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6장 - 궤적을 이어가는 자들 #2 >
“우오오오오오오오오!”
지면을 박찼다. 솟구쳐 오른다.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의 검으로 미쳐버린 신을 징벌한다!
그것은 개벽의 검이었다.
신과 같은 자였던 말레키스를 벌하고, 데몬프린스를 지옥의 문과 함께 추방한 지상 최강의 힘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아가지 못 했다.
태양신의 검이 태양신의 검을 막아냈다.
클라우솔라스에 가로막힌 솔라 블레이드가 구슬픈 울음을 터트렸고, 아우리엘이 솔라 블레이드를 보았다. 천상에 기인한, 아우리엘 자신이 솔라리를 위해 직접 만들었던 검을 보며 다시 한 번 노성을 터트렸다.
버러지 같은 것들.
솔라리가 죽은 지금도 그 아이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는 기생충들!
솔라 블레이드가 요동쳤다.
잠시 저항했지만 클라우솔라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아우리엘의 손에 들어갔다.
란디우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검을 쥐었던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태양의 일권을 아우리엘의 가슴에 박아 넣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닿을 수 없었다.
클라우솔라스와 솔라 블레이드가 란디우스를 난도질했다. 다시 한 번 일어난 황금빛 파문이 란디우스를 저 멀리까지 밀어내 버렸다.
“우오오!”
유더와 카마엘이 동시에 돌진했다.
레나가 아우리엘의 파문을 중화시켰고, 코델리아가 맹진하는 두 사람을 위해 축복을 내렸다.
아우리엘이 발하는 천상의 힘에 지지 않을 방벽을 세워주었다.
카마엘이 설화십이검을 펼쳤다.
유더가 구극태양신공에 기반을 둔 벨렌시아의 검을 펼쳤다.
지평에 닿기 직전인 자와 이미 지평에 닿은 자가 동시에 펼치는 연격이었다.
플레이아데스에서 이보다 더 뛰어난 검격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못 했다.
아우리엘이 심판의 검을 휘둘렀다.
클라우솔라스와 심판의 검이 절로 움직이며 그런 아우리엘을 도왔다.
검과 검이 얽힌다.
첫 수를 교환한 순간 유더는 알 수 있었다.
카마엘은 대악마 포르테가 어찌하여 도주 중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는지 깨달았다.
심판의 대천사 아우리엘.
그녀는 신이었다.
먼 곳에서 태어나 저 머나먼 지평을 향해 나아가는 자들과는 태생부터가 달랐다.
지평에서 태어난 자.
애당초 저 머나먼 지평에서 발을 딛고 일어선 자.
검리와 검리가 충돌했다.
유더가 밀려났고, 클라우솔라스와 솔라 블레이드가 카마엘의 검을 흘렸다. 빈틈이 드러난 그의 가슴을 베었다.
카마엘이 쓰러졌다.
지면을 박찬 유더가 몸을 반전시키며 다시 파고들었다. 요정의 발걸음을 사용해 아우리엘의 검을 피한 뒤 그 배후에서부터 다시 한 번 검리가 담긴 공격을 펼쳤다.
하지만 가로막혔다.
똑같이 검리에 닿았다면 결국 그 다음을 결정하는 것은 육체의 성능이었다.
팔문을 여는 것으로 한계선에 닿은 유더와 달리 아우리엘은 애당초 한계선 너머에서 태어난 자였다.
둘 사이에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신체 능력의 격차가 존재했다.
“유더어어!”
코델리아가 비명처럼 외치며 빛의 폭풍을 일으켰다.
아우리엘은 그것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는 대신 세 개의 검으로 유더를 난도질했다. 쓰러지려는 유더를 염동력으로 걷어차듯 밀어낸 뒤 열두 장의 광익을 일시에 펼쳤다.
다시 한 번 어마어마한 파문을 일으켜 모든 공세를 밀어냈다.
“아악!”
파문을 중화시키던 레나가 역류하는 힘을 이기지 못 하고 쓰러졌다. 그녀의 눈과 입과 코와 귀에서부터 피가 흘러나왔다.
