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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344화 (344/473)

< 제122장 - 라스트 페어리 (벨렌시아 일러스트 포함) >

제122장 - 라스트 페어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다시 지금처럼······.”

“그렇게 될 거야. 반드시.”

&

회의가 끝난 밤.

유더와 코델리아는 나란히 바닥에 엎드린 채 커다란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이제까지 발견한 페어리들의 위치는 이러하니까··· 마지막 페어리인 워터 페어리들은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아.”

유더가 지도 위에 페어리들의 위치를 하나하나 표시했다.

북부에서 만난 폴 페어리들과 윈터 페어리들.

야생의 땅에서 만난 와일드 페어리들.

왕도에서는 섬머 페어리들을 만났고, 남부의 영원의 숲에서는 스프링 페어리들을 만났다.

“브리즈 페어리들이랑 파이어 페어리들.”

그림자 숲에서 엘룬의 친구들인 브리즈 페어리들을 만났다.

가리우스의 무덤에서 파이어 페어리들과 조우했다.

여덟 가운데 일곱.

남은 것은 이제 마지막 페어리인 워터 페어리들뿐.

마치 그간의 여정을 되짚듯 페어리들과 만났던 장소들을 하나하나 지도 위에 차례대로 표시하던 유더는 마지막으로 손을 놀렸다.

영웅전기2에 대한 지식과 그간 만난 페어리들에게 들은 정보 등을 조합해서 산출해낸 장소였다.

“제국 동부네.”

“그래서 여태까지 못 가고 있던 곳이니까.”

제국 동부는 현재 재상군과 동방에서 넘어온 악마 추종자들의 점령지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워터 페어리들이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계곡은 성십자 수호단과 왕국군이 확보한 지역 내에 있었다.

“애당초 숲 깊은 곳이라 신경 쓰는 사람도 없을 거야.”

“마지막 페어리······.”

턱을 괸 채로 작게 중얼거리던 코델리아는 다시 제국 북부- 처음으로 페어리들과 만났던 곳을 돌아보았다.

아직 2년도 채 되지 않은, 짧다면 짧을 시간.

하지만 참으로 묘한 기분이었다.

오랜 추억 같으면서도 마치 엊그제 일어난 일 같은 감각.

전생의 기억들을 많이 떠올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본래 기억이란- 추억이란 것이 그런 것일까.

“거기서 작은 별을 부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유더가 키득거리며 말하자 코델리아는 뺨을 살짝 붉히더니 입술을 삐쭉였다.

“칫, 영웅전기2에서 코델리아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어떻게 기억해. 기억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지.”

영웅전기2는 플레이아데스의 이야기들을 거의 완전하게 담아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정말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약간의 디테일 차이.

정작 코델리아 본인은 모르는 코델리아의 노래처럼 말이다.

“이때는 기억나? 같이 연극했던 거.”

“응, 기억나.”

윈터 페어리들 앞에서 열연한 대마법사와 페어리 퀸 이야기.

지금은 하도 많이 해서 제법 그럴싸했지만 당시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왜 그렇게 웃어?”

“아니, 그냥.”

키스하라고 성화를 부리던 페어리들이 생각나서.

킥킥 웃은 유더는 이어서 와일드 페어리들을 만났던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도 생각난다.”

“아이템들 신나게 확보한 거?”

“그것도 그거지만 악마 잡고 네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나?”

“어?”

코델리아가 고개를 갸웃 거리자 유더는 끌끌끌 혀를 차더니 코델리아의 이마에 살짝 딱밤을 먹이며 말했다.

“다리가 없으니 이제 악마에게 다리가 위협받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잖아. 세상에 맙소사. 정말 악마인줄 알았어. 페어리 퀸 표정이 지금도 생각나네.”

완전히 넋이 나간 그 얼굴.

유더가 계속해서 킥킥 거리자 코델리아는 뺨을 부풀리더니 누운 채로 유더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너 미워, 너 싫어!”

“귀여우셔라.”

턱을 괸 채 다시 낄낄 거린 유더는 왕도를 가리켰다.

“이때도 재밌었는데.”

“나이트 풀 이야기하는 거지?”

“어, 나이트 풀.”

“그런데 유더야.”

“응?”

“그래서 결국 누구랑 가봤던 거야?”

전생에.

플레이아데스 말고 지구에서.

나이트 풀을 대체 어느 년- 아니, 누구랑 갔던 거야?

코델리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묻자 유더는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답했다.

“아, 아니. 일이었다니까? 일 때문에 그냥 동료들이랑 간 거야. 경호 임무?”

