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339화 (339/473)

< 제119장 - 준비하는 자들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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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정리를 해보자.”

유더의 설명을 들은 바이엘 백작은 다소 혼란스럽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말을 이었다.

“제도에 가서 황제를 구하고, 소드마스터 엘리오의 역모를 저지하고, 재앙을 막고, 솔라리의 마지막 유산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 번의 성장을 거듭해 검성이 되었고··· 마침내는 제일검을 꺾고 지금과 같은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냐?”

“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겨우 몇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스펙타클했다.

아니, 그걸 감안한다 해도 너무 엄청난 성장 속도였다.

바이엘 백작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조금은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네가··· 천재는 천재였구나.”

천무지체.

하늘이 내린 무의 화신.

“흠흠.”

사실 지금처럼 강해진 데에는 전생의 기억- 정확히는 검리에 닿았던 ‘초대 유더’의 기억 덕분이었지만 유더는 거기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대화로 보아 바이엘 백작은 물론이고 체이스 백작 역시 전생의 일들을 부분적으로도 기억하지 못 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역시 극소수의 인원들 만인가.’

어찌되었든 전생을 기억하지 못 하는 와중에 굳이 전생의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었다.

이 세계- 플레이아데스가 몇 번이나 거듭된 멸망을 겪어왔다는 것을 이야기해서 좋을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괜한 혼란만 가중시키겠지.’

때문에 유더는 전생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었고,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은 조금 미심쩍다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이내 유더의 말을 받아들였다.

어찌되었든 유더가 검성- 그 중에서도 최상위권 강자가 된 것은 사실이었고, 이야기의 수순에도 딱히 모순된 부분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때가 좋지 않구나.”

바이엘 백작 역시 지평을 향해 나아가는 자.

유더가 도달한 경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큰 전투를 마친 직후였다.

더욱이 아직 서로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네 녀석이 말한 것들은 얼추 다 실행했다.”

“감사합니다. 두 분이 함께하시면 분명 해내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유더가 활짝 웃으며 답하자 체이스 백작은 흥하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차피 네 녀석이 다 준비해둔 일이지 않느냐. 우린 그저 실행에 옮겼을 뿐이다.”

말투는 퉁명스럽지만 입꼬리가 슬쩍슬쩍 올라가는, 전형적인 체이스 백작의 화법이었다.

때문에 유더는 더욱 진한 미소를 그리며 순수하게 기뻐했다.

“일단 저도 축하드립니다. 선조회귀를 훌륭하게 성공하셨군요.”

“그래, 네가 남긴 재료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에드워드가 의식용 아티팩트를 완성하면 아델리아 역시 바로 의식을 치룰 예정이다.”

선조회귀를 위해서는 코델리아 때 그러했던 것처럼 특별한 재료들이 잔뜩 필요했다.

코델리아가 쓰고 남은 것들에 여행하면서 추가한 것들을 더하긴 했지만, 체이스 백작이 방금 말한 것처럼 의식용 아티팩트가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그걸 자체제작으로 해결한 모양이었다.

‘역시 마법명가 체이스 백작가.’

체이스 백작의 장남이자 코델리아의 오빠인 에드워드가 전투력이 없어서 그렇지 마법에 대한 이해도만은 삼남매 중에서도 최고였으니까.

참으로 든든한 처가댁이었다.

“야생의 땅의 조력은 지금 본 그대로이다. 황금의 용왕께서 직접 너를 도우라 명해주신 덕분에 일사천리로 해결이 되었다.”

황금의 용왕.

야생의 땅을 지키는 강대한 수호신은 유더와 코델리아의 공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야생의 땅을 살아가는 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붉은질풍이 이끄는 야생의 땅의 전사부대.

그 숫자는 비록 오천 남짓에 불과했지만 이번 전투에서 보여주었듯이 하나하나의 단위 전투력이 막강한 최정예 부대였다. 앞으로 펼쳐질 재상군과의 싸움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영원의 숲의 엘프들은 실라테스 평원 쪽으로 합류할 예정이다. 아마 지금쯤이면 실라테스 평원에 도착했을 거다.”

영원의 숲의 엘프들 또한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입은 은혜를 기억했다.

라이카 왕녀가 이끄는 최정예 기사단이 세일룬 왕국을 돕기 위해 영원의 숲을 나섰다.

“세이렌들에게도 돕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정예 부대가 유노 강을 이용해 북상하여 왕국군과 합류할 거다.”

유노 강은 실라테스 평원을 가로지르는 큰 강으로, 세일룬 왕국의 동해와 이어져 있었다.

야생의 땅의 야만 전사들과 영원의 숲의 엘프들, 거기에 바다의 세이렌들까지.

“가슴이 두근두근하네요.”

“그래, 나 또한 그렇구나.”

서로 적대하거나 무심했던 이들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힘을 합친다.

영웅담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으니 가슴이 두근거릴 만도 하였다.

“아무튼 이쯤하지. 정리해야 할 일들이 태산이니.”