코델리아가 일으킨 빛의 폭풍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서지고 흩어졌다.
수백에 달할 악마들을 휩쓸었던 어둠의 힘도 소용이 없었다.
코델리아는 분명 솔라리의 계보에서 가장 강력한 천사였다.
하지만 그녀는 치천사였다.
천상의 신인 대천사의 위계에는 아직 닿지 못 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발생하는 격차.
결코 넘을 수 없는 벽.
아우리엘은 발버둥치는 코델리아를 보았다.
황금빛 파문에 모조리 막히고 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빛의 폭풍을 일으키는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솔라리의 계승자.
그녀의 헤일로를- 천사의 고리를 이어받은 자.
조금이지만 솔라리의 피를 이어받은 존재.
하지만 애정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솔라리의 피를 이은 자가 있다는 것은 곧 솔라리가 플레이아데스의 버러지들과 몸을 섞었다는 의미가 되었다.
분명 또 버러지들이 졸라댄 탓이겠지.
솔라리의 성스러운 피를 지상에 남겨 달라며 그 아이를 압박한 것이겠지.
코델리아는 아우리엘에게 있어 애정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솔라리의 치부였다.
그러니 지운다.
그녀로부터 솔라리의 헤일로를 회수한다.
아우리엘이 손을 들었다.
클라우솔라스와 솔라 블레이드가 동시에 그 검끝을 코델리아에게로 돌렸다.
“안 돼!”
유더가 몸을 일으켰다.
다시 한 번 아우리엘에게 검리를 담은 공세를 퍼부었다.
동시에 란디우스 또한 일어섰다. 주먹에 가득 모은 태양의 힘을 발산하며 아우리엘을 향해 돌진했다.
아우리엘이 유더의 검을 받아냈다.
검리에 신의 힘을 담았다.
검과 검이 얽힌 순간 신의 힘이 유더의 영육에 무지막지한 타격을 가했다.
[후대!]
벨렌시아가 비명을 질렀다. 신의 힘이 유더의 영육을 해한 순간 강제로 그녀의 영혼을 유더와 뜯어놓았기 때문이다.
검령합체가 풀렸다. 아우리엘의 검이 다시 한 번 유더를 난도질했다.
심판의 검이 유더의 가슴을 꿰뚫었다.
“유더어어어!”
코델리아가 울부짖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모아 칼라마이트의 창을 만들어 아우리엘에게 집어던졌다.
황금빛 파문이 일었다. 칼라마이트의 창의 궤적을 비틀었다.
돌진해오는 란디우스를 향해 아우리엘이 클라우솔라스와 솔라 블레이드를 날려보냈다.
살을 가른다.
뼈를 자른다.
하지만 란디우스는 계속해서 돌진했다.
끝끝내 나아가 아우리엘의 가슴에 태양의 힘을 꽂아넣었다.
빛.
하지만 주먹을 뻗은 란디우스는 알 수 있었다.
닿지 않았다.
아우리엘을 보호하고 있던 빛의 방벽들을 모조리 깨트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끝내 그 육신에는 해를 입힐 수 없었다.
“놀랍구나.”
아우리엘이 말했다.
작게 감탄하며 손을 놀렸다.
란디우스의 복부에 심판의 검을 찔러넣었고, 그대로 휘둘러 허리를 갈랐다. 허리가 반쯤 잘린 란디우스가 피를 왈칵 쏟으며 무너져 내렸다.
“제압해라.”
아우리엘이 명한 순간 천사들이 레나와 코델리아에게 달려들었다.
비틀거리는 레나를 짓밟은 뒤 가슴에 심판의 검을 꽂아 넣었고, 코델리아의 사지를 붙들었다. 코델리아가 연속해서 일으킨 마법들로 인해 수십에 달할 천사들이 소멸했지만 천사들의 숫자는 수백을 훌쩍 넘었다.
아우리엘의 힘이 코델리아를 짓눌렀다. 천사들의 손이 코델리아의 사지를 붙들었다.