“일 때문에?”

“어, 일 때문에.”

유더가 하하하 웃으며 말하자 코델리아는 입술로만 웃으며 말했다.

“이상하다? 그때는 분명 이야기만 들었지 가본 적은 없다고 했는데?”

분명 웃고 있는데, 눈이 웃지 않았다.

등줄기를 따라 땀방울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그, 그랬나? 아, 맞다. 그랬구나. 그때 기억이 좀 잘못되었나 보네. 맞아. 전생 기억들을 찾으면서 좀 더 기억이 명확해졌어.”

“아··· 그랬구나. 천하의 유더가 기억을 잘못 했구나. 흙 성분이 어땠는지도 기억하면서 자기가 나이트 풀을 갔는지 안 갔는지도 기억을 못 했구나.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마른 침을 꿀꺽 삼킨 유더는 얼른 손가락을 놀렸다. 자꾸 떨렸지만 아무튼 영원의 숲을 짚는데 성공했다.

“와! 여기서 우리 공주님이 맹활약을 했죠?”

전투 중에 그 어떤 엘프들도 불러내지 못 했던 스프링 페어리들을 단번에 소환한 뒤 속전속결로 원하는 것들을 얻어냈으니까.

“초콜릿 협박이라니. 더욱이 그 창의적인 협박 방법이라니. 소인은 감탄을 금치 못 했습니다.”

“능청 떠는 것도 아저씨 같아.”

“윽.”

생각지도 못 했던 곳에서 명치를 맞은 유더는 애써 침착한 얼굴로 답했다.

“아니, 그래도 일단 20대이긴 했는데······.”

극후반이긴 했지만.

하지만 유더의 변명에 코델리아는 흥하고 웃더니 차갑게 말했다.

“사촌오빠가 군대 다녀오면 다 아저씨라고 그랬어.”

완벽한 논리에 할 말이 없었다.

유더는 그대로 찌그러졌고, 코델리아는 까르르 웃더니 유더의 뺨을 꼬집으며 말했다.

“뭐, 지금은 동갑이니까?”

전생도 여러 번 경험했고.

코델리아가 킥킥 웃자 유더는 꽁한 눈으로 코델리아를 바라보다 말했다.

“이따 혼내줄 거야.”

“응?”

“이따 제대로 혼내줄 거야.”

유더의 선전포고(?)에 코델리아는 어색하게 웃더니 화제를 돌리려는 듯 제국 쪽을 가리켰다.

“브리즈 페어리들도 좋았어. 순하기도 했구.”

“우리도 페어리들에게 많이 익숙해졌으니까.”

처음에는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몰라 한 번 만날 때마다 진이 빠지고는 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파이어 페어리들은 좀 신기했지?”

“페어리가 페어리답지 않았으니까.”

더욱이 파이어 페어리 퀸이 했던 말.

아마 그녀는 유더 자신과 만나기 전부터 전생의 기억을 일부나마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 이제 정말 하나 남았네. 왠지 실감이 잘 안 나.”

코델리아가 지도 위에 뺨을 가져다대며 말하자 유더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이나 반복된 멸망의 기억.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는 유더조차도 온전히 기억하지는 못 했다.

산산이 조각난 기억들 가운데 일부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 페어리 퀸을 만나고, 요정왕의 가호를 완성하고.

모두와 함께 최후의 전장을 향해 나아간다.

이번에야말로 완벽한 해피엔딩을 이루기 위해.

유더는 코델리아를 돌아보았다.

저도 모르게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내일 아침 레드 게이트를 떠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멈출 수 없었다.

어떤 식으로 일정이 진행될 거라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니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이 아니야.”

코델리아가 말했다.

뺨 위에 올라간 유더의 손을 가볍게 감싸 쥐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될 거야. 절대로 마지막이 아니야. 우리가 그렇게 만들 거야.”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델리아의 이마와 뺨에 입술을 맞춘 뒤 자연스럽게 그녀를 옆으로 밀어 바로 눕게 만들었다.

“사랑해 코델리아.”

“나도 사랑해.”

몇 번을 말해도 수줍고 부끄러웠다.

언제나 가슴이 설래였다.

그래서 유더는 웃었다. 슬쩍 코델리아의 손목을 잡아 누르며 짓궂게 속삭였다.

“이제 혼날 시간이야.”

“진짜 아저씨 같- 꺄?”

코델리아의 귀를 살짝 깨문 유더는 그대로 멈추지 않았다.

공언한 그대로 코델리아를 혼내주었다.

