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351화 (351/473)

< 제125장 - 대사교 마누엘라 #2 >

&

“요는 각개격파라는 거야.”

제도 급습을 강행하기 하루 전.

나란히 누운 유더가 꺼낸 말에 코델리아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입술을 한 번 움츠렸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이해했다.

적들의 스펙 역시 영웅전기 시리즈 기준으로라면 머릿속에 꿰고 있었다.

때문에 유더의 이야기가 불가능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낙관론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상성을 이용한다.

공략법을 이용한다.

정석이었고, 수도 없이 행한 일이었지만 자꾸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만약 각개격파 할 수 없다면.

계획이 어그러진다면.

총수들과 대사교의 힘이 영웅전기 시리즈 이상이라면.

언제나 밝고 명랑한 코델리아였다.

언제나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북돋아 주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유더의 앞이기에 억지로 강한 척 하는 대신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무서워.”

두려워.

이기지 못 할까봐.

내일이 마지막이 될까봐.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

더욱이 세계의 운명이 어깨에 걸려 있었다.

코델리아도 유더처럼 전생을 기억했다.

하지만 온전한 기억이 아니었다.

홍유희로 살았던 당시- 바로 직전의 전생은 위화감이 존재하지 않았다.

전생과 현생이 마치 하나의 삶처럼 이어져 있었다.

코델리아 자신은 홍유희였고, 홍유희는 코델리아였다.

애당초 하나인 둘이기에 정체성에 혼란 따윈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과거의 전생들은 달랐다.

인지는 했지만 마치 책을 통해 본 타인의 이야기 같았다.

감정을 공유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인 코델리아 체이스였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 문턱을 두드리려는, 아직 술도 마음대로 마시지 못 하는 열아홉 살 홍유희였다.

내일이 오지 않는다면 좋을 텐데.

세계의 운명을 건 싸움 따위 하고 싶지 않은데.

그냥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은데.

“무서워.”

코델리아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의 뺨을 어루만졌다. 두려움에 떠는 그녀를 품에 안으며 어색하게나마 웃었다.

무어라 말해야 할지 한참이나 고민한 끝에 겨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할게. 나도 무서워.”

몇 번이나 멸망을 마주했으니까.

단 한 번도 이기지 못 했으니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코델리아를 잃고 싶지 않았다.

소중한 오늘을 이어가고 싶었다.

역사의 이정표 너머에 존재하는 미지의 내일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니 싸워야 해. 알렉세이의 말처럼··· 가만히 있으면 그저 죽을 뿐이었으니까. 설사 두렵고 무서울지라도 일단 움직여야만 했으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아. 움직여야 해. 기적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니까.”

평소답지 않게 떠듬떠듬 이야기를 이어가던 유더는 결국 쓰게 웃었다. 자신의 품에 꼭 안긴 채 이쪽을 올려다보는 코델리아를 마주하였다.

“같이 싸우자. 무섭고 두렵지만, 언제나처럼 싸워 이기자. 멋지게 해치우고 멋지게 결혼하자. 그동안 해보지 못 한 것들 모두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자.”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코, 코델리아?”

당황한 유더가 허둥거리자 코델리아는 더욱 크게 웃었다. 유더의 가슴에 머리를 묻으며 말했다.

“안 어울려.”

“뭐가.”

“아니, 그런 말들. 유더는 뭔가 좀 더 리얼리스트라는 느낌?”

꿈과 희망, 내일 같은 것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적의 스펙을 나열하며 이러이러하니 우리가 이길 수 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쪽이 좀 더 유더다운 이야기였으니까.

“아니, 그것도 아닌가······.”

지금의 이런 모습도 유더였으니까.

코델리아 자신이 너무너무 좋아하는 유더의 일면이었으니까.

코델리아가 킥킥 거리며 웃자 유더는 빨개진 얼굴로 변명하듯 말했다.

“그··· 코델리아. 너도 알다시피 내가 말주변이 좀··· 없잖아?”

“풉!”

코델리아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누가 말주변이 없다고?

천하에 다시없을 사기꾼이?

코델리아가 계속해서 웃자 유더는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똑같이 따라 웃었다.

어찌되었든 코델리아가 웃으면 그걸로 좋았으니 말이다.

“코델리아.”

“응, 유더야.”

“이기자.”

“응, 이기자. 이겨서 동화책처럼 행복하게 살자. 그 후로 두 사람은 영원히 행복했습니다. 알지?”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인 뒤 주변을 살짝 살폈다.

코델리아의 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살아 돌아오면······.”

밀린 소원권을 쓸게.

그거 쓰고 싶어서라도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게.

“무슨 소원 빌 건데?”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는 씩하고 웃더니 다시 속삭였고, 코델리아는 얼굴을 붉혔다. 유더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변태.”

“아니, 듣는 사람 오해하게 무슨 말이야. 내가 언제 이상한 소원 빌었다고.”

“아무튼 변태야. 변태라구. 유더는 변태.”