코델리아는 최후까지 저항하고자 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우리엘이 아닌, 저만치에 쓰러진 유더를 보았다. 조금이지만 꿈틀거리는 유더를 보며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유더만이라도 도망칠 수 있게 할까.
“그럴 수 없다.”
아우리엘이 말했다.
코델리아의 생각을 읽어낸 그녀는 손을 뻗어 천사의 고리를 붙잡았다.
맹렬하게 회전하며 빛을 뿌리던 그것이 대천사의 손아귀에서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박탈하겠다.”
저항 따위는 무의미했다.
아우리엘이 태양의 신위를 박탈했다. 천사의 고리를 빼앗았고, 그 순간 코델리아의 영혼은 어마어마한 충격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코델리아의 두 눈이 빛을 잃었다.
몸부림치던 사지 역시 힘을 잃고 축 늘어지고 말았다.
“유··· 더······.”
천사들이 코델리아를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바닥을 뒹굴던 코델리아는 유더의 근처에 쓰러졌다.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코델리아는 유더를 보려 했지만, 어떻게든 손을 뻗어 유더의 손을 잡고자 했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코델리아의 눈이 감겼다.
부들부들 떨리면서나마 나아가던 손 역시 그 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모든 것이 끝이었다.
더 이상 아우리엘을 막아설 자가 없었다.
핏빛의 하늘 너머에서는 지옥의 문이 열리고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사방의 군세가 더욱 더 강해지고 있었다.
노도가 그림자 숲을 집어삼켰다.
학살자 게오르그의 검 앞에 별의 검성 무수가 무릎 꿇었다.
재의 여인의 맹진에 체이스 백작이 피를 토했다. 바이엘 백작이 다시 한 번 검을 들었지만 눈앞에 가득한 것은 절망 뿐이었다.
칠살검 세류가 검을 잃었다. 허리를 베이며 비틀거렸다.
사방의 군세가 밀리고 있었다.
1분 1초가 지날 때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결국 이것이 순리인가.
몇 번을 반복한다 해도 약속된 멸망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인가.
솔라리의 신위를 상징하는 천사의 고리는 아우리엘의 손에 들어갔다.
솔라 블레이드와 클라우솔라스 역시 빼앗기고 말았다.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은 모두 쓰러졌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물론이고 제도까지 함께 했던 이들 모두가 무너지고 말았다.
더 이상 싸울 수 없다.
설사 다시 일어선다 해도 이길 수 없다.
검고 어두운 절망만이 가득할 따름이었다.
[그렇지 않아요.]
아련한 목소리였다.
너무나 먼 곳에서 들려오는 그것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지만, 불씨는 남아 있어요.
다른 누구도 아닌 유더 당신이 남긴 불씨가.
[그리고··· 이번에는 다르다는 것 역시 알고 있잖아요?]
혼자가 아니니까.
이제까지와 달리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절망에 굴하지 않는 자.
약속된 멸망에 끝까지 저항하는 자.
최후의 최후까지 추한 발버둥을 멈추지 않는 자.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직 유더 자신이 남긴 불씨가 남아 있었다.
그 불씨를 크게 키울 수 있도록 바람을 일으켜줄 자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
파라곤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작지만 아름다운 곳이었다.
&
아우리엘은 저도 모르게 흠칫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일어서는 자가 있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일어서 봐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그는 몸을 일으켰다.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쥐어보였다.
&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있었다.
수많은 절망과 시련 속에서도 그들은 결코 굴하지 않았다.
때로는 넘어지고, 뒷걸음질치고, 주저앉을 때도 있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
“강철의 마음, 불굴의 의지, 천하무쌍의 육체.”
스스로에게 지지 않는다.
외압에 굴복하지 않는다.
연마된 육신으로 의지를 지탱한다.
란디우스는 혼자가 아니었다.
저 멀리서 루카스가 몸을 일으켰다.
카마엘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프란이 욕지거리를 토하며 가슴에 박힌 심판의 검을 뽑아냈고, 벨키안이 최후의 비술을 발해 스스로를 언데드로 탈바꿈 하였다. 레나가 피를 토하며 고개를 들었다.
