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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335화 (335/473)

< 제118장 - 검의 지평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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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연쇄였다.

하나가 무너진 순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도미노가 무너진다.

서로 공명하듯 계속해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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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검은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눈앞에서 빛을 발하는 성왕십자검에 광소를 터트렸다.

단 한 수에 불과했지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흐레스벨그 백작 이상이군.”

신성검 프레드릭 흐레스벨그.

북부를 지키는 갈까마귀들의 수장.

그의 성왕십자검을 견식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루카스의 손에 쥐어진 성왕십자검이야말로 완성형에 가깝다.

진정한 성왕의 검은 흐레스벨그 백작이 아닌 루카스의 손에 쥐어졌다.

하지만 어떻게.

루카스는 분명 재능이 있는 아이였다.

흐레스벨그의 기린아라는 별명은 허언이 아니었고, 당장 제일검 자신도 유더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루카스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검호에 근접한 수준까지 성장한 것도 대단한 것이었는데 성왕십자검을 완성했다?

“뭔가가 있군.”

제일검 자신이 알지 못 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뭐, 상관없겠지.”

이유야 어찌되었든 루카스가 저리 강해졌으니까.

탐나는 먹잇감이 되었으니까.

제일검은 들고 있던 검을 던졌다. 새로이 여벌 검을 뽑아들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도를 보였다.

“자, 루카스. 오랜만에 놀아보자꾸나.”

친근하게 건넨 말에 루카스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순백의 십자가를 곧이 세운 채 숨을 가다듬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하면서도 명료했다.

그저 어두컴컴하기만 하던 길 너머에 나타난 지평.

그리고 그 지평으로 하염없이 이어진 길.

길에 서 있던 남자를 보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 남자는 루카스 자신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고, 많은 경험을 쌓은··· 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상처로 마음이 망가진.

그는 미래의 자신일까?

아니면 빌트바인 영웅전에도 나온 적이 있는 다른 길을 걸어간 자신인 것일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걸어온 길.

자신이 한 발 한 발 나아갔던 길.

타인의 경험 같지가 않았다.

루카스 자신의 경험이었다.

던전 북에서 경험했던 것과 같은 환상이 아니라 진짜 자신이었다.

‘빌트바인이 되어줘.’

자신이 남긴 마지막 말.

루카스는 숨을 길게 토했다. 눈앞에 자리한 제일검을 똑바로 보았다.

머릿속이 점점 더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룬 프라우드.”

빛의 검성.

악마의 손의 최상급 마인 듀크.

검마.

제일검.

이렇게 적으로 만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루카스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제일검들 가운데서 눈앞의 제일검이 최강이었다.

그보다 강한 제일검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벅찬 상대.

하지만 루카스의 발걸음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와라.”

루카스의 말에 제일검이 웃었다. 신나게 웃으며 지면을 박찼다. 루카스를 향해 돌진하면 빛의 검격을 퍼부었다.

빠르다.

정말로 빛과 같은 검격이다.

하지만 루카스는 그 모든 것을 보려하지 않았다.

일부는 보고 일부는 느꼈다.

아직 검리에는 닿지 못 했지만 지평을 바라보는 자로서 대응했다.

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캉-!

날카로운 금속음이 마치 벼락처럼 이어졌다.

순백의 스파크가 주변을 뒤덮었고, 제일검의 눈에 놀라움과 기쁨이 번졌다.

루카스의 검은 화려하지 않았다.

제일검 자신의 공세에 맞춰 똑같이 속도를 높인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절도 있게 모든 검격을 막거나 튕겨내거나 피해내고 있었다.

철저한 기본기.

수수하지만 그렇기에 단단한 흐레스벨그 백작가의 검.

쾅!

제일검의 검이 다시 튕겨나갔다. 루카스가 처음 그러했던 것처럼 제일검의 검로를 파괴했다.

하지만 제일검은 검을 놓치지 않았다. 루카스의 공격이 가해진 방향에 몸을 맡겼다. 힘의 진행에 순응하여 부드럽게 회전하였고, 사나운 검기를 루카스에게 내쏘았다.

콰가강!

