 너 설마?”

코델리아는 대답하는 대신 입술을 꾹 다물며 시선을 피했고, 아델리아는 한숨을 길게 토했다.

착하고 순하고 순진한 동생을 타락의 구렁텅이(?)에 빠트린 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원흉.

사기꾼 겸 짐승은 등 뒤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외면한 채 애써 정면에만 집중하였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래, 너도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처제도 건강해 보이고.”

언제나처럼 여유 넘치는 게일의 대답에 유더는 빙긋 웃었다.

확실히 결혼을 해서 그런지 예전보다 장난기가 줄고 원숙미가 는 것 같은 게일이었다.

‘전장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여기서 게일을 만나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형님, 아버님과 장인 어른께서는······.”

“다른 곳에 계신다. 네가 남기고 간 주머니 덕분에 이래저래 준비할 일들이 많았으니 말이야.”

“잘 전달된 모양이군요. 마이아는 잘 지내나요?”

“그래, 건강해 보이더구나.”

“후우.”

마이아의 안부를 들으니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토한 유더였다.

검은 사내- 검리에 닿은 유더가 가지고 있던 기억 때문이었다.

‘마이아······.’

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역시 만나고 싶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내고 싶었다.

“유더?”

“예? 아, 예. 그보다 형님. 그간의 일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아직 전장이었고, 이제 막 전투가 끝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 한 달- 어쩌면 두 달 사이에 일어났을 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진 유더였다.

“알겠다. 다만 처제도 함께 이야기를 하자꾸나.”

그렇게 말한 게일은 아델리아와 코델리아를 불러 그간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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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7장 - 변수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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