“우오오오오!”
그들이 아우리엘을 향해 돌진했다.
아우리엘은 황금빛 파문을 일으켰다. 돌진하는 이들을 모조리 날려버리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리할 수 없었다.
&
“우리의 태양.”
항상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사람.
그 어떤 절망 속에서도 그와 함께라면 나아갈 수 있었다.
두려움에 떠는 대신 용기를 품고 하늘을 우러를 수 있었다.
&
“솔라 블레이드.”
태양신의 검이 아우리엘의 명을 거역했다.
솔라리의 의지인지, 아니면 란디우스의 의지인지는 알 수 없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의 검은 아우리엘의 곁을 떠나 란디우스에게 돌아갔다. 그의 손에서 다시 한 번 태양의 힘을 발산했다.
“우오오오오!”
란디우스가 개벽의 검을 펼쳤다. 파문을 갈라냈다.
카마엘과 루카스가 아우리엘에게 돌진했고, 노 라이프 킹- 뱀파이어 로드로 거듭난 벨키안이 강대한 죽음의 마력을 발산했다. 프란과 레나가 주변에 자리한 모두의 상처를 회복시켰다.
아우리엘이 카마엘을 베었다.
하지만 설화십이검의 한기가 아우리엘의 칼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몸부림치던 클라우솔라스는 솔라 블레이드가 그러했던 것처럼 아우리엘의 곁을 떠났다. 루카스의 손에 돌아가 성스러운 왕의 힘을 불러일으켰다.
“하찮은!”
아우리엘이 노성을 터트렸다. 다시 한 번 루카스를 베었다.
솔라 블레이드와 함께 돌진하는 란디우스를 향해 돌진했다.
솔라 블레이드와 심판의 검이 충돌했다.
태양의 전사와 심판의 대천사가 지상에서 격렬한 충돌을 일으켰다.
그야말로 기적.
하지만 그리 길게 이어질 수는 없었다.
란디우스는 결국 다시 아우리엘의 검 앞에 패하고 말 터였다.
란디우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란디우스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역시 들었으니까.
구천구문을 통해 고대의 선인의- 구천구문의 힘을 관장하는 여신의 목소리를 들었으니까.
유더가 준비한 불씨.
구천구문을 통해 숨겨온 그것.
유더가 손을 뻗었다. 차갑게 식어가던 코델리아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직이 속삭였다.
불씨를 일으켰다.
&
최초로 검리에 닿았던 유더는 아무렇게나 쓰러져 하늘을 보았다.
대소환은 일어났고, 그로 말미암아 플레이아데스는 멸망했다.
폐허가 된 지상 위에서 악마들과 천사들은 끝나지 않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어린 신 아탈리아의 이야기를 들었다.
유더는 그녀의 도박을 만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수방관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한 수.
유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수.
“회귀가 아니라면··· 이어 붙이는 것이라면··· 당신은 앞으로 이어질 흐름의 밖에서 플레이아데스를 관찰할 수 있겠죠.”
아탈리아가 복사하여 붙여 넣는 것은 플레이아데스와 지옥, 천상의 기록만이었다.
삼계 밖의 세계와, 그곳에 거하는 존재들에게는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
유더의 말에 구천구문의 여신은 동의했다.
삼계의 존재들은 역사가 붙여 넣어진 순간 기억 위에 기억이 덮어 쓰여질 운명이었지만 애당초 삼계 밖에 거하는 그녀는 기억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남기겠습니다.”
저의 모든 기억을.
지금의 감정을.
제가 이룩한 모든 것들을.
[하지만 유더. 알고 있나요? 당신의 영혼은 세상을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완전히 초기화될 거예요. 그렇게 하여 다시 태어난 유더는 당신이되 당신이 아니겠죠. 설사 기억과 감정을 남긴다 해도··· 지금의 유더 당신은 여기서 끝이에요. 당신이란 존재는 종말을 맞이할 거예요.]
차가운 말이었지만 모두 사실이었다.
