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349화 (349/473)

< 제124장 - 지평을 향해 나아가는 자 #2 >

&

지평은 무엇인가.

검리란 무엇인가.

하늘의 검은 또 무엇인가.

많은 검사들이 저마다의 길을 걷는다.

범속한 이들에게 지평은 환상과 같았다.

존재 자체를 인식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길을 걸어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도 더듬더듬 자신의 길을 나아가다보면 어렴풋이나마 지평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저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것,

그렇기에 닿을 수 없는 것.

하지만 극히 일부.

별을 향해 나아갈 길을 찾는 자들이 있었다.

저 머나먼 지평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끼는 것을 넘어, 지평이 실재함을 자신의 눈으로 목도하는 자들.

그들 가운데 다시 일부가, 모래사장을 뒤덮은 무수히 많은 모래들 가운데서 한줌도 되지 않을 이들이 지평을 향해 나아갔다.

천재를 넘어, 괴물이라 불러야 마땅한 이들.

그들 대부분은 검을 쥐었을 때 이미 밤하늘 너머에 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지평을 보았고, 지평을 향해 나아갔다.

검신도 그러했다.

제일검도 그랬다.

막시밀리언 역시 같았다.

그리고 검신은 깨달았다.

막힘없이 나아가던 자들이었기에 오히려 지평에 닿을 수 없었다는 것을.

눈앞의 길이 흐려진 것만으로도 자신의 길이 끊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만 발걸음을 멈추고 만다.

괴물이기에.

축복받은 재능을 타고났기에.

작은 벽조차 마주해본 적이 없기에.

검신은 허무하게 웃었다.

지평에 닿는다는 것은 단순히 재능만으로는 불가능했다.

자신의 나약함에 지지 않는 강철의 마음.

결코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

별로 좋아하는 말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필요했다.

고난과 시련을 모르는 자는 결코 지평에 닿을 수 없었다.

“막시밀리언······.”

검신의 눈에 보였다.

하늘의 검 앞에서 비틀거리며 발악하는, 플레이아데스에서 가장 우수한 재능을 타고난 자.

눈부시게 빛나는 자.

“으아아아아!”

막시밀리언이 포효했다. 울부짖었다.

역천사의 권능을 상징하는 천사의 고리- 헤일로가 맹렬히 회전하며 거센 빛을 내뿜었다.

여섯 장의 광익이 팽팽하게 펼쳐져 무시무시한 힘을 발산하였다.

육체가 더욱 강화되었다.

성검 바리사다의 빛이 더욱 더 강해졌다.

“지킨다.”

이 자리를 사수한다.

높은 곳의 목소리께서 내리신 명을 수행한다.

순리를 지키고, 역사를 되돌린다.

막시밀리언의 두 눈에서 안광이 일었다. 심판의 검 다섯 자루가 다시 한 번 솟구쳐 올라 루카스에게 향했다. 죽음의 기사들조차 일격에 분쇄하던 순백의 검기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루카스는 그 사이에서 검을 휘둘렀다.

몇 번이나 이어진 삶 속에서 언제나 자신의 길을 지켰기에,

걷고 또 걸어 마침내 지평에 당도할 수 있었기에,

루카스는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를 베어야 하는지.

검기의 비는 화려하고 무자비했다.

지상을 강타한 폭우가 주변 일대의 지형을 바꿔놓을 정도였다.

하지만 검신은 알았다.

스칼렛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루카스.”

한줄기 검기가 폭우를 갈랐다.

전부 분쇄할 필요 따윈 없었다.

루카스는 알았다.

무엇이 자신에게 닿는지.

무엇이 자신에게 닿을 수 없는지.

어찌하면 폭우를 분쇄할 수 있는지.

연속해서 몇 번 더 검을 휘둘렀다.

그것으로 폭우가 갈라졌다.

심판의 검들이 폭우에 섞여 루카스를 노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검이 검을 밀어낸다.

단순히 맞추어 쳐내는 것이 아니었다.