하지만 이번에도 루카스의 검이 검기를 파괴했다.

흔들리지 않는 성처럼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제일검은 그런 루카스를 계속 두드리는 대신 한 걸음 물러섰다.

루카스 역시 제일검에게 달려드는 대신 호흡을 고르며 자세를 정돈했다.

엘룬과는 상황이 달랐다.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그저 자기만족에 가까운, 사실상 구도의 수단인 엘룬의 검에는 살의는 물론이고 공격성 그 자체가 부족했다.

사실상 싸우기 위한 검이 아니었다.

똑같이 검성급 강자임에도 불구하고 제일검 자신에게 엘룬이 너무나 쉽게 패한 것은 그래서였다.

하지만 루카스의 검은 엘룬의 검과 달랐다.

오랜 수련과 그에 뒤지지 않은 풍부한 실전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전사의 검 그 자체였다.

숨어있던 키라라에게 엘룬을 맡긴 스칼렛은 바로 카이사의 상처를 치료했다. 루카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다시 굉음이 들려왔다.

검호들의 싸움은 항상 저랬다.

지축을 뒤흔들고 하늘을 떨게 만들었다. 단련된 검기로 주변을 초토화 시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스칼렛 자신도 그러했으니까.

카이사와 목숨을 걸고 싸웠을 때도, 루카스와 대립하였을 때도.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것이 분명함에도 낯설기 짝이 없는 기억들이 마치 아지랑이처럼 흐릿하게 떠올랐다.

루카스의 품에서 숨을 거두던 자신.

루카스와 사랑을 나누던 자신.

루카스와 나누었던 마지막 입맞춤.

‘집중하자, 집중하자 스칼렛.’

스칼렛은 억지로 정신을 집중했다. 카이사의 상처 치료에만 온 생각을 모았다.

카이사는 그런 스칼렛을 보았다.

만감이 교차했다.

당장이라도 저 가는 목을 부러트려 죽이고 싶다는 충동과 품에 꼭 안고 싶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하윽··· 읏······.”

“조금만 참아, 거의 다 됐어.”

스칼렛의 말을 들으며 카이사는 이를 악물었다.

상반된 충동을 억누르며 소리에 집중했다.

루카스가 제일검과 싸우고 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루카스에 대한 애정이 마구 솟구쳐 올랐다.

낯선 감정과 기억들.

하지만 자신의 것이었다. 카이사 자신의 감정과 기억이 분명했다.

함께 스칼렛에 맞섰었다.

오직 어둠뿐인 세상에서 절망하는 대신 서로를 위로하며 의지를 다졌었다.

그런 자신을 찌르는 루카스.

루카스를 죽이기 위해 신수의 힘을 개방하는 자신.

어지러웠다. 이지로 세상을 보는 스칼렛과 달리 본능과 감성으로 세상을 보는 카이사였기에 더욱 큰 혼란을 느꼈다.

“루카스.”

쾅!

루카스와 제일검의 격돌이 점점 더 격렬해졌다.

제일검의 공격은 한층 더 가열차게 변했고, 루카스의 십자검이 발하는 빛은 검격이 거듭될 때마다 오히려 더 강해져갔다.

제일검이 한 걸음을 내디뎠다.

루카스는 물러나지 않았지만 부담을 느꼈다.

제일검이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눈이 짐승의 그것처럼 변하였다. 육신 그 자체가 강화되어 검에 실리는 힘이 더 강해졌다.

그에 따라 한층 더 빨라지는 속도.

다시 한 번 몰아치는 빛의 연격.

루카스는 숨을 멈추었다. 악을 멸하는 성왕의 빛을 더욱 증폭시켰다.

길 앞에 서 있던 자신.

온전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루카스 자신의 육신이 길 앞에 선 자신의 것만큼 단련되지 못 했다.

하지만 루카스는 포기하는 대신 집중했다.

제일검은 눈속임 따위 쓰지 않았다. 순수한 힘과 속도만으로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마인화.

마인이 된 제일검이라면 이미 알고 있었다.

여러 번 맞선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이전들과는 달랐다.