그리고 유더는 이미 그러한 사실들을 알고 있었다.
“괜찮아요.”
설사 유더 자신은 여기서 끝이라 할지라도.
다음의 유더는 코델리아를 구할 수 있기를.
자신보다 더 그녀를 사랑할 수 있기를.
그녀에게 내일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최초의 유더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코델리아의 얼굴을 떠올리며 잿빛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구천구문에 남기며 한 가지 망상을 해보았다.
멸망을 맞이하지 않는 세계.
유더 자신이 코델리아와 함께 하고, 아버지와 장인어른 역시 살아 계시는, 형과 코델리아의 언니도 살아 있고, 루카스가 스칼렛과 웃으며 함께하는··· 그런··· 그런 행복하면서도 꿈과 같은 세계를.
“완벽한··· 해피엔딩을 위해.”
그 꿈같은 이야기를 위해.
최초의 유더는 눈을 감았다.
애달픈 미소를 지으며 구천구문에 스스로를 남겼다.
&
세계는 다시 한 번 멸망을 맞이했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의 손을 잡은 채 무너지는 하늘을 보았다.
첫 번째 유더의 이야기를 듣지 못 했지만, 둘은 그와 같은 생각을 하였다.
비록 자신들은 멸망한다 할지라도.
이 세계는 소멸한다 할지라도.
다음의 세계는 이어질 수 있기를.
다음의 유더와 코델리아는 함께 행복할 수 있기를.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마지막 입맞춤을 나눈 뒤 손을 뻗었다.
구천구문에 서로의 모든 것을 기록하였다.
최초의 유더가 그러했던 것처럼 꿈과 같은 세계를 그려보았다.
&
계속해서 이어졌다.
때로는 유더 혼자서.
때로는 유더와 코델리아가 함께.
구천구문의 여신이 한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들 하나하나는 결국 같은 영혼을 가졌다 할지라도 타인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였다.
다음에 이어질 유더와 코델리아를 위해, 그들이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도록 기원했다.
그들을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들을 구천구문에 기록하였다.
그리고 지금.
마침내 그 모든 것들이 이어졌다.
구천구문을 통하여 유더들과 코델리아들의 의지와 기억과 감정과 그들의 모든 것들이 하나의 궤적이 되어 전해졌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그것을 이어받았다.
모두의 궤적을 이어받아 새로운 궤적을 그려냈다.
유더가 코델리아를 보았다.
코델리아 역시 유더를 보았다.
첫 번째 유더의 바람.
함께 멸망을 맞이했던 유더와 코델리아가 꿈꾸었던 세계.
그들 모두가 간절히 소망했던 단 하나의 기적.
“완벽한 해피엔딩을 위해.”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를 보았다. 눈물을 흘리며, 최고의 미소를 지으며 온전히 이어진 궤적의 힘을 발하였다.
&
란디우스는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아우리엘의 검에 밀려 내쳐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시 쓰러져 하늘을 우러러야 했지만 폐부 끝에서부터 끌어올린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황혼이 진 하늘이었다.
어둠이 밀려와 밤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란디우스는 단언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소리 내어 선포했다.
“아무리 어둡고 깊은 밤이 이어진다 해도.”
칠흑 같은 절망이 하늘을 뒤덮는다 하여도.
“태양은 결국 다시 떠오르기 마련이지.”
아우리엘은 고개를 돌렸다.
태양의 신위를 상징하는 솔라리의 헤일로가 자신의 손을 떠나 다시 코델리아에게 향하는 것을 보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터트렸다.
몇 번이나 이어진 세계.
몇 번이나 이어진 멸망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았던 이들의 의지.
그 모두가 하나로 이어졌다.
그로 말미암아 기적을 일으켰다.
지평을 넘어.
한계를 넘어.
구천구문 제구문.
초월지신.
천상과 지옥에 맞서 플레이아데스를 수호하는 자.
마침내 탄생한 플레이아데스의 수호신이 그 찬란한 빛을 발하였다.
< 제126장 - 궤적을 이어가는 자들 #2 > 끝