루카스의 검에 닿은 순간 심판의 검들은 마치 거짓말처럼 길을 잃었다. 마치 그것이 순리인 것처럼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으아아!”

막시밀리언이 지면을 박찼다.

그 움직임 하나만으로 지축이 뒤흔들렸다.

인간을 초월한, 역천사들 가운데서도 특히 강맹한 육신을 가진 막시밀리언은 괴력으로 속도를 높였고, 다시 그 둘을 조합하며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탄생시켰다.

눈부시게 빠른 동시에 산조차 부술 거력이 실린 검.

하늘에서 땅으로 쏟아져 내렸다.

루카스를 베지 못 했다.

검이 흔들렸다.

미끄러진 것인지, 밀쳐진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힘에서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루카스의 검에 막시밀리언의 검이 밀려났다는 사실이었다.

쾅! 쾅! 쾅! 쾅! 쾅!

굉음이 터졌다.

하지만 아까와 달랐다.

검과 검이 충돌하여 터지는 굉음이 아니었다.

막시밀리언의 검이 흔들릴 때마다, 그리하여 허공이나 지면을 격타할 때마다 굉음이 터지고 있었다.

막시밀리언은 이해할 수 없었다.

평범한 검이었다.

거력이 실린 것도, 빛처럼 빠른 것도, 무엇이든 베어낼 수 있는 검기가 어린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흔들렸다.

저 검과 마주하는 순간 자신의 검은 여지없이 뒤틀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에 스칼렛은 전율했다.

검신은 탄성을 토했다.

“검리.”

루카스의 검에는 검리가 담겨 있었다.

그 사실 하나가 지금의 모든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막시밀리언이 말했다. 초조함이 그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순리를 지켜야 했다.

높은 곳의 목소리께서 말씀하신 올곧은 운명을 지켜내야만 했다.

하지만 눈앞에 이치가 있었다.

검리가, 하늘의 검이-

“높은 곳의 목소리시여!”

막시밀리언이 초조함을 터트렸다.

전력을 다한 일격을 펼쳤다.

이름조차 없는, 하지만 막시밀리언의 모든 것이라 해도 좋을 최강의 일격.

눈부신 빛이 세상을 뒤덮었다.

어마어마한 파공음이 세상에 고요를 강제했다.

하지만 스칼렛은 미소지었다.

막시밀리언의 폭군같은 빛이 세상을 뒤덮었을 때, 그녀는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왕십자검.”

올곧게 나아가는 왕의 검.

짓누르지 않았다.

억압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펼쳐졌고, 그릇된 빛을 파하였다.

막시밀리언의 전력을 분쇄함과 동시에 그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던 사특한 힘을 베어냈다.

콰하아아아아아아-!

막시밀리언의 광익이 부서졌다.

천사의 고리가 깨져 바람에 흩날렸다.

루카스의 검은 막시밀리언의 육신을 베지 않았다.

성왕의 검은 오직 그릇된 빛만을 파할 따름이었다.

“막시밀리언!”

검신이 쓰러진 막시밀리언을 수습했다.

비록 의식을 잃었지만 잠든 막시밀리언의 표정에는 더 이상 광기와 맹목을 찾아볼 수 없었다.

루카스는 거친 숨을 토했다.

마음 같아서는 유더가 늘 그러했듯이 자신 또한 스칼렛과 카이사에게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루카스는 검을 늘어트린 채 고개를 들었다.

에인션트 본 드래곤이 무너지고 있었다.

수백은 족히 될 갖가지 마물들과 악마들이 성난 쥐떼처럼 에인션트 본 드래곤을 뒤덮어 마침내 그 거체를 쓰러트렸다.

아직 언데드들이 남아 있었다.

정령들 또한 수백을 헤아렸다.

하지만 시작했을 때에 비하면 그 수가 격감한 것은 사실이었다.

루카스 자신 또한 몹시 지친 상황이었다.

루카스는 숨을 골랐다.

에인션트 본 드래곤을 쓰러트린 마물들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노도와 같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일만을 훌쩍 넘으니 마치 하늘과 땅을 모두 집어삼킬 것 같은 기세였다.