코델리아는 흥흥 거리며 유더의 뺨을 꼬집었다.

한참을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유더야.”

“응, 코델리아.”

“이기자.”

내일의 싸움을.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 번 코델리아를 꼭 끌어안았다.

“우오오오오오!”

코델리아가 정면을 보았다.

어제의 다짐을 다시 새기며 숨기고 숨겨왔던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어둠의 힘이여!”

코델리아의 하얀 광익이 칠흑으로 물들었다.

마녀에게 이어받은 힘이었다.

세계에 만연한 어둠과 부의 감정을 이용한, 소위 말하는 어둠의 힘이었다.

‘솔직히 아예 못 쓸 줄 알았어.’

준비는 예전부터 해왔는데 어째 완성이 되지 않았을까.

겨우 완성이 되었나 싶었을 때는 최종결전이 코앞에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야.’

최종전에서나마 쓸 수 있어서.

아예 못 썼다면 억울해 죽었을 테니까!

“쳐라! 쳐라! 막 쳐라!”

폭풍이여!

검은 태양의 눈보라여!

황금빛 폭풍에 칠흑이 더해졌다.

어둠의 힘이 악마들의 방어를 자연스럽게 깨트렸고, 그렇게 드러난 놈들의 영육에 태양의 신위가 직접적으로 작용했다.

“크아아아!”

악마들이 마치 눈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저항 따위는 불가능했다.

“타락천사가 아니야!”

어둠에 떨어진 천사가 아닌, 어둠의 힘을 사용하는 천사였다.

그게 그것처럼 보였지만 둘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존재했다.

어둠의 힘과 태양의 신위를 함께 쓴다.

그로 말미암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악마들을 쓸어버린다!

“마누엘라!”

코델리아가 포효하며 천상의 옥좌를 노려보았다.

그 위에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는 대사교 마누엘라를 노려보며 발걸음을 떼었다. 폭풍과 함께 전진했다.

“흑룡파천세!”

칠흑의 용들이 공간을 뚫고 나와 예카테리나를 덮쳤다.

자신의 유혹이 통하지 않자 당황한 예카테리나는 다급히 마력의 장벽을 펼쳐 흑룡파천세를 막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팔문을 여는 것으로 이미 단순 스펙만으로도 악마 추종자 집단의 총수들을 상회하게 된 유더였다.

그런 와중에 예카테리나가 지닌 최강의 무기인 유혹이 통하지 않으니 애당초 예카테리나에게 승산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태양전심격!”

흑룡파천세를 가까스로 막아낸 예카테리나의 옆구리에 유더의 주먹이 꽂혔다.

단순한 물리력만으로도 이미 마인으로 화한 예카테리나의 뼈와 근육을 부수기에 충분했거늘, 거기에 더해지는 것이 있었다.

상대의 방어를 뚫고 들어가는 태양전심격.

검은태양의 힘이 예카테리나의 몸속에서부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크악!”

유더의 주먹에 맞고 튕겨져 날아간 예카테리나가 왈칵 피를 토했다.

등 뒤에 돋아난 거대한 박쥐 날개를 펼칠 시간도 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유더는 다시 지면을 박찼다.

강력한 유혹 마법에 미리 걸리는 것으로 예카테리나의 유혹을 견뎌내기는 했지만 솔직히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예카테리나가 괜히 악마의 입의 총수가 아니었다.

애증의 대군주 릴리스의 화신인 그녀의 유혹은 절대적이었으니, 일단 걸리면 헤어나올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그 전에 제거한다.

유혹에 내성이 없는 다른 일행들에게 유혹을 걸기 전에, 유더 자신이 세워둔 방벽이 무너지기 전에.

유더는 주먹을 수도로 바꾸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우는 예카테리나를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앞으로 30초.’

유혹을 포기한 예카테리나가 신체 강화에 마력을 돌렸고, 어렵게나마 유더의 공세에 맞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유더는 검리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유혹의 힘 덕분에 근접박투를 해본 일 자체가 드문 예카테리나였다. 서큐버스 퀸으로 화해 신체 능력을 극도로 상승시켰다 한들 근접전에 미숙한 그녀가 지평에 닿은 자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공격이 흐른다.

거짓말처럼 예카테리나의 모든 가드를 뚫고 급소 곳곳에 유효타를 날린다.

‘앞으로 20초.’

예카테리나를 격파하고 다른 이들을 도와야 했다.

유더 자신의 계산대로라면 카마엘과 대악마 포르테의 대결은 호각이었다.

레나는 악마의 눈의 총수 타네시아에게 다소 밀릴 터였다. 방어 위주의 싸움으로 시간을 끄는 것이 그녀의 한계였다.

‘대사교는 의식 때문에 움직이지 못 할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코델리아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악마들이지 대사교 마누엘라가 아니었다.

서두른다.

예카테리나를 최대한 빨리 격퇴하고 코델리아를 돕는다.