체이스 백작의 지적에 바이엘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부대를 이끄는 총사령관을 맡은 것은 흐레스벨그 백작이었지만 그렇다고 두 백작 역시 탱자탱자 놀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인지 넋이 좀 나간 것도 같고.”

“음··· 정말 그렇군.”

멀어서 대화까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루카스와 아름다운 여인 두 명을 마주한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까지는 알 수 있었다.

왜일까.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저 양반이 저렇게 넋이 나간 것일까.

“아무튼 유더, 그럼 이따가 다시 보도록 하자꾸나.”

“예, 아버지.”

유더가 예를 표하자 바이엘 백작은 바로 붉은질풍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체이스 백작은 그런 바이엘 백작을 따라 돌아서더니 발걸음을 내디디며 말했다.

“유더.”

“예, 장인어른.”

“이젠 제법 든든해졌구나.”

이례적인 칭찬에 유더는 눈을 크게 떴고, 체이스 백작은 흠흠 헛기침을 토하더니 그대로 발걸음을 빨리했다.

마치 부끄럽다는 듯이 말이다.

‘아아, 장인어른. 아아, 장인어른.’

늘상 그러했던 것처럼 선물은 받지 못 했지만 방금의 칭찬 한 마디로 충분했다.

자꾸만 웃음이 흘러나왔다.

“유더야?”

“어, 코델리아.”

“왜 그렇게 웃어?”

“그냥 좋아서.”

그리고 유더가 다시 흐흐흐 웃자 코델리아는 싫은 표정을 지었지만 잠깐 뿐이었다.

“아버님이랑 아버지랑 좋은 이야기 했어?”

“응, 좋은 이야기했어.”

유더가 다시 헤실헤실 웃으며 답하자 코델리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더가 좀 망가진 것 같았다.

“열은 없는데?”

까치발을 세워가며 유더의 이마를 짚어본 코델리아는 고개를 갸웃했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의 허리를 와락 안았다.

“유더?”

“흐흣, 흐흐흣.”

애가 진짜 왜 이러지?

맛탱이가 갔잖아!

하지만 다행히도 코델리아의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치 코델리아와의 스킨십이 안정제라도 된 것처럼 유더가 곧 이성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준비해둔 일들이 다 잘되었다고 들었어.”

“뭘 준비해뒀는데?”

나중에 보면 알 거라고 하나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코델리아가 볼을 부풀리자 유더는 얼른 말을 이어나갔다.

“야생의 땅과 영원의 숲과 세이렌들의 도움을 받는 거랑 선조회귀.”

모두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 체이스 백작과 아델리아를 강화한다.

비로소 듣게 된 전모에 코델리아는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그럼 언니도 천사가 되는 거야?”

“아마도? 하지만 해봐야 아는 일이겠지.”

선조회귀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 선대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아야 했으니까.

체이스 백작과 코델리아가 성공했다 하여 아델리아 역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두 신난다. 언니라면 아마 무조건 가능할 거야.”

“그래, 그러면 좋겠다.”

아델리아가 천사가 된 모습을 상상해본 유더는 씩 웃었다.

코델리아 다음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생 이야기도 했어?”

“아니, 기억하지 못 하시는 것 같아서. 지금 이야기해봐야 괜한 혼란만 늘겠지.”

“으응··· 그럼 누구누구가 기억한 걸까?”

일단 유더와 코델리아 자신은 확실했고, 정황상 루카스와 카이사, 스칼렛 세 사람도 완전하진 않지만 전생의 기억을 되찾은 것 같았다.

“일단··· 키라라와 붉은바람 정도가 후보야.”

“플레이어블 캐릭터?”

“어, 스칼렛 빼고는 기억을 찾은 모두가 플레이어블 캐릭터니까. 하지만··· 사실 붉은바람은 가능성이 낮을 거라 생각해. 그나마 키라라가 가능성이 높겠지.”

“우리랑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일수록 전생의 기억을 되찾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맞아. 우리가 특이점인 셈이니까.”

지금 같은 일이 있기 전부터 꿈이라는 형태로 전생의 기억들을 조금씩 보아온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가장 먼저 전생의 기억을 회복한 것 역시 두 사람이었고 말이다.

“그럼 살짝 떠보기만 해야겠다.”

“그래, 붉은바람이랑 키라라는 좀 불편한 관계이기도 하니까.”

전생의 기억대로라면 두 사람은 언제나 서로 적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인 적도 몇 번이나 있었고 말이다.

“그래도 유더야.”

“응?”

“정말 다행이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서.

다시 함께할 수 있어서.

“응, 정말 다행이야.”

유더는 코델리아의 허리를 조금 더 세게 안으며 가볍게 입술을 맞추었다.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를 부드럽게 받아들인 뒤 달뜬 숨을 토하며 말했다.

“유더야, 이번에야말로 할 수 있겠지?”

전생의 기억은 불완전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보다 더 나았던 적은 없었다.

왕국의 위기를 모조리 다 막아내고 본래 적이 되었어야 할 이들까지 모두 아군으로 만들었다.

유더와 코델리아 자신 역시 무척이나 강해졌고 말이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 거야.”