“유더.”

그리고 코델리아.

루카스는 검을 들었다.

머리 위를 뒤덮는 그림자 속에서 하늘의 검을 펼쳐보였다.

&

“우오오오오오오!”

황궁 내부.

여섯 장의 날개를 활짝 펼친 코델리아가 천사의 고리를 맹렬히 회전시켰다.

어마어마한 빛을 발함과 동시에 양손을 쫙 펼치니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쾅! 쾅! 쾅!

황궁 내부에도 적이 많았다.

의식이 치러지고 있는 최중요 장소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바닥은 물론이고 벽과 천장까지 뒤덮으며 몰려드는 마물들을 향해 코델리아는 아낌없이 폭탄을 던져댔다.

“템 남기면 바보!”

어차피 최종보스전.

오늘을 이겨내지 못 하면 내일이 없으니, 조금도 아낄 필요가 없었다.

“이건 유더가 만든 C-4! 이건 유더가 만든 다이너마이트! 이건 유더가 만든 네이팜-”

온갖 종류의 폭탄들이 황궁을 초토화 시켰다.

마물들 가운데 대부분은 유더 일행에게 아예 접근조차 하지 못 했다.

쾅! 쾅! 쾅!

코델리아는 계단을 이용하지 않았다.

바닥을 부숴 지하로의 길을 만들었고, 생매장이 두렵지 않은지 도폭선으로 기둥들을 휘감았다. 발랄한 외침과 함께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우르릉! 우르릉!

황궁이 무너져 내렸다.

마물들은 이제 무너지는 잔해에 짓눌려 죽는 것을 걱정해야 할 판국이었다.

물론 저급한 마물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법 강한 마인들이나 악마들은 코델리아의 폭발을 뚫고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폭발보다 더한 폭력이었다.

쾅! 쾅! 쾅!

폭음이 아니었다.

주먹에서 일어난 파공음이었다.

란디우스의 주먹이 한 번 작렬할 때마다 마인들의 몸이 터져나갔다.

똑같이 8문이었지만 기본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유더 역시 193cm에 달하는 장신이었지만 란디우스는 그런 유더보다도 40cm는 더 컸다.

덩치는 두 배- 아니, 세배는 되었고 말이다.

당장 여간한 여인의 허리보다 두꺼운 란디우스의 팔뚝이 모든 것을 설명했다.

“가끔은··· 무섭단 말이야.”

레나가 어설프게 웃으며 중얼거리자 유더는 동의했다.

아니, 사실 유더의 경우엔 가끔이 아니었다.

“존경합니다.”

저런 스승님과 사귀신다니.

유더의 말에 레나는 소녀처럼 까르르 웃었다.

대사교 마누엘라는 수많은 마물들과 마인들로 일행을 소모시킬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어마어마한 폭발을 연속해서 일으키고 있었지만 그 대부분이 폭탄에 의한 것이었기에 코델리아는 마력을 거의 소모하지 않았고, 란디우스에게는 저 가공할 폭력이 모두 평타에 불과했다.

[후대, 후대는 인간미가 있어서 좋아요. 제발 이대로만 있어줘요.]

벨렌시아의 뜬금없는 고백에 유더는 고개만 한 번 끄덕인 뒤 머릿속으로 황궁의 지도를 그려보았다.

이제 슬슬 최하층에 도달할 때가 되었다.

“공동입니다!”

유더가 외치자 사전에 지도를 암기하고 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추락에 대비했다.

황궁 최하층에 자리한 공동은 높이만 수십 미터에 달했고, 그 거대한 공간 한 가운데를 잇는 다리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다리 끝에 자리한 방.

대사교 마누엘라가 있을 것이 분명한 의식의 중심!

“코델리아! 아래!”

광익을 펼치며 레나가 소리쳤고, 반신을 까마귀 떼로 바꾸어 추락을 막은 카마엘이 발아래를 보았다.

“쿠오오오!”

거대한 뱀이 포효하며 솟구쳐 올랐다.