&

다음날 아침.

거의 잠을 자지 못 한 코델리아는 차가운 눈으로 유더를 흘겨보았고, 유더는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좋았지?”

코델리아는 답변 대신 유더의 엉덩이를 걷어차줬고, 유더는 다시 킥킥 웃은 뒤 책상 위를 돌아보았다.

예쁜 봉투 위에 봉인까지 되어 올라가 있는 사랑의 편지.

이제는 어디 갈 때 남기지 않으면 섭섭한 그것.

“무슨 내용인지 보면 안 돼?”

“어, 안 돼. 안 보여 줄 거야.”

단호하게 말한 코델리아는 흥흥 거리더니 망토를 두르고 문라이트를 집어 들었다.

“주접 그만 떨고 가자. 투시안 쓰면 혼난다?”

코델리아의 날카로운 지적에 슬쩍 오문을 개방하려던 유더는 능청맞게 웃으며 말했다.

“뭐, 그래도 언젠가는 보여주겠지?”

“너 하는 거 봐서.”

끝까지 흥흥 거리는 것이 참으로 코델리아다웠다. 때문에 유더는 즐거운 마음으로 코델리아의 허리를 안더니 그대로 번쩍 안아들었다.

“그럼 이제 출발할까?”

“응, 가자.”

담백한 대답에 유더는 담백하게 답했다.

코델리아의 이마에 입술을 맞춘 뒤 창문을 박차 올랐다.

제국을 가로지르는 검은 질풍.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멜리사는 마뜩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말이죠. 늘 생각하는 거지만 팬텀스티드는 왜 안 타는 걸까요. 아무리 낮이라도 못 타는 건 아닐 텐데.]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나요?]

벨렌시아는 그리 말하며 끌끌끌 혀를 찼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

유더와 코델리아의 여정은 순조로웠다.

어차피 란디우스나 루카스와 시간을 맞춰야 했기에 그렇게까지 서둘지도 않았다.

낮에는 달리고, 밤에는 충분히 쉬고.

출발로부터 3일째 되는 밤.

계곡에 도착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훌렁훌렁 옷을 벗어던졌다.

안에 이미 왕도에서 산 수영복을 입고 있었기에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계절은 초가을.

때문에 밤공기가 제법 쌀쌀했지만 각종 가호로 떡칠을 한 유더와 코델리아에게는 전혀 타격이 되지 못 했다.

사실상 한서불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두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왜 그렇게 쳐다봐?”

“아니, 복근 좋아서.”

코델리아가 입술을 핥으며 말하자 유더는 킥킥 웃더니 코델리아의 배 위에 손을 올렸다.

“나도 좋아해.”

“흥.”

늘 그랬듯이 흥흥 거린 코델리아였지만 유더의 손을 쳐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팔을 끌어안은 뒤 계곡 쪽으로 잡아당겼다.

하늘에 뜬 두 개의 달과 고요한 수면. 바람 따라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유더와 코델리아는 발가락 끝부터 천천히 밀어 넣어 물속에 들어갔다. 그대로 서로를 끌어안은 채 약속된 노래를 불렀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가볍게 한 소절씩.

그리고 직후 유더와 코델리아는 각기 손을 뻗어 붙잡았다.

촥촥!

“어라?”

“어라라?”

유더와 코델리아의 손에 붙잡힌 워터 페어리들은 커다란 눈을 껌벅거렸고, 두 사람은 바로 다음 수순을 밟았다.

붙잡힌 페어리들의 입에 초콜렛 한 덩이 씩을 물려준 것이었다.

“아아, 아아아?”

“황홀해!”

역시 파이어 페어리들이 이상했던 거야.

눈빛으로 대화를 나눈 유더와 코델리아는 초콜렛에 정신이 팔린 페어리들과, 하나둘 모여들어 호기심을 보이는 페어리들을 돌아보았다.

이미 마수에 걸려들고 만 어린 양들에게 까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밤놀이 하러 가자.”

너희 여왕님이랑.

유더와 코델리아의 미소는 너무나 매력적이었고, 초콜릿의 마력에 흠뻑 빠진 페어리들에게 거부권은 없었다.

대천사 강림까지 십여 일이 남은 초가을의 계곡.

유더와 코델리아는 마지막 페어리 퀸을 마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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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수행자 님이 그리신 벨렌시아입니다.

작중에서는 생머리일 때가 많은데, 이번에는 포니테일로 묶어봤습니다 ㅎ

< 제122장 - 라스트 페어리 (벨렌시아 일러스트 포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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