그리고 한 사람.

유더가 세운 계획의 핵심이자, 언제나처럼 계산을 초월한 결과를 내놓는 남자.

“약하구나.”

란디우스의 선언에 악마의 손의 총수 카이라는 이를 악물었다.

감정의 동요가 적은 그녀였지만 눈앞의 괴물 앞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붉은머리의 전사- 저 파라곤의 영웅인 철인 란디우스가 강대한 존재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을 초월했다.

이렇게까지 강한 존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쾅! 쾅! 쾅!

집채만한 바위를 던져봐야 소용없었다.

가볍게 휘두른 주먹에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으아아아!”

염동력으로 외부에서 힘을 가하는 것도 무의미했다.

저 강철 같은 육신을 해하는 것은 절대로 무리였다.

그래서 안에서부터 해보려 하였다.

하지만 그 또한 무리였다.

무궁무진한 태양의 힘이 다른 누구도 아닌- 악마의 손의 총수인 카이라 자신의 염동력을 완전히 무력화 시켰다.

저주의 힘도 함께 사용해 보았지만 이 또한 무리였다.

란디우스는 태양이었다.

강대한 영혼의 힘 앞에 음습한 저주의 힘 따위는 단숨에 녹아내렸다.

말 그대로 괴물.

대사교 마누엘라가 그토록 경계한 것이 너무나 당연한 존재.

“으아아아!”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수 없었다.

카이라는 항상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음욕의 아스모데우스에게 받은 마안을 개방하며 전력을 다했다. 머리에 돋아난 여섯 개의 뿔에서부터 어마어마한 마력이 발생했다.

육신을 부술 수 없다면.

내부에서 파괴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사물을 이용한 공격자체도 불가능하다면.

밀어낸다.

염동력으로 놈을 들어 던져버린다!

정답이었다.

하지만 란디우스는 그러한 선택지 역시 예상하고 있었다.

폭풍처럼 밀려드는 카이라의 염동력을 보며 손에 힘을 주었다.

세게 움켜쥔 솔라 블레이드를 마치 뿌리듯 휘둘렀다.

콰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태양의 검이 세상 만물을 베어낸다.

아니, 노도와 같은 기세로 모든 것을 분쇄한다.

염동력이 소멸했다.

베인 것이 아니었다.

솔라 블레이드가 만들어낸 어마어마한 힘 앞에 사그라지고 말았다.

전력개방.

란디우스는 힘을 아끼지 않았다.

필요한 순간에 전력을 다하였고, 카이라는 란디우스의 전력을 받아낼 수 없었다.

“커헉!”

거의 십여 미터 이상을 튕겨 날아가 벽에 충돌한 카이라가 피를 토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 란디우스가 있었다.

솔라 블레이드를 휘두른 직후, 튕겨 날아간 카이라를 추적하기 위해 지면을 박찬 그는 이미 카이라 앞에 당도해 있었다.

이번에는 주먹.

전력을 다한 일권.

구극태양신공 오의.

구극.

주먹이 닿았다.

태양이 카이라의 육신을 분쇄했다.

그녀의 등이 닿아있던 벽 전체를 붕괴시켰고, 지면 또한 무너트렸다.

쾅! 쾅! 쾅!

연쇄적인 파괴.

직경 수십 미터에 달할 파문.

란디우스의 주먹이 닿은 카이라의 가슴 아래가 완전히 소멸했다.

카이라는 그대로 떨어져 움직이지 않았고, 란디우스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란디우스는 알 수 있었다.

유더가 예카테리나를 몰아 붙이고 있었다.

그녀를 쓰러트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카마엘과 포르테의 싸움은 격화되고 있었다.

아스모데우스는 지옥 제일의 검사였고, 그의 일곱 자루 검중 하나인 포르테의 검술은 지평에 닿기 직전이었다.

아무리 상성에서 앞선다 할지라도 카마엘이 놈을 단숨에 제압하는 것은 무리였다.

레나는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애당초 방어에 능한 그녀는 안정감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초조함을 느끼는 것은 카이라의 소멸을 느낀 타네시아였다.

그래서 란디우스는 고개를 돌렸다.

코델리아가 빛의 폭풍을 일으키며 사방팔방으로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녀야말로 유더가 세운 작전의 핵심이었다.

그녀가 일으키고 있는 폭발 덕분에 전장이 분열되었다.

적들은 힘을 모아 싸울 수 없었고, 지금과 같은 각개격파 작전이 가능해졌다.

코델리아가 악마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단시간에 너무나 많은 마력은 사용한 그녀는 지쳐가고 있었다.

란디우스는 숨을 골랐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유더가 예카테리나의 목을 벤 그 순간 지면을 박차올랐다.

“마누엘라.”

파라곤 왕국의 멸망을 초래한 악의 주구.

천상의 옥좌 위에 앉아 있는 그를 향해 란디우스가 돌진했다.

&

< 제125장 - 대사교 마누엘라 #2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