이번에야말로 대소환을 막아낼 수 있을 거야.

반드시, 반드시 이번에야말로.

유더는 다시 코델리아에게 입술을 맞추었고,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를 꼭 끌어안았다.

아련히 떠오르는 슬픈 기억들을 애써 뒤로하며 미래를 보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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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지나 아침이 밝아온다.

드높은 천상.

천계라 불리는 땅.

“아우리엘!”

전신이 거대한 쇠사슬들로 속박된 라구엘이 비명처럼 외쳤지만 아우리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얼음같이 차가운 얼굴로 지상을 굽어볼 뿐이었다.

“아우리엘! 다시 생각해! 이건 잘못된 일이야!”

대소환을 일으키기 위해 지옥의 악마들과 손을 잡는다고?

지옥과의 결판을 위해 지상을- 다른 세계인 플레이아데스를 전장으로 삼겠다고?

잘못되었어.

잘못된 일이야. 정의롭지 못 해!

라구엘의 울부짖음에 아우리엘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그녀의 입에서 차가운 말들이 흘러나왔다.

“애당초 잘못을 저지른 것은 플레이아데스다.”

그들이 자신들의 사정으로 천계와 지옥을 유린했다.

플레이아데스의 신이라는 자가 천계와 지옥의 영혼들을 농락하였다.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이다.

“하지만······.”

“멸망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그래,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어째서 천계가 그들을 위해 희생해야만 하는 것이지? 솔라리와 에로스, 가브리엘만으로는 부족했다는 말인가?”

플레이아데스에 강림하였고, 결국엔 죽음을 맞이한 세 명의 대천사들.

“지옥과는 결판을 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이어진 전장이 필요하겠지. 그래, 이번에야말로 떠나간 자매들의 복수를 실현할 기회이다.”

천계와 지옥은 서로 맞닿아 있지 않았다.

과거에는 이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그 연결로가 끊어져 서로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양쪽 모두와 이어질 수 있는 플레이아데스를 전장으로 삼는다.

대소환을 일으켜 전쟁을 시작한다.

아우리엘의 이야기는 합리에 기반했다.

그녀의 말 가운데 틀린 것은 없었다.

먼저 자신들의 사정으로 천계를 휘두른 것은 플레이아데스였고, 이는 천계의 입장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지옥과의 결판을 위해 전장이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아우리엘··· 너··· 설마······.”

라구엘은 깨달았다.

아우리엘의 차가운 표정 뒤에 숨겨진 불과 같은 증오와 적의를 눈치챘다.

아우리엘은 지옥의 악마들만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었다.

솔라리와 에로스, 가브리엘의 목숨을 앗아간, 그녀들을 희생시킨 플레이아데스 역시 증오하고 미워했다.

어째서 그녀들이 다른 세계인 플레이아데스를 위해 희생해야만 했는가.

아우리엘은 기억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자신들을 버리지 말라며 솔라리에게 매달리던 벌레들을.

기어코 솔라리를 희생시킨 지상의 버러지들을.

심판해야 했다.

정화의 불꽃으로 모조리 불태워야만 했다.

하지만 심판에는 명분이 필요한 법이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억눌러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마침내 명분이 갖추어졌다.

플레이아데스를 짓밟을 수단까지 준비되었다.

“사리엘과 라파엘라는 중립을 표명했다. 물론 지옥과의 전쟁이 시작되면 참전하겠다 하였지.”

남은 두 명의 대천사들.

어린 신 아탈리아가 천계의 운명을 농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들은 아우리엘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아데스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때문에 아우리엘처럼 직접 나서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우리엘을 저지하지도 않았다.

라구엘은 무어라 입을 열 수 없었다.

어떻게든 아우리엘을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플레이아데스에 거하는 수많은 사람들.

라구엘에게는 그들 모두가 생명이었다. 사람이었다.

솔라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 모두를 사랑할 순 없었지만, 라구엘은 적어도 그들을 사람으로 인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우리엘과 나머지 대천사들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플레이아데스는 이계였다.

플레이아데스의 인간들은 천계의 천사들과 동격을 이루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우리엘······.”

“잠시 머리를 식히고 있어라, 라구엘. 어리석은 자매야. 내게 저항하지 않은 것은 너 역시도 내심으로는 솔라리와··· 자매들의 복수를 바란다는 것이겠지.”

아니야. 그런 것이 아니야.

무슨 일이 있었다 한들 아우리엘 네게, 우리들의 맏이인 네게 검을 겨눌 수는 없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라구엘의 마음은 아우리엘에게 닿지 않았다.

여덟 장의 광익을 펼친 아우리엘은 그대로 돌아서서 나아갔다.

라구엘은 그런 아우리엘의 이름을 부르짖는 대신 필사적으로 힘을 쥐어짜냈다.

천계의 봉인구가 자신의 힘을 모두 봉하기 전에 마지막 힘으로 목소리를 전달하였다.

천상의 목소리.

지상에 전해질 마지막 경고.

그녀의 목소리가 지상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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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9장 - 준비하는 자들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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