프로스트 앤빌에서 마주했던 백사와 거의 비등한 괴수가 입을 크게 벌리며 돌진해오니 그 기세가 실로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당황하지 않았다.

솟구쳐 오르는 뱀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마비의 마안을 발동시켜 순간적으로 놈을 마비시켰고, 그대로 중력에 따라 지상으로 향하며 도폭선을 휘둘렀다.

촤라락-!

염동력이 더해진 도폭선이 거대한 뱀의 몸을 단숨에 옥죄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폭발이 이어졌다.

쾅! 쾅! 쾅!

몸이 부서지고 절단된 뱀이 외마디 비명조차 없이 무너져 내렸다.

후르르-!

쏟아지는 육편의 비와 핏덩이들을 차가운 검기로 날려버린 카마엘은 지상에 안착했고, 란디우스와 유더 역시 거의 동시에 다리 위에 설 수 있었다.

“히어로 랜딩.”

마치 아이언맨처럼 마지막으로 착지한 코델리아는 광익과 천사의 고리를 거두고 숨을 크게 골랐다.

마력의 소모를 최소한으로 억제하긴 했지만 그래도 돌파한 적의 숫자가 어마어마하다보니 이래저래 숨이 찬 그녀였다.

‘그래도 좋았어.’

정말 원 없이 폭탄을 터트렸으니까.

속이 시원하다고 해야 할까?

활짝 웃어 보인 코델리아는 일단 마나 포션을 한 병 꿀꺽 삼킨 뒤 정면을 보았다.

다리의 끝에 자리한 거대한 문.

그 너머로부터 느껴지는 강대한 동시에 무시무시한 기운.

하나가 아니었다.

대사교 마누엘라 곁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

악마 추종자 집단의 수장들.

작위를 가진 강대한 악마들.

새삼 가슴이 두근거렸다.

긴장, 설렘, 두려움, 초조함, 기대 등등.

오늘이 고비였다.

오늘이 지나면-

오늘을 이겨낼 수 있다면-

코델리아는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손을 꼭 붙잡는 유더의 얼굴을 올려다보았고, 이내 미소지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아까와는 이유가 달랐다.

“참 좋을 때지?”

레나의 말에 란디우스는 껄껄껄 웃으며 그녀의 허리를 안았고, 카마엘은 한숨을 내쉬며 검을 고쳐쥐었다.

[여기까지 함께 했어요. 나중에 오늘의 일이 전설이 된다면 제 이름도 들어가겠죠? 막 위인전 같은 곳에도 들어가고?]

“그럴 거야. 내가 꼭 전해줄게. 멜리사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치이, 말만 그러신다.]

흥흥 거린 멜리사였지만 목소리에 기쁨이 가득했다.

모처럼 대답은 물론이고 칭찬까지 들었으니까.

그래서 코델리아는 웃었다. 문라이트를 꼭 움켜쥐고 정면을 보았다.

[후대, 제 이름도 전해줄 거죠?]

“물론이죠.”

[믿어요, 후대.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어제와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까지도.

빙긋 웃은 벨렌시아는 유더와 하나가 되었다.

검령합체를 통해 자신의 힘과 경험을 유더에게 전해주었다.

“지옥의 문을 닮았어.”

야생의 땅에서 두 번이나 보았던 그것.

“제도도 날려버리진 않을 거지?”

“봐서?”

유더의 농담에 씩 웃은 코델리아는 한 손으로 재주 좋게 머리를 묶었다.

대륙 곳곳에서 재앙과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황궁 밖에서도 큰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황궁의 가장 깊은 곳.

대륙의 중심.

란디우스는 숨을 길게 토했다. 주먹 대신 솔라 블레이드를 움켜쥔 채 정면을 보았다.

레나가 광익을 펼치며 천사의 고리를 회전시켰고, 카마엘이 전의를 고양시켰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가자.”

최후의 전장으로.

란디우스가 파라곤의 영웅들과 함께 발걸음을 내디뎠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그 뒤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지옥의 문을 열어젖혔다.

&

< 제124장 - 지평을 향해 나아가는 자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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