지금의 제일검은 그간의 모든 제일검들 가운데서 가장 강한 자였다. 가장- 순수한 검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쾅!

도미노가 넘어졌다.

최초의 도미노가 넘어짐에 따라 나머지 도미노들 역시 넘어지기 시작했다.

루카스가 다른 자신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제일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하나 존재했다.

콰가강!

아득히 먼 지평.

그 지평으로 이어진 길.

제일검은 계속해서 발걸음을 내디뎠다. 검의 지평에 닿기 위해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지만 불길하기 짝이 없는 기분에 초조함을 느꼈다.

쾅! 쾅! 쾅! 쾅! 쾅!

제일검은 완전한 마인이 되었다.

눈에서는 노란 안광이 일었고, 전신의 피부는 창백하게 변했다. 머리 위로는 여섯 개나 되는 뿔이 솟구쳐 올랐다.

“너는 여기서 죽을 거다.”

제일검이 말했다.

루카스를 향해 쏟아내듯 말을 이었다.

“네 저항은 소용없는 일이 될 거다.”

널 죽이고 스칼렛을 죽이고 카이사를 죽이고 엘룬을 죽이고 레드 게이트의 모두를 죽이고.

악의가 솟구쳐 올랐다.

이유 모를 초조함에 증오를 불태웠다.

휘몰아치는 성난 빛의 폭격 앞에서 성왕의 검은 점점 더 그 빛을 잃어갔다.

하지만 루카스는 제일검의 말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 검에 끝까지 저항하며 제일검의 눈을 노려보았다.

꺾이지 않는 의지.

마인이 되었을 때조차 끝에 가서는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자신을 억눌렀던 성왕의 계승자.

쾅!

빛이 폭발했다.

데몬베인이 크게 튕겨져 나갔고, 루카스의 팔이 피로 물들었다. 성왕의 검이 그 빛을 잃고 말았다.

제일검은 이를 악물었다. 광소하는 대신 루카스를 노려보았다.

“벌레처럼 죽는 거다.”

아무런 가치도 남기지 못 하고.

마치- 마치-

제일검이 루카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루카스는 그런 제일검의 검을 똑바로 보았다.

초조함으로 가득 찬 제일검의 눈을 직시하며 생각했다.

‘소용없지 않아.’

또 다른 자신이 말했다.

지평으로 이어진 길에 선 그가 자신을 보며 말했다.

“네가 시간을 만들었어.”

모두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을.

유더와 코델리아가 슬퍼하지 않도록, 스칼렛과 카이사와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엘룬과 키라라, 레드 게이트의 모두를 지킬 수 있도록.

“네가 구한 거야.”

루카스는 쓰게 웃었다.

제일검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쏟아지는 빛.

하늘에서 강림하는 그것!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

일천 개의 마법구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어둠으로 가득 찬 지상에 태양의 눈부심을 덜해주었다.

츠콰학!

제일검은 급히 검을 휘둘러 마력구를 베었다.

검기로 마력의 흐름 그 자체를 베어 휘몰아치던 마법구들을 일시에 소멸시켰다.

쾅! 쾅! 쾅!

제일검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화려한 빛의 포효 속에서 직시하였다.

광익을 편 채 태양의 신위를 발하는 코델리아가 루카스를 수습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곁에서 유더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유더 바이엘!”

제일검이 날카롭게 외치며 검기를 날렸다.

유더는 그것을 쳐내는 대신 칠문의 힘을 개방했다. 기세만으로 검기를 흩어버린 뒤 벨렌시아의 힘을 자신에게 더하였다.

“제일검.”

더 이상의 대화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제일검이 자세를 가다듬었다. 유더를 마주한 순간 더욱 들끓기 시작한 초조함으로 스스로를 불태웠다. 지평을 노려보며 순백의 날개를 펼쳤다. 유더 역시 칠흑의 날개를 펼쳐 제일검을 향해 돌진했다.

빛의 검식 오의, 광익천상.

벨렌시아의 법, 흑익무극참.

순백의 날개와 칠흑의 날개가 격돌했다.

하나로 엉켜 세상을 뒤흔들었다.

&

< 제118장 - 검